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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에 있었을 때 일이다.
나는 스리랑카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했었고, 평생을 나름 도시에서 자라온 나로서는 시골 생활 중 다른 무엇보다 먹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특히 현지에서 먹는 현지식은 내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처음 맛본 스리랑카식 카레는 호기심에 몇 번 먹어 보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맛과 비릿한 향에 금방 물려버렸고, 다른 요리들 조차 특유의 코코넛 기름 향이 입맛에 맞지 않아서 나는 늘 입맛에 맞는 한국 음식을 만들어서 먹어야 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어린 남성이 할 수 있는 요이라고 몇 개나 되겠는가? 나는 할 줄 아는 요리를 대 여섯 개를 정해 놓고, 매일 순서를 바꾸면서 돌려가며 끼니를 때우는 생활을 했었다. 그래서일까, 스리랑카에서 생활하는 2년간은 ‘먹는 것’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었다.
평일의 모든 근무를 마치고 주말이 찾아오면 나는 늘 주변 도시로 떠났다. 더욱 발달된 생활환경에 대한 갈망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도시로 나가면 내 입맛에 맞는 익숙하고 맛있는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래서 주말이 찾아오는 날이 되면 항상 들뜬 마음을 안고 기차에 올라탔다.
어느 날 마을 주변의 Kandy에 가서 밥을 먹고 있는데, 동양인을 찾기 힘든 그 작은 도시에서 현지에서 살고 있는 느낌을 풍기는 동양인을 두 명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는데, 두 분은 현지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고 주변을 여행하고 있는 일본인 여행자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인연이 닿아 그날 하루를 같이 보내고,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손위 형이었던 두 분은 일본 Osaka 출신이라며 Osaka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을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서로를 잊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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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일본으로 단기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내가 일본에서 공부하게 된 곳은 Fukui라는 지역으로 Osaka에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렇게 학교 생활을 하던 중 기회가 닿아 Osaka 여행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 서로를 만나게 되었다. 언젠가 일본에 올 일이 있으면 같이 만나자고 했었던, 바람처럼 짧은 약속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만났던 분들 중 Daisuke라는 이름을 가진 한 명 밖에 만나지는 못하였었지만 Daisuke 형은 마치 어제 만난 친구처럼 나를 잘 대해주었다. 형과 함께 Osaka에서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장소나 음식점을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덕분에 Osaka에서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고, 형 역시도 본인에게는 하나 있는 외국인 친구가 자기를 만나러 와 주었다는 것에 참 즐거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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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참 취업을 하고 있을 때 Daisuke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중학교 교사인 형은 본인이 재직 중인 학교에서 조만간 ‘직업의 날’이 있다며 나에게 강사로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다. 이 ‘직업의 날’에는 근교 대학의 교수님, 외국 손님 등을 초대해서 학생들에게 자유로이 강의를 해주는 날이었다. 형은 요즘 일본 학생들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내게도 강의를 해 볼 것을 권유하였다. 아직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도 많이 벅찬 실력이라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결코 못 할 것도 아니었고 또 형의 부탁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하였다. 주제는 완전히 자유였지만 형은 나의 존재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완전히 생경한 외국인의 입장이라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하든지 흥미로울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 대해 한 번 장표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왜 대학 전공을 무역학과를 선택했고, 왜 해군에 입대했고, 그곳에서 어떤 훈련을 받았고, 어떻게 학교 홍보대사를 했고, 또 어떻게 일본인 여자친구를 사귀어 일본어 공부를 했고, 왜 스리랑카에 갔고 등, 내 인생을 보여주기 위해 개략적인 사진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장표가 100장이 넘게 나왔다. 그리고 정성스레 발표를 준비했다. 사실 ‘직업의 날’ 전후로 취업이 된다면 직접 Osaka 현장에 가서 멋지게 발표하고 싶었지만, 기대했던 기업에서 최종탈락이 되는 바람에 강의는 한국에서 화상으로 진행하였다.
비록 화상이기는 하지만 일본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는 사실에 많이 긴장되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씩 두 번, 약 40분가량의 강의를 준비하고 10분 간의 질답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 강의가 시작되고 부족한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내 인생에 대해서 차근차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약 한 시간 동안 일본의 어딘가에서 내 목소리가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느낌이 새로웠다. 그리고 비록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고, 긴장을 한 탓인지 알고 있는 일본어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Daisuke 형이 쉬운 단어로 설명을 잘 붙여주셔서 학생들은 내 이야기를 한결 더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내 강의는 별로 울림이나 감동을 주는 주제는 아니었다. 그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이야기했을 뿐인데, 집중을 해주는 학생들에게 참 고마웠다. 질답시간에는 일본에 있을 때 어떤 음식이 가장 좋았는지,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 한국에서 유행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 중학생스러운 질문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세상은 넓으니 많은 도전을 하자는 의견을 끝으로 강의를 마쳤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50분이었지만, 생각보다는 짧게 느껴졌고, 또 취미로 시작한 일본어를 통해 강의를 하는 참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었기에 나 자신으로 비추어 보아도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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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에서 스쳐 지나가듯 만난 인연으로, 나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내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오늘 만난 인연이 언젠가는 또 다른 곳에서 내 인생을 이야기하는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 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