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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Jan 05. 2024

#11. 서투른 시선이 만드는, 불안한 설레임.

초두효과, 첫인상은 참 무섭다. 누군가의 첫인상은 처음 만난 그 순간 0.3초 만에 모두 결정이 나고, 그 이후는 서로 대화를 나누며 그 느낌을 검증하는 단계를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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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이다. 고로 오류가 많다.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선구안을 가졌다고 한들 그것이 진실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렇기에 늘 우리 시선은 서투르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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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본능적으로 짝을 찾는다. 반려자를 찾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0.3초의 직감을 믿어야 하고, 그 직감에서 비롯된 설레임을 불안하게 추종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예감을 확신할 수 없다. 그렇기에 상대의 애정을 끊임없이 확인하려 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확실한 애정 속에 사랑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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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감은 참 무섭다. 전혀 믿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도 예상대로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면 근거는 없지만 아주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육감과 촉은 특히 이성관계에서 빛을 발한다. 이성 관계는 일반적인 관계가 아닌 특수한 관계이다 보니 우리의 육감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우리는 그 불확실 속에서 사랑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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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설레임을 느끼는 최고조는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했을 때가 아닐까. 나는 대학에 다닐 때 첫눈에 반해본 경험이 있다. 대학 재학 시절, 한 단체에 들어가기 위한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면접장에서 그 단체의 선배격이 되는 누군가에게 첫눈에 푹 빠지고 말았다. 정말 개안(開眼)을 한 느낌이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주변이 화사해 보였고, 심장이 멎는 듯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녀와 어떤 인연이라도 만들어지려면 어떻게든 그 단체에 꼭 속해야 했다. 간절했다. 면접을 볼 때도 힘을 주었다. 하늘도 나 진심을 알았는지 운 좋게 그 단체에 소속되게 되었고, 그렇게 그녀와의 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말 그대로 서투른 시선이 만드는 불안한 설레임을 직접 만들어 내었고, 그녀 생각만 한다면 매일이 아슬아슬한 다리를 걷는 듯 아찔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살면서 노력만으로 얻어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성취해오기 위해 나는 적잖은 노력과 땀을 흘렸다.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힘을 쏟는 것이고, 힘들여 많은 것들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기계적으로 학습하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적이 잘 나올 것이고, 춤 연습을 하면 실력이 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내 마음에 들어온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여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한 사람 생각만 하고,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보려 시도해도 그녀는 당최 마음을 내게 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우리의 마지막 학기는 끝나갔다. 절대적으로 같이 보낸 시간이 많았음에도, 그리고 나는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결국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했고, ‘인연이라면 다시 만나겠지’라는 자기 위로 속에 나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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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이 들어갔다. 오히려 힘이 들어가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닫는 순간이었다. 수영도 몸에 힘을 빼야 몸이 뜨듯, 투수도 어깨에 힘을 빼야 공을 빠르게 던질 수 있듯, 관계도 힘을 빼야 원활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너무 마음에 많이 담으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리고, 사랑을 마음에 가득 담아도 결국은 바닥에 꺼질 수 있다는 것을 처절히 느낄 수 있었다. 힘을 뺀다는 것, 마치 스며들듯이. 바다에 뿌려지는 비처럼, 가로등 아래로 내리는 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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