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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몸담고 있는 봉사단체에서 ‘플로깅’ 봉사에 참여했다. 플로깅이란 ‘달리기를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말한다.
길가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줍는 경험 자체가 참 오랜만이었다. 사실 여태까지 플로깅 행사에 참여할 기회는 종종 있었지만, 선뜻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군대 시절 높으신 분들이 부대를 방문할 때 길가에 있는 모든 쓰레기와 잡초를 뽑아냈으며, 심지어는 연병장의 자그마한 돌까지 하나하나 집어내며 한숨을 내쉬던 그날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에, 그다지 쓰레기를 줍는 것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자루와 집게를 들고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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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권에서 도시의 쓰레기를 줍는 것은 처음이었다. 쓰레기를 주우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담배꽁초들이었다. 비흡연자인 나는 아예 담배에 관심이 없어서 길거리에 담배꽁초가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막상 집중해서 들여다보니 담배꽁초는 내가 걷는 거리 곳곳에 숨겨지듯 깔려 있었다. 인식하기 시작하니, 그제야 보였다. 플라톤이 주창한 동굴의 우화처럼, 비로소 동굴 속에서 횃불을 마주한 듯한 느낌이었다.
담배꽁초가 눈에 들어오니 비로소 다른 쓰레기들도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껍질이 보였고, 어지러이 흩뿌려진 명함이 보였고, 무심결에 버려진 듯한 옷가지들이 보였다. 나는 여태 이것들과 같이 살아가는지도 인식하지 못했고, 인식하더라도 누군가가 치우겠지 하며 대수롭게 넘기며 살아왔다. 이렇게 자그마한 골목 하나를 지나며 쓰레기를 주웠는데 어느새인가 커다란 마대 자루 하나가 가득 차 있었다.
플로깅 행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는, 구태여 여태 시전을 두지 않았던 쓰레기들이 잔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는 문장이 정말 딱 맞는 말이라는 것을 극적으로 느꼈다. 그리하여, 평소에 예쁜 것들을 많이 보고 인식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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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무언가에 몰두할 때면 딱 그것만 보였던 적이 많았다. 연극 극단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음향과 조명을 배우고, 이후 연극을 볼 때면 음향 조정실은 어디 있는지, 어떤 색감의 조명을 썼는지, 조명의 그림자가 어디까지 뻗치는지 등 세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극단에 들어가기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한창 스리랑카에서 버섯 농사를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버섯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이지만, 농업에 뛰어든 이후에는 일부러 장을 볼 때 마트 농산물 구역에 발걸음을 옮기며 경쟁사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의 품질이나 가격대를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몰두한 것만 보였고, 단연 그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전히 똑같다. 현 직장 3년 차에 접어들면서 나도 모종의 직업병이 생겼다. 나는 한국 시장에 영업하는 수많은 숙소들과 연락하고 또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우리를 대하는 숙소들은 아주 감사하게도 예의 있게 응대해 주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 있다. 물론 그런 숙소들을 상대할 때면 그 숙소의 이름이 더욱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우연히 여행지에 갔다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숙소를 만날 때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그러면서 나는 여행지의 해안가를 걸으면서 혹시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숙소들이 있는지 궁금해 숙소의 간판들을 꼭 읽어본다. 그 숙소에 머물렀던 적은 없었을지라도, 그 숙소에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상상해 보곤 한다. 이것이 현재 나의 최대의 몰두이고, 일종의 직업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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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대학원 진학을 해볼 것을 권한 적이 있다. 학문을 배운다면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역시 올바른 진리였다. 그는 경영학 박사 과정을 마쳤고, 사회에 일어나는 많은 일을 문제와 해결, 그리고 효율성으로 대표되는 경영학적 시선으로 곧잘 해석하곤 했다. 그분 앞에서는 해결되지 않을 문제는 없는 듯했다. 경영의 시선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야 했기에, 답이 없어 보이는 것들도 어떤 방식이던 해결책 제시해 주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다른 한편 그처럼 어딘가에 정통한다면 너무 똑같은 시선으로만 바라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한 번 사는 인생 정말 자유롭게 상상하며 유영하고 싶은데, 무언가에 정통한다는 것은 일부러 나 스스로 사고 방식을 가두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일상을 살다 보면 이미 나도 틀에 박힌 생각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여태 글을 써 오면서 별도로 글쓰기 수업을 들었던 적은 없었으나, 나는 최대한 글을 정갈하게 쓰려고 노력해 왔다. 오타와 비문을 고치고, 주어를 드러내고, 가능한 외래어를 쓰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하지만 작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 역시도 여전히 틀에 박힌 생각만 하고 있었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국어와 외래어가 섞인 아이돌 가사의 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발랄한 음색에 정제된 단어만을 넣다 보니 아이돌이 부르기에는 ‘올드한’ 느낌이 많이 든다는 평을 들은 적이 많다. 특히 아티스트 ILLIT이 부른 ‘Magnetic’ 가사 중 ‘슈퍼 이끌림’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땐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생을 살면서 그렇게나 멀어 보이는 단어를 조합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단어를 내뱉는다고 생각했지만, 나 역시도 이미 형식을 정해놓고서 글을 써 내려가는 모습을 발견한 순간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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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조망해 보고 싶다.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입고 싶은 것만 입는 편식은 식습관과 패션으로도 충분하기에 세상의 요모조모를 틀에 갇히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바라보고 싶다. 보고 싶은 대로 보이는 만큼, 앞으로 보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