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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울음을 터뜨렸을 때부터 이 세상은 모두 위험 덩어리였을 것이다. 막 세상에 눈을 뜬 나는 무엇이 안전인지 위험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고, 그저 누군가가 먹여주는 음식을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목젖으로 삼켜냈을 것이다.
도처에 자리 잡은 '위험'들은 익숙해지면서 차차 '안전'이 되었다. 안정된 생존을 이어가려면 위험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을 해할 수 있는 단단하고 뾰족한 물건들을 출혈 없이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배웠고,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속에서 내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그렇게 나의 생존은 점점 안전과 안정을 본능적으로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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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삶을 뒤돌아보면 나는 늘 안전에서 위험을 선택했고, 또 그 위험 속에서 안전을 찾아가는 연습을 이어갔다.
살아오며 꽤 많은 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10대부터 20대까지 거주지를 옮긴 것만 열 번을 넘을 정도였다. 기숙사 생활부터 시작해 대학, 군대, 유학, 해외 주재원 근무까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생존하기 위해, 내 영혼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마치 카멜레온이 피부를 바꿔내듯 벗겨내야 했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완전히 그 사회에 동화되려 애쓰는 것이 유일한 답이었다. 학생 시절에는 교칙에 따라야 했고, 군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상관에 복종해야 했다. 정해진 옷을 입고서 각을 세워 걸었고, 주어진 밥을 먹으며 일정한 시간에 자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밖에서는 그렇게나 위험으로만 보였던 ‘군대’라는 조직마저 그 안에서는 어느새 안전으로 인식했고, 약 2년 후 전역을 앞두고서는 ‘부대 밖은 전쟁터’라며 바깥 세상을 위험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해외 생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미지의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서는 어설프게나마 현지인의 행동을 따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스리랑카어로 소통하고, 그들의 언어로 일용할 양식을 구했다. 당시 나는 스리랑카 시골 동네에 작은 영어 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열 살배기 아이들에게서 스리랑카어 회화를 배웠다. 겨우내 배운 몇 마디의 단어를 쫑알거리며 농담을 던졌다. 그들과 함께 식사할 때면 젓가락을 들지 않고, 쏟아지는 밥알을 오른손으로 쥐었다. 원활히 대화는 잘 통하지 않았지만, 그렇게나마 우리는 조금씩 친해질 수 있었다. 이 모든 행동은 위험한 공간에서 안정을 찾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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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여러번의 경험을 통해 안전과 위험은 아주 상대적인 개념임을 깨닫게 되었다.
일본 유학을 했을 때 멕시코에서 유학 온 학생이 있었다. 그와 친해지고 난 이후에 넌지시 멕시코는 위험하지 않냐며 물어보았다. 되려 그는 일본으로 유학올 때 주변 어르신들이 왜 그렇게 위험한 나라까지 공부하러 떠나냐며 친구를 만류했다고 했다.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문장일 지도 모르겠으나, 우리도 막연히 미지의 남아메리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들 역시도 미지의 아시아에 대해서 똑같은 두려움을 안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우리는 완전히 색다른 곳에서 만나, 완전히 낯선 환경에서 각자만의 안정을 찾아가는 방법을 모색했다. 나는 한류를 좋아하는 학생들과 함께, 그는 라틴 음악을 좋아하는 가수들과 함께하는 식으로 말이다.
다만 정말 위험 속에 처한 순간에는 다시 안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스리랑카에서 목격한 폭탄 테러를 겪을 때에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나의 조국을 생각하였고, 일본 유학 시절 생활에 잘 풀리지 않는 날들을 겪을 때에는 고향의 옛 친구들을 생각했다. 이 또한 위험 속에서 안전을 쫓아가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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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길 때는 미지의 세계로의 발을 뻗은 순간인 경우가 많았다. 주재원 파견도, 유학도, 취업도 다 마찬가지였다. 미지(未知)의 세계를 점점 기지(旣知)의 세상으로 바꾸어가는 재미를 알았기 때문일까, 나는 늘 안전 속에서 위험으로 나아가곤 했다.
결론적으로는 미지의 서울로 마지막 발걸음을 옮겨 안정을 찾아 택한 길을 걷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와 공간으로의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안정적인 곳에서 위험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가령, 매달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월급을 바탕으로 변동성이 높은 종목으로 투자하는 식이다. 이런 식의 위험 추구 역시 언젠가 나에게 안전의 범위 내로 들어올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짧았던 나날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면 그야말로 ‘안전에서 위험을, 위험에서 안전을’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는 나름 안정을 찾았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날들은 여전히 미지의 연속이기에 변동성을 향해 회사를 박차고 나갈 가능성도 물론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변동성 속에서 나는 또 고정적인 수입을 다시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평생 안전과 위험이 어우러져 파도처럼 휘몰아친다. 그 파동에 몸을 어떻게 뉘이느냐가 언제나 나의 승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