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제주도(2)

온 거리에 흩뿌려진 나의 고민들

by 소진

제주도에 가기로 결심하고 방에 들어와 옷을 입는데,

언니가 따라들어와 문을 살짝 닫으며 속삭였다.

사실은, 어제 오늘 엄마아빠도 무지 힘들었어,

어제 비 많이 왔잖아,

근데 너 방 천장에서 물이 다 새서 바닥에 다 튀고 난리도 아니였대

나도 집에 와서 그걸 다 치우고 난 엄마아빠 얘기를 들었는데,

그걸 치우면서 둘이서 신세한탄하면서 우울해하고 있더라.


우리 둘이 무슨얘기를 하나

언니 뒤로 나를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이

문득 더 슬프고 짠하고, 마음이 시려웠다.


"알아, 나도 충분히 힘들어"

괜히 언니 앞에서 심술을 부렸지만

아,가족 3명의 우울감을 구역구역 끌고 어떻게라도 밝은 곳으로 데려가려는 언니의 모습이

슬프고도 대단해 보였다.


준비를 하고 후다닥 짐을 싸고

김포공항으로 나온 우리 4명.


나는 이기적이게도,

나오자마자부터 회사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업무분장을 이렇게까지 해서 바꿔냈다니까.

정말 너무하지 않아? 그치 엄마?


우리집 골목에서부터 역에 타기까지

헨젤과 그레텔의 빵 부스러기처럼

직장에서의 힘들고 서운한 감정들을

바닥에 조금씩 조금씩 쏟아내고 버려내고,

엄마아빠가 듣든지말든지 독백을 계속했다.


김포공항행 지하철을 탔다.

아, 왜인지 중간에 아는사람이 김포공항행에 탄 것 같았다.

엄마, 엄마, 내가 그렇게 회사 싫다고 계속 얘기하는데

웃기게도 또 이 칸에 회사에서 알게 된 사람이 타네.

저 사람도 여행가서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풀고 가겠지?


이렇게 김포공항에 도착할때까지 철없는 막내딸의 고군분투 사회생활 이야기를 들어주던,

전날 내 방 천장에 물이 잔뜩 새서 흥건한 바닥을 무릎을 꿇으면서 치워주던,

샤워하면서 온 얼굴을 찡그리며 울던 나를 서성거리며 바라보던,

우리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비행기에서 언니와 옆자리에 앉았다.

또 다시 시작된 나의 폭격.

나는 살면서 내가 무능력하다고 생각해본적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 회사는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어.

특히 이번에는 내가 정당하게 받아야 하는 자리의 일인데도

그거 하나를 차지하는게 정말 힘들었어.

나는 내가 왜 이런대접을 받으면서까지 지금 있는 곳에 남아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나도 이제 나를 아껴주고 내 능력이 귀중하게 쓰여질 수 있는 곳으로 옮겨야겠어.


직장생활 7년차인 언니는 내 얘기를 들어줬다.

그래, 나도 이렇게 길게 회사 다녔지만 굳이 너를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오래 붙어있을 필요가 있을까?

너가 거기 더 오래 있는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너를 더 잘 봐줄 것 같아?

아냐.

그리고 내가 느껴보니까 업무 경험이라는 건 직선형으로 오르지 않더라.

계단식으로 오르는거야, 너가 새로운 관점으로 살아가게될때, 혹은 새로운 자리로 갈 때 마다.


이렇게 나는 슬픔과 분노를

상공에서도 먼 땅에다가 흩뿌렸다.

힘들었던 마음들을 바닥에 뿌리니 점점 개운해졌고,

생각이 명확해졌다.


내가 집에서부터 제주도까지 온갖 길이란 길에 내 고민을 던져버릴 수 있었던 이 과정에서

나를 지켜주고 견뎌준 엄마, 아빠, 언니를 생각하면,

류시화 작가가 인용한 폴 오스터 소설의 부분이 찡하고 와닿는다.

"나는 절벽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렸지만

마지막 순간에 무엇인가가 팔을 뻗어 허공에 걸린 나를 붙잡아 주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사랑이야말로 추락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중력의 법칙을 부정할 만큼 강력한 단 한가지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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