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강해져야만 하는 걸까
수필이라 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인가,
고민하다가 글을 쓴다.
이 공간은 나의 마음을 표출하고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기에
나에게 일어난 일을 쓰려 한다.
또 다른 생각으로는,
이것이 내가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에 글을 쓴다.
저번주 토요일, 아침에 피부과를 다녀오는 길,
계단을 오르는데 우리집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 설마, 하고 귀를 기울이니 역시나 맞다.
집에 들어갈까 말까 문고리를 잡았다가 뒤를 돌았다가 결국 회피하지 말자, 결심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빠랑 언니가 싸우고 있었다.
아빠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본인의 권위를 내세우며 고분고분하지 않다, 본인을 화나게 했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다.
언니는 놀라울 만큼 차분했다. 옆에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데도,
30년 차이나는 딸에게 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심적으로 재촉한 것을 인정하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는데도,
그 부분은 내가 사과할께 라며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자꾸 어렸을 때 기억이 난다. 난 30살이 된 성인인데.
머릿속에서 항상 재생되는 이미지가 있다.
옛날 집 안방 화장실에 불이 살짝 켜져 있고, 엄마와 아빠가 싸우고 있다. 눈을 희번떡이며 소리를 지르는 아빠를 피해 엄마가 다른 방으로 도망치고 있다. 아빠가 엄마를 따라 쫓아간다. 너무 무섭고 도망치고 싶었다.
이것과는 별개의 이미지, 방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아빠와 엄마가 싸우고 있었다. 싸웠다기보단, 아빠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울분이 느껴져 발가벗었는데 화장실에서 뛰져나가 아빠에게 소리를 쳤다. XX새X야!!!! 제발 엄마한테 소리좀 지르지마!!!!!
그 이후로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아마 그날이 내가 엄마아빠의 싸움에 감정적으로 개입한 마지막 기억이다. 난 그때 초등학생이였나.
밥상 위에서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엄마에게 리모콘을 던진 아빠,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엄마의 몸에 멍이 들어있던 것을 보며 느꼈던 충격.
언니와 아빠가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아빠가 너도 와보라며 누가 잘못했고 누가 잘했는지를 따져달라고 한다.
싫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라니.
꼴도 보기 싫은 이 순간을 빠져나갈까 말까
여러번 고민하다가 남기로 했다.
내 눈 앞의 사건이 버겁다는 이유로
회피하지 않을 거야.
강해질꺼야.
내 두 눈으로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와 언니가 싸우는 방으로 들어갔다.
녹음기를 켰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녹음이라도 해놓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이 든다.
아빠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른다.
언니가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아빠와 똑같은 형식으로 대답을 하니 갑자기 엄마를 불러낸다.
당신도 가만히 있지 말고 여기 와서 잘잘못을 가려봐.
계속해서 언니를 화로 이기려고 하는 모습이
자꾸만 내 마음속의 분노와 공명한다.
소리를 지를때마다 나도 소리를 지르고 울고 덜덜 떨고싶지만, 참아낸다. 참아야 해. 참아야 한다.
여기서 내가 이성을 잃으면 끝이야. 나만 다칠거야.
고개를 숙이니 눈물이 났다.
눈물이 계속 나는데 참을 수 없이 서러웠다
아빠는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딸은 뭘 해도 칭찬해줬다.
우리 딸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게 해주고 싶어하는걸 알고 있었다.
부족한 모습이 있더라도 내 앞에서는 보이려 하지 않는걸 알았었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분노와 화로 마음에 칼을 꽂는 것이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한 개인이 분노에 잔뜩 휩싸여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들을 너무나 아프게, 아프게, 하는건 어째서일까.
어째서 자신의 분노가 보이지 않을까.
아빠에게 말했다.
나는 아빠가 이렇게 소리를 지를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고통받는지 알았으면 좋겠어.
그에 대한 아빠의 대답은 놀랍게도,,
너희가 내 화를 돋우기 때문이지.
너희가 화를 내지 않는 이유는 내가 화낼 일이 없게 하기 때문이지.
여기서 난 끝났다. 내 마음은 그냥 닫혔다.
아빠, 미안.
난 아빠와 더 이상,
아빠를 더는 이해할 수 없어.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며 방을 나온 나,
그리고 그 뒤에 남아 언니와 아빠는 몇번 더 대화를 하더니, 아빠가 짐을 다 싸서 나갔다.
부모 자식을 운운하기 시작한다.
아-
괴롭다.
힘든 사회생활에서,
흔들리고 넘어지는 이 사회 초년생 시기에
나에게 건설적인 조언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어.
하고 바랐던 적이 많았다.
이젠 바란다,
건설적인 조언은 차치하고
나의 일상을 무너트리지 말아줘.
아빠는 싸우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성질이 이러니까 너희가 조금만 더
내가 화가 안나도록 조심했으면 좋겠어.
가슴이 미어졌다.
서럽고,
괴로웠다.
너무 서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눈을 누르며 엉엉 울었다.
세상에는 이런 현실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난 이미 충분히 지쳤는데,
난 더 이상 당신의 분노를 참아낼 수 없는데,
더 참아 달라니.
저 사람이 내가 분노로부터 받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강해져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