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 30대로서 살아본 첫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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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의 연말을 맞이하며 생애 처음으로 30대로서의 첫해를 마무리한다. 미혼의 30대 남성이자, 직장인으로서 살아갔던 한 해는 꽤 평범하면서도 특별했다.
그래도 여태껏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해가 뜨고 다시 지는 순간마다 여전히 모르는 것은 오리무중처럼 느껴지고, 반대로 알아야 할 것들은 산더미처럼 불어난다. 아무것도 없는 내게 아무 이유 없이 입에 빵을 밀어주는 이는 없었고, 그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참한 발길질을 겪어야 했다. 재산이든, 인맥이든, 능력이든 어떤 것이라도 말이다.
평생 ‘나’와 함께 살아왔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알기 쉽지 않은 세상이었다. 어떤 것에 끌린다는 느낌이 있을 뿐, 왜 이끌림이 있었는지나 그 내면의 일은 늘 알기 힘들었다. 그러면서 매 순간 새로운 환경에 처할 때마다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이나, 못된 행동들이 쑥쑥 솟아나는 것을 목격할 때가 있었다.
아직 30대를 한 해 밖에 살아보지 못했기에 20대의 나와 어떤 것이 다른지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법정 성인이 된 지 만 10년이 지나면서 20대의 나와 비교해 어떤 생각과 행동들이 바뀌게 되었는지 조금씩 나열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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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새로움의 추구 방식’의 변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장 극적인 생각의 변화라고 느끼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여행이 즐겁게만 느껴지지는 않는 점이다. 그렇게나 여행을 사랑해서, 여행 업계까지 들어온 나였지만 말이다.
전역 후 20대 초반에 처음 일본이라는 이국의 땅에 발을 디뎠을 때 느꼈던 문화 충격에 휩싸이는 순간 나는 마치 개안(開眼)을 하는 듯했다. 집에서 단 한 시간 떨어진 곳에서 펼쳐지는 생활양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내겐 그토록 충격이었다. 그러면서 최대한 많은 국가와 문화를 겪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이후 틈이 날 때마다 해외로 나다녔다. 여태 알지 못했던 것들을 피부로 직접 깨우치는 짜릿함이 너무나도 좋았고, 어린 나에겐 무엇보다도 더 큰 자극제이자 영양제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나름 일정한 삶의 양식을 찾게 되었고, 이제는 멀리 떠나는 것이 그다지 달갑게만 느껴지지은 않는다. 여행이 싫어졌다기보다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더욱 좋아졌다는 느낌이 맞겠다.
물론 여행에서 평소에 가 보고 싶었던 장소를 방문하고 생경한 음식을 먹어보는 것은 좋겠으나, 여행을 다녀온 후에 느껴지는 허탈함, 단조로운 일상생활로 다시 돌아오는데 느껴지는 피로감이 여행이 끝날 즈음에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많은 것들을 투자하면서 행복을 얻는 것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찾기 시작하였다. 터키에서 모래 커피를 직접 마시는 것도 행복하겠지만, 동네 카페에서 핫초코를 마시며 느끼는 따스함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나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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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성실함’과 ‘꾸준함’의 진가를 알게 된 것도 30대의 큰 소득이다.
나의 지난 20대는 이것저것 기웃거리기 바빴다. 한 분야에 정통한 박사도 부러웠고, 100개 이상의 곡에 이름을 올린 작사가도 부러웠고, 요가를 잘하는 선생님, 클라이밍을 잘 오르는 후배, 피아노를 잘 치는 누나 등 무언가 내세울 만한 것이 있는 이들이 정말 부러웠다. 그들의 실력은 모두 ‘재능’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들의 재능이 부러웠다. 그러면서 나도 어딘가에 재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온갖 것들에 손을 다 대어 보았다. 축구, 꽃꽂이, 음악, 영화 등 조금이라도 끌림이 있는 곳이라면 부리나케 달려가 ‘나에게 과연 재능이 있는지’를 시험해 보았다. 하지만 한두 번의 시도만으로는 나의 재능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30대가 되어서야 결국 꾸준하고 성실히 하는 이들이 실력을 쌓아 나갔다는 것이 깊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특별한 재능이 필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들, 잘하고 싶어서 그냥 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체리 피킹(*cherry picking: 자신에게 유리한 일부 데이터나 사례만 취사선택하고 불리한 것은 무시하는 편향된 행위)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많은 단체들을 겪으며 알맹이만 쏙 가져가는 재미도 있었고, 그런 내 모습을 똑똑하고 영리하다는 자만에 빠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활동이든 발만 담근 곳에서는 얻어갈 수 있는 것이 확실히 제한적이었다. 한아름을 가져갈 수 있는 곳에서 항상 한 줌만 가져가면서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떤 것이든 딱 할 줄 아는 정도까지만 깨우쳤다.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알았더라도, 근육이 크지는 않았던 식이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할 줄 알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잘하는 것이 없는 나의 모습이 흐릿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며 이런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이제는 나도 한 분야에 정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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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해서 아직 회사 생활 3년 차에 접어든 아주 말단 직원이지만, 이 작은 사회에서 나 혼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었나. 주변에서도 경력을 쌓은 후 더 나은 기회를 찾아가는 것을 권해 주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 자리에서 오래 버텨낸 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존경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당장 우리 아버지도 한 직장, 한 공간에서 무려 30년의 인생을 바치셨다.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꾸준히 성실하게 무언가를 해내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한 공간에 오롯이 버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기에, 오래 버틴 이들은 그저 존경심부터 생겨났다.
그렇게 나도 그들을 닮고 싶었다. 그래서 이제는 옮겨 다닐 생각보다는 더 꾸준히, 더 오래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커졌다. 나도 무언가를 꾸준히 잘 버터내고 싶다. 오래 버티기 위해서, 최대한 좋은 면만 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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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문제도 똑같다. 20대 때에는 주변의 조언이 그러했듯이 나 역시도 젊을 때 최대한 많은 이성을 겪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관계 역시도 꾸준함과 성실함이 필요했다. 성실하지 못했던 나는 그렇게나 힘들게 쌓은 관계를 우르르 망쳐버리기 일쑤였다.
이제는 그렇게 함부로 포기하기가 더더욱 싫어서, 정말 신중하게 생각하고 선택하는 경향이 생긴 듯하다. 더 이상 아무것이나, 아무 대상에게 꾸준하기는 싫으니, 옥석을 골라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커졌다. 그러므로 날이 갈수록 생각이 길어진다. 이전보다 신중해졌기 때문일까, 섣부르게 나갔던 행동들이 많이 줄어든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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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자연스레 말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인생을 통틀어 보았을 때 모든 생지옥은 말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 않아야 할 말을 굳이 하고, 듣지 말아야 할 말을 굳이 들으면서 서로 상처 주고받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았기에, 결국 말을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괜한 말을 할 때도 신중을 거듭하고, 괜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 단어를 고심한다. 또, 한 번 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었던 것을 겪은 이후에는 더 이상 말을 우르르 쏟아내지 않는다.
그렇게 입을 닫고 있다 보니 쓸데없는 언쟁과 의미 없는 관계에서도 많이 벗어난다. 차라리 나는 글로 표현하는 것을 택했다.
나를 지키는 방법도 조금씩 깨닫는 중이다. 건강도, 생각도, 돈도 다 마찬가지이다. 오늘 지켜야 내일 살 수 있는 것을 알기에 억척같이 지켜내려 하는 것이 요즘의 내 모습이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왜 그렇게 악착같이 한 푼을 아끼려고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직접 돈을 벌어 보니, 한 푼을 남기기 위해 사용한 소중한 인생의 시간들을 쉽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비로소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오히려 온갖 할인 전단지를 유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오늘 한 푼 아끼는 것이, 내일 큰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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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대에 비해 무언가에 정통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커졌다는 것이 결론이다. 성실함과 꾸준함의 힘을 알고, 그것을 믿고서 올곧은 마음으로 나의 전문성을 확립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커진 지금이다.
세상에 뜻을 세운다는 이립(而立)의 말처럼, 20대 시절에 많은 것을 겪었으므로 이제는 기어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며, 또 마땅히 그럴 시기가 찾아왔다. 이제는 일을 더 벌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까지 구축한 것들을 더 겸허히 다져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도전들이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더 정통한 삶을 살게 되겠지, 앞으로의 삶은 더욱 그러하겠지 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