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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Jan 05. 2024

#12. 미워하는 마음은, 가릴 수 없는 게 있지.

누군가를 미워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의 감정은 무척이나 다채롭지만 그중 미움의 감정은 가장 오묘하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긍정적인 것과 좋은 것을 찾아다닌다.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에 시간과 힘을 쏟으며 열정을 불태운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시간과 힘은 한정적이기에 좋아하는 것만 즐기는 것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 세상에는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것을 찾으려 노력하고 거기에 열정을 쏟는다. 미워할 시간도 없다. 그러기에는 우리는 주어진 것이 너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한다. 미워하는 마음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 누군가의 외모가, 눈빛이, 태도와 말투가, 생각과 사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쉬이 그를 미워해 버린다. 미워하면서 우리에게 얻어지는 것은 딱히 없지만 우리는 굳이 미움을 택한다. 미움을 택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빛은 모두 가려버린 채 어둠만을 보겠다는 뜻이다.


미워하는 마음은 눈덩이처럼 커다랗게 불어나기 십상이다. 누군가의 한 요소가 밉게 보이기 시작하면, 그 개체와 그 존재가 미워 보이는 것은 순식간이다. 누군가를 싫어할 때면 그의 말투나 행동 등 특정한 한 요소가 미웠겠지만, 결국은 그 자체를 미워하는 것으로 귀결이 된다. 나아가 그의 친구 혹은 그가 속해 있는 단체, 그가 맺고 있는 관계 등 모든 것이 미워진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미움에 가려져 버린다. 찰나의 순간에 뿜어져 나가는 수많은 빛은 희석되어 가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가려지지 않는 것이 있다.

나 역시도 누군가를 미워해 본 경험은 당연히 있다. 미워하는 마음은 그 이유가 있었던 경우도, 심지어는 이유 없이 누군가가 밉기도 했다. 그리고 내 마음에서 미워하는 마음은 쉽게 타인을 잡아 삼켜 버렸다.

대학 시절의 일이다. 대학생들은 의례 MT을 추진하고, 내가 속한 단체에서도 MT 추진 계획을 잡았다. 나는 우리 단체의 화합을 위해 시간과 열정을 들여 MT의 내용 전부를 계획했었다. 하지만 우리 단체의 한 친구는 추진 계획과 관계없이 무조건적인 불참을 알렸다. 그 이유는 그의 이성 친구가 MT 참여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나름 군대 생활을 거치며 단체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고, 당시의 나는 그런 사유로 단체 활동에 불참하려는 그 친구의 발언이 너무 미웠다. 그리고 곧 그 친구 자체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주 단순한 계기였다. 내가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로 단체 활동을 불참한다는 것이었지만, 이내 그가 미워졌고, 눈을 마주치기 싫어졌고, 말을 나누기 싫어졌고, 시간을 같이 보내기 싫어졌다. 미움의 모든 것은 내 마음 속에서 피어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그 감정은 나 자신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미움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한 사람을 모두 가려버리고 말았다. 내 시선은 깜깜한 베일에 갇혀 그의 어둠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가릴 수 없는 것이 있다. 아무리 미운 누군가라고 한들, 그이도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자식이며, 누군가의 미래를 밝혀 준 선배이자 선생님이고, 세상의 빛을 밝히는 봉사자일 수도 있다. 미움이라는 사소한 감정 하나로 어떤 이를 가린다고 한들, 그가 빛내는 세상의 빛은 가려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감정에 너무 매몰되지 않으려 한다. 감정에 솔직하되, 그에 빠져 누군가를 완전히 가려 버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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