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 무도한 소꿉놀이
오늘도 어김없이 눈을 떴다.
핸드폰을 확인했다. 오, 이토록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니. 내가 밀어냈던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아, 내가 밀어냈을때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가족톡에서는 여행을 간단다. 분명 가족도 소중한 인연인데 왜 선뜻 답할 생각이 들지 않을까. 갑자기 경주란다. 왜 항상 이런 식일까.
생각도 잠시, 출근 준비를 한다. 날씨가 덥다. 아, 여기저기 까진 피부 때문에 옷입기가 어렵다. 그래도 입어야지, 그래도 나가야지, 그래도 출근을 해야지.
집 밖을 나선다. 빌라 골목엔 항상 할아버지들이 많다. 더운데 왜 이 시간에 나와서 서성이고 계실까. 지하철을 타러 간다. 이 시간에 출근하는 수많은 이 사람들, 오늘 하루를 기대하고 있을까. 이 길의 끝은 어딜까. 이 길의 끝에는 오늘과 같은 삶, 나이듦, 그리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까.
여기까지만 읽으면 곧 세상을 떠날 사람처럼 들린다.대부분의 사람들은 길의 끝,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텐데. 이 길의 끝을 생각해야만 오늘 하루의 의미가 어떤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버려지는 아침이 얼마나 가슴 아픈 것인지를.
어제 집에 오는 길에 생각했다. 도대체 왜 불행한걸까? 언젠간 꿈에 그리던 생활이였는데. 만약 내가 이룬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이토록 고통스럽게 한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일까.
어제 하루종일 집에 오면서 고민했다. 나는 뭘 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그냥 열심히 일하기가 싫은 걸까. 아님 나도 모르게 내가 원했던 근무 환경이 있었던 걸까.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분명 논리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도, 머릿속에서 답이 생겨났다. 내 안의 내가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하늘을 보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어“
그래, 이거구나. 어렸을 때 할아버지 댁에서 문제지를 푼 적이 있다. 대학교때 학교 정원에서 시험공부를 한 적이 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책을 펴놓고 머리를 쓰는 거,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였구나.
회사에 다니면 하늘은 개뿔, 회사 천장조차 보지 못한다. 오죽하면, 얼마나 긴 시간을 모니터만 바라보면 사람 목이 거북목처럼 변할 수 있을까. 문득 몇년 전에 회사 교육을 받을때 자유로운 하늘을 놔두고 계속 건물 안으로 들어오려고 머리를 콩 콩 콩 박는 작은 새를 본 것이 떠올랐다. 그때 같이 있던 언니랑 그 새를 보며 어찌나 웃었는지. 저 뒤에 저렇게 자유로운 세상이 있는데 이 작은 건물에 못들어와서 안달이라니.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의 언어, 컴퓨터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이 우리 일하는 풍경을 보면 얼마나 웃길까. 시간에 맞춰 우르르 출근하고, 점심시간까지 망부석처럼 앉아 자판을 타닥 타닥. 밥먹는 시간도 잠깐. 오후부터 다시 하루종일 한 자리에 앉아 타닥 타닥. 아, 나는 세상을 움직이고 있어. 아 오늘도 많은 일을 했어. 이렇게 극악 무도한 소꿉 놀이가 또 있을까.
아, 그래도 어김 없이 지하철은 나를 회사 앞으로 실어준다. 문득 생각해보니 아침 출근 지하철은 참 웃기다. 소꿉놀이의 희생양들을 잔뜩 싣고 자판을 두드리는 곳에 가져다 놓는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과학 기술이 심화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우리 머릿속에서 살아가겠지. 문득 무섭다. 꼼짝 없이 자리에 앉아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의 모든 경험을 하고 있다고 믿는 내 자신이 얼마나 더 우스워질까.
그래도 곧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타닥 타닥, 자판을 두드리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