#101. 모태 신앙인의 고백

- 평생에 걸친 나의 보잘것 없는 신앙일지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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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을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내가 세상에 빛을 보았을 당시 우리 부모님께서는 성당에서의 신앙생활에 열심이셨다. 그래서 나는 아주 어릴 적 어머니의 품에 잠든 채 이마에 성수를 발리었다.
이후 동네 성당에 부속한 유치원에 다녔고 어머니는 교리 교사를, 아버지는 복사단을 맡으면서 주일마다 온 가족은 성당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레 성당이라는 공간은 나의 가정이자, 학교이자, 모든 것이 되었다.

유년 시절의 기억들은 희미하지만, 몇 가지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들이 있다. 내가 다녔던 유치원 뒤에는 자그마한 동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는 언제나 새하얗게 익은 민들레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언덕 가득 맺혀 있는 민들레를 볼 때면 우아아 소리를 내며 달려가서 모든 민들레 꽃씨들을 다 헤집어 놓았다. 내 손끝에서 민들레 꽃씨들이 솜털처럼 쥐어지며 자연스레 날아갔고, 수백 송이 민들레가 핀 밭을 뛰어다니며 까르르 웃던 기억이 생생하다. 먼지 같은 민들레 꽃씨들이 푸른 하늘 가득히 수놓으며 저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볼 때는 한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온몸에 민들레 씨앗을 잔뜩 묻히고서 예수님 앞에서 기도하고 집으로 향할 때면 어김없이 동네 어른 신자분들이 떡꼬치나 사탕 같은 것들을 입에 물려주셨다.

어느 날은 교리교사 선생님께서 ‘나중에 신부님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를 물었는데, 당시 친하게 지내던 형이 지체 없이 손을 번쩍 들기에 나도 그 형을 따라 손을 머리 위로 들어버렸다. 미사가 끝나고 선생님께서는 나와 형에게 장하다며 막대사탕을 하나씩 쥐어 주셨다. 어머니는 내 손에 들려 있는 막대사탕에 대해서 물었고, ‘나는 미래에 신부님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니 어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지셨다.
나와 같이 손을 들었던 그 형은 실제로 신부님이 되었고, 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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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도 성당을 향한 발걸음은 계속되었다. 유아기에는 성당이 놀이터에 가까웠다면, 학교에 들어가며 종교는 내게 사교의 장으로 뒤바뀌었다. 그렇게 어른 같아 보였던 중/고등학생 형, 누나들과 유일하게 어울릴 수 있는 곳이 성당이었고, 학교에서는 내외하느라 말도 잘 섞지 못했던 또래의 이성 친구들과 한마디 말이라도 섞을 수 있는 곳이 성당이었다. 이곳에서 생애 처음 다원화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성당 교우들과 소통하며 손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우게 된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가톨릭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성찬 전례’이다. 이는 ‘예수님의 몸’으로 일컫는 밀떡을 받아먹는 예식이다. 그 밀떡을 모시기 위해서는 대략 여섯 달 정도 집중적으로 교리 교육을 받게 된다. 매주 빠지지 않고 교리 교육을 들어야 하고, 꽤 많은 양의 기도문을 암기해야 하는 등 나름 혹독한 교육이 이어진다. 그 교리 교육을 수료할 때 즈음, 수료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날에 나는 컴퓨터 오락에 완전 정신이 팔려버려 사진 촬영 시간을 한참 늦었고 부모님에게 호되게 혼났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마냥 즐거웠던 기억이 많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채 계란을 예쁘게 색칠하고서 어머니에게 자랑했던 기억, ‘은총 시장’이라는 어린이 잔치 날에 원하는 장난감과 학용품을 잔뜩 샀던 기억, 그리고 성탄절 날 한아름 간식을 안고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 등 성당의 존재는 나의 학창 시절에도 꽤 많은 추억을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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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의 본격적인 신앙생활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톨릭 교구 재단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교에 상주하는 신부님이 계셨고 입학식, 개교 기념식, 수능 기념행사, 종업식 등 학교의 굵직한 행사를 할 때는 꼭 미사를 집전했다. 나는 학교에 입학해서 자연스레 가톨릭 동아리 부원이 되었고, 매주 경당에서 열리는 미사에 참여했다. 내친김에 가톡릭 밴드부에도 가입하여 악기도 배웠고, 미사 시간에 직접 성가를 연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 비로소 성경 말씀의 전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꽤 오랜 기간 성당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의 시선에서 전례나 강론을 집중해서 듣거나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고등학생 즈음 되니 내가 믿는 종교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혹은 성서 안에 있는 비유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등 하나씩 깨닫기 시작했다.

종교를 이해하는 눈이 트이는 한편, 신앙은 나의 고된 수험 생활 중 일종의 도피처가 되어 주기도 했다. 교내에서는 딱히 할 수 있는 여가거리가 없었기에 시간만 나면 나는 경당으로 가서 기도했다. 원하는 것이 생길 때, 일이 내 마음만큼 풀리지 않을 때, 일상생활 중에 무료함이 찾을 때 항상 경당으로 향해 두 손 모아 기도를 했다. 기도의 내용은 언제나 나를 향해 있었다.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기를‘ 혹은 ‘경쟁자보다 성적이 더 좋기를’ 따위의 기도를 하면서 오직 나 자신만을 생각했었다. 마음이 다급해지니 종교부터 찾았던 것이다. 그렇게 신앙을 자기 최면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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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신앙을 필요에 의해 찾았던 경우가 많았다. 막상 무한한 시간이 주어지는 대학생이 되자 오히려 성당으로 발길을 끊어버렸다. 세속적인 삶 안에는 교회 활동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군에 입대하게 되며 나는 또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찬 전례를 드리며 ‘오늘은 혼나지 않게 도와달라’며 예수님께 기도했다. 여전히 나의 기도는 나 자신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훈련병 시절에는 사제 책 반입이 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종교 관련 서적은 허용되었다. 훈련병 신분에는 훈련을 받는 것보다 멍하게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아무것도 할 것 없이 멍하게 서있는 순간마다 나는 가슴팍에서 손책자만 한 성서를 꺼내 조금씩 읽었다. 성서를 읽다 보면 시간도 참 잘 갔고, 인생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이는 고된 훈련 사이에 약간의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자대에 배치받으면서 나는 다시 종교를 도구처럼 이용했다. 내가 배속된 부대에서 성당에 가려면 부대 밖 20분 정도 떨어진 공군 기지까지 갔어야 했는데 그곳에서는 일반 병사들과 같이 복지 시설을 잔뜩 사용할 수 있었다. 특히 일반 병사들이 구경하기 힘든 햄버거나 탄산 같은 간식을 살 수 있었기에 나는 가끔 입이 심심하거나 뻥 뚫린 부대 밖 세상을 구경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천주교 배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대 내 교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사령관 눈에 띄어서 그때부터는 부대 내 교회에 출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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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생활 중에도 신앙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스리랑카에서 생활할 때는 사업지 근처에 고아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 인도에서 오신 신부님이 운영하고 있었다. 신부님과 나는 인종도, 문화도 완전히 달랐지만 같은 종교를 믿고 있다는 이유로 더 많은 정을 쌓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고아원에서 도움을 요청할 때면 흔쾌히 도와드리려 노력했다.

또한, 해외여행을 할 때면 꼭 한 번은 현지 성당에 들러 짧게나마 기도를 드리고, 해외 생활을 할 때도 부활절이나 성탄절과 같은 중요한 축일에는 꼭 성당에 가서 성체를 모셨다. 그렇게 나는 한국으로부터 시작하여 스리랑카에서, 아이슬란드에서, 일본에서,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스리랑카에서 각기 다른 성체를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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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물려준 종교의 존재는 내 생애 곳곳에 자리 잡고 있고, 여전히 반짝이며 나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독실한 신자처럼 비추어질 수 있겠으나, 사실 나는 언제나 필요에 의해 먼저 종교를 찾았던 적이 많다. 몸이 바쁠 때는 생각조차 안 하다가, 궁지에 몰리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는 늘 두 손을 모으고 하늘부터 바라본다.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내키는 대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내가 언제나 정직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나의 신앙이 방향키를 잡아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풍파를 거치며 나의 신앙은 여태까지 이렇게 흘러왔고, 앞으로는 조금 더 순종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다. 존재를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종교의 가치는 평생 내 삶을 거쳐 여전히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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