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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Jun 26. 2019

아빠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읽고

19살 수능이 끝난 겨울, 친구들과 놀고 집에 왔다. 왠지 모르게 집안 분위가 이상했다. 엄마의 표정을 보니 무언가를 혼자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 좋은 예감이 들어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하루가 지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깨졌다. "아빠가 암 이래." 엄마가 나에게 그랬다. 엄마는 건조한 말투로 나에게 그러셨다.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그렇게 전해받아서인지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암이라는 병은 드라마에서만 보았었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히 말기가 아니라 수술과 치료를 잘 받는다면 완치가 가능하다고 들었다. 수술 날 아빠의 모습을 보았다. 아빠는 전형적인 환자의 모습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았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고 그렇게 아무 말도 안 한 채 그냥 집에 왔다. 나는 아픔이라든지 불안함이라든지 느끼지 못했다. 단지 슬펐다. 그것도 내 졸업식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점이. 아빠의 수술 때문에 내 졸업식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혼자 졸업식을 마치고 꽃을 받고 가족과 사진을 찍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우면서도 너무 슬펐다. 이제부터 내 삶이 많이 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술 이후에 퇴원하시고 아빠는 통원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 부작용인지 그는 매우 달라졌다. 섬세하고 항상 부지런하며 자상하던 사람이 예민하고 게으르며 다혈질적으로 변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도 났다. 아프면 자기 관리를 더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전보다 자신을 챙기지 않는 모습을 보며 한심하게 느껴졌다. 매번 불평불만에, 모든 것을 엄마에게 시키고 바닥에 누워서 티비만 보는 그를 보며 짜증이 회피하기 시작했다. 그런 아빠가 너무 미웠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그런 모습 익숙해졌고 동시에 그와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번의 소식을 들었다. 암이 재발을 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오빠도 암 판정을 받아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소식들이 겹쳐 나는 더욱 아빠를 원망했다. 엄마는 가장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왜 아빠는 노력조차 안 하지? 처음부터 잘했으면 괜찮을 텐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라고 생각을 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부터 가족 분위기는 삭막해졌다. 어쩌면 죽음의 문턱을 너무 가까이 느껴서 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서로를 이해를 못해 오해가 생겨 대화조차 오가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아픈 사람은 이미 자율성을 잃었다.
그들은 매 순간 죽어라 노력하고 있다. 당신도 그래야 한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p.111, p.113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라는 책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픈 사람 혹은 죽어가고 있는 사람의 상황에 대해 헤아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며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너무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했다는 점을 반성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며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변했는지 이해가 됐다. 책을 읽으면서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컸다. 아빠는 나를 지금도 공주라고 부르신다. 누구보다 사랑을 주시며 나를 아껴주신다. 하지만 으로 인해 생긴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피하며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점이 매우 부끄러웠다.


밤마다 달라지는 달이 어떻게 영원히 변치 않을 수 있을까? 밤마다 달라지는데도 달은 늘 달이다. 끊임없이 변하지만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찾아오는 죽음처럼.-<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p.176
우리는 위태로운 삶을 너무나 소중히 여긴다. 눈 앞에서 덧없이 흘러가는, 변화무쌍한 삶에 간절히 매달린다. 우리는 나날이 빛나는 특별한 삶을 찬미한다. 하지만 태어난 모든 것에는 죽음이 따른다. 아무리 다정하고 완벽한 만남도 결국엔 헤어짐이 있다. 우리는 스러져가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p.298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다 읽은 후 누워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았다. 예전과 많이 다른 모습이지만 여전히 우리 아빠였다. 지금 아빠와 오빠는 어느 정도 호전된 상태로 치료를 받고 있다. 모든 만물에게 영원한 것은 없다. 사람도 그렇지만 우리에겐 마음이란 게 있다. 이 마음 안에다 떠나가는 어떤 누군가를 간직할 수 있다면 그것은 헤어짐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거울을 볼 때 가끔 아빠가 겹쳐 보인다. 어쩌면 죽어감을 하루 지날 때마다 느끼는 아빠의 감정은 온전히 다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거울을 통해 비친 희미한 그의 모습을 보며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죽어가고 있구나"라고 말이다. 우리도 매 순간 죽어가고 있다.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우리들은 죽음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샐리 티스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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