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용천사의 요양원(療養院)
어둠이 짙은 밤이었다.
바람이 나무숲을 흔들자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마른 가랑잎 소리가 유난히도 차갑고 쓸쓸하게 들렸다. 날씨는 제법 추웠다. 광호는 잠바 깃을 올렸다. 그는 가죽 장갑을 낀 손바닥으로 다른 한쪽 가죽장갑을 낀 손등 정권 위를 툭툭 쳐서 손가락 사이로 꽉 조이게 하면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너편 골목 옆에 있는 구멍가게에는 추운 날씨 탓인지 주인은 보이지 않았고 겨울바람에 못 견디겠다는 듯이 미닫이문만 덜컹거리면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나마 빛이라곤 구멍가게에서 흘러나오는 형광등 빛이 전부였다. 그리고 사람의 그림자는 비치지도 않았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한참을 기다린 광호는 구멍가게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소리에 앞이마가 벗어진 늙은 노인네가 한 뼘 정도의 문을 열고 빠끔히 광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 하지우.”
광호는 진열대에서 네 홉들이 병맥주 한 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진열대 한 귀퉁이의 고무줄에 매달려 있는 오픈을 꺼내서 병마개를 땄다.
“아리랑 한 감하고, 저기 땅콩 한 봉지 주시우.”
광호의 말에 돈도 귀찮은 듯이 노인은 천천히 이불을 걷어붙이고 아리랑 담배를 광호에게 건넨 후에 선반에 진열된 땅콩 봉지를 꺼내서 내밀며 다른 한 손으로 광호가 주는 돈을 받았다.
광호는 노인이 거슬러 준 잔돈을 포켓에 쑤셔 넣고 담뱃갑을 뜯으면서 담배 한 개비를 빼물었다. 선반 끝에 놓인 곽 성냥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자 유황 냄새와 함께 그의 목구멍으로 한 모금의 담배 연기가 폐부 깊숙이 빨려 들어왔다. 광호는 땅콩 봉지를 찢으면서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고드름 같은 얼음 막대로 목구멍을 벌리는 것 같이 비집고 들어오는 알코올이 목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어휴, 추워!”
광호는 어깨를 움츠리고 몸을 떠는 시늉을 하다가 다시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이면서 가게 문을 나섰다.
“덜커덩, 덜커덩!”
미닫이 닫히는 소리가 바닥에 두어 번 끌리면서 무척 무겁게 광호의 귀에 들려왔다. 다시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며 조금 전에 서 있던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술기운 덕분에 추위로 언 몸이 점차 풀리면서 훈훈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그때 구멍가게 옆 골목길에서 발자국소리가 차가운 밤공기를 타고 광호의 귓속에 들려왔다. 광호 쪽으로 오는 것이 분명했다. 발자국소리는 금방 구멍가게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구멍가게 불빛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제법 큰 키에 체격도 있어 보였다.
다시 바람이 불어왔다.
건너편에서 그를 훑어보던 광호는 병 바닥에 깔린 남은 맥주를 마저 들이켰다. 그때 마침 사내가 광호 가까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네가 나를 보자고 했냐?”
그는 처음 본 광호에게 아주 무시하는 태도를 지으면서 반말로 대들었다.
“그래, 내가 보자고 했다.”
“왜?”
“네 여자 친구 때문에......”
“아쭈? 네가 뭔데?.......”
“손 떼라.”
“병신 같은 놈, 꼴값하고 나자빠지고 있네.”
“뭐라고?”
광호는 갑자기 취기가 깼다.
“퍽!”
광호의 손에 든 맥주병이 콘크리트 전신주에 부딪혀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광호는 상대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날카롭게 갈라진 유리병을 그의 목에 들이 됐다.
“너 이 자식, 손 떼라, 그렇잖으면 죽어!”
“흥, 그 병으로 나를 찌르겠다? 찌를 테면 찔러봐.”
고개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다리 한쪽은 힘을 뺀 채 비스듬히 서서 다리를 흔들거리면서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식이었다. 네깐 녀석이 감히 나를 찌를 수 있겠는가 하는 태도가 광호의 자존심에 더욱 불을 붙였다.
“한 번 더 경고한다. 손 떼라!”
“아, 멋대로 해 보시지!”
그는 광호가 들고 있는 깨진 맥주병 바로 앞으로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마지막이다. 손 떼라!”
“찔러보란 말이다.”
그 말에 광호는 무작정 그의 얼굴을 향해 깨진 맥주병이 든 손을 힘껏 앞으로 내밀었다.
“어이쿠!”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지며 앞으로 넘어졌다. 광호는 고꾸라지는 사내의 옆구리를 한 번 발길로 힘껏 걷어찼다.
“ 뒈지려면 호랑이 아가리에 대가리는 못 처넣어, 이개자식아......”
“사람 살려요!......”
고함지르는 그를 향해 깨진 맥주병을 던졌다. 잠시 후에 고함 소리를 들었는지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광호의 귓가에 찬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그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는 여자로 인해 삼각관계에 있는 학교 친구의 부탁으로 상대 남자를 떼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었다.
그 후 광호는 아무도 모르게 친척 집 이곳저곳으로 도피 생활을 시작하다가 장돌뱅이로 자신을 숨기고 생활하기 시작한 것은 이 일이 있고 난 후였다.
광호가 도피하자 사주한 광호의 친구가 미리 겁을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실직고해서 함께 피해자를 찾아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빌어 합의금을 두둑하게 치르고서야 폭행 사건은 끝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가 몸이 아파 누워 있다는 소문을 들은 것은 광호의 폭행 사건이 마무리된 이듬해였다.
소식을 듣고 광호는 부랴부랴 집으로 갔을 때는 옛날 모습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얼굴과 몸은 비대하게 일어서 몸을 일으키기조차 싫어했고 멀쩡하다가도 주위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잠을 자다가 깨어나서 죽은 사람을 꿈에서 보았는지 산 사람을 만난 것처럼 헛소리를 하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멀거니 바라보기가 일 수였다. 거기다 대소변조차도 가리지 못하니 식구들의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동을 하지 않던 어머니가 없어진 것이었다.
온 집안이 어머니를 찾아 난리가 났다. 안동 시내가 그리 넓은 곳도 아닌데 광호어머니는 어디에도 없었다. 식구들은 하루 종일 찾아 헤매다가 결국에는 파출소에 가출신고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식구들이 없는 틈에 밖을 나섰던 광호 어머니는 친정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몸이 무거워 빨리는 걸을 수는 없었지만 무작정 향하는 발걸음은 머릿속에 그리는 그녀의 어머니와 가족들이 있는 친정집이었다. 그러나 발길은 친정집의 반대 방향인 태화동을 지나 군부대가 있는 고개를 넘었고 또 고개를 넘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논이 보였고 밭도 보였다. 개울도 보였다. 광호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저 뜰을 지나서 돌아가면 친정집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구슬땀이 흘렀지만 무거운 발걸음을 연신 떼어 놓고 있었다. 하루 종일 걷는 발길은 집에서 수십 리나 떨어진 인적이 드문 풍산 뜰 제방 길을 걷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 오고 있었고 어머니의 두 눈에는 어둠 속에서 저 멀리 친정어머니와 아버지, 삼촌, 동생들이 마중을 나오고 있었다. 마중 나온 친정 동생이 광호 어머니의 손을 잡으려고 가까이 다가오다가 떨어지고 다가오다가 떨어지곤 했다.
“야야, 얼른 와서 잡그라.”
무릎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피가 흘렀지만 광호 어머니는 모르고 있었다. 발은 움직이지 못하고 허우적거렸지만 광호 어머니는 오직 친정동생을 잡으려고 손만 내밀고 있었다.
“야야, 뭐 하니? 얼른 잡그라.”
광호가 풍산 뜰 재방에서 어머니를 찾은 것은 가출 신고를 한 이튿날이었다. 아침 일찍 들에 갔던 농부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광호 어머니를 발견하고 풍산 파출소에 신고를 해서 알게 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광호가 이런 일이 있을 걸 예상하고 어머니의 목에 이름패와 주소를 적어 목걸이를 걸어 뒀기 때문에 그나마 빨리 어머니를 찾을 수가 있었다.
광호 어머니의 발바닥은 피가 엉겨 붙어 말이 아니었고 뚱뚱한 몸을 지탱하는 두 다리는 예전의 두 배나 된 듯 퉁퉁 부어 있었다.
집에서 일어나기조차 싫어했던 광호 어머니가 뚱뚱한 몸을 이끌고 무려 삼십 리 길을 걸었으니 제정신 가지고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 후로 광호 식구들은 광호 어머니를 절대 혼자 두질 못했다.
처음 몸이 일어 병이 났다고 생각한 식구들은 그제야 비로써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읍내 병의원은 물론이고 백방을 소문 해서 용하다는 사람은 모두 찾아다녔지만 누구 하나 병명조차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광호 아버지가 대구에 있는 00 대학병원으로 간 것은 광호 어머니가 발병하고부터 1년이 지난 후였다. 00 대학병원에서 광호 어머니가 신경계통에 이상이 있다는 진료 결과가 나왔고 의사는 정신신경계통으로 한국에서 일인자라고 자부하는 서울 00 대학병원 정신 신경과 H.S과장에게 진료의뢰서를 써주었다.
그 들 가족들은 다시 서울로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뇌를 촬영하고 정밀검사를 마친 의사는 어머니를 진료한 후 자신 있게
“걱정하지 말고 치료하면 나을 수 있어요.”
하면서 별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약을 처방해 주자 가족들은 무슨 병인지는 모르지만 그저 정신 신경계통에 이상이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희망을 갖고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유명한 병원이라는 곳도 아무런 차도도 없이 또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해 겨울 시골에 있는 광호어머니의 먼 일가 동생인 아주머니가 광호 내 집을 찾아왔다.
“내사 안 온라켔니더 마는 언니 일이 하도 답답해서 왔니다, 또 거기가 하도 용타꼬도 하고...... 형부는 소문을 들었는 동 모를 씨 더 마는 서울 밑에 양평 국수리라는데 용한 절이 있다는데, 혹 들어 봐니까?”
“내사 첨 듣니다만 거기가 뭐 어떤 곳인데요?”
광호 아버지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무릎을 바짝 앞으로 당겨 앉았다. 광호 어머니가 대소변을 못 가리고 정신이 이상한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삼 년이 지났으니 병시중에 자신이 지친 일은 고사하고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용천사라고 하는 절인데 주지가 안동 사람이라고 하디더, 그 사람이 깊은 산에 들어가서 3년인가 도를 닦아서 절을 짓다고 하디더, 근데 아무도 못 고치는 정신병을 그 사람한테 맡기고는 낫다는 사람들이 많타디더, 알 둥 모를 씨더만 저기 왜, 대실 초등학교 선생하던......”
“아~, 선생끼리 노름하다 맞아서 미쳤다는 장 머더라?...... 그 사람 말이껴?”
“야~, 장 호원 그 사람 맞니다, 그 사람도 온 사방 병원은 안 다녀 본 데가 없었니다, 정신병원에 갔다가 좀 나서 오면 얼마 안 있다 또 그렇고 몇 번을 그다가 결국은 포기했잖능교, 그 카다가 소문 듣고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거기다가 맡겼는데 요새는 나 가지고 멀쩡하게 선생질 하쟎니껴.”
“거기 맡기면 돈은 얼마 듣다니껴?”
“그 절 주지가 불쌍한 중생을 구제한다고 돈은 얼마 받지 않는다고 하디더, 그리고 거기 소문 듣고 들오는 사람이 하도 많아 줄을 선더니더, 뭐 아무래도 같은 안동사람인께 더 잘 봐주지 않겠는가, 빨리 알아봐야 할게 씨 더.”
그렇잖아도 아내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될 지경이라 뒷수습 때문에 가장인 자신의 발이 묶여 꼼짝을 할 수 없어 어떻게 할까 궁리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돈도 별로 들지 않고 요양을 해서 고친다고 하니 광호 아버지는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참말이라면 그런 고마울 데가......”
“형부요, 내가 돈이 생기는가? 아이면 밥이 생기는가? 내가 뭣 때문에 거짓말하겠는가, 다 언니를 위해 하는 말 아이 껴, 한번 보내 보이소.”
광호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했다. 돈 몇 푼 들지도 않는데 절에서 그 돈 받고 환자를 소개해 줬다고 수고비를 줄 그런 상황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 어린 처제의 호소에 광호 아버지는 고려해 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바로 광호 어머니를 사찰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요양원이 어디 있는지 당장에 알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광호 아버지는 용천사 주지를 찾아가 광호 어머니를 맡겨놓고 매우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사찰도 깔끔하고 조용해서 요양하기에는 적격으로 보였고 요양원은 들어가는 입구를 통제해서 환자 이외에는 아무도 들어 보내지 않아 내부는 보지 못했지만 절의 주지인 용천이 한 고향이라는데 우선 안심이 되었다. 또한 절에 있는 사람들도 겉으로 보기에는 다정다감해서 누구 한 사람도 나무랄 것이 없는 듯이 보였다.
다만 무엇을 예감이나 한 듯 광호 어머니가 요양원으로 들어가면서 광호 아버지를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광호 아버지는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언제 당신을 또 볼꼬......”
그 말을 할 때는 바른 정신인 듯 또렷하게 광호아버지 귀에 들어왔지만 그는 조금만 지나면 광호어머니가 병이 다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가벼운 마음으로
“걱정 말거라, 임자
는 이제 곧 다 나아 얼마 안 있으면 집으로 올 거다, 아무 걱정 말고 밥 잘 먹고 여기 사람들 말 잘 듣고 있그라.”
하면서 그 길로 작별을 고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세상에서 광호어머니와 마지막 하직인사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해 겨울 동안에는 광호아버지도 가끔 사찰에 들려 광호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왔지만 봄이 오자 소개한 처제로부터 광호어머니의 소식만 전해 듣고 달을 건너기도 했다. 안동에서 양평까지 거리도 거리지만 덜하다든지 많이 아프다든지 차도가 있으면 몰라도 병세가 그저 그러니 자주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집안 식구들은 아픈 광호 어머니가 없고 보니 병수발하지 않는 것만도 감지덕지할 뿐이었다.
용천은 정신 요양원을 운영하자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속으로는 온 신경을 그곳에 집중하고 있었다. 처음 십 수 명이던 환자 수가 소문을 듣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자 몇 달 사이에 오십여 명을 훌쩍 넘어 백여 명에 가까웠다. 그러자니 무허가로 지은 요양원 건물이 환자들로 인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용천은 우선 일도를 사찰 총무로 앉히고 요양원 일을 맡겼다. 혜천을 총무로 앉히려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경마장을 들락거리는 혜천을 잘못 쓰다가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는 생각을 접었다. 그러나 혜천의 명석한 두뇌를 잘 알고 있는 용천은 그를 사찰 내부로 불러들여 일도의 바로 밑에 두고서 일도를 도와 사찰과 요양원을 총괄하라고 일렀다.
일도는 자기의 아내를 용천사 공양주 일을 보게 했다.
사실 일도는 무당인 용천의 어미 소개로 안동 고일골에 살던 처녀 순자와 결혼을 했다.
순자의 아비는 용천 어미가 살고 있는 이웃의 소개로 일도를 알게 되었고 양평 절에 있는 용천은 총각 일도를 어미에게 천거해서 둘은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일도는 서울 근교에 살면서 일당을 받고 용천사에 기도승으로 다니고 있을 때였다.
순자 아비가 일도에게 혼인시킨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중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다만 딸을 서울 가까이에 있는 총각에게 보낸 것은 보리 고개 때가 오면 죽도록 일해도 먹을 것이 없어서 풀뿌리, 나무뿌리를 캐 먹던 때라 밥걱정 없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먹고살아보라고 보낸 것이었다.
일도에게 시집을 보내자 순자의 아버지는 계산대로 농사를 짓지 않았고 수족이 편하게 사는 것은 맞아 떨어졌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겨났다.
결혼 첫날 밤을 치른 남편 일도는 순자가 순수한 처녀로 시집을 오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그는 순자의 처녀성을 집요하게 의심하고 따지기 시작했다. 결국 순자로부터 이웃에 사는 먼 일가와의 관계를 알아냈고 그때부터 그 일을 미끼로 아내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구박뿐이 아니었다. 순자를 더럽다며 관계도 피하며 자신은 신도인 처녀를 꼬여서 따로 살림까지 차리고 있었다.
순자는 첫날밤에 육체관계를 한 것이 임신이 되어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꼽추였다. 순자가 생각해 보건대 남편의 집안 내력은 알 수가 없지만 자기는 부모 위로 몇 대조를 올라가도 꼽추를 낳은 조상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남편 일도가 순자를 보고 하는 소리가
“우리 집안에는 그런 병신 꼽추는 위로 몇십 대를 뒤져봐도 아무도 없다. 네년 집 안에서가 아니라면 네년이 바람을 피운 그 자식의 새끼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째 저런 자식이 생기느냐, 더러운 년, 꼴 보기도 싫다.”
하면서도 쫓아 내지는 않았다.
순자는 기가 막혔다. 새끼가 태어난 달수를 세어 봐도 10달을 채워서 낳았고 먼 친척과 관계를 한 것도 결혼하기 몇 달 전이라 억울하기 그지없었으나 억지를 쓰는 남편을 당할 도리가 없었다.
순자는 몇 번이고 까짓 결혼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훌쩍 멀리 정처 없이 떠나 버릴까 생각했다. 그러나 자식 때문에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신세였다. 병신 자식이었지만 순자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었다. 그런 자식이 만약에 순자조차 없으면 어느 누가 돌봐 주겠나 하고 생각하니 병신 자식이 한없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죽지 못해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 배로 저런 자식을 낳았을까 하고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러나 자식이 울고 보챌 때 젖을 물리면 그래도 살려고 오물거리고 젖을 빠는 자식이 불쌍하고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태어 난지 4개월이 되었다. 그녀는 이날 이때까지 한 번도 자식을 밖으로 데리고 밖에 나간 적이 없었다. 혹 남이 보면 놀림감이 되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병신 아이였지만 이젠 제법 사람 모습을 갖추고 통통하게 자란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무척 추운 정월달이었다. 바람이 어찌나 심하게 부는지 부엌 안에 있는 문이 덜그럭 거릴 정도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순자는 늦은 저녁을 혼자 해서 먹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잠을 재우고 있었다. 아이가 막 잠이 들고 순자도 잠이 와 수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문 쪽에서 찬바람이 들어와 눈을 떴다. 남편 일도였다. 남편은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어쩐 일인가 싶어 눈을 뜨고 남편을 쳐다보며 일어나려는데 역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이고 술 냄새야,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웬일이래?”
하며 순자는 코를 쥐고 얼굴을 찡그리는 시늉을 했다. 그녀는 잠든 아이에게 물린 젖을 뺀 가슴을 여미면서 바른 자세로 고쳐 앉았다.
“너, 주둥아리 닥치고 아무 소리도 말고 있어, 알겠어?”
“왜? 언제는 주둥이 띨 시간이라도 줬나? 뭣 때문인데 생전 오지도 않다가 술 먹고 이 시간에 들어와서 시비야, 시비는.......”
“여하튼 주둥아리 닫고 밖에 잠깐 나가 있어!”
“이 추운데 어딜 나가?”
“아, 잠깐이면 돼, 부엌에 나가 있어, 내가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순자는 흐트러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면서 흘끔흘끔 돌아보며 부엌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이왕 나온 김에 저녁 먹고 귀찮아서 그냥 놓아둔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다가 순자는 갑자기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오랜만에 술을 먹고 들어 온 남편도 이상했지만 무엇인지 모를 불안한 마음이 자꾸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녀는 하던 설거지를 잠시 중단하고 살며시 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봤다. 남편은 아기가 있는 곳에서 무엇인가 힘을 주고 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돌연 아기에게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자 나는 듯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였다. 아기는 엎어져 코를 이불에 박고 있었고 그 위에 두꺼비 손 같은 남편의 손이 아기의 등과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아기는 이미 죽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
그녀는 목이 메어 말도 채 나오지 않았다. 얼른 남편의 손을 낚아챘으나 술 취한 남편의 손은 꿈쩍도 않고 그대로 있었다.
“망할 년, 네년이 낳은 병신새끼를 네년이 평생 책임질 거야?”
“이게 무슨 짓이야!”
그녀는 크게 악쓰듯 소리를 지르고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얼굴에 찬 물이 흘러내리고서야 그녀는 다시 눈을 떴다. 남편 일도가 바가지에 물을 담아 얼굴에 흠뻑 튀겼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얼른 아기가 누운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순자의 귀에는 소름이 끼치듯이 들렸다. 남편의 발자국 소리가 바람 소리에 휩싸여 들리지 않았다. 순간 그녀는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형광등 불빛이 가득한 방안, 자신의 곁에 아무것도 없다는 싸늘한 공허감, 방바닥과 천장 사이 공간이 오늘따라 한없이 넓고 높다랗게 보였다.
“아니, 내가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순자는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 남편이 떠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주변은 온통 어둠으로 인하여 시커먼 나무숲으로 뒤 덥혀 있었다. 언덕을 향해 말라비틀어진 풀 한 포기 없는 외길만이 뱀 꼬리 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주변을 살피던 순자는 용천사를 가자면 언덕을 넘기 전 산 중턱 오목한 양지바른 곳을 생각해 냈다. 그것은 여자만이, 아니 어머니만이 갖는 예지력이리라.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꽤 멀리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산 중턱 길에 검은 물체가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함께 순자의 눈에 아른거리다가 사라졌다. 미친 듯이 노려보는 순자의 눈에는 어둠 속에서도 분명 일도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다시 굽은 길을 돌아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순자는 얼른 그 물체가 보였던 길을 따라갔다. 예상대로였다. 또 한 번 바람 소리가 소나무 가지를 마구 흔들었다.
“시에엑~”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 가지는 귀신 소리 같은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온 산을 감싸 앉고 있었다. 일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나무 뒤에서 섬광이 일 뜻한 순자의 눈동자는 허우적거리는 일도의 등 뒤를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낮에 미리 파 놓았는지 일도는 그리 긴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구덩이를 파느라 허우적거리던 일도는 숨어 있는 순자의 모습을 뒤로하고 용천사를 향하고 있었다. 어둠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일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순자는 일도가 있었던 자리로 달려갔다. 어둡고 추운 날씨 탓인지 흙을 잘 다져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해 가지고 미친 듯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모난 돌에 긁힌 보드라운 양쪽 손끝에 피가 흘렀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순간 그녀의 손끝에 천 조각이 만져졌다. 그녀의 행동이 점점 빨라졌다.
축 쳐진 이름도 없는 새끼를 방 안으로 가져온 순자는 물을 데워 깨끗하게 닦았다. 그리고는 누어서 자신의 몸으로 감싸 앉고 젖을 물렸다. 긴장이 풀렸는지 그렇게 그녀는 잠이 들었다. 새벽닭이 울 시간은 지났을까, 묘한 쾌감에 잠이 깬 그녀는 오물거리며 젖을 빠는 아기를 발견했다.
“아~ 살았구나.......”
남편 일도는 한 번 집에 들어온 뒤에는 적어도 일주일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거라고 그녀는 예상했다.
“어디로 데려갈까? 우리 집?......”
남편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 이 아이를 어디엔가는 숨겨야만 했다. 그러자면 자신을 낳아 준 부모가 있는 고향집 밖에는 없었다. 오랜만에 어머니와 아버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보고 싶었다.
“꼽추자식을 데리고 집으로 간다?...... 엄마 아버지가 꼽추아기를 맡아서 키워 줄까?”
잘돼서 부모를 만나는 게 아니라 이런 자식을 데리고 도저히 부모를 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어디로 갈까?”
평소에는 어디든지 갈 곳이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갈 곳이 없었다. 순자의 안면으론 고향집 말고는 도대체 아무 곳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 가자!”
그녀는 이를 앙칼지게 물었다. 이 자식을 살리는 방법은 그 길 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자기를 낳아 준 부모가 아닌가, 아무리 꼽추 자식이지만 자식이 낳은 새끼를 나 몰라라 버리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하니 더욱 용기가 생겼다. 그녀는 빨리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꼽추를 친정집에 맡긴 순자는 다시 남편의 그늘 밑에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과부 아닌 과부로 일도와 살자니 속은 다 썩어 문드러졌다. 사실 순자 자신이 잘못을 하고 시집은 왔지만 남편이 이렇게까지 학대할 줄은 몰랐다. 이럴 줄 미리 알았다면 처음부터 굳세게 처녀로 시집왔다고 오리발이라도 내밀 것을 하고 생각했으나 이제 와서는 이미 깨진 바가지요 엎어진 물이었다.
친정에 자식을 맡긴 그녀는 자식을 키울 돈을 마련하여 친정으로 보내 줘야만 했다. 친정집이 오죽했으면 자신을 밥이라도 굶기지 않으려고 여기까지 시집을 보냈을까. 그러기에 그녀는 김 처사에게 부탁하여 용천사에 밥을 해주는 공양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용천은 김 처사가 소송으로 골치를 알았던 그의 남동생 김도연을 불러 요양원 반장으로 앉혔다. 골칫거리 도연을 반장으로 앉히자 소송으로 분쟁을 일으켰던 김 처사의 가족 간 분쟁은 이로써 끝이 났다.
형인 김 처사 덕분에 든든한 직장을 구한 터라 도연은 그렇게 다정하게 대했던 다른 형제들을 이제와서는 남 대하듯 대하고 원수같이 대했던 김 처사에게 척 달라붙었다.
도연이 등기만 하지 않았을 뿐 형인 김 처사가 정당하게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것을 법원에서 사실대로 밝히겠다고 하자 돈푼이나 얻어걸리려고 따랐던 도연이가 돌아서자 결국 다른 남매들은 모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형제간의 소송 문제는 이로써 일단락된 것이었다.
또 용천은 일도로부터 소개받은 일자무식 건달 출신 여러 명을 도연이 밑에서 경비원으로 배치하고 관리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무식쟁이 도연은 입에 개 거품을 물고 형인 김 처사에게 꼬리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맡은 일에도 죽을지 살지 모르고 충성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김 처사는 용천의 처사가 하늘같이 고마웠다. 용천이 아니었으면 평생을 원수처럼 살았을 형제간의 의가 다시 제자리를 찾은 것이었다. 이제 김 처사는 용천이 죽으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자리를 제대로 잡은 용천은 이제 사찰을 비우는 날이 별로 없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하나씩 실행하기 위해 보다 충실하게 사찰을 지켜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날도 저녁 공양을 마치고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요양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성초가 헐떡거리면서 달려왔다.
“주지스님, 김 총재님이 오셨습니다.”
“그래? 알았다.”
마침 그린벨트 내에다 요양원을 어떻게 신축할까 고민하던 차에 거물 김 총재가 왔다는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김 총재의 말 한마디면 그까짓 그린벨트 풀기는 식은 죽 먹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진작 왜 그 생각을 못했을꼬?”
용천은 그 큰 힘이 자기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지금껏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총재의 힘을 빌려 그린벨트를 풀고 건물을 지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겠다?”
용천을 대하는 김 총재가 다른 때와는 달리 무척 부드러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이거 나라에 매인 몸이라 마음은 스님에게 있어도 몸은 꼼짝을 할 수가 없군요, 그래, 그동안 무탈하신지요?”
“예, 총재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자 어서 오르시지요, 무지한 중생들을 돌보시느라 불철주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자, 자 앉으시지요, 김 처사, 여기 얼른 찻상 좀 봐주라 이르게.”
용천은 자신이 앉던 좌석을 김 총재에게 권하고 자신은 성초가 내민 방석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내가 김 총재님께 드릴 말씀이 있으니 방 가까이는 아무도 오지 말라 이르게.”
하고는 성초와 김 처사에게 당부했다.
차(茶)가 나오고 용천과 김 총재가 한참을 잡다한 이야기가 오고 가던 중에
“스님, 어떻습니까? 우리 당이 하는 일이 욕을 먹지는 않습니까?”
“무슨 말씀을요, 정부나 집권당이 나라를 잘 다스린 덕분에 모두들 칭송이 자자합니다.”
“허, 허, 허 아무튼 스님 말씀이 듣기 싫은 말씀은 아니군요, 그건 그렇고, 아, 전번에 보내주신 정치헌금 너무 고맙게 잘 받았습니다.”
“별말씀을요.”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각하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예, 다 총재님의 덕분입니다, 참 그런데 총재님, 소승이 한 번 요양원을 정식으로 지어 불쌍한 중생들을 구제하려고 하는데 총재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래요? 참말로 좋으신 생각입니다, 누구나 꺼리는 일을 스님이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하신다니 이보다 더 좋을 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곳 사찰 내에 허가를 내려고 하니 이곳이 그린벨트로 묶인 임야라 좀 문제가 복잡할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건축을 할 수도 없고, 또 관할 관청에서도 문제를 삼을 것 같고......”
“그래요? 내가 비서를 시켜 알아보지요, 그런 좋은 일을 하려고 하시는데 누가 방해를 하겠습니까, 그린벨트를 풀어서라도 건축을 해야지요, 아무튼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총재님께 이런 조그마한 소승의 일로 누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야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고맙습니다.”
“허허, 스님께서 우리 중생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신다고 하는데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드려야지요.”
그날 천하의 움직임을 용천이 조목조목 김 총재에게 설파하고 그 속에 김 총재의 무궁한 안녕을 예시하니 밤이 깊은 줄 모르는 총재의 웃음소리가 용천사를 떠날 줄을 몰랐다.
이제 용천은 안심하고 요양원을 정식으로 허가를 내서 건축물을 지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우선 신도들을 충동질해서 자금을 마련하려고 건축 시주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큰 자금을 시주로 마련되려면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용천은 겉으로는 시주로 건축자금을 마련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뒤로는 금순을 끌어들여 미리 건물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때맞추어 금순이 찾아와서 용천에게 은근하게 말했다.
“스님께서 그 큰일을 하는데 나도 좀 도울 방법이 없을까요?”
“허, 허 공덕을 바라서가 아니고?”
“스님도 별말씀을......”
남자답게 생긴 용천의 마음을 애타게 기다리는 금순은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겸연쩍은 듯이 뒷말을 흐렸다.
“베푸는 이도, 받는 이도, 그 물건도 다 공(空) 한 것이지, 마음에 우러나 발원하는 마음으로 하면 저절로 그 일에 공덕이 있겠지......”
금순은 용천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의 청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핸드백에서 어음책을 꺼냈다. 그리고 이미 찍혀 있는 금액에 도장을 찍고 날짜와 이름을 쓴 후 날인하고 일도에게 어음장을 건넸다. 어음장을 건네받은 일도는 적힌 금액을 보고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찍이 시주 돈으로는 받아 보지 못한, 아니 신도들에게 받은 시주 돈 전부보다 몇 배나 많은 거액의 금액이었다.
용천은 의도적으로 시주명부에 금순의 시주 금액이 거액이란 말을 퍼뜨렸다. 이 말이 퍼지자 이를 기점으로 신도들이 너도나도 돈을 내기 시작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그사이에 요양원에서 일이 터졌다. 요양원에서 요양 중이던 사람이 죽은 것이었다.
죽은 사람은 바로 광호의 어머니였다.
광호 어머니는 요양원 경비원들의 애를 수시로 먹였다. 평소 밥은 보통 젊은 농사꾼보다도 많이 먹었고 먹은 후에는 옷을 입은 채로 대변을 싸서 뭉개버리니 그 뒷일 또한 예삿일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먹자마자 누워 버리면 몸이 무거워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힘이 들었다. 또 제정신이 아닌데도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집에 간다고 가파른 뒷산을 타고 넘어가려다가 수차례나 잡혀서 들어왔다. 환자들은 점차 많아지고 관리 요원들은 환자의 수에 비해서 소수였다.
도연은 결국 골치 아픈 광호 어머니에게 수면제를 복용시켜 잠들게 할 때도 있었고 달아나지 못하도록 손발을 묶어 놓을 때도 있었다.
도연은 광호 어머니가 사망한 그날도 평소대로 이른 저녁 식사에 수면제를 타서 먹였다. 혹 그녀가 깨어나서 무슨 일을 벌일까 염려해서 손발을 묶어 놓고 일을 보았는데 그날따라 그만 손발을 묶어 놓은 것을 깜빡 잊고 말았다. 그리고는 도연은 이튿날 아침에서야 광호 어머니의 손발을 묶어 놓은 일이 생각났다.
“허어 참, 내 정신도.......”
하면서 방안 문을 열었다. 방안은 변 냄새로 등천을 했고 그녀는 몸을 꼬부린 채 잠이 들어 있는 듯했다. 그 옆에는 사발 그릇 한 개가 보리밥이 반쯤 담긴 채 반찬 그릇 하나 없이 외롭게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그는 우선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면서
“어이, 아줌마?”
하고 부르다가 냄새 때문에 코를 감싸 쥐면서 일어나라고 발로 툭 걷어찼다. 그러나 수면제를 먹어서 그런지 평소와는 달리 꼬부린 자세 그대로 기침이 없었다. 도연은 좀 더 세게 발길로 걷어찼다.
“어이, 아줌마, 일어나!”
그래도 일어나지 않자 그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광호 아버지의 발길이 점차 어머니에게서 멀어진 첫해 여름이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리는 해였다.
본의 아니게 징병 검사를 기피했던 광호는 이제야 소집 영장을 받고 군입대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광호는 입대 날짜를 받아 놓은 터라 입대 전에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에게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비가 워낙 자주 내리는지라 차일피일했었는데 내일은 비가 내려도 한 번 다녀오리라고 결심을 했다.
친구들이 입대한다고 술을 받아 주는지라 어제 먹은 술 때문에 속이 쓰렸다. 광호는 늦은 아침을 겨우 한술 뜨고 찬물을 한 대접이나 마셨으나 허전한 속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늘도 저녁에도 빠짐없이 술타령을 할 판이었다.
그는 배를 방바닥에 붙이고 다시 잠을 청하고 있던 중이었다. 바로 그때 요양원에서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연락이 왔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아버지와 몇몇 친지들과 함께 용천사를 찾아갔을 때는 저녁때가 다 되어서였다. 억수같이 퍼붓던 비는 잠시 소강상태였고 어둠과 함께 서쪽 하늘은 검은 구름이 한데 뭉쳐 어울려 있었다.
한편 용천사에서는 용천이 경찰에다 연락하여 사후 수습을 단단히 부탁했다. 그리고는 사망자 가족이 몰려와 행패를 부릴 것을 미리 예상하고 심부름하는 몇몇 여자 보살들을 남겨 놓은 채 잠시 몸을 숨겼다. 그들이 나타나면 조용히 있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이 빤하기 때문이었다.
용천사는 제법 큰 절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용천사는 사찰 주위를 제외하고 주변 전부가 숲으로 감싸여 있었다. 법당 지붕의 기왔고랑 여기저기에 이름 모를 풀이 연륜을 자랑하듯 자라나고 있었고 색 바랜 단청도 한층 법당의 자태를 위엄 있게 보여주고 있었다. 서향을 향해 날아갈 듯 끝이 번쩍 들린 법당 추녀 끝에 시커먼 먹구름이 잠시 걸려 있었고 바로 옆 작은 전각에는 호랑이를 데리고 있는 백발의 산신 한 분이 한 손에 깃털 부채를 들고 무엇을 지키려는지 마당 전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법당 바로 밑 넓은 마당 앞에는 석탑이 하늘을 치솟고 있었으며 왼쪽에는 주지실과 요사체, 오른쪽에는 공양실과 요사체가 길게 시립하고 서 있었다. 석탑이 서 있는 마당보다 네 자 정도 위에 올라 있어 법당문을 열어 놓고 있으면 부처님이 마당 전체에서 들어오는 길목까지 길게 내려다보도록 모셔 있었고 사찰은 제법 엄숙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다.
더위 탓인지 법당 앞쪽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비구니 복장을 한 여인들 몇이 법당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광호 어머니의 시신은 공양 실 바로 옆에 있는 요사채에 안치되어 있었다. 요사채는 어른 대여섯 사람이 거처할 정도의 크기였지만 중간에 미닫이문을 뜯어 두 칸을 한방으로 만들어서 여러 명이 거처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방안은 여러 개의 촛불로 내부를 밝혀 놓았고 시신의 부패한 냄새를 없애려는지 향불을 피워 향내가 방안에 가득했다.
광호는 어머니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다가갔다. 여름철 시골 두엄더미 위에 버린 삶은 삼 껍질을 벗긴 겨릅대에서 나는 냄새가 요사채에 피워 둔 향내와 함께 섞여 광호의 코에 스며들었다.
하얀 천으로 덮인 어머니의 시신은 머리를 북쪽으로 하고 길게 누워 있었다.
광호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아직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머리에서 발 끝까지 흰 천으로 덮여있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실감 나지 않은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하려고 천을 조심스럽게 들쳤다. 분명 어머니가 맞았다. 공양실 앞 법당에서 이쪽 아래를 내려 보는 부처님의 얼굴과도 흡사하게 생긴 인자한 어머니였다. 이미 어머니의 눈 주위와 코, 그리고 입 주위에는 검푸른 색깔로 변해가고 있었다. 뚱뚱했던 몸도 본래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고 입을 다물고 잠을 자듯 편안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광호는 어머니의 시신을 흔들어 봤다. 그리고 팔도 주물려 봤다. 어머니의 육신은 말 한마디 없이 광호가 하는 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의 죽음이란 어머니를 최초로 본 광호였다. 삶과 죽음은 숨을 쉬는 것과 쉬지 않는 것일 뿐이었다. 그것 이외에는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잠을 자듯이 가만히 누워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던 광호는 두 번 다시 어머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서야 비로써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 흐흑!”
시신을 세심하게 훑어보던 한 친지가 어머니의 손목과 발목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시신이 살아생전 무엇에 묶여 있었던지 손목과 발목에 시커먼 자국이 나 있었고 더러는 벗겨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아니? 이건 뭐로 묶었던 자국 아이가?”
“그래, 손이 묶여서 뺄라고 몸부림쳤구먼, 그러니 손목과 발목에 흉터가 있지, 여길 봐라, 살이 벗겨진 자국이 있잖나!”
“책임자를 불러서 따져야 한다!”
누가 한마디를 하자 엄숙하던 실내가 웅성거리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빨리 책임자를 불러오자고 했다. 그때 광호의 10촌 형인 광규가 벌떡 일어났다.
“어? 저 형이?.......”
광호도 10촌이나 되는 형이 어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모르고 있다가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떻게 알고 왔던 어쨌든 어려울 때 찾아 준 것만으로도 친척 형이 고맙고 반가웠다.
“내가 갔다 오게!”
그리고 얼마 뒤에 광규가 돌아왔다.
“책임자 놈들은 모두 피하고 없네.......”
“피한다고 될 일인감?”
“아이지, 급한 불이 꺼지고 나면 나타나려고 하겠지.......”
광규가 한마디 거들었다. 사건이 터지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자 가족들이 나타날 때쯤에서야 사찰 주요 관계자들은 미리 모두 피하고 없었다. 이런 사실을 역시 광규는 잘 파악하고 있었다.
“절에 있는 아무 놈이라도 잡아서 족치면 알 거 아이가, 지 까짓 놈이 대한민국 좁은 땅덩어리에 어디 숨은들 못 찾으려고? ”
광호 외삼촌이 한마디 거들었다. 이때 얌전하게 다니면서 청소며 뒤치다꺼리를 하던 아주머니를 보던 누군가 한마디를 던진다.
“아까부터 여기를 들락거리는 저 아주무이는 누구야? 저 아주무이가 우리 동태를 파악하고 주지한테 연락하는 아주무이 아니야?”
모든 시선이 아주머니에 집중되었다. 금방 아주머니는 겁에 질려 한쪽으로 비켜섰다. 일도의 아내 순자였다. 그녀는 그래도 고향 까마귀라고 무슨 말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이곳에 들락거리다가 잘못했다가는 봉변을 당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 광경을 보던 광규가 입을 열었다.
“그만두세요, 내가 경찰을 부르겠심니더!”
우선 순자는 얼른 몸을 피해 공양실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 그 말이 맞네!”
하면서 모두들 광규 말이 옳다고 맞장구를 쳤다. 광규는 주지 방으로 가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얼마 뒤 경찰관 두 명이 왔다. 경찰은 시신을 덮은 천을 잠시 들쳐 보자 광규는 손목과 발목에 난 시커멓게 멍든 자국을 가리키며
“이것 좀 보이소, 손목과 발목 주위가 시커멓게 멍이 들었지요? 뭣에 묶여서 빼내려고 힘을 쓴 부분이 여실히잖심니껴? 여기 팔목과 발목에 피부가 벗겨진 것을 보이소. 그리고 피부를 만져 보이소. 시신의 피부가 물렁물렁 하잖심니껴. 이것은 약물을 복용시켰다는 증거가 아입니껴?”
하자 경찰은 못마땅한 듯이 힐끗 광규를 쳐다보면서
“조사는 우리가 합니다!”
하고 시신을 잠시 눈으로 훑어보고서는
“지금 내려가서 시신을 부검 의뢰하겠습니다. 내일쯤에 부검의가 결정되어 도립 병원에서 시체를 부검할 겁니다. 부검하자면 시신을 그쪽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어떡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장례는 부검이 끝날 때까지 늦어지겠지요?”
하자 대뜸 광규는
“부검 의사가 이곳으로 와서 부검할 수는 없습니까? “
하고 경찰관에게 물었다. 경찰관은 한참을 생각하고서는 입을 열었다.
“보호자가 정 원한다면 안 될 것은 없지만...... 서에 들어가서 검찰에 한 번 청해 보지요, 그렇지만 여기서 부검을 실시하려면 어디 마땅한 장소가 있습니까? 없을 텐데요? ”
그때 문밖을 지나던 순자가 이 소리를 듣고
“저 위에 조그마한 창고가 있어요. 비가 셀런가 모르겠지만......”
경찰관은 순자의 말을 들었는지 아니면 못 들었는지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시체를 부검하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신에 손을 대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
서로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고 가는 동안 광호네 가족들의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 틈을 타고 잠시 뜸을 들이던 경찰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는 별사건도 아닌데 부검을 하지 말고 시신을 그대로 모셔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건 순전히 내 개인 의견입니다만...... 시신에 칼을 댄다는 것은 고인을 두 번이나 해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고는 귀찮다는 듯이 말꼬리를 내리면서 눈치를 살피자 광호는 저 사람도 사찰 인간들과 한 패거리 같은 생각이 들자 가라앉았던 화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아니, 시신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합니까? 이 일이 어째서 별사건이 아닙니까? 당신, 이 절에 있는 놈들에게 뇌물이라도 먹은 거 아니오?”
“이 사람이 생사람을 잡으려드네!”
하면서 광호를 힐긋 쳐다보자
“그렇잖고 어째 그런 말을 할 수 있소.”
하고 입에 거품을 물고 고함을 지르자
“내 이야기는 당신들이 여기 사찰에 있는 사람과 서로 원수진 일도 없는 듯하고 서로 사람을 해할 일도 없는 듯하니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란 뜻입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경찰관이란 양반이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내 개인 생각이라고 했잖소?”
하고는 슬그머니 뒤꽁무니를 뺏다. 이때 광규가 나서서
“동생, 너무 흥분하지 말게, 아무리 우리 맘을 모르는 저 사람 말이지만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니지 않은가, 자네가 맏상제 아닌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생각해서 결론을 내리게......”
다른 사람이 말을 했으면 모르되 앞뒤를 가리지 않고 이 일에 나서는 친척 광규의 말을 듣고 보니 사실인즉슨 그도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찰에 있는 사람들과 무슨 원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픈 어머니가 무슨 힘이 있어 사찰 사람들과 다투다가 생긴 일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그렇다면 어머니는 왜 돌아가셨을까. 또 손과 발이 묶여 있었듯이 무엇인가 심하게 벗어나려고 했던 멍 자국, 사찰 주요 인물들의 피신, 며칠 된 시신의 피부가 너무나 부드러운 것, 주위 사람들이 이야기로 여기 환자들 대부분 수면제를 복용시킨 사실, 경찰관의 태도 등이 사전에 서로 입을 맞춘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광호는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먼 친척인 광규를 빼놓고서 한 사람도 나서서 이 일을 파헤칠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파헤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자기 자신마저도 어떻게 이 일을 수습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슬펐다. 남들과 싸움할 때는 세상에 겁날 것이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자신이 더없이 약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광호는 팔과 다리가 묶여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심하게 몸부림치자 수면제를 복용시켜 꼼짝할 수도 없이 잠에 취해 쓰러진 어머니 모습도 떠올랐다.
꽁보리밥에 반찬 하나 없이 강압적으로 먹임을 당했을 어머니 모습도 떠올랐다.
다시 어머니의 죽음 뒤에는 분명 억울한 사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한동안 조사 때문에 잊은 슬픔이 다시 솟아났다. 광호는 발광하듯 울기 시작했다. 사찰 물건을 닥치는 대로 밟고 부셨다. 그러나 아무도 말리지도 않았고 광호가 하는 그대로 보고만 있었다. 그때 경찰관이 한마디 던졌다.
“기물파손으로 고발을 당할 수도 있어요.”
“어느 놈이 고발을 해, 할 테면 해봐라!”
그 말 한마디에 광호는 더욱 감정이 폭발했다.
경찰관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훌쩍 사찰을 떠나가 버렸다.
얼마 뒤에는 광호는 제풀에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진정하게, 자네가 그러면 쓰나, 자네가 중심인데......”
광규의 말이 광호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있었다.
“내가 최선을 다해 알아보겠네, 제발 마음을 가라앉히게.”
광호는 점차 광규가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도 비는 억수같이 내렸다. 모두 들 하늘이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한다고들 말했다.
이른 저녁이었다. 허술한 복장의 늙수그레한 인부 2명을 대동하고 의사 한 명과 두 명의 간호사가 용천사를 올라왔다. 경찰관이 오늘 부검할 의사라고 소개했다.
광호 아버지, 광호, 광규, 광호 외삼촌 그리고 친척 몇이 부검할 창고로 올라갔다. 창고는 법당 오른편 공양실을 끼고 100여 보 북쪽에 위치했다. 창고가 있는 계곡은 제법 깊고 넓었다.
수풀을 헤치고 창고에 도착한 일행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섯 평 남짓한 창고는 사면이 오래된 낡은 판자로 둘러쳐 있었고 지붕은 빛바랜 함석으로 덮여있었다. 좁은 입구는 문만 겨우 열릴 수 있도록 창고 주위에는 잡자재를 아무렇게 가득 쌓아 놓았고 창고 벽면은 물이 흘러내려 검푸른색으로 변한 판자로 둘러 쳐져있었다. 판자로 처진 벽은 모두가 흘러내린 빗물에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더러는 박힌 못이 떨어져 밖에 내리는 빗방울이 바닥에 튕겨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저기에는 거미줄이 늘어져 있었고 쾌쾌하고 썩은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부검대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한 낡은 들마루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짧은 들마루 기둥에는 배꼽 높이가 되도록 각목을 덧붙여 형식적으로 묶어 놓아서 겨우 들마루를 받치고 있었다. 인부 하나가 준비해 온 보얀 광목을 들마루에 깔아 놓고 부검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그나마 들마루의 초라한 모습을 다소나마 감추고 있었다.
드디어 광호 어머니의 시신이 도착했다.
인부 두 명이 들고 온 광호 어머니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광목을 깔아 놓은 들마루 위에 눕혔다. 그들은 시신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굵은 빗줄기는 함석지붕을 요란스레 두드리고 있었다.
광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어머니의 시신을 차마 볼 수가 없어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말았다.
부검의는 시신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난 후에 검안을 실시했다. 얼마나 침묵이 흘렀을까. 광호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다시 뇌를 열었다.
한참 후에 의사는 달걀노른자 모양의 물체를 뇌에서 끄집어내어 손에 들고는 유족들에게 보란 듯이
“단단한 뼈로 된 두개골 내에서 이 종양이 정상적인 뇌 조직을 압박, 손상, 이동시키며 이때에 여러 증상을 유발합니다. 발작, 뇌 및 신경 기능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국소 증세로 지각, 의식장애, 기억력, 판단력 저하, 또는 소변 과다 등의 증세를 일으킵니다. 고인의 사망 원인은 뇌종양입니다.”
하고는 모든 부검을 끝냈다. 의사는 덧붙여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려는 듯
“사찰에서 의료 행위를 했음은 물론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팔목과 발목을 묶은 것은 사실이나 고인의 죽음과는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으며, 또 치사량은 아니지만 미량의 수면제를 복용시킨 것도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상입니다.”
할 말이 없었다.
광호는 분명 사인은 팔다리를 묶고 몸부림치는 어머니에게 수면제를 과다하게 복용시키고 자신들이 편한 대로 처리하다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검 의사는 직접적인 사인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는데 할 말이 없었다.
부검 의사는 시체만 보고 판단한다. 또한 수사기관이 제시한 자료가 미비하거나 다를 때는 사인에 대한 소견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인이 조금 의심되어도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지 않을 것이다.
부검의는 결국 사체의 죽음에 대한 결과만을 놓고 판단할 뿐이므로 그 원인은 알 수 없지 않겠는가. 그 원인은 결국은 조사관의 역량에 맡겨질 것 아닌가.
광호는 부검을 하게 되면 어머니의 죽음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검 결과는 무엇인가. 처음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결국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준 꼴만 된 것 아닌가. 어제 경찰관이 말대로 어머니를 두 번 죽이는 꼴이 되고 말았지 않는가.
허술한 부검을 목격하자 새로운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들은 자주 찾아오지 못한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환자들의 관리를 소홀히 다루었으며 환자의 저항에 따라 가혹행위를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혹 환자가 저항하거나 다루기 귀찮아지면 수면제를 다량 복용시켜 힘을 쓰지 못하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수면제를 복용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만약 환자가 죽게 되면 병원과 조사기관을 매수해서 그들의 사고를 은폐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광호와 광호 아버지는 분하고 억울했지만 자신이 힘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눈물을 머금고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으로 향했다.
사찰에서는 혜천이 이 일에 책임을 지고 경찰에 출두해서 진술을 받고 도연과 함께 유치장에 구금되었다.
용천은 혜천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도연에게도
“환자가 너무 요동을 치고 잠깐 비운 사이에 자주 원내를 이탈하여 몇 번 수면제를 복용시켰다고 해라,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며칠만 고생 하그라!”
하고 안심시켰다.
광호 어머니의 영구차가 안동으로 내려가는 날 억수 같은 장맛비는 광호의 마음을 위로해 주려는 듯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다. 몇 차례나 영구차가 지나가면 산사태가 일어나 길을 막아 버리기 일쑤였다. 차를 모는 기사는 등골이 오싹했다.
“세상에 무슨 비가 이렇게도 많이 오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나!.......”
윈도브러시가 급히 좌우로 움직여도 금방 내리는 비는 차창을 덮어 버린다.
“우리륵~”
“아이고 형님!”
얼마나 놀랐는지 평소에 광호 어머니를 시기 질투했던 광호의 숙모가 의자 밑으로 고개를 처박고 뒤 범퍼를 스치고 내려앉은 산사태 소리에 죽은 광호 어머니를 부른다. 차가 지나간 후에 산사태가 일어나 그나마 다행이었다. 영구차에 탄 친인척들은 모두 억수같이 내리는 비는 억울한 죽음으로 광호 어머니가 흘리는 눈물이요, 죽음을 피한 것은 그들을 살리기 위해 죽은 광호 어머니의 도움이라고들 했다.
광호는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사실대로 파헤쳐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파헤칠 방법이 없다는 것도 느꼈다. 그의 주위에는 그를 위시하여 힘없고 선량한 사람들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낱 고등학교를 나온 그가 의협심만 가지고는 어떤 방법도 대책도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는 산처럼 높은 암벽을 뚫을 길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꼈지만 그는 세월 속에서 자신의 의지가 묻혀 가는 것을 느끼진 못했다.
그 후 광호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힘없는 자신을 한탄하고 술로써 세월을 보냈다.
광호의 십촌 형 광규는 국회의원을 따라다녔다는 말도 있었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는 말도 있었으나 소문으로만 들었지 확실한 직업은 알 수 없었다. 또 자기 형제나 사, 오촌이면 몰라도 10촌이나 되는 친척이니 서로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소 간 모두는 광규가 말썽을 피우거나 크게 사고를 친 일도 없어 경계를 하거나 멀리하지는 않았다.
그는 광호 옆을 항상 따라다니며 사찰에 이의를 제기한다든지 파출소에 고발을 한다든지 광호나 광호 아버지가 해야 하는 일을 말만 떨어지면 먼저 나서서 척척 일을 대신했다.
그는 부검을 하는 동안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고 그 뒤처리도 광호나 광호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 대신 따지고 결정하곤 했었다.
광호네 식구들은 비록 십촌이지만 어려운 모든 일에 신경을 써주는 광규가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사찰, 파출소, 병원사람 모두는 광규가 이 집안일을 대신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는 광호 아버지에게
“아제, 아제는 가만히 집에서 계시고 결과만 기다리시소, 제가 힘 자라는데 까지 여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이번 일을 해결해 드리겠심니더, 저놈들 콩밥을 오래 먹이려면 내가 나서서 고발장도 쓰고 따져서 아주머니의 억울한 사정을 속속들이 밝혀내야 않겠는가?”
하자 광호 아버지 당사자도 귀찮고 어렵게 생각하는 이 일을 대신해 주려는 조카의 말을 듣자 너무 고마워서 광규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아이고 그래, 그래주면 얼마나 고맙겠니, 어째 자네가 시간을 내줄 수가 있겠는가? 바쁘지는 않은가?”
“아제요, 우리 일가 일이 곧 제 일인데 당연히 나서야 안 되겠는가? 아무 걱정 마시고 계시이소.”
사실 광호 아버지는 이 일을 어떻게 하느냐를 놓고 마음속으로 걱정을 한 터였다. 광호 아버지는 가만히 생각해 본다.
안동서 양평까지가 어디냐. 양평을 가자면 집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안동역에서 완행열차를 탄다. 그런데 완행열차를 타고 가다 보면 오는 기차를 역마다 기다렸다 그 기차가 도착해야 출발하니 일찍 도착해야 저녁 대여섯 시에 서울에 도착하는 열차가 중앙선 완행열차다. 그러니 겨울이면 짧은 해에 기차 타는 일로 하루 전부를 허비해야 한다. 결국 양평을 오가는데 꼬박 이틀을 잡아야 하고 거기다가 일까지 본다고 하면 삼사일은 족히 걸려야 하니 나이 많은 자신으로는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호 아버지는 사찰과 따지고 서류를 검토해서 고발을 하려면 아무래도 소문에 들은 대로 변호사 일을 봤던 광규가 적격인 듯싶었다. 광규 아비 또한 문중 일을 할 때 가끔 만나보면 매사가 분명하고 똑똑한 지라 광규도 그 아비에 그 자식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그래, 그래, 우리 일에 신경을 써주니 고맙기 이를 데 없네, 모든 일을 자네가 내 일처럼 처리해 주게나.”
하면서 차비나 용돈을 집어 주면서 모든 일을 광규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다.
“아무 걱정 말고 계시소.”
“그러면 인감도장이 필요하지 않는가?”
“됐심니더, 막도장 하나하고 인감도장 찍은 위임장 하나하고 인감증명 한 장 만 떼서 주소.”
하자 광호 아버지는 얼른 위임장과 막도장 하나를 넘겨줬다.
장례를 마치자마자 군입대 날이 다가왔다. 광호는 마음 한구석에 어머니의 일이 걸려 찝찝한 마음은 들었으나 나라의 부름이라 하는 수 없이 입대를 결정했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이 훌쩍 가 버렸다.
그동안 광규는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았다. 광호 아버지는 일이 잘 처리된 걸로 알고 있었다. 만약 잘못되었다면 경찰서에 출두하라는 통보가 분명히 있을 것인데 한 번도 통지서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또 한 달이 지났다.
광호 아버지는 이미 죽은 아내에 대한 일은 잊고 있었다. 이때까지도 광규의 코빼기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든 어느 날이었다. 모처럼 광규가 찾아와서 사찰 책임자가 과실치사로 입건되었다는 말을 전했다. 그 일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광호 아버지는 광규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광규는 왜 광호와 먼 십촌의 일인데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해결하려고 했을까? 정말 일가의 일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나선 것일까?
아니었다. 광규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광규 아버지는 엄격하고 빈틈없는 사람이었지만 광규는 아버지와는 달리 사기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사기성이라기보다 배운 도둑질이라 이런 방법 외에 달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장남인 광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에서 만난 동료들과 함께 정치판에 뛰어든다고 고향 선배인 모 국회의원 선거 운동을 하면서 따라다녔다. 그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었는지 아니면 떨어졌는지 모르지만 선거 운동을 해줬다는 덕분에 그 사람의 줄을 타고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변호사 사무실에는 실제 변호사의 업무를 뒷받침하는 사무장과 이곳저곳 안면을 바탕으로 사건을 물고 들어와서 사건 수당을 챙기는 사무장이 있었다. 광규는 뚜렷한 월급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허울 좋게 사무장이라는 명칭만 가지고 사건을 물어 오는 브러커 역할이었다. 한 일이 년은 그런대로 안면을 갖고 찾아다니니 그런대로 먹고는 살았다. 약아빠진 그는 이 바닥에서 한 일 년 물을 먹고 나니 자신이 변호사 인양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점점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사건을 의뢰하러 온 고객의 사건을 변호사 몰래 다방으로 데리고 가 자신이 변호사 인양 사건을 해결하기에 이르렀다. 변호사에게 들어갈 돈을 자신이 챙겨 가로채니 돈 버는 재미가 쏠쏠했다. 몇 년 만하면 돈도 모일듯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변호사의 심부름으로 남부지원 공탁과에 공탁금을 내고 막 나서려는데 안면 있는 사람이 얼굴색이 시커멓게 변해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심형!”
하고 불렀지만 얼마나 흥분했던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광규는 얼른 따라가서 그를 불러 세웠다.
“아니, 심형?”
그는 그때서야 광규를 알아보고
“아! 변호사님!”
하고 그는 광규를 변호사라고 불렀다.
“무슨 일인데 그리 화가 나서 급하게 갑니까?”
“아,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눈치 빠른 광규는 등을 어루만지며 아이를 달래듯이
“자자, 다방에라도 갑시다.”
하소연할 상대를 만난 그는 순순히 광규를 따라왔다. 그는 친구에 사돈인 심 재철이란 사람이었다. 재철은 집을 팔려고 계약을 했는데 무슨 일인지 중도금을 치른 매수인이 수개월이 지나도 잔금을 치르지 않았다. 수차례 독촉장을 보내고 소송한다고 내용 증명을 보내도 매수인은 돈은커녕 사람조차도 만날 수가 없었다. 재철은 부득이 소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심에서는 승소를 했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이 심에서 변론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패소하고 말았다. 열이 머리끝까지 오른 재철은 많은 돈을 들여 변호사를 사서 대법원까지 갔는데 역시 이 심 그대로였다. 약한 서민이 그는 재판의 결과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오늘 이 심에서 매수인이 공탁한 잔금을 찾으러 왔다가 또다시 기가 막히는 일을 발견했다. 매수인이 승소했기 때문에 소송한 소송비용을 잔금에 압류를 걸었던 것이었다.
“이런 죽일 놈들이 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습니까? 아니 도대체 이 눔의 나라 법이 법입니까? 잔금을 주지 않아 계약서대로 계약 취소를 하자는데, 계약을 위반했으니 매수인이 계약금을 돌려받지 않겠다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는데, 그래 놓고 지 들이 계약을 위반해 놓고, 나는 계약서대로 계약금을 주지 않겠다는데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판사들이 계약서도 못 읽습니까? 그 똑똑한 판사가 왜 매수인을 편들어 그놈들의 손을 들어 줍니까? 거기다가 삼심까지 간 저놈들의 소송비용까지 나 보고 내라고요? 아이고, 이런 복장이 터질 일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차도 마시지 않고 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이 아가씨 여기 물 좀.......”
“진정하십시오, 내가 헌법재판소에 다시 소송을 제기해 드릴까요?”
“아이고 재판이라는 말씀도 마십시오, 재판이라면 이가 갈립니다.”
“그러면?.......”
“내가 공탁금을 찾으러 가니 공무원이라는 저놈들이 뭘 해 가지고 와라 뭘 해 가지고 와라 하면서 자꾸 서류를 해 가지고 오라고 하면서 돌려보내는 것을 보니 무슨 생각이 있는 모양입니다, 자, 여기.......”
그는 잠시 주머니를 뒤지더니 돈다발을 꺼냈다.
“변호사님, 어차피 들어간 돈, 내 여기 삼백을 드릴 테니 압류 좀 풀어 주시고 돈을 찾게 해 주십시오, 그때는 다시 사례하겠습니다.”
이것이 굴러들어 온 복이었다. 이 사람 뒤만 따라다니면서 서류 정리만 잘해 주면 또 돈이 굴러 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큰 것만 노리는 광규에게는 단타로 들어온 삼백이 전부였다. 재철만 잘 달래서 해결해 주었으면 그나마 돈줄은 놓치지 않았을 텐데 그만 그 돈을 받고 재철의 간절한 소망조차도 내팽개쳐 버렸다. 그 일로 인해 변호사 사무실에 사무장 직함도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 후 벌어 논 밑천이 다 떨어지자 최근에는 고향 집에 와서 놀고 있었다.
광규는 할 일 없이 시장통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광호 아버지가 가게 문을 닫고 허둥대는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었다.
“아제, 안녕하신가요? 무슨 일이라도......”
“아이고 조카라? 마침 니 잘 왔다, 니 아주머니가, 아이고 어쩌면 좋니?”
“아주머니가 왜요?”
“양평 절에 보낸 니 아주머니가 죽었다고 연락이 왔단다, 야야 이를 어쩌면 좋니?”
혼자 어찌할 바를 몰라했던 광호 아버지는 조카를 만난 것이 너무나 반가 왔다. 광호 아버지를 만나 광호 어머니가 사찰 요양원에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광규는
“예? 아주머니가요?”......”
하고 겉으로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돈벌이가 생긴다는 것을 예상하고 쾌재를 불렀다.
“아제요, 우선 마음을 까라 안치소, 그리고 차분하게 조목조목 이야기 해 보이소.”
광호 아버지로부터 자초지종을 자세하게 들은 그는 광호 아버지를 대신해서 우선 가까운 친인척에게 연락을 취하고 일행과 함께 같이 양평으로 갈 차량을 수배했다. 그리고는 광규 자신도 따라나섰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돌아가는 꼴이 잘하면 제법 많은 돈을 벌 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찰이 운영하는 요양원은 무허가였다는 사실과 사찰 주지의 뒤에는 수백 명의 신도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다는 것만 봐서도 빨리 합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광규는 감지하고 있었다.
광규는 광호 아버지로부터 받은 위임장을 들고 사찰을 찾아갔다. 사찰은 이미 모두가 제 위치를 찾아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한가로웠다.
용천은 광규가 찾아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군소리 한마디 없이 씩 한 번 미소를 짓고 바로 앞에 있는 문서와 돈을 넣어 두는 고장 직장의 서랍을 열었다.
“얼마면 됩니까?”
광규는 사찰 측에서 돈을 가지고 몇 번을 밀고 당길 줄 생각했다. 그는 절대로 합의금을 자기가 먼저 제의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상대가 합의 금액을 이야기하면 뒤로 자빠졌다가 앞으로 당겼다가 배짱을 튕기면서 그 금액에 더 올려서 요구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다. 그런데 광규 생각과는 달리 용천은 달라는 대로 다 주겠다는 듯이 돈통을 열어 놓고 얼마면 되냐고 묻자 광규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혼란이 왔다. 결국 합의금은 생각과는 달리 광규가 제의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는 엉겁결에 이만한 액수면 되겠지 하고 석 장을 달라고 대답했다.
사건이 터지고 피해자 가족들이 몰려오자 벌써 용천은 사복을 입고 여러 차례 절을 드나들면서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었다. 용천의 배짱이 그런 일에 기가 죽을 배짱은 아니었다. 삼부로 깎은 머리가 이럴 때 한몫을 했다. 까까머리도 아니고 삼부를 한 머리에 사복을 입은 용천을 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용천은 광규라는 자가 나서는 행동이나 주변 사람들을 얼렸다가 내쳤다가 자기 의도대로 하는 모습을 보고 예사로 닳아먹은 놈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아봤다.
용천이 사람을 한둘 다뤄 본 것이 아니라 수천 명을 사주풀이 하면서 끌고 다니지 않았던가. 저런 놈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상대의 눈치를 봐가며 약점을 잡아 합의금을 턱없이 올릴 놈이라고 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먼저 선수를 쳐서 좀 과하다 생각이 들 때 먹이를 던지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예 먹고 싶은 대로 먹어 보라고 푹 집어서 던진 먹이었다.
광규는 용천이 예상한 대로 끽소리 없이 던진 고깃덩이를 물고는 사라졌다.
용천이 유리한 대로 적은 합의서를 광규로부터 날인받아 경찰서에 제출하고 모든 일을 마무리했다.
사람은 어려운 일을 겪고 나면 그만큼 성숙해지는 법이다. 사람을 죽여서 내보내고 그 일을 무마하고 나니 용천은 이제 겁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편 정호는 금순이의 마음이 무식한지 독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재수가 죽은 일을 경찰서에서 깨끗하게 해결은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몸을 섞고 살았던 남편을 자신과 함께 절벽에 떨어뜨리고 저렇게 태연하게 살아가는 금순이가 너무나 신통했다.
정호는 몇 번이고 금순을 찾아가려고 마음먹었다가 포기하곤 했다. 혹 경찰관이 둘의 관계를 의심하고 추적하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밤에 죽은 사장 변 재수의 얼굴이 떠올라 혼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에는 뜬 눈으로 지새우고 낮에서야 겨우 눈을 붙이고 잠을 청하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또 이대로 정호 혼자서 무위도식하고 살자니 너무 억울하기도 했다. 정호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자신이 재수를 벽돌 지게에 짊어지고 그 가파르고 높은 산을 올라 절벽에 떨어뜨린 후에 뒤처리를 모두 다 했는데 금순이 혼자서 그 많은 재산을 정리해서 떵떵거리면서 살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에는 괘심하고 분한 생각이 들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뙈놈이 먹는다더니 내가 바로 그 꼴이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내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나서 단 판을 지어야지!”
하고 정호는 옷을 주섬주섬 걸치고 외출 준비를 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자 한때 그렇게도 좋았던 자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것을 보고는 부아가 치밀었다. 그는 서둘러 금순의 집을 찾았다. 정호가 찾아갔을 때는 마침 금순은 외출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니 웬일이야? 여기가 어디라고?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형사들이 미행하면 어쩌려고 여길 이렇게 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금순은 낮으면서 엄숙한 소리로 말했다.
“씨팔, 미행하려면 하라고 해! 까짓 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지기지 뭐!”
“아니, 이 사람이 간이 배 밖에 나왔나?”
“그래, 배 밖에 나왔다, 일은 내가 다 처리하고도 나는 돈 한 푼 없이 집구석에 쳐 박혀 있고 니는 가만히 앉아서 돈방석에 올라앉아 돈을 펑펑 쓰고 훨훨 날아다니고 이게 어느 나라 법이야, 말이 되냐고?”
“뭔 소리하는 거야, 내가 내 돈을 쓰든 말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네 돈? 그게 네 돈이야? 나 없이 그 많은 돈을 네가 만질 수 있을 것 같았어?”
정호의 말이 거칠게 나오자 혹 지나가는 사람이 들을세라 금순은 얼른 정호를 차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자마자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차는 강변 북로를 타고 일 차선 좁은 국도를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정호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있었고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차는 벌써 팔당 댐을 지나고 있었고 금순은 점점 속도를 내고 있었다. 오랜 침묵을 깨고 주변을 살피던 정호는 금순에게 불쑥 한 마디를 던졌다.
“너 또 그놈 중놈에게 가는구나!”
정호는 예전처럼 차분했던 운전기사 정호가 아니었다. 지금껏 그는 안전벨트도 하지 않은 채 운전석 옆 좌석에서 금순의 허벅지를 음탕하게 바라보면서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몸매에 정호는 옛일을 생각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비스듬히 몸을 일으켜 운전하는 금순의 사타구니로 손을 밀어 넣었다.
“왜 이래!”
정호는 금순이 싫어하지는 않을 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징그러운 지렁이라도 털어내듯이 한 손으로 힘껏 정호의 손을 뿌리쳤다. 얼마나 힘껏 손을 뿌리쳤던지 그 바람에 달리던 차가 휘청거렸다. 하마터면 옆 차와 부딪칠 뻔했다. 겸연쩍은 정호는 그래도 아쉬운 듯이 금순의 다리 위로 다시 손을 올려놓고서는 손을 떼지도 못하고 한마디 했다.
“이제는 나를 아주 무시하는구나!”
하자 금순은 옆자리에 앉은 정호를 흘깃 째려보면서
“큰일 날 뻔했잖아! 죽으려고 환장했어?”
하고 큰 소리로 정호를 나무라자 미안했던지 정호가 말을 바꾸어
“나 한 미천 줘!”
하고 반 사정 조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얼토당토않는 소리를 하고 있어!”
하고 금순은 단호하게 쏘아붙였다.
“나도 돈이 있어야 살지, 너 때문에 회사도 못 다니고 어쩌란 말이야, 그냥 확 까발려?”
금순이 겁을 낼 줄 알았는데
“까발려봐, 그러면 넌 무사할 줄 알아?”
하고 오히려 정호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아,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알거지 신세인 나야 그게 그거지만 그 많은 자산 쓰지도 못하고 평생 감방에 들어앉을 네가 문제지!”
“흥! 그래? 감방이 그렇게 좋으면 그럼 어디 그렇게 해봐!”
지금 와서 금순의 배짱도 정호보다 못하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돈 좀 줘!”
정호는 금방 꼬리를 내리고 사정 조로 말을 바꿨다.
“얼마면 돼? “
“우선은 먹고살아야지!”
“내 가방 좀 열어 봐.”
정호가 운전석 옆에 있는 금순의 가방을 열자
“그 안에 든 핸드백을 열고......”
정호는 돈다발 하나를 꺼내 들고 흔들면서
“이거 말이야? 아니 거지 동냥하는 거야?”
“갖고 있는 돈 전부야, 나중에 생각해 볼게.”
금순과 정호가 차 안에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차는 두물머리 양수리를 지나 바로 한강 옆을 달리고 있었다. 벌써부터 까만 승용차 한 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더니 다시 금순의 차 앞으로 끼어들어 왔다. 그리고 앞차에 탄 사내가 백미러로 금순을 힐끗 보더니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금순도 차간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같이 앞차를 따라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한 번만 줘?”
돈까지 타고 나중에 더 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정호는 자신이 생겼든지 음탕한 눈빛을 하고 허벅지 위에 올린 손을 다시 금순의 사타구니로 밀어 넣자
“정말 이럴 거야?”
금순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정호의 손길을 피해 허벅지를 붙이고 힐끗 쳐다보면서 다른 한 손으로 정호의 손을 잡아서 뿌리치는 순간이었다. 달리던 앞차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야! 부레끼!”
정호의 고함소리에 금순은 더욱 놀라서 앞을 바라보기도 전에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깊숙이 힘차게 밟아 버렸다.
“끼익!”
금순이가 몰던 차는 강한 금속성의 끌리는 소리가 길게 이어지면서 반 바퀴를 돌아서 가드레일에 부딪혔다. 차가 강물 속으로 곤두박질을 치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반 바퀴를 돈 차는 뒤꽁무니가 앞으로 와서 가드레일에 걸려 있었고 허공에 뜬 뒷바퀴 하나가 공회전을 하고 있었다.
차 안에서 금순에게 손장난 질을 하던 정호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의자에는 보이지 않았다.
운전석 옆 유리창 일부가 뻥 뚫려 있었고 뚫린 주위에는 거미줄같이 잔금으로 잘게 갈라진 유리가 너울을 이루고 있었다. 금순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핸들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엎어져 있었다. 앞차는 벌써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금순이 입원해 있는 동안 양수리 한강에는 정호의 시신을 찾으려고 잠수부들이 물속에 여러 번 들어갔으나 결국에는 정호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잠수부들은 물의 흐름을 잘 감지해 어느 곳에 시신이 있을지 예상하고 있을 터인데 정호의 시신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면 물살이 너무 세서 멀리 떠내려갔기 때문에 벌써 고기밥이 되었나 보다 하고 금순은 생각했다. 금순은 정호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속으로 앓던 이가 쏙 빠진 기분이었다. 지금 정호가 살아 있었더라면 용천과의 일에 무척 걸림돌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빤한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금순이 입원해 있는 동안 용천은 번질나게 병문안을 왔다. 용천으로서는 요양원을 짓는데 대 주주 역할을 한 금순을 함부로 대할 수도 없었지만 금순의 구애를 알고 있는 그로서는 이참에 금순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치를 하자면 돈과 미모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금순이 용천에게는 버릴 수 없는 좋은 먹잇감이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병원에서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금순은 다정하게 자신을 대하는 용천의 손을 잡았다. 용천은 미소를 지으며 한 손으로 금순의 볼에 흘러내린 머리를 가지런히 쓰다듬고 있었다.
금순은 누운 채로 용천을 와락 끌어당겼다. 용천의 강한 팔이 금순의 작은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고 있었다. 결코 금순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도 아니었다. 그렇게 용천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행동할 줄 알았다. 그는 미소를 잃지 않고 금순의 손을 떼어 놓으면서
“서둘지 말아요, 몸 관리나 잘하고도 늦지 않으니깐......”
때마침 노크 소리와 함께 간호사가 들어왔다. 한 손에 쪽지가 담긴 꽃바구니를 들고
“권 금순 씨에게 온 꽃바구니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간호사는 사물함 탁자 위에 꽃바구니와 약봉지를 내려놓고 금순의 겨드랑이에 체온계를 꽂으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입원한 환자에게 국화꽃을 보내다니...... ”
“예? 무슨 말이에요?”
금순은 들릴 듯 말 듯 간호사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아,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혼잣말이었어요.”
금방 병실 안은 노란 국화꽃다발에서 퍼져 나오는 짙은 향내가 가득 풍겨왔다.
“누가 보냈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
금순은 체온계를 겨드랑이에 꼭 낀 채 다른 손을 뻗어 바구니에서 쪽지를 꺼내 들었다. 쪽지에는
“애석하게도 운전기사는 보이지 않는군요, 다행히 금순 씨는 무사하고요, 그럼 다음에 또......”
라고 쓰여 있었고 보낸 날짜와 보낸 사람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이상한 일도 다 있네......”
잠시 후 간호사는 체온계를 빼내 들고 차트에 무언가 기록하면서 종종걸음으로 병실을 나갔다.
바로 그때
“똑, 똑, 똑.”
방금 나갔던 간호사와 한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광호라는 형사였다.
광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소집 영장을 받자마자 바로 군에 입대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작전전투경찰에 차출되어 군 복무를 대신했다. 그리고 제대와 함께 순경 생활을 거쳐 안면과 약간의 뒷돈을 써서 줄을 타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사실 그는 고교 시절 잘못된 친구를 사귀어 영리한 두뇌를 건달로 보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군 복무 기간 동안 철저한 상명하복의 질서를 익히게 되었다. 또한 청소년 시절 배운 운동 솜씨와 의협심은 그가 경찰 생활을 함에 있어 경찰로서의 소양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간호사는 그 사내를 형사라고 소개하고 바로 병실을 나가 버렸다.
광호는 금순에게 정호와의 관계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한동안 금순에게 캐묻는 광호를 유심히 훑어보던 용천이가 참다못해
“어이, 젊은 순사 양반, 환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가?”
하고 아랫사람에게 나무라는 듯이 말하자
“잠깐이면 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용천을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금순에게 질문을 하자 용천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눈을 찡그리더니 문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다.
“어이, 송 청장! 부하들 안 보낼 수 없나?”
용천은 수사과장을 부를 때 청장이라고 띄어주며 부르고 있었다. 수사과장은 용천과 김 총재와의 관계를 벌써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용천에게 잘만 줄을 대면 실제 청장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은근하게 동의하고 있었다.
“예, 스님, 아무 걱정 마십시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이게 뭔가? 환자가 의식을 겨우 회복했는데 돼먹지 못한 부하들을 보내서 심기를 건드리다니......”
“아닙니다, 서에서 보낸 것이 아닙니다, 그 녀석이 어찌 알고.......”
“하여튼 알았으니 바로 조치하시게!”
전화를 끊고 병실로 들어서자 바로 광호는
“죄송합니다.......”
하고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떠나갔다.
용천은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의 말을 신처럼 받드는 수백 명의 신도들이 있는가 하면 기도며 불공이며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다 해주는 땡추중들이 있었다. 말 한마디 떨어지면 죽는시늉까지 하는 수족 같은 십 수 명의 관리자들이 있는가 하면 백여 명이 넘는 정신병자들이 있었고 지금도 용천의 그늘 속으로 들어오려는 수많은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용천은 그들의 생사여탈 권을 한 손에 쥐고 소왕국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뿐인가. 신도들이 갖다 바치는 시주는 매달 얼마이고 백 명이 넘는 환자들의 보호자가 요양원에 갖다 바치는 돈은 얼마인가. 거기다가 정부에서 환자 한 사람당 지원하는 돈은 고스란히 알 돈이 되어 용천의 주머니를 한없이 불려주고 있지 않는가. 또 여당 총재가 뒤를 봐주고 지역사회 각계각층의 유지들은 용천을 호위해 주기 위해 앞을 다투어 손을 내밀고 있지 않는가.
그가 기도드릴 때 꾸었던 승천하는 용꿈이 또렷하게 그의 뇌리에 남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한 달 가까이 금순은 입원해 있다가 오늘은 퇴원을 하기로 작정했다. 사실 차는 여러 보험회사에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보상 문제는 별문제가 없겠지만 몇 푼 푼돈을 바라서 병원에 처박혀 있자니 좀이 쑤셔왔기 때문이었다. 가진 것이 돈밖에 없는 그녀가 옛날부터 좋아했던 늠름한 용천을 가까이 대한 데다가 몸이 회복되고 보니 요부의 본능이 되살아 나오기 시작했다.
퇴원해야겠다는 말을 들은 용천은 저녁 해 질 무렵에 병원을 찾아왔다. 삼부의 스포츠 칼라에 예리하고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턱의 각진 선, 검고 굵은 눈썹 아래 지성이 넘치는 검고 큰 눈, 어찌 보면 고집이 센듯하면서도 부드럽게 중앙을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코, 약간 두툼한 입술은 어쩌면 무척 무게를 실은 듯했지만 한 번 열면 물 흐르듯이 청산유수로 사람을 휘어잡는 입과 입술, 세상 모두를 가슴속에 끌어안을 듯한 저 어깨와 우람한 풍채, 까만 정장 양복을 입은 용천이 금순의 눈에는 신사중에 신사로 보였다. 금순은 정녕 품에 안겨 보고 싶은 사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기 시작했다.
순간 용천은 김 총재와 금순을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에, 만약에 내가 위기에 처했다면 누가 나를 구해 줄 건가? 그래, 김 총재 밖에 없다, 총재에게 약점을 만들어야 한다, 미인계? 그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싫어할 남자는 아무도 없다, 아무리 철저한 사내도 계집의 꼬리에는 무장을 풀지 않던가!”
이 순간 그는 김 총재에게 금순을 바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용천은 보다 은근한 마음으로 금순에게
“우리 바람이나 쐬러 나갈까?”
용천의 한 마디가 너무 반가워서 금순은 그만 소리를 지를 번 하다가 가까스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디를요?”
“자, 옷을 갈아입고 내 차를 타고 가지!”
“아이,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자네는 참 아름다워, 지금 모습이 더욱더 말이야!”
그 많은 남자들을 휘어잡았던 금순의 손이 용천의 말 한마디에 옷을 갈아입으면서 떨리고 있었다.
그들은 카바레로 갔다. 그리고 술을 한잔 마시고 색소폰 소리에 맞추어 브루스를 추고 있었다. 용천의 왼손은 금순의 오른손을 가볍게 잡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에는 땀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용천의 오른손이 금순의 등 아래 허리 위를 살짝 당기고 있었고 흥분한 금순은 용천에게 젖가슴이 꼭 닿도록 바짝 몸을 밀착시키고 있었다. 비록 술은 마셨지만 용천은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줄 알았다. 그럴수록 금순의 애간장은 더욱 타들어 갔다.
브루스는 여러 곡이 흘렀고 브루스의 마지막 곡인 ‘이별의 종착역’이 흐르고 있었다. 금순은 관능의 노예가 되어 용천에게 몸을 기대며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금순의 발길은 아직 꿈속을 헤매듯이 용천이 이끄는 대로 호텔로 향했다. 아니 마음은 오히려 금순이 용천을 이끌고 있었다.
그날 밤 금순은 남자를 알고부터 처음으로 사내다운 사내와 잠자리를 해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천과의 육체적 결합은 정말로 황홀했다. 그리고 그 황홀한 여운이 달콤하게 남아 있었지만 헤어져야 했다.
용천은 사찰로 돌아왔다.
용천사는 벌써 사찰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신들의 소유인 수십만 필지의 넓은 밭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들은 풀이며 밭매기며 모든 일을 수용소 환자들을 데리고 작업을 시키고 있었다. 감독관들은 작렬하는 햇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 환자들에게 일을 시키고 있었다. 그들 중 덩치 큰 사내 몇이 허리에는 경찰관들이 차고 다니는 곤봉을 차고 있었고 다른 몇 명은 허리에 찬 가죽 혁대를 풀어헤치고 그늘 밑에서 서로 잡담을 하면서 이들을 감시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작업을 하던 한 사내가 땀을 닦으며 잠시 일어섰다. 바로 그때
“거기 일어서는 놈이 누구야!”
하고 감독하던 한 사내가 피우던 담배를 발로 비벼 끄고 벌떡 일어나 고함을 치며 일을 하는 환자들 앞으로 달려갔다. 김 처사의 동생 도연이었다. 그는 차고 있던 곤봉을 빼내서 잠시 쉬려고 일어선 환자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매를 맞은 그는 아프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얼른 앉아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 개자식, 사람을 왜 귀찮게 해!”
시작부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잡아 놓아야만 오늘 하루가 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앉아서 일을 하는 그 사내를 다시 한번 발길로 후려 찼다. 발에 차여 넘어졌던 사내는 얼른 일어나서 다시 호미를 들고 일을 시작했다.
적막감이 흘렀다. 모두 땀은 흘러 온몸을 적셨지만 물 한 모금 달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였다. 일을 하던 한 사내가 일어섰다. 어깨가 제법 벌어진 덩치가 큰 사내였다. 어떤 경로에서 여기에 들어온지는 몰라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사내였으며 한눈에 봐도 한때 힘깨나 쓴 사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니들 와 사람을 치는데?......”
강한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이 그를 더욱 거칠어 보이게 했다. 그는 감독관 도연의 멱살을 잡아 치켜들었다. 힘깨나 쓴다는 도연도 잡힌 멱살로 숨이 막혔다. 운동이라면 도연도 남에게 빠지지 않는 성격이었다. 도연은 멱살을 잡은 사내의 주먹을 감아쥐면서 재빠르게 몸을 틀어 오른쪽 겨드랑이에 그의 팔을 끼고 어깨에 힘을 주며 아래로 내리꽂았다. 그러나 틀어져 꺾어야 할 그의 팔은 멱을 잡은 그대로였고 오히려 도연은 그의 손아귀에 더욱 눌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쾍쾍거리며 숨을 몰아쉬면서 버둥대고 있었다.
“이...... 이...... 손 놓지...... 못해?...... 쾍, 쾍.”
덩치도 덩치지만 사내의 힘을 도연이 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당할 재간이 없었다. 밭둑에서 이를 바라보던 감독관 둘이 곤봉을 빼 들고 황급히 달려왔다. 기주라는 감독관이 급히 오느라 식식거리며 맨 먼저 달려왔다. 이때 살려 달라고 기주의 눈동자를 쳐다보던 도연은 순간 섬찟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서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가!......”
기주는 오자마자 멱살을 잡고 있던 사내의 정수리를 곤봉으로 있는 힘을 다해 내려쳤다.
“퍽!”
곤봉이 정수리에 부딪치는 소리가 뼈가 움푹 파여 들어가는 소리라고 도연은 생각했다. 도연도 숱한 사람을 두드려 패봤지만 오늘처럼 유달리 그 소리에 소름이 끼친 적은 없었다.
덩치 큰 사내는 맥없이 쓰러졌다. 쓰러진 사내를 향해 기주는 다시 한번 왼쪽 면상을 향해 곤봉을 내려쳤다. 몇 차례 버둥거리던 사내는 조금 뒤에 사지를 쭉 뻗은 채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쓰러진 사내의 두 팔을 잡아끌고 나무 그늘 아래로 향했다.
“숨통이 끊어졌는가 봐!”
“까짓 놈, 어차피 돼져서 나갈 놈 아닌가!”
“그래, 알 게 뭐야, 혹 가족들이 찾으면 아파서 죽었다고 하면 그만이지! 오히려 지들이 못 죽여서 안달인데 뭘!”
이튿날 아침부터 덩치 큰 이 사내는 요양원 안에서 영영 보이지 않았다.
지난겨울에 들어온 환자 중에서 꽤 반반하게 생긴 젊은 여자가 있었다. 얼굴만 반반하게 생긴 게 아니라 몸매도 제법 잘 빠져서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누구든 한번 집적거려 보고 싶은 그런 여자였다. 주지나 요양원의 책임자인 일도는 그녀의 신상에 대해 알고 있겠지만 여기 있는 감독관들은 환자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아무도 그들의 신상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아마 누군가 여기에 보내놓고 매월 돈만 보내는 모양이었다. 그녀를 면회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바로 재수의 전처의 딸이며 지금의 금순의 딸인 미주였다.
금순이가 용천사의 요양원에 미주를 데려왔을 때는 이미 요양원을 새로 지었을 때였고 내부도 깨끗하게 단장한 후였다.
용천은 요양원 건물에 경비원을 두고 사람들의 출입을 일체 제한했다.
사실 대다수 보호자들은 낫지도 않고 평생을 골치 섞이는 이들 환자에게 출입 제한이란 용천이 만든 규칙이 속으로는 너무 반가워 환호의 박수를 보낼 정도였다. 어차피 낫지도 못하는 고질병인데 아예 요양원에 돈 몇 푼을 주고 책임을 떠넘기고 이생에서 인연을 끊어 버리는 편이 그들에겐 편했기 때문이었다. 병을 고치기 위해 돈을 들여 요양원에 보냈다는 명분을 위안 삼아서.......
금순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편이 죽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전처의 딸이 무척이나 거치적거렸는데 또 이런 행운이 용천으로 인해 자기 앞에 펼쳐진 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아니 용천이란 사람이 자기와 하늘이 맺어 준 천생의 배필인 것 같았다. 미주를 요양원에 데려오자 용천은 금순의 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미주를 받아 처리했다. 그는 혜천을 시켜 미주가 수용할 방을 지시했다. 감독관들이 잘 보이는 방에 미주를 수용하라 지시한 것은 돈 많은 금순이가 미주를 독방이나 다름없는 이곳으로 데려온 사실 하나만으로 그녀의 심정을 꽤 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천은 미주를 보자 인물이 아까운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뿐 그는 곧 사무적인 태도로 일변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온 그녀를 일도는 도연을 불러 요양원 감독관실 바로 옆 101호실로 데려가게 했다. 101호실은 감독관들이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일거수일투족을 다 볼 수가 있는 방이었다.
그 후 감독관들은 수시로 각 호실을 돌면서 다른 방을 다 돌고 나면 정신병자이긴 해도 미주가 있는 곳으로 눈길이 멈췄다. 가냘프고 아름다운 미주는 다른 환자와는 달리 다소곳하고 조용했다. 말이 정신병자지 보기에는 얌전하고 어여쁜 정상인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도연이도 다른 감독관들과 마찬가지였다. 비록 다른 감독관을 총괄하는 직책이었지만 한때 형제자매들을 충동질해서 자기 형인 김 처사 땅을 뺏으려고 고소까지 했던 인물이었다. 필요에 따라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인간이었다. 매사를 손바닥 뒤집듯이 하는 것은 예사요, 잔인하고 파렴치까지 한 인물이었다.
그런 무식하고 잔인한 도연을 용천이 모르고 이곳 책임자로 쓸 턱이 없었다. 그를 여기에 데려다 쓴 이유는 김 처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용천 자신을 위해서였다.
도연은 이곳이 자기의 적성에 꼭 맞다고 생각했다. 우선 사람을 자기 멋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무식한 도연이 여기 말고 어디에 가서 이런 대접을 받을 수가 있었겠는가. 사람을 때려도 누가 말할 사람이 없어서 좋았고 비록 미친 사람이라 하지만 도연의 손가락 하나로 그들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여기에 들어오기 전에 도연은 개를 무척 좋아했다. 족보가 있고 순종인 진돗개는 아니지만 그래도 진돗개의 피가 제법 많이 섞인 개였다. 훈련을 시키지 않았는데도 도연이가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고 말을 참 잘 들었다.
무식하고 잔인한 도연은 자기 말을 잘 따르는 누렁이를 좋아했고 누렁이도 도연을 잘 따랐다. 아비에게 물려받은 유산은 다 털어 먹고 지어미의 재산조차도 다른 남매들과 협잡해서 모두 떨어먹은 자식 아닌가.
그래서 연립주택의 반지하에 세를 사는 도연이는 그것도 새끼가 아닌 다 큰 개를 좁은 현관에서 키운다는 게여간 힘겨운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그의 아내는 개를 무척 싫어했다. 그녀는 개가 옆에만 와도 개 비린내 때문에 코를 막고 얼굴을 찡그리는데 개가 마루에까지 올라와 진을 치는 데는 미칠 지경이었다. 처음 몇 번은 개가 앉아 있던 자리를 쓸고 닦았으나 그 앞을 지나치면 코에 밴 비린 냄새가 항시 나는듯해서 속으로 남편 도연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날도 역시 개가 마루에 올라왔다가 간 자리를 쓸고 닦으면서 화가 나서 코를 불고 있는데 그날따라 집에 있던 도연이가 아내더러
“그만해라, 그만하면 됐다.”
하고 점잖게 아내를 나무랐다. 아내는 이참에 아예 뿌리를 뽑고 싶었다. 그래서 보기 싫은 개를 쫓아내든지 남에게 주든지 양단간 결판을 내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녀는 도연의 속마음을 긁기 시작했다.
“아니, 개가 그렇게도 좋으면 개 하고 살지 결혼은 왜 했담.”
그 말에 말주변이 없는 도연은 대꾸 한마디 없이 얼굴만 시퍼렇게 해 가지고 아내를 잡아먹을 듯 쳐다보고 있었다. 툭하면 시비를 걸었던 아내에게 항상 있었던 도연의 모습이었다. 도연의 모습에 콧방귀를 뀌면서 그의 아내는 겁도 없이 계속 바가지를 긁어 됐다.
“마당이라도 있는 집이면 그래도 몰라, 키울 능력이 없으면 키우지를 말든지, 개새끼를 지집 안방에다 키우는 사람은 나서 생전 첨보네, 아주 같이 살쟎고?”
“참말로 그만두지 못해?”
참다못한 도연은 벌떡 일어나서 아내의 따귀를 한 대 올려붙일 량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개 때문에 따귀를 때리려고 손을 올리는 것을 본 그녀는 남편의 소행에 화가 치밀었다.
“왜? 쳐보시지?”
청소를 하다 말고 남편에게 대들자 도연은 오히려 이참에 아내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하고 내친김에 따귀를 한 대 올려붙였다.
처음에는 계획적으로 남편을 약을 올려 개를 쫒으려고 생각했던 그녀는 따귀를 한 대 맞자 계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정말 분이 머리끝까지 올랐다. 분을 참지 못한 그녀는 남편에게 악을 쓰면서 대들었다.
“이 자식이 개새끼 때문에 지아내를 쳐? 어디 한 번 더 쳐봐라, 어디 더 쳐봐라, 이놈아.”
아내가 막무가내로 분기를 도연에게 퍼붓자 작은 싸움이 큰 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그는 아내를 개 패듯이 패기 시작했다. 그러나 퍼붓는 매에도 만만찮은 아내였다. 그의 아내는 도연의 허리끈을 붙잡고 늘어졌다.
“이놈아, 날 죽여라.”
하고 고함을 지르며 동네가 떠나가라고 악을 쓰기 시작했다. 연립 아래윗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서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사람조차도 그 집안싸움이라 말리려고 내려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질이 불같은 도연은 자기 분을 이기지 못했다. 열이 머리끝까지 확확 달아올라 눈앞이 캄캄해 오고 속을 주체하지 못해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 년이, 이 죽일 년이.......”
아내를 냅다 내동댕이쳤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집 밖으로 쫒아나온 도연은 분에 성질을 못 이겨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마침 그때 그의 눈에 삽자루가 띄었다. 그는 삽자루를 움켜잡고 다시 집안으로 쫓아 들어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누렁이가 쫄래쫄래 도연을 따라왔다. 도연이 아내의 등짝을 향해 막 삽자루를 쳐들려 할 때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며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 이 눔 잘 왔다!”
도연은 아내를 치려던 가래로 누렁이의 목을 향해 힘껏 내려쳤다.
“이 눔 때문이란 말이지, 이 눔 때문에.......”
세운 가래로 몇 번이고 사정없이 누렁이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깨갱!”
누렁이의 머리통이 가래에 맞아 가래가 튕겨 올라왔다. 누렁이가 쓰러졌다. 그리고 네 다리를 버둥거리며 한참을 부들부들 떨다가 축 늘어졌다. 도연은 분이 풀릴 때까지 늘어져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는 누렁이를 계속 내려치고 있었다.
“저 가래로 나를 치려고 했어!”
도연의 아내는 자신을 치려고 했던 가래로 누렁이를 치는 모습이 너무나 끔찍하고 무서워 떨면서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만에 삽자루가 부러지고서야 겨우 매질이 멈추었다.
그 후 그의 아내는 도연에게 만정이 떨어져서 친정으로 가고 말았다. 물론 수차례 아내를 데려오려고 처가를 찾아갔으나 그때 놀란 아내는 끝내 돌아오지 않고 말았다.
도연은 아내도 가고 없는 터라 요양원에서 기거하다시피 생활하고 있었다. 그럴 즈음에 미주가 요양원에 들어온 것이었다. 한 이불을 덮고 함께 살을 섞고 잠을 자던 아내가 여러 날 가고 없고 보니 밤만 되면 마음이 허전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허한 복도를 보고 있자니 자연 시선은 바로 앞에 미주에게 향했다. 가냘픈 몸매와 아름다운 미모, 손만 내밀면 바로 닿을 그곳, 하루 이틀....... 그는 환상에 빠져들었다.
그날은 굿은 비가 오는 밤이었다. 밖에서 비가 내리는 소리가 주적주적 하고 들려 올 정도로 비는 내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복도 중간 방에서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는 건장한 중년의 사내였다. 창살을 쥐고 흔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야 이 나쁜 새끼들아, 날 왜 여기 가둬났어, 이 새끼들아!”
환자 한 명이 갑자기 잠겨 있는 출입문을 흔들며 복도가 떠나가도록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머리를 창살에 박다가 자물통을 흔들다가 그는 쇠창살을 잡아 뜯으려고 난리를 쳤다.
감독관이 이를 제지하려고 급히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한 명은 무전기를 들고 밖에 있는 다른 감독관을 부르고 있었다. 다른 두 사람이 쫓아 들어오고 앞선 감독관이 열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 새끼, 니는 뭐야, 뭐냐 말이야!”
개 거품을 물고 대드는 사내를 네 명의 감독관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감독관 하나가 곤봉을 빼들고 다짜고짜로 사내의 어깨 죽지를 몇 차례 내려쳤다.
“퍽, 퍽.”
힘껏 내려친 매에도 그는 꿈적도 하지 않고 대들었다. 그러자 곤봉을 든 감독관이 열이 올랐다. 이제 그는 사정없이 곤봉으로 사내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한참을 저항하던 사내는 머리를 한 대 맞고서야 감독관을 잡았던 팔을 스르르 놓으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얼굴에는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핏물이 흘러내리고 몸이 꿈틀거리는 것을 봐서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망할 자식!.......”
감독관은 곤봉을 허리에 다시 차면서 한마디 내뱉었다. 감독관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내를 보고 누구 하나 눈 하나 깜빡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평상시와 같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쓰러진 환자를 눕히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감독관 하나가 서랍에서 보얀 약봉지와 머리에 바를 머큐로크롬인 듯한 병을 들고 들어왔다. 피가 흐르는 머리는 큰 산봉우리 같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는 대충 머리카락을 위로 걷어 올리고 귀찮은 듯이 약솜으로 약을 찍어 문질렀다. 그런 후에 한 손으로 입을 벌리고 쓰러진 사내에게 봉지약을 목에 털어 넣은 뒤에 목구멍에다 물을 부었다.
그는 얼마 전에 이 요양원에 들어온 준혁이란 중년 사내였다.
준혁은 본래 공직에서 근무했다. 그는 평소에 펜을 들고 사무를 보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했다. 그저 단순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다루거나 감독이나 했지 복잡한 경리 장부에 숫자를 맞춘다거나 계획서를 짜서 보고하는 따위는 근처에 가기조차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이런 업무는 눈치를 봐서 동료에게 떠맡기거나 아니면 서랍 속에다 묵혀 두어서 상사에게 혼이 난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의 스트레스는 업무 때문에 장난이 아니었다. 그것이 운동을 좋아하는 계기였고 술을 좋아하는 바탕이었다.
또 술을 먹으면 스트레스를 어디엔가 풀어야 했고 그 대상은 애꿎은 가족뿐이었다. 그는 술을 먹으면 꼭 인사불성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왔다. 사실 집에 들어간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들어갔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니 술이 취해 집에 들어가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당연히 알 수가 없었다. 소위 술꾼들이 흔히 말하는 필름이 끊어졌다는 이야기인데 끊어진 그 순간에 그의 가족들의 고초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 누가 있건 말건 화장실이라고 그것을 꺼내 오줌을 누지 않나, 딸을 보고 술집 아가씨에게 팁을 준다며 앞가슴에 돈을 꺼내 넣지를 않나, 자기 아내더러 마담이라고 양주 더 안 가져온다고 신경질을 내지 않나 온갖 추태란 추태는 다 보였다. 그런 일이 이제는 집안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두들겨 맞는 사람은 가장 약하고 만만한 그의 아내였다. 술이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어서도 약한 아내는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들이 퇴근하고 들어 왔을 때는 아내가 준혁에게 맞아서 문을 닫아걸고 안방에 숨어 있었고 얼마 뒤에는 경찰관이 집에 찾아왔다. 준혁의 아내가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술이 취해도 그는 경찰관은 무서워했다. 결국은 집안 식구들이 어머니를 달래고 경찰관이 아버지를 나무라서 용서하는 선에서 사건은 끝이 났다. 이 일이 있고 준혁은 며칠은 술도 먹지 않고 집안에 들어와도 조용하다 싶었는데 또다시 술을 먹기 시작했고 아내더러 경찰에 신고한 사실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집안 살림은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자식들이 출근하고 없을 때에 술을 먹고 들어오면 준혁의 아내는 그의 매질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가족들은 경찰에 신고와 화해를 수없이 반복했다.
결국은 준혁의 주벽 때문에 가족들이 모였다. 아버지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회의였다. 그들은 이대로 보낼 수는 도저히 없다는 것으로 낙인을 찍었다. 직계가족 두 사람의 동의가 있으면 정신병원으로 보낼 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장남이 내린 결론이었다.
어느 날 건장한 청년 네 사람이 봉고차에 준혁을 싣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그 일이 벌써 2년 전 일이었다. 정신병동에 수용된 준혁은 2년 동안 입이 닳도록 자신은 정신병자가 아니라고 강변을 했지만 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도소보다 더 철저한 정신병동을 빠져나갈 방법은 도저히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작고 윤기 흐르는 흰 알약 몇 알을 받아먹는 동안 그는 자신이 정말 정신병자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누구의 지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봉고차에 실려서 이곳 용천사 요양원에 온 것은 며칠 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