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B. 예이츠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세상에 태어나서 알아야 할 것은 오직 이것뿐
술잔을 들고 그대를 보고 한숨짓노라.
아일랜드의 유명한 시인, 예이츠의 시, <술노래>이다. 예이츠는 누구나 다 알다시피 T .S. 엘리어트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유명한 시인이다. '나 이제 일어나가리라...'로 시작되는 <이니스프리의 호도>라는 그의 시는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서정시인으로 유명한 예이츠는 사실 어느 시도 따라오지 못할 만한 기가 막힌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 가히 세상에서 제일 지독한 사랑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그런 사랑으로, 그럼 이제부터 그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풀어 놓겠다.
주인공은 내성적이고 심약한 시인 예이츠. 상대는 당대를 풍미하던 아리따운 연극배우로 이름은 '모드 곤'이라는 아가씨였다. 이 아가씨가 얼굴만 예쁘고 연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의식도 있어서,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열혈 '운동권' 아가씨였다. 당시는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한창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던 시기.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우리나라의 80년대처럼 운동권이 안 되면 어딘가 주눅이 들어서 살아야 하는 그런 어지러운 세상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그녀는 독립자금을 구하기 위해 화가였던 예이츠의 아버지를 찾아오게 되는데, 이때 예이츠는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고 그야말로 첫눈에 반하게 된다. 그 만남이 있은 후 예이츠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당신에게 모드 곤을 얼마나 숭배하는지 말했나요? 만일 그녀가 세상이 평평하다거나 달이 하늘에 던져진 모자라고 말한다고 해도 나는 기꺼이 그녀의 편에 설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야말로 한눈에 단단히 콩깍지가 씌워버린 그는 심약하기 짝이 없고 시밖에 모르는 예전의 자신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용기를 내서 줄기차게 그녀를 쫒아 다니면서 구애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도 온통 사랑타령이고..... 거의 상사병에 걸려서 그 여자 이외에는 세상에 아무것도 중요한 것이 없는 그런 경지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심지어는 그동안 관심도 없었던 아일랜드 독립운동에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모드 곤의 격려 하에 서정시 일색이었던 시의 색깔조차도 참여시적인 성격으로 바꿔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치열한 운동권 아가씨인 모드 곤에게 이 나약한 문학청년이 눈에 찰 리가 없다. 그녀는 예이츠의 그 애타는 구애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정말 씩씩한 운동권 사나이, 아일랜드의 유명한 독립운동가 존 맥브라이드와 화끈하게 결혼을 해 버렸다. 십수년간 자신의 애절한 짝사랑을 거절하면서도, 자신은 절대 결혼이라는 걸 하지 않겠다는 말로 예이츠에게 최후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던 그녀가 전격적으로 결혼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예이츠는 죽고 싶을 만큼 절망해 버렸다. 당시 미국에서 강연 중이었던 그는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서 자신이 무슨 내용으로 강연을 하고 있었던지 나중이 되어도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번개와 함께 당신이 내게서 떠나던 날
내 눈은 멀고, 내 귀가 안 들리게 된 바로 그 날
예이츠는 그와 결혼한 맥브라이드를 아프로디테와 결혼한 못생긴 절름발이 신 헤파이토스에 비유하면서 술주정뱅이라고 비난하는데, 사실 그는 술주정뱅이에 가끔씩 폭력까지 휘두르는 나쁜 남자였다. 수년 후 모드 곤은 그와의 이혼 소송을 시작하면서 독실한 카톨릭인 아일랜드인들에게 수많은 비난에 휩싸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혼 소송 중에 예이츠와 함께 연극을 보러갔던 모드 곤을 알아본 아일랜드의 시민들이 손가락질과 야유를 무차별적으로 퍼부어댔다는 에피소드도 있을 정도. 그런데 이 아슬아슬한 삼각관계에 우연의 신이 개입을 한다.
1916년 4월 더블린에서 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무장봉기가 일어났고, 신경과민이 된 영국은 이 무장봉기의 주도자 16명을 모조리 처형시키는 대결단을 내렸다. 그런데 이 16명의 처형자 중에 모드 곤의 남편, 존 멕브라이드가 포함이 된 것이다. 예이츠로서는 꿈에 그리던 그녀가 소위 말하는 미망인이 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다 싶은 예이츠는 또 그녀를 찾아가서 다시 진지하게 프로포즈를 했다. 하지만 무정한 그녀는 이때도 또 냉정하게 거절을 하고 말았다. 이혼 소송 중인 골칫거리 남편이 이제는 아일랜드의 영웅이 된 이상, 그의 아름다운 미망인 자리를 그대로 고수하기로 한 것이다.
혼자 사는 그녀를 지켜보면서 예이츠는 그때부터 쓰라린 짝사랑의 독신생활을 고수한다. 그리고 그 슬픈 짝사랑은 그녀가 낳은 딸이 다 자라서 처녀가 될 때까지 계속된다.
이 딸에 대해서는 숨은 뒷이야기가 있다. 모드 곤은 자신이 데려다 키운 양녀라고 예이츠에게 설명을 했고 순진한 예이츠는 이를 곧이곧대로 믿었지만, 사실 이 아이는 프랑스의 정치운동가와 내연의 관계에서 낳은 아이라는 것이다.
불쌍한 예이츠는 이제 꿩 대신 닭이라고 그녀를 꼭 닮은 그 딸에게 다시 구혼을 한다. 이제 50이 넘은 그가 막 16살이 된 고등학생인 아이에게 청혼을 했으니, 그 대답은 물어보나마나 'NO'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이 여인 2대에게 모진 실연을 당하느라고 예이츠의 그 아름다운 청춘은 다 가버리고, 이제 50줄에 들어선 중늙은이가 되고 말았다. 그때까지 예이츠는 물론 독신이었고, 그리고 정말 희귀하게도 그녀를 위하여 동정을 지킨 명실상부한 숫총각이었다.
나는 인간, 바람을 싫어하는 자가 되었고
모든 것 중 알고 있는 것은 다만 한 가지뿐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여인의 가슴에
머리 기댈 수 없고 그 머리카락에 입 맞출 수 없음을
오 황야의 짐승이여, 공중의 새여, 나는 너희들의 사랑의 소리를 견뎌야 하는가
모드 곤의 딸에게까지 거절을 당하고 만 예이츠는 그 후 몇 주만에 홧김에 결혼을 감행하고 만다. 상대는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자면 무당인 조지 하이드 리즈라는 여인. 그가 무녀와 결혼한 것도 돌이켜 보면 모드 곤의 영향이기도 한 것이 사실 예이츠는 그녀 때문에 켈트 신비주의에 몰입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예이츠의 아내는 결혼 후까지도 계속되는 예이츠의 모드 곤을 향한 사랑을 이해해 줄 만큼 마음씨가 넓은 여인이었다. 그녀와 결혼을 한 후 말년의 예이츠는 젊은 시절 동정을 지키며 육체적인 사랑을 거부했던 자신에 대한 회한을 몇 편의 시에 담기도 하고, 부인과 함께 시를 자동 기술하는 신비한 영역을 개척하기도 하는 등 비교적 평온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마음이 넓은 여인이었나 하는 점은 결혼 후에도 모드 곤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 하는 예이츠에게 남긴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신이 죽은 후에 사람들은 당신의 불륜 관계에 대해서 얘기할 거예요.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사람인지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예이츠는 결혼해서 딸까지 낳고 살면서도 평생의 사랑인 모드 곤에 대해 ‘늙어 흰머리가 되어’ 그 육체적인 아름다움이 빛을 바래간다고 해도, 그 사랑을 멈추지 않겠노라며 시키지도 않은 충성명세를 한다.
그대가 늙어 흰머리가 되고 잠이 많아져,
난롯가에서 졸 때 이 책을 꺼내어,
천천히 읽고 그대의 눈이 예전에 지녔던
부드러운 표정과 그 깊은 그늘을 꿈꾸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우아한 순간을 사랑했던가를.
진실된 혹은 거짓된 사랑으로 그대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던가를
오직 한 사람이 그대 내면의 순례하는 영혼을 사랑했고,
그대의 변화하는 얼굴의 모습을 사랑했음을.
수많은 사람들이 모드 곤의 아름다움을 사랑했지만 오로지 한 사람, 예이츠 자신만은 변화하는 얼굴의 모습도 사랑하고, 늙은 그녀의 내면의 영혼까지 사랑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지독한 사랑이요, 집착이 아닐 수가 없다. '내 청춘이 다하도록 내 모든 것을 앗아간 그녀‘라는 예이츠의 싯귀를 보면 마치 유행가의 한 구절을 연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진실은 이 유행가 가사 같은 싯귀보다 더한 인생을 그가 실제로 살아냈다는 점에 있다.
그 뒤의 이야기? 여기까지는 실화인데 그 뒤는 그저 소문이다. 늙고 지친 모드 곤이 평생에 딱 한번, 그 끈질긴 정성에 감복해서 뜨거운 밤을 허락했다라나 뭐라나......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있었기 때문에, 또 그녀가 그처럼 냉정하게 예이츠의 사랑을 거절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예이츠의 그 주옥같은 사랑의 시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만일 그녀가 그의 구애를 일찌감치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환상이 걷힌 현실의 여인을 보면서 아무리 천하에 없는 천재 시인이라고 해도 그런 아름다운 시심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
모드 곤은 한 남자의 청춘을 희생시킴으로써 한 사람의 위대한 시인을 탄생시킨 셈인데, 시인 하우스만의 말대로 시를 쓰는 작업이 상처받은 진주 조개가 지독한 고통 속에서 분비 작용을 하여 진주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면 예이츠는 자기 인생의 모든 고통과 좌절, 절망으로 아름다운 진주와도 같은 불멸의 시들을 빚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모드 곤 자신도 이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듯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당신의 불행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 아름다운 시를 쓰고 거기에서 행복을 느끼니까 행복한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제가 당신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말하자면 예이츠는 시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해 버린 셈인데..... 그리고 그 대가로 말년의 시인은 노벨상에 빛나는 20세기 최고의 시인의 반열에 오른다. 그런데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자. 평생을 잡을 수 없는 사랑으로 고통과 번민 속에 사는 대신 위대한 시를 얻을 수 있는 길과 아니면 시 따위는 구경도 못 하지만 대신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 이 두 가지 길이 당신 앞에 놓여있다면 과연 당신은 어떤 길을 선택하겠는가?
하긴 이런 선택도 역시 위대한 재능을 타고난 천재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일 테니, 평범한 필부인 우리들에게는 역시 무의미한 질문이 아닐 수 없겠다.
언제나 상냥한 사람이 어제 이렇게 말했지.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머리가 하얗고 여기저기
눈언저리 작은 기미도 생깁니다.
시간과 함께 분별해서 소유하기 쉽게 익숙해지는 것이지요
단지 지금은 무리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뿐."
마음으로 외친다. “소용없다,
나에겐 한 조각 아니 한 알의 위로도 소용 없다.
시간과 함께 그녀의 미는 새롭게 고쳐질 뿐,
그녀에게 두드러지게 훌륭한 기품이 있기 때문에,
주위에 돋구어진 불은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서
맑게 타오를 뿐. 아! 이런 것이 아니었다.
야성미 넘치는 여름이 저 눈동자에 번뜩이고 있었던 때는."
아, 마음이여! 마음이여! 그녀가 머리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위로 받는다는 것의 어리석음을 알 수 있구나.
예이츠 <위로 받는 것의 어리석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