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잘 보여주어야, 잘 살아남는대요.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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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남부의 해양 도시로 휴양을 갔을 때의 일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한 동양인이 먼저 말을 걸어 와서 잠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20대의 젊은 남자였는데, 경비정을 타다가 잠시 스리랑카 해변가에 기항하는 중이라고 했다. 난생처음 만나는 직군의 사람이라 자연스레 흥미가 당겼다.
누구로부터 배를 지키냐 물으니 그는 당연히 ‘해적’이라 대답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해적’이라는 존재를 떠올릴 일이 아예 없으니 내게는 엄청 생경하게만 느껴졌다. 예로부터 해적은 계속 존재했겠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해적이라는 것이 실존한다는 사실이 마치 별나라 일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나에게 상선이란 수천 톤의 컨테이너를 수백 개를 쌓아 올린 커다란 배라고 생각하면서, 왠지 해적은 낡은 모터에 자그마한 통통배를 타고 정글도를 들고서 사람들을 위협할 것이라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상선은 현대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해적은 구식으로만 떠올렸던 것이다. 그런 해적이 상선을 나포할 수는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혹여 배를 나포한다고 한들,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를 어떻게 빼앗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여전히 해적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내 생각처럼 그렇게 현대적이거나 규모가 크지는 않다고 했다. 다만 살상 무기를 가지고 상선의 선원들을 위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답을 했다. 하지만 나는 내심 아무리 그래도 자그마한 해적을 내치기 위해 경비정까지 동원할 일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선박회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만에 하나 선박에 해적과 관련된 문제가 생긴다면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으니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고, 그렇게 굳이 비용을 들여 경비 업체를 고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해적이 없다면, 그들이 바다에 나타나지 않으면 경비 업체마저도 사실 존재의 이유가 없어지니,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해적이란 존재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경비 회사들은 일종의 꾀를 쓴 듯했다. 몇 개의 해적 단체와 연결고리를 만들고, 주기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출몰하도록 요구한다고 했다. 그때 경비정이 출동하여 해적을 내쫓는 그림을 가끔씩 연출한다고 했다. 그 대가로 해적에게도 약간의 돈을 주는 듯했다.
그렇게 경비 업체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지키는 것보다,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좋았다. 상선은 배를 지켜서, 경비정은 역할을 해서, 해적은 돈을 벌게 되어서 좋은 일종의 포지티브섬 게임(positive-sum game)이 만들어진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보여주는 것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잘 알게 된 순간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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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연으로 결정되어 보이는 것조차도 알고 보면 모두 보이는 것으로 연출되어 있다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치적을 자랑하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 성격이지만, 어쩔 수 없이 매 순간 보여주기 위한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던 군대 시절이 있었다.
부대에서 훈련을 한다고 해도 평소에 정비나 차량이 잘 운용되고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훈련의 목적은 사열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잘 작동하지 않더라도 쉬쉬했던 장비들도 사령관의 눈앞에서는 완벽히 작동해야만 했다. 평소에는 모터도 잘 안 돌던 장비라도 사령관의 눈앞에서 물이 쏟아져 나와야 비로소 우리의 훈련은 성공적으로 평가받았다. 평소 말썽을 부리던 장비가 단 하루라도 잘 작동한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장비가 되었다. 정훈과에서는 화창한 햇빛 아래 물이 쏟아지고 있는 제독기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고, 사령관의 눈초리가 반달 모양으로 바뀔 때에야 우리의 훈련은 종료되었다. 우리 성과는 얼마나 잘 보여주는가에 달려 있었다. 평소의 모습도 중했지만, 사실 그렇게 중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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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떤 단체를 통해 여행을 떠날 때에는 늘 현수막 앞에서 사진을 담아야 했다. 나는 여행지를 눈으로 담는 것을 좋아해서 굳이 사진을 찍지 않는데, 어떤 단체를 통하거나 후원을 받아서 갈 때는 늘 커다랗게 적힌 글씨 앞에서 보여 주는 사진을 찍어야 했다. 누구 덕으로 이 여행지에 왔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 여행의 관건이었고, 그것을 잘하는 단체가 다음 사업에서 중요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직장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의 일을 잘 보여 줄 줄 아는 것이 나를 알리는 가장 큰 요소가 되었다. 입사 전까지는 내가 무언가 잘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자랑 내지는 과시를 하는 것 같아 마음 끝으로부터 낯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그래서 다들 하는 것처럼 말하지 않고 쉬쉬하며 지냈다. 묵묵히 나의 일을 선비처럼 하다 보면 누군가가 나의 치적을 자연스레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 연초에 이루어지는 승진과 급여 인상을 위해서는 얼마나 고생해야 했는지 낱낱이 자랑하고 보여주어야 했다. 잘 보여줄수록 나의 고과는 올랐다. 보여 줄 줄 아는 능력도 커다란 것이라는 것을 30대가 되어 조금씩 깨달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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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고 자랑하는 행동은 여전히 낯부끄럽지만, 생각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겉으로 비치는 모습에 좌우되는 경우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을 하루하루 깨닫는다. 보여주기 부끄럽지만 보여주어야 하고, 자랑하기 민망하더라도 계속 자랑해야 하는 현실이 내게는 부담스럽고도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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