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추

8. 빈 (棺)으로 장례식(葬禮式)

by 김수현


밤이 깊었는데 요양원에서 한바탕 난투극을 벌이며 일을 치르고 있는 동안 이를 지켜보던 환자들이 모두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도연과 같은 조의 감독관이 방금 난리를 친 사내로 인해 총 무승 일도에게 보고하려고 잠시 아래 사찰로 내려가고 없었다. 도연은 난리를 친 준혁의 호실을 감독관이 잘 보이는 호실로 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새 환자가 들어오면 가끔 있는 일이었다.

이제 혼자 남은 도현은 할 일 없이 길게 하품을 하면서 무심코 긴 복도 사이로 시선을 옮겼다. 한참 부산을 떨었던 복도는 몇 개의 형광등 불빛만 비칠 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하기만 했다.

“그 사람들, 자기 게 아니라고...... 아낄 줄을 몰라, 쯔, 쯔.”

주인 행세라도 하듯 다른 감독관을 나무라며 도연은 스위치를 찾았다. 그리고 중간에 있는 형광등 하나만 남겨 놓고 스위치를 모두 꺼버렸다.

그는 이제 적막이 감도는 조용한 방을 하나씩 하나씩 눈으로 점검하면서 점차 미주가 있는 방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불이 꺼져 어두컴컴한 방안이었지만 예쁜 그녀의 얼굴이 그의 뇌리에 먼저 떠올랐다. 사내의 소란으로 잠시 잊어버렸던 미주의 모습이 다시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보려 했으나 그 긴 통로에 형광등을 하나만 켰기 때문에 불빛 하나로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순간 도연은 미주를 품어 보고 푼 생각이 들었다. 그는 조금 전에 복도 등을 아주 잘 껐다고 생각하면서 가만히 일어섰다. 그리고 앞에 걸린 열쇠 꾸러미를 집어 들었다. 맨 앞에 있는 그녀의 방문 열쇠를 골라 들고는 출입문을 열었다.

어두컴컴한 방이었지만 그의 뇌리에 자리 잡혔던 그녀의 영상과 함께 작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쪽 다리가 이불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녀의 속옷과 함께 희미하게나마 보얀 속살이 드러나 보였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내와 잠자리를 함께한 지가 꽤 오래되었던 터라 젊은 도연은 그녀의 허벅지를 본 순간 온몸이 욕정으로 끓어올랐다. 그는 조금 더 가까이서 그 모습을 보고 싶은 욕망도 생겼다. 건너편 방을 얼른 바라봤지만 역시 잠이 들었는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그는 101호 방문의 자물쇠를 연후 쇠사슬 고리를 소리 나지 않게 풀었다. 그리고 그녀 가까이 다가갔다. 그가 바로 앞에서 그녀를 바라보기는 처음이었다. 작고 가름한 얼굴, 오뚝 솟은 콧날, 매일 보아왔던 의식 속의 그녀가 어린 아기 마냥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그때 그녀의 눈동자가 그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짝거리면서 그의 눈동자 안으로 들어왔다. 무의식적으로 도연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별로 놀란 기색도 없이 그녀는 눈을 뜨고 따라 나오고 있었다. 잠이 든 환자들 외에 아무도 없었지만 도연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역시 주변은 무거울 정도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쉿!”

도연은 출입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창고로 그녀를 끌고 갔다. 그리고는 제법 깨끗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자리를 잡고 미주를 눕혔다. 밝은 형광등 불빛이 그녀의 흰 얼굴빛을 더욱 창백하게 비췄다. 야비한 그는 바지를 벗을 틈도 없이 반쯤 내리고 형광등 불빛을 그대로 둔 채 미주에게 달려들었다.

오랜만에 대하는 아름다운 여체의 모습은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헐떡거리면서 그녀의 아랫도리를 벗기기 시작했다. 아무런 저항 없이 그녀는 눈을 멍하니 뜨고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 위에는 합판 조각이 걸려서 떨어질 듯 붙어 있는 모습이 그녀의 눈앞에 맴돌았다. 뜨거운 입김이 여물을 먹는 황소같이 그녀의 코앞에 내 품어졌다. 도연의 혓바닥이 살을 뚫듯 그녀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뽑아내듯 강력하게 그녀의 혓바닥이 도연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자가 잘나고 못난 것에는 이미 도연의 머릿속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미쳤고 미치지 않았고 는 그의 성적 경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오직 여체 하나만으로도 그의 정신세계를 완전하게 점령해 버렸다.

도연의 처음 강한 힘과는 달리 그녀의 늪 속에 빠지자마자 모든 것을 뱉어내고 말았다. 미주는 그때까지도 천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온 정력을 허무하게 쏟아낸 도연도 미주 옆에 누워서 형광등 불빛을 한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

그는 멋쩍게 혼자 일어나 미주를 끌고 감독관실을 거쳐 수용실로 막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이때 볼일을 보러 갔던 동료가 한 손에 결재판을 들고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도연이 창백한 얼굴을 하고 그녀를 데리고 수용실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서

“아니 환자는 왜?”

하고 의아한 듯이 말을 걸었다. 도연은 들킨 것이 겸연쩍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감독관은 바로 도연의 행동을 눈치채고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면서

“혼자 재미 보기요?”

하고는 도연으로부터 그녀의 손을 낚아채서 잡아끌었다. 역시 아무런 저항 없이 그녀는 다시 동료를 따라 창고로 들어갔다.

그 뒤에 소문은 쉬쉬하며 빠르게 번져갔다. 며칠 뒤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또 다른 동료들도 그녀를 가만히 두질 않았다. 한번 맛을 본 사내들은 번갈아 가면서 그녀를 성적인 노리갯감으로 삼았다.

문제는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감독관 모두가 번갈아 가면서 봄이 다 가고 여름이 오도록 그녀를 농락했으니 배속에 든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배가 제법 불러왔다. 먼저 이 사실을 안 도연은 한 무리인 감독관 모두를 불러 모았다.

“어떡하우? 배가 불러오는데......”

“......”

모두들 머리를 긁적거리며 아무 대답도 없었다.

“말 좀 해 보세요.”

하고 도연이가 다그쳤다. 그때 곤봉을 자주 휘두르던 기주라는 동료가

“없애 버립시다!”

하고 강한 어조로 한 마디 던졌다. 모두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한마음으로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말이요?”

하고 도연이가 말했다.

“아, 있잖습니까, 그 여자, 없애 버리고 주지 스님에겐 자고 일어나니 죽었다고 하면 되잖습니까. 뭐, 미친 사람 죽는 일, 우리가 한두 번 당하는 일입니까?”

“그래도......”

도연은 막상 미주를 죽이려고 생각하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기주는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입니까? 애새끼 나오면 그땐 어쩌려고 그래도입니까? 화근은 미리 싹이 올라올 때 잘라서 없애야 합니다.”

하긴 그랬다. 애를 낳으면 누구의 아이인가도 문제였고 누구 아이인지 안다고 치면 지금 살고 있는 자신들의 아내에게 어떻게 대하며 아내가 없다한들 미친 여자를 데리고 산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재미를 볼 때와 지금의 상항은 아주 딴판이었다.

우선은 모두가 함께한 일이 탄로 날 것이 제일 문제였다. 그대로 두면 일파만파로 일이 크게 번져 나갈 것은 불을 보듯이 빤한 노릇이었다.

“그럼 누가 일을 맡겠습니까? “

“나 참, 누군 누구입니까, 결자해지란 말도 모르세요? 당연히 처음 일을 벌였던 사람이 해결해야지요!”

말발이 센 기주가 한마디 강하게 던지자 모두들 귀찮은 일을 자기가 맡지 않게 되었다고 내심 안도의 숨들을 쉬었다. 그러나 도연은 깜짝 놀라 반문했다.

“내 가요?”

“그러면 그대로 놔둬 볼까요? 누가 다치나?”

도연이 생각해도 미주가 아기를 낳으면 자기의 입장이 제일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인 김 처사도 김 처사이지만 자기를 믿고 이곳 책임자로 맡긴 주지 용천을 대하기가 큰 걱정이었다. 분명 주지가 자기를 그대로 두질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이었다. 도연은 잠들어 있는 그녀의 방문 쇠창살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다. 그녀는 어린 아기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도연이 그녀 가까이 다가가도 꼼짝 않고 잠을 자고 있었다. 도연은 그녀의 얼굴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새삼 입이며 콧날이며 잠자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곡선을 이룬 가슴이 평온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 옆에 가만히 누었다. 마지막 한 번만이라도 꼭 껴안아 주고 싶었다. 무식하고 잔인한 도연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망설임이었다.

“안돼!”

그는 그래도 조그마한 양심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그의 마음을 재촉했다. 그는 그녀의 목 가까이로 손을 가져갔다. 막상 목에 손이 가고 나니 그다음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애라!”

그리고 온 힘을 손끝으로 모았다. 두꺼비 같은 그의 손바닥이 연약한 그녀의 턱밑으로 스펀지 마냥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그녀의 손톱이 그의 양팔을 꽉 움켜잡았다. 그의 살점이 그녀의 손톱으로 인하여 파여 들어갔고 붉은 핏빛이 흘러내렸지만 금방 그녀의 손은 힘없이 풀리면서 방바닥에 축 늘어졌다. 그때 파닥거리는 노란 나비를 그는 보았다. 날갯짓을 하면서 살려고 버둥거리는 힘없고 가련한 노란 나비를 보았다.

잠깐이었지만 도연은 꽤 긴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다. 도연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기 손으로 처음 사람을 죽여 본 것이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죽이고 보니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흐트러진 그녀의 이불을 다시 가지런히 하고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조금 전과 다름없었다. 오히려 더 편안한 듯 보였다.

도연은 조용히 밖으로 나와 쇠창살 문을 처음처럼 닫아걸었다.

밖에서는 대기하고 있던 같은 동료 감독관이 미소를 지으며 나오는 도연을 바라보았다. 오, 케이 표시로 엄지와 중지손가락을 붙여 동그랗게 만들어 앞으로 내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였다. 출입문이 열리면서 낯 모르는 사람 둘이 감독관실로 들어왔다. 이 밤중에 그것도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도 없는 이곳을 들어오다니 도연은 깜짝 놀랐다. 바로 뒤따라 총무승인 일도가 쫓아 들어왔다.

“어쩐 일이요? 이 밤중에.......”

승복 저고리 고름을 매만지며 일도는 아는 사람인 듯이 물었다. 일도는 잠이 들었다가 깬 모양이었다. 형사 두 명이었다. 그중 한 명은 이 사찰에서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보내고 항의 한번 제대로 못하고 떠났던 최 광호였다.

방법은 어떠하든 간에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파헤칠 좋은 기회를 맞이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어머니의 죽음을 파헤칠 기회는 용천이 깔아 놓은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얼마 전 금순의 교통사고에서 운전기사 정호의 사인을 캐려고 수사에 착수했다가 상사의 호된 꾸지람으로 무산되고 만 것이었다. 잘못 건드렸다간 다른 곳으로 좌천될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광호가 여기에 온 것은 용천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이었다. 광호는 아침 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수십 여분을 보내는 그로서는 마땅하게 펴 볼 것은 신문밖에 없었다. 그는 신문을 아주 세심하게 읽어 내려가는 습관이 있었다. 그의 습관은 신문 하단의 광고까지도 놓치지 않고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신문 내용 전부를 끌고 가려는 듯한 대문짝만 한 글씨가 신문 첫 장 맨 위에 윤활유 냄새를 풍기고 현수막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는 신문에서 풍기는 윤활유 냄새가 별로 싫지가 않았다. 어쩌면 아침 일찍 처음 펴드는 신문지의 이 냄새 때문에 아주 싱그러운 느낌마저 드는지도 몰랐다. 그는 마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혹 활자에서 인쇄된 윤활유가 손에 묻지 않았나 싶어 손을 펴 보기도 했다. 그리고는 안심한 듯 맨 뒷장 사회면을 펼쳤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신문을 사회면에서 거꾸로 올라가면서 읽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맨 먼저 네 컷짜리 만화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만화가 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그의 눈이 습관적으로 만화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피식 웃었다. 매일 보는 만화지만 네 컷으로 된 만화는 족집게로 찍어내듯이 정확하고 명확하게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매일매일 그리는 화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엿볼 수가 있었다. 그의 시선은 이제 좌측 사회면으로 향했다. 사회면은 언제나처럼 사건 사고가 판을 치고 있는 면이기도 했다. 그는 신문 사회면을 바라보면 세상 사람들이 꿈틀거리며 사는 진정한 맛을 느끼곤 했다. 한 줄 한 줄 훑어 내려가던 시선이 이제 맨 아래 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찰에서 무면허 의료행위」

그냥 훑어보면 지나쳐 버릴 만큼 작은 글씨로 쓴 흔하고 볼일 없는 기사처럼 보였다. 그러나 광호는 사찰이란 글씨만 나와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에 정치면의 큰 활자로 된 기사의 첫 머리글보다 더욱 크게 그 기사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얼른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00 경찰서는 사찰에서 불법 의료행위를 한 용천사 사찰 주지인 김 성욱 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김 성욱(00. 남)은 수년 전부터 최근까지 소문을 듣고 찾아온 박모(53. 여)씨 등 정신과 치료를 요하는 환자에게 수면제 등 의약품을 복용시킨 협의를 받고 있다.”

라는 기사가 하단 오른쪽 맨 아래 사회면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읽어 봤다. 분명 용천사였다.

그래서 그는 사건을 맡고 있는 동료 박 형사를 설득해서 함께 용천사의 요양원에 들어왔던 것이었다.

“위유!”

도연은 속으로 일을 끝마치고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침착하게 문을 걸고 순찰을 돌았다는 듯이 밖으로 나왔다. 박 형사는 사건이 일어나면 직접 수사를 담당했기 때문에 일도는 오래전부터 안면을 트고 지내는 형사였다.

“박 형사께서 밤중에 무슨 일로......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않고......”

하면서 옆에 있는 형사 광호의 눈치를 힐끗 보면서 도연이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도연은 형사라는 말에 사지가 얼어붙는 듯했다. 무식하고 앞뒤 없는 도연도 형사라면 사족을 못 썼다. 방금 자기가 사람을 죽인 것을 형사가 어찌 알고 이리로 쳐들어왔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마음이 갈팡질팡하니 총 무승 일도가 옆구리를 꼬집는 뜻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오히려 일도가 보낸 신호가 그를 더욱 안절부절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때 박 형사가 도연의 어깨를 툭 건들었다.

“어? 예?”

그는 엉겁결에 놀란 얼굴을 하고 돌아보자 그는 피식 웃으며

“놀라긴...... 어디 긁혔습니까? 팔에 피가 납니다.”

“아, 아닙니다.”

그는 얼른 피가 흐르는 자리를 손으로 감싸지자 옆에 있던 광호가

“여기 수용인원 명단 좀 주시오.”

“명단을 요? 아...... 예......”

일도가 얼른 서랍을 열지 못하게 가로막으려고 했으나 도연이 엉겁결에 먼저 서랍을 열었다.

“아, 장부가 여기.......”

일도가 변명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도연은 이미 장부를 꺼내고 있었다. 그때 광호는 도연의 다른 팔에도 피가 흐르는 것을 발견하고

“아니, 웬 상처가 양쪽 팔에 다?”

“저, 저기서 긁혀서.......”

어색한 변명으로 도연은 더듬거렸지만 그들은 긁힌 일에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수용명단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요양원에는 숱한 일들이 있었지만 형사들이 닥친 일이라곤 이 사찰이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책상은 엉망이었다. 엉겁결에 들여 닥친 일이라 숨기고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일도가 옆구리를 찌른 이유를 도연은 이제야 깨달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치우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어 광호에게 비밀 장부조차도 고스란히 넘겨주고 말았다.

두 형사는 방 하나하나를 확인하면서 인원을 체크했다. 다행히 모두가 잠든 시간이라 미주의 죽음에 대해서는 들키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가 있었다. 난동을 부렸던 준혁도 수면제를 먹이고 잠을 재웠기 때문에 별다른 일 없이 넘어갔다. 그날은 장부만 빼앗겼을 뿐 별다른 일 없이 넘어갔다. 그러나 도연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하필이면 이때 죽일게 뭐람.”

이튿날 아침에 도연은 총 무승 일도에게 미주가 밤사이 죽은 것을 보고했다.

“미주가? 왜?......”

일도는 사람이 죽었다는데도 무덤덤하게 도연에게 묻는다.

“글쎄요, 자고 일어나니깐....... 아마 심장마비이겠죠.”

도연은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시침을 떼고 대답하자

“이때 죽었으니...... 괜히 문제가 되면 곤란하지.”

“뭐 죽는 사람이 때를 가려 죽나요?”

“아, 골치 아파.”

“가족들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데 그냥 가족들에게 통보하고 사망진단서를 해 달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 사람아! 미주는 우리 요양원 건립을 위해 큰돈을 시주하신 보살님의 따님이라네, 허허 참......”

이 말에 도연은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런 분의 따님인데 왜 말씀 한마디도 없으셨습니까?”

자기들은 미주에게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그런 사람의 따님이라면 분명 감독관들에게 무슨 특별 지시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지시도 없었으니 이건 건드려도 크게 잘못 건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 수면제 사용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 형사들이 가끔 오는데...... 물론 형식으로 조사를 하겠지만 그래도 매사를 조심해야 하네!”

총 무승 일도도 미주가 죽은데 대해 별 이상한 눈치를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도연을 나무라는 듯이 주의 말을 한 뒤

"여하튼 잘 알았네, 시체를 거두어서 창고에 잘 놓아두게. “

하고는 도연을 돌려보냈다. 일도는 어제저녁에 일어난 일을 주지인 용천에게 보고했다. 점잖게 보고를 받던 용천은 미주의 사망 보고에는 일언반구도 없었고 수용인원이 적혀 있는 장부를 압수당했다는 소식에 대해서만 일도에게 상세하게 물은 후 경찰서로 수화기를 돌려 수사과장을 찾았다. 그는 이참에 용천사 일로 경찰 나부랭이들이 얼씬도 못하게 못 박을 참이었다.

“어이 서장, 새끼들 그만 보내, 내 입 한 마디면 잘 알잖아!”

하고 기분 무척 나쁜 투로 말하자

“아니야, 내가 보낸 게 아니야, 걱정 말아, 내 교육 단단히 시킬게!”

“이 사람아, 자네가 신경을 잘 써야지, 어떻게......”

“아, 알았어, 알았어.”

용천이 전화로 들어봐도 수사과장이 벌벌 기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사실 경찰서에서는 용천사의 약물 사건을 덮으려고 시간만 끌고 있었다. 사건이 환자 가족으로부터 중요 일간지에 투서를 해서 부득이 수사를 진행하는 척하고 있었지만 별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라 시간을 질질 끌며 사람들로부터 잊히길 기다리고 있는 사건이었다. 경찰들도 정신병자들의 통제 수단으로 어느 사설수용소이든 간에 수면제 복용이 오래전부터 쉬쉬하며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이 지역에서 용천의 지역사회 덕망을 보거나 인맥 관계를 봐서라도 더 이상 경찰서에서 이 일을 확대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피라미 형사가 불쑥 용천사를 찾아가 일을 벌였다는 수사과장의 성화 같은 질책을 받자 반장은 불이 나게 광호를 불렀다.

반장은 광호에게 다짜고짜로 삿대질을 하면서 노발대발했다.

“어이, 당신, 왜 쓸 때 없이 나서고 지랄이야, 당신 말이야, 그렇게도 할 일이 없어? 배때지가 부른 거야? 한 번 파출소로 좌천돼 볼래?”

“아니, 반장님, 왜 그러십니까?”

“야, 왜는 뭐가 왜야, 긁어 부스럼 만들려고 작정한 거야? 당신 그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어? 참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당신 어제 압수한 장부 이리 가져와!”

광호는 그제야 반장이 화를 낸 이유를 알았다. 압수한 장부를 들고 오자 금방 누그러진 말투로

“당신, 당신 일이나 잘해,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나서지 말고......”

광호는 허탈했다. 비록 자신에게 배정받은 일은 아니지만 반장이란 사람이 저렇게 화를 내면서 수사에 간섭하는 것은 처음 당해 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반장님! 사건을 처리하는데 니일내일이 어데 있습니까?”

“야, 그만두라면 그만둬!”

“보소, 아무리 부하 직원이지만 말이 너무 심하지 않소?”

“뭐야? 너 지금 항명하는 거야?”

“아, 사실이 그렇잖소.”

그때 직원들이 달려와서 광호를 끌고 나갔다. 반장은 분이 풀리지 않아 일어서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한편 수사과장에게 전화를 건 용천은 걱정 말라는 말을 들은 후 미주에 대한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선 금순에게 미주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는 시신을 거두라 하고 일도를 시켜 거래한 병원에서 의사의 사망진단서를 준비하라고 일렀다.

금순은 남편인 재수가 죽고 그녀와 같이 타고 있었던 운전수 정호가 죽자 무엇인가가 자신의 등 뒤에서 주시하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섬뜩한 느낌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그녀는 가끔 뒤를 돌아보는 습관까지 생겨난 것이다.

근래에 항시 꿈자리가 뒤숭숭하여 밤잠을 설쳤는지 오전에 금순은 깜빡 졸았던 모양이다. 남편이 꿈에 머리에 피를 흘리며 금순에게 나타나서 무엇인가 말을 하려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려 잠이 깼다.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전화가 오지 않았다면 가위에 눌려 한참을 고생할 뻔했을 것이었다. 그녀는 옆에 놓인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수화기를 들자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금순 씨 댁이죠?”

용천이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금순은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오빠, 아 아니 스님!”

“어제 미주가 죽었어요, 심장마비인가 봐요.”

그때였다.

“쨍그랑!”

어디선가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받던 수화기를 떨어뜨리고 급히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대문이 열려서 바람에 흔들거렸고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대문을 닫았던 것 같은데?......”

바깥 도로와 꽤 멀리 떨어졌는데도 작은 방 유리창 하나가 박살 나 있었다. 주위에는 창을 깨트릴 만한 물건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무서워서 도저히 집안에 있을 기분이 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용천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집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거실 탁자에 수화기 줄이 늘어뜨려 흔들거리고 있었고 수화기 속에서는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고 다급하게 부르는 용천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수화기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쫓아 들어와서 안방 문을 열었다. 옷을 갈아입고 용천을 만나러 갈 참이었다. 문을 열고 옷을 꺼내 들어 막 돌아서려는데 시커먼 그림자가 금순의 앞을 가로막았다.

“악! 당신이?......”

그 뒤로는 식모 점순이가 물을 축여 얼굴을 닦고 있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훈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엄마......”

하고 깨워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정신이 든 그녀는 점순이에게 집을 보라 이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몰아 용천사를 향했다. 금순이가 용천사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고 산마루에 한 뼘이나 걸려 있었다. 용천을 만난 금순은 운전석에서 내리자마자 남의 눈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을 글썽이며 용천의 품에 덥석 안겼다.

“보살님, 이러시면......”

당황한 용천은 얼른 금순을 부축해서 주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미주가 어제......,”

하고 용천이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빠, 오늘 죽은 그이가 우리 안방에 나타났어요!,”

“아니, 죽은 남편이 나타났다고?”

용천은 이게 무슨 소리 인가 하고 금순을 바라보자

“예,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허 참, 화장해서 49제를 지낸 지 언젠데 그런 이야기를 해요?”

“분명히 살아 있는 것을 봤어요!”

비록 시체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용천이 직접 따라가서 화장까지 하고 49제를 지낸 지 한참을 지나지 않았는가. 용천은 금순이의 마음이 허해서 헛것을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 자 좀 누워요, 마음을 가라앉히면 좀 나아질 거요, 어이 보살, 여기 찬물 한 그릇 가져와요!”

무슨 일인가 하고 문밖에서 어정거리던 이 보살이 얼른 찬물 한 그릇을 떠 왔다. 금순은 찬물 한 그릇을 다 마신 후 한숨을 크게 내 쉬었다.

“후유!”

“몸이 많이 허약해져서 헛것이 보인 모양이구려, 자, 이걸 먹구려, 중국에서 직접 가져온 귀한 약이요.”

하면서 용천은 탁상 서랍을 열고 우황청심환 고락을 꺼내 둥글고 금빛이 나는 환약 한 알을 금순에게 먹였다.

얼마 뒤 마음이 진정된 금순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그녀도 기절한 재수를 운전기사 정호가 지게에 짊어지고 같이 동행해서 그 높은 연주암에서 떨어뜨린 것을 직접 보지 않았던가. 그리고 경찰서에서도 부검 결과 분명히 재수라고 하지 않았던가. 금순이 지금 와서 생각하니 정말로 헛것을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순이가 용천사로 온 다음 날은 젊은 의사 한 명이 간호사를 대동하고 용천사를 찾아왔다. 물론 용천이 비밀리에 김 처사를 시켜 병원 원장에게 봉투를 건넨 것을 사찰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보호자가 동석해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서 인지는 몰라도 시신을 대충 눈으로 확인하고는 고개만 끄덕이고 아무 말 없이 의사 일행은 돌아갔다.

사망진단서에는 지병인 정신병으로 수용되어 오다가 잠을 자던 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작성되었다.

금순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땅을 치며 통곡했다. 상갓집에서는 남정네들 곡소리보다는 여인네들의 곡소리가 유달리 슬프고 크게 들린다. 진정 고인을 생각해서 슬피 운다기보다는 여인네들의 천성적인 구성진 울음소리가 보고 듣는 이로 하여금 슬픔을 더욱 자아내게 한다. 거기다가 닭똥 같은 눈물까지 흘리는 어여쁜 금순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미주가 금순이 배 아파 낳은 딸이라 생각했고 장내는 숙연한 분위기에 젖어들 수밖에 없었다.

“쯪, 쯔지 저렇게 이쁜 아낙이 딸은 오죽 이쁘겠나...... 안 됐구먼 쯪, 쯪, 쯔......”

사찰 식구들과 불공을 드리러 왔던 모르는 신도들 중에는 혀를 차며 측은지심으로 금순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천도 지그시 눈을 감고 한참 동안 금순의 통곡 소리를 듣고 있었다. 용천은 이만하면 됐다 싶었을 때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염주를 천천히 굴리면서 제법 엄숙한 목소리로 금순을 달랬다.

“보살님께서 슬프시겠지만 인명은 재천이라 어쩌겠소, 하늘이 하는 일을...... 그만 일어서시고...... 따님이 극락왕생하도록 천도재나 잘 지내 주시구려......”

그때서야 금순은 울음을 그치면서 일어섰다.

“집안에 그이도 없고 나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 스님께서 장례 절차를 좀 맡아 주세요.”

“그야 여부 있겠습니까, 우선 혜천 스님과 함께 먼저 떠나십시오, 나는 곧 뒤 따라갈 테니...... 여보시게 혜천, 자네가 먼저 출발하게.”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금순은 김 처사를 시켜서 미리 용천사 주변에서 인부 두 명을 구해 두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관에 넣은 시신을 영구차에 실으라고 일렀다.

일도의 구성진 염불 소리가 목탁 소리와 함께 조용한 사찰에 울려 퍼졌다.

금순과 혜천을 비롯하여 몇몇 일행이 영구차로 향했다. 마당에서 모이를 쫒고 있던 비둘기 몇 쌍이 사람들의 발길에 놀라 앞산 낙엽송 사이로 푸드덕거리며 날아갔다. 기사가 시동을 걸었다. 영구차에 탄 금순이 고개를 숙이고 아쉬운 듯한 눈길로 용천에게 인사를 하자 답례로 용천이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영구차가 사찰 입구를 빠져나갔다. 차 꼬리가 해우소를 지나 고개를 넘어가자 시동 소리만 잠시 들리다가 이제 그 흔적마저 사라져 버렸다. 죽어서 영원히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을 사람이나 살아 있어도 다시 보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을 사람들 모두와 함께 그 흔적은 일단 없어져 버렸다.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금 일어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를 지켜보던 도연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밤새 걱정했던 일이 영구차가 떠나고 무사히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수사반장에게 욕을 먹고 가져온 장부조차 빼앗기자 광호는 철벽같이 두꺼운 이 장벽을 뚫지 못한다면 용천사를 파 해칠 방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금순의 교통사고도 그랬다. 사건을 파헤쳐 보려고 광호가 병원에 갔으나 용천사와 연관된 작은 기미만 보여도 수사 반장이 수사를 못 하도록 제지하는데 부하 직원으로서 더 이상은 조사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그는 사무실에서 내놓고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자 기회를 봐서 광호 개인적으로는 암암리에 수사를 진행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선 광호는 용천이 쳐 놓은 두꺼운 장벽 같은 인맥을 어떻게든 잘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광호가 금순의 교통사고를 수사하게 된 것은 용천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지만 광호에게 걸려온 이상한 전화 때문이었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빼든 광호는 못다 한 사건정리를 하기 위해서 책상 앞으로 향했다. 그는 앉자마자 먼저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달콤한 커피 한 모금이 목구멍으로 채 넘어가기도 전에 전화벨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예, 수사과 최 광호입니다.”

“수사가아임네?... 내래 다름 아니라요......”

제법 나이가 든 강한 악센트의 이북 말을 쓰는 사내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왔다.

“여보시오? 듣고 있소이다?”

“아, 예, 듣고 있습니다.”

“오늘 양수리 조금 지나 남한강 변에서 교통사고가 나겠소이다, 그 연놈들은 물론이고 뒤에서 사주해서 배때기를 불리는 용천사 중놈을 잘 조사해 보라우요.”

“누구?......”

“뚜, 뚜, 뚜.......”

광호는 용천사라는 말에 이야기를 더 깊이 듣고 싶었지만 상대는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에 그의 말대로 정말 양수리를 지나 강변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접수했다. 연락을 받은 광호는 이상한 전화를 받은 뒤로 이상한 예감을 느꼈지만 반장은 별 의미 없이 광호에게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반장의 지시를 받고 병원에 도착한 그는 손을 대기도 전에 반장으로부터 박 형사에게 수사를 넘겼으니 들어오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반장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광호는 우선 금순이의 신원부터 조사하기 시작했다. 금순이가 안동에서 젊은 처녀 몸으로 나이 많은 변 재수와 혼인한 것이 확인되었다.

“안동? 그러면 용천도?... 어쩌면 결혼 전에 둘이 연인 관계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죽은 정호라는 사내는 금순과 어떤 관계였을까? 그가 왜 금순이와 승용차를 함께 타고 용천사로 향했을까?”

광호는 점차 이 교통사고에서 이상한 냄새가 풍긴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묵은 조사 기록에서 금순의 남편 변 재수의 실족사한 사실과 죽은 정호는 변 재수의 운전기사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젊은 미남의 운전기사? 나이 20년 차이의 돈 많은 사장과 혼인한 요염한 여자?...... 그리고 둘이 눈이 맞아 사장을 죽인다?...... 아니야, 금순의 남편은 등산 중에 실족사한 것이지...... 그러면 왜 과부가 된 지금에 와서 같이 차를 타고 여기로 왔을까? 용천사를 드나든 것을 보면 벌써 용천을 알고 있었고...... 그렇다면 용천의 옛 애인? 아니야, 용천이 금순의 옛 애인이었다고 한다면 정호와 같이 이리로 올 이유가 없지......”

광호의 생각이 풀릴 듯 말 듯하면서도 사건은 미궁 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아참, 금순의 남편 변 재수가 육이오 때 월남한 사람이라고 했지?...... 교통사고를 미리 알려 준 사람도 이북 말을 썼쟎어, 그러면 알려 준 사람이 금순의 남편?...... 아니야, 금순의 남편은 벌써 죽었어, 그러면 전화한 그 사람은 누구지?...... 친척? 아니야, 죽은 변 재수는 홀 홀 단신으로 월남한 사람이라고 했어...... ”

의문투성이의 사건을 조사하느라 늦어서야 들어온 광호를 반장은 불렀다.

“당신 지금 뭣하고 다니는 거야?”

“예, 지금 권 금순 씨의 교통사고를 조사하다가......”

“당신, 뭣한 사람이야, 그만큼 말해도 못 알아들어? 정말 당신 그 일에 손 못 떼겠어?”

“아니, 왜 그러십니까? 사람이 죽고 두 사람 관계가 의문투성이라 수사 대상이......”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 어디 거기 한두 사람뿐이야? 도대체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상관을 뭐로 보는 거야, 당신, 다 집어치우고, 안 되겠어, 다른 부서로 보내야겠어.”

가만히 두고 보자니 상사라고 정말 너무한다 싶었다. 용천사와 관계되는 수사만 했다 하면 불을 켜고 난리인 반장의 하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속으로 주먹이 몇 번이나 오르내렸다. 그러나 전에도 한 번 대들었던 적이 있는 터라

“죄송합니다, 알았습니다.”

하고 광호는 고분고분하게 대답하고 참았다.

전투경찰 출신인 피라미 형사 광호는 생각다 못해 직속상관인 수사반장을 무시하고 그로서는 간도 크게 서장을 독대했다. 서장도 그랬다. 용천사에서 요양원을 짓는데 김 총재의 지시에 따라 지역 유지로 참석해서 준공 테이프를 끊었고 거기다가 총재의 각별한 부탁까지 들은 자신이었다. 그렇다고 말단 직원이 수사에 의욕적인 추진력을 무자비하게 꺾을 수도 없었다.

“잘해보게, 박 형사와 함께, 모르는 척하면서 말일세.”

미주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영구차에 탄 금순은 사실 마음속으로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 이제 죽은 남편의 유산이 고스란히 자신들의 소유가 되기 때문이었다. 안동에서 지금까지 어렵게 살고 있는 부모의 모습도 눈에 떠올랐다. 호화로운 자신의 모습을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여러 친척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래서 속으로 그녀는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자식도 안중에 없었다. 오직 앞으로 있을 용천과의 달콤한 꿈만이 전부였다. 자식인 이붓딸의 시신을 바로 옆에 둔 그녀였다. 그런 그녀는 마음속으로 자산을 정리하여 용천을 어떻게 꾀어서라도 함께 살 궁리만 하고 있었다.

영구차가 한참을 달리고 있었다.

“비유, 삐유......”

멀리서 경찰차 소리인지 앰뷸런스 소리인지 어렴풋하게 영구차에 탄 그들의 귓전에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설마 자신들에게 오고 있는 차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영구차 기사는 백미러를 흘끔흘끔 쳐다보며 차츰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경찰차가 영구차 옆으로 다가왔다. 한 경찰관이 기사에게 차를 옆으로 세우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녀와 혜천은 영구차가 교통 법규를 위반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속도를 위반했거나 신호를 위반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지간해서는 영구차는 잡지 않는다는데......”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돈 몇 푼을 주고 기사에게 잘 해결하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핸드백을 열고 위반한 것에 비하면 많은 돈을 준다고 생각하면서 지폐 열 장을 꺼냈다.

“기사님, 여기 돈!”

그녀가 기사에게 돈을 건네려 하자 기사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위반한 것이 없는데...... 좀 기다려 보세요.”

하고는 돈을 건네받지 않고 차를 길옆으로 붙여 세웠다. 정복을 한 경찰관 한 명이 차에서 내려 경례를 하면서

“차를 돌리시오, 그리고 따라 오시오.”

하자 기사는 자기가 잘못한 일도 없는지라 경찰관을 보고

“시신을 실은 영구 찬데 뭐 때문에 그럽니까?”

“따라와 보면 압니다.”

차 안에서 이 광경을 내다보던 혜천이 한마디 거들었다.

“여보시오 순사 양반, 이유나 압시다.”

“우리는 지시를 받고 하는 일이니 따라와 보면 압니다.”

교통 법규를 위반한 것도 아니고 지시를 받고 하는 일이라고 하니 혜천도 더는 우길 수가 없었다. 영구차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경찰차를 따라갔다.

영구차가 경찰서에 도착하자 한참 후에 날카로운 눈빛을 한 사내가 나오더니

“시신을 검사한 후에 이상이 없으면 돌려보내겠습니다. 불편하시드라도 수사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는 뒤 따라온 정복 경찰관에게 지시를 내리자 영구차 뒤로 가서 시신이 든 관을 꺼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평소에 경찰관 알기를 집 밖의 개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용천을 보아 왔던 혜천은

“이것들 봐라,”

하며 자신도 경찰관을 얕보는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자신의 위엄도 보일 겸 어깨를 한껏 펴고 점잔을 빼면서 금순을 앞세워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확인시키고 난 후 허리에 손을 올리고 한마디 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시신을 갖고 몇 시간을 지체하다니요? 이게 무슨 나라 법입니까?”

이때 정복을 한 경찰이 쫓아왔다. 그는 혜천을 의자에 앉히고 조금만 기다리라며 달래고 난 후에 재자리로 돌아갔다. 조금 뒤에 중년의 수사관이 나타났다.

“시신에서 목을 조른 듯한 자국이 발견되었습니다.”

하고 그는 금순과 혜천을 번갈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예? 목에?......”

“시신이 임신 중인 걸로 확인됐고 사인은 목이 졸려 변을 당한 걸로 추정됩니다. 단순 사망이 아닌 걸로 봐서 부검을 실시해야 될 것 같습니다.”

혜천은 깜짝 놀랐다. 목이 졸려서 사망했다면 분명 사찰에서 누군가 목을 졸랐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누군가 죽였단 말씀인가요?”

“예, 그런데 시신이 죽기 전에 임신을 했는데 결혼을 했습니까?”

임신이라는 말에 금순은

“임신이라니요, 정신병으로 집에만 있던 애였는데 결혼은 뭐고 임신은 뭡니까?”

“그래요?...... 알았습니다. 일단 시신은 부검을 해봐야겠는데요.”

사실 금순은 죽은 미주가 자기 명에 죽지 않았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수사관의 입에서 목이 졸려 죽었다는 말을 들은 그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더 이상 나서서 따지고 자시고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요? 그렇다면......”

속으로 찔리는 것이 있는지라 금순은 말을 얼버무렸다. 그래도 어미가 되어서 미주가 목이 졸려서 죽었다고 하는데 부검을 그만두자고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무엇인가는 사건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푼 생각이 간절했으나 혹 의심받을 것 같아 도망가지도 못했다. 그녀는 수사관의 눈을 피해 혜천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한쪽으로 슬금슬금 걸어가자 눈치 빠른 혜천은 얼른 금순을 따라왔다.

“스님, 스님도 이쪽 형사분들 잘 아시잖아요, 빨리 아시는 분 찾아서 미주 사체 부검을 말려 보세요, 부검을 하면 시신을 두 번 죽이는 일이잖아요...... ”

하고는 주위를 한 번 돌아본 뒤에 핸드백을 열고 돈을 꺼내 봉투에 넣은 후 혜천의 손에 쥐어 주었다.

“예, 알았습니다. 우선 주지 스님께 말씀드리고 난 후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하고 돈을 얼른 받아 넣고 주적주적 경찰서 안으로 사라졌다. 한참 뒤 수사반장이라는 사람과 함께 혜천은 금순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금순은 다소곳하게 인사를 하면서

“반장님, 사인이 이미 밝혀졌고 시신에 칼을 대서 꼭 두 번 죽여야 할 필요가 있겠어요, 부검을 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하자 그때 혜천은 얼른 주위를 돌아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슬쩍 반장의 바지 주머니에 금순이 건네준 봉투를 찔러 넣었다. 반장은 모르는 채 받아 넣은 후에 금순에게

“벌써 주지 스님의 간곡한 부탁 전화는 받았습니다만...... 글쎄요, 상의는 해 보겠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가 없네요, 좀 기다려 보세요......”

하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편 용천은 영구차를 보내놓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뒤처리 하나하나를 일도에게 지시하고 금순에게 떠나려는 참이었다. 용천이 차 시동을 막 걸렸는데 김 처사가 쫓아왔다.

“스님, 경찰서에서 전화 왔는데요.”

하자 용천은 귀찮은 듯이

“방금 서울로 출발했다고 그러세요.”

김 처사는 수화기 한쪽을 손으로 막고선

“급한 일이라고 해서......”

용천이 전화를 받자 전화 건 사람은 수사과장이었다.

“골치 아픈 자식 때문에...... 영구차가 경찰서에 끌려 왔어, 그것만 우선 알고 있게.”

“알았네, 수시로 연락 주게......”

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도연을 불렀다.

“야, 어떻게 된 거야?”

도연은 무슨 말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뭘 말입니까?”

하고 되물었다. 주지는 갑자기 열을 올리는 척하면서

“야 이 자식아, 오늘 나간 시신이 경찰서에 끌려갔단 말이다!”

영구차가 무사히 잘 나가는 것을 본 도연은 주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직도 몰라 어리둥절하면서

“예?”

하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나? 영구차가 경찰서에 끌려갔단 말이다.”

“왜요?...... 아~”

갑자기 도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가 어젯밤에 근무했으니 잘 알 거 아니냐, 네가 맞지?”

“......”

잠시 망설이던 용천은 다시 말투를 부드러운 말씨로 바꾸고선

“아무래도 잠잠해질 때까지 네가 당분간 도망가 있어야겠다, 그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용천의 생각에는 도연이가 잠적하고 나면 설령 미주 문제가 불거져 사건화가 되더라도 당사자가 없으니 수사의 끈은 당연히 느슨해질 거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 틈을 타서 수사과장을 구워삶고 도연을 잡히지 않도록 숨기면 모든 일이 잘 해결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건은 달랐지만 지금까지도 모든 일을 그렇게 처리해오고 있었다.

미주가 비록 정신이 이상하기는 해도 얼굴이 반반하게 생긴 데다 몸매도 잘 빠져 보는 사내로 하여금 군침이 도는 계집이라는 것을 용천은 잘 알고 있었다.

용천은 금순이 미주를 데리고 왔을 때 이미 미주는 살아서 이곳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금순으로부터 어떤 사주를 받지도 않았지만 먼저 그녀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요양원에서 정신병자 하나쯤 죽이는 것은 별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현대의 의학으로서는 정신병은 고치지 못하는 불치의 병 아닌가. 그 가족들은 병자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시달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회는 무엇을 하는가. 하등에 가치도 없는 이들을 무엇 때문에 그대로 방치하는가. 오히려 주지는 이 사회가 아무도 못 하는 일을 자신이 하고 있다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귀찮은 인간쓰레기를 자신이 깨끗하게 정리한다고.

감독관들은 본래 무식하고 잔인한 사내들을 썼다. 정신병자들을 다루려면 인정이나 사정을 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잘못을 해도 사정없이 몰매를 가하는 자들만 있어야 했다. 더러는 여자들이나 정신병자라도 얌전한 사람들이 있지만 보통 환자들은 병실을 탈출하려거나 정신적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달래기보다는 감금하여 몽둥이를 앞세워야 한다. 이곳에 들어오는 감독관은 비록 선량한 자들이 있다고 보면 그도 조금만 지나면 사람이 잔인해질 수밖에 없었다. 눈만 뜨면 정신병자들을 구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었다.

수용이라는 말 그대로 일정한 곳에 사람이나 기타 특정물을 넣어 두는 곳일 뿐 어떤 치료도 하지 않는 곳이었다. 오직 약이라곤 날뛰는 환자에게 수면제를 복용시키는 일뿐이었다. 환자가 죽지 않으면 나아서 여기를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환자들은 매를 맞고 쓰러져 죽으면 그만이었다. 사회도 귀찮아하는 인간들이 죽었으니 그 가족들은 죽을 때 잠시 슬픈 시늉을 할 뿐 죽으면 그만이었다.

용천은 일부러 감독관들이 넘보라고 방을 감독관실 옆에 미주를 수용했다. 보지 않아도 감독관들이 서로 미주를 탐할 것이라고 그는 예상하고 있었다. 미주의 배가 불러오자 그는 미주의 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여러 감독관이 저질러 놓은 일이니 서로 떠밀다가 결국은 아이를 밴 당사자가 죽을 것은 빤한 일이었다. 아니 주지가 그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미리 미주의 방을 배치한 것이었다.

용천의 지시를 받은 총 무승 일도가 돈이 든 봉투를 도연에게 건넸다. 도연은 돈 봉투를 받아 쥐고는 어디를 갈지 잠시 망설였다. 주지가 말했다.

“뒷방에 잠깐 가 있거라.”

한참 뒤에야 주지는 노심초사하며 뒷방에 있는 도연에게 와서 귀엣말로 어디로 가라고 일렀다. 도연은 간단한 봇짐을 가방에 싸서 들고는 조심스럽게 빠른 걸음으로 사찰을 나섰다.

도연이 사찰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국수역을 가고 있는 동안에 용천사에는 경찰관들이 들이닥쳤다. 용천이 다 아는 경찰관들이었다. 그들은 용천에게 깍듯이 경례를 붙이며 말했다.

“스님, 감독관 김 도연을 잡으러 왔습니다.”

“수고를 끼쳐서 미안하구먼, 내가 못나서 이런 불상사가 생겼구먼...... 미꾸라지 같은 놈이 벌써 눈치를 채고 도망갔네, 잠시 기다리게, 자네 상사에게 전화 한 통 하고.”

하고는 가증스럽게도 용천은 경찰관이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수사과장님! 우리 직원 중에 도연이란 애가 사고를 저지른 모양입니다, 그놈이 벌써 눈치를 채고 도망을 쳐 버렸으니 어떡하겠습니까, 우리도 연락이 되는대로 자수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용천은 일도에게 귓속말로 무엇인가 지시하자 잠시 뒤 일도가 준비한 돈 봉투를 경찰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로 불러 모르는 척 주머니에 찔러주었다. 수사과장의 말을 들은 그들은 용천에게 정중하게 경례를 붙이고 사라졌다.

일단 급한 불은 꺼지자 용천은 외출 준비를 하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용천이 경찰서 문을 막 들어서고 있었다.

그때 반장이 금순이 있는 곳으로 다시 나왔다. 그는 금순에게 미주가 임신한 상태에서 목이 졸려 죽은 사실을 알려 주면서

“바로 우리 수사관을 사찰에 있는 요양원에 급파했습니다만 도연이란 자가 미리 이 사실을 눈치채고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현재 추적 중에 있으니 곧 잡힐 것입니다, 사건 전말은 도연이 잡히면 밝혀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대로 부검은 실시하지 않기로 했으니 시신을 모셔가도 좋습니다.”

“그럼 시신은 어데 있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이미 영구차에 보냈을 겁니다, 그럼.”

반장은 금순에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말을 들은 금순은 모든 문제가 생각보다 쉽게 풀리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거 봐요, 돈을 주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지요? 스님이 돈을 찔러 넣지 않았으면 지금 일이 얼마나 복잡해졌겠어요......”

혜천이 생각해도 그랬다. 일이 복잡하게 진행될 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술술 잘 풀리자 자신이 용천에게 전화를 해서 일이 간단하게 풀렸다고 생각했으나 반장에게 돈 봉투를 찔러 넣은 뒤라 금순의 말도 맞는 듯했다.

“그렇긴 그래요......”

혜천은 맞장구를 쳤다.

금순은 경찰에서 시신을 인계받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슴이 뛰고 마음이 불안했는데 주지인 용천이 지시해서 죽인 것도 아니고 요양원에서 감독관인 도연이란 자가 미주를 죽이고 도망갔다는 수사 과정을 듣고 나니 이제는 다리를 뻗고 잠을 자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혜천의 생각은 달랐다. 일이 꼬이려고 들면 잘 나가다가도 다른 방향으로 꼬이는 법, 이참에 시신을 아예 화장해서 근거를 없애버리는 것이 조금이라도 뒤탈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혜천은 금순의 마음을 넌지시 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신을 화장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묻히면 썩어서 없어질 육신 아닙니까, 또 혼약한 남자도 없고, 아이는 배었다고 하니 각시귀라 할 수도 없어 사혼식을 올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금순은 무슨 말인지 몰라

“스님, 각시귀는 뭐고 사혼식은 뭣입니까?”

“예, 각시귀는 처녀귀신을 말하는데 손각시, 왕신이라고도 부르지요, 귀신 중에 가장 악독하 다해서 왕이란 말을 앞에 붙였답니다, 그리고 사혼식이란 처녀나 총각이 죽으면 죽은 귀신에게 사후세계에서 부부관계를 맺고 편안하게 살도록 영혼결혼식을 올려 주는 것을 말합니다.”

“아~ 그런 것도 있군요......”

“소승 생각은 시신을 화장하고 천도재나 잘 올려주시면 후일에도 별 마음 가는 곳도 없을 것이니 보살님의 마음이 훨씬 가벼워질 것 아니겠습니까? 나무관셈보살......”
그녀는 혜천의 말을 듣고 시신을 화장하는 것이 그럴듯하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자신이 낳은 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양심에 가책은 들었다. 또 이웃의 시선도 있고 마지막 가는 이에게 매장이라도 해서 비석이라도 하나 새겨 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듣고 보니 스님 말씀도 옳으신 듯하나 주위에 눈도 있고 친 어미는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어미다 보니 매장해서 비석이라도 하나 새겨 주면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고 수군거리지는 않겠지요.”

“허허, 피쟁부쟁 범이불온 악래선대 시위 불지라, 보살님의 마음이 부처님 마음이군요, 아미타불......”

혜천은 피쟁부쟁 범이불온 악래선대 시위 불지(避爭不爭 犯而不慍 惡來善待 是謂佛志)라는 경구에서 시위범지(是謂梵志)를 은근히 시위 불지(是謂佛志)로 바꾸어 부처님이라고 금순을 띄워주고 있었다. 둘의 대화는 참으로 가관이었다. 혜천은 더 이상은 우기지 않았다.

“그럼 시신은 바로 장지로 가야지요?”

하고 혜천은 금순에게 물었다.

“아니 집으로 가서 상여를 꾸며서 다음 날 장지로 가야지요.”

“그러면 시신을 집안으로 들이지 말고 바깥에 둬야 됩니다.”

“예, 알겠어요.”

“그리된다면 4일장이 되지요? 그러니까 보자, 7월은 갑경사해일, 8월은 축사해일이니깐 내일이 중상일에 해당됩니다, 부득이 장례는 모레쯤에 치러야겠습니다.”

“아니? 왜요?”

“3, 5, 7일 기수를 쓰는 우리 관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4일장이 되니 짝수날도 피해야 되지만 또한 중상일이니 더욱 피해야 됩니다.”

“중상일이란 무슨 말입니까?”

“상이 거듭된다는 날이란 말이지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람이 죽은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금순이었다. 거기다가 상이 거듭된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또한 그 수습은 더더욱 알 길이 없는 금순으로서는 그저 용천이 지금이라도 나타나 이래라저래라 간섭해 줬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었다.

“성욱 씨에게 물어보고 내일이라도 매장해 버려야지, 얼른 사망 신고를 해야 재산 상속을 해서 처분할 것 아닌가, 처분해서 외국으로 같이 뜨자고 해 봐야지, 외국 가서 마음 편하게 떵떵거리며 사는 게 상책이야.”

이쯤 생각을 하자 금순의 마음은 급했다. 마침 용천이 수사과장을 만나고 금순이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시신이 든 관도 수습이 되어 영구차로 오고 있었다. 금순은 용천을 보자 너무 반가워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은 금순이가 시신이 든 관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걸로 알고 있었다.

광호는 자신의 재량으로 은밀히 수사해 보라는 서장의 지시를 받고 혼자서 미주의 염한 시체를 풀었다. 시체는 단 한 곳도 부패한 곳이 없었고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분명 시신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결정적인 훼손 부분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 옛날 지금의 용천사에서 어머니의 시신을 검안했을 때 머리 부분부터 발끝까지 일단 빠짐없이 세심하게 훑어보던 검안의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는 혹 무슨 상처 자국이 없나 하고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장갑 낀 손으로 하나하나 헤치며 훑어보면서 차츰 얼굴 아래로 내려왔다. 시선이 목과 얼굴 턱뼈 사이로 내려왔을 때 광호의 눈에 보얀 피부에 가로로 시커먼 멍 자국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히 손으로 목을 눌린 자국이었다. 그는 다시 시신의 목 아랫부분으로 시선을 옮길 때였다. 광호는 깜짝 놀랐다. 누가 만지지도 않았는데 시신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는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는 얼른 손목의 맥을 짚어 보았다. 분명히 실낱같은 작은 동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급히 자리에 일어섰다. 얼마 뒤 비밀리에 의사가 오고 미주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광호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미주를 병원으로 옮기고 그녀에 대한 신상 조사에 착수했다. 미주 아버지는 6.25 때 단신으로 월남한 사람이었다. 그가 자수성가해서 돈을 모으고 늦게 재혼해서 본 딸이 미주였다. 재혼한 아내가 미주를 두고 일찍 죽자 또다시 재혼해서 낳은 아들이 있었고 그 후에 많은 재산을 남기고 미주 아버지는 죽었다. 그런데 평소에 앓던 정신병으로 작년에 미주가 여기에 들어왔고 들어와서 임신을 해서 죽었다. 그는 우선 미주가 임신해서 죽은 사실과 용천사에 왜 수용했는가 하는 사실 두 가지로 나누어서 수사하기로 했다. 정신병으로 수용되어서 임신을 했다는 것은 수용소에서 책임자 누구인가는 임신을 시킨 것이고 목을 졸여서 죽이려 한 것은 이를 은폐시키기 위해 살인을 기도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용천사도 문제지만 미주의 지금 가족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호는 지금까지 미주가 죽었다고 판단했는데 미주가 살아 있으니 수사의 방향이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광호는 우선 미주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당분간 보호자에게는 물론 어떤 사람에게도 절대 비밀로 했다. 미주가 들어 있던 관에는 미주의 무게와 크기가 같은 인형을 넣은 후에 다시 관을 덮고 금순에게 넘겼다.

“보호자가 관을 열면 어쩌려고?”

서장의 지시를 받고 같이 수사하던 박 형사가 물었다.

“절대로 안 열어 볼 거야, 피해자의 집에서는 죽었다는 피해자의 시신을 보고 슬퍼할 사람도 없고, 돈에 눈이 어두운 사람뿐,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니 어느 누가 죽은 시체의 관 뚜껑을 열어 보겠나, 또 밖에서 죽은 사람은 시신을 집안에 들이지 않는 것이 우리네 관습이고 따라서 시신이 들었다고 생각한 그들은 관을 장지로 바로 가져갈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 걱정 안 해도 되네, 혹 화장을 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나중에 연락을 취해서 만전을 기하도록 하세.”

광호는 미주가 살아 있다는 것, 주지와 미주 가족 간에 자산으로 인한 모종의 밀담이 있을 거라는 충분한 가능성 등을 들어 수사를 계속하자고 보고서를 올렸다.

이튿날 금순은 사람을 사서 대나무와 줄로 만든 틀에 꽃을 붙여서 미주의 상여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장지 가까이 까지 차로 가서 상두꾼을 가로 네 명씩 여덟 줄로 서른두 명을 붙였고 문서 있는 사람을 앞소리꾼으로 메겨 행상소리, 자진상여소리, 달구소리 등 장례 의식을 웅장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순서 있게 지냈다.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회에 명망 있는 사람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젊은 나이에 몸만 가지고 시집을 온 금순이가 무엇을 알았겠는가. 또한 미주가 죽음으로서 얼마나 많은 돈을 금순에게 남기고 갔겠는가. 이제 금순이에게는 가진 것이 돈밖에 없었다. 그녀의 텅 빈 머릿속 같은 빈 관을 묻으면서도 마지막 가는 미주에게 돈으로 한껏 치장해주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은 용천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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