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추 2

2. 권력(權力)의 종착역(終着驛)

by 김수현


광호는 두 번이나 자신이 맡은 사건을 용천에게 빼앗기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 세상이 어째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천이란 놈이 얼마나 권력이 대단하면 사건 전 말이 비치기만 하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린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인간을 이대로 두었다가는 무수한 인명이 어떤 일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가 종교를 앞세워 뒤로는 수용소를 운영하면서 정신병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를 위해 그들을 무자비하게 학대하면서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잔 그물을 치듯이 저인망을 쳐 놓은 용천을 어떻게 잡아들여야 할지 막막했다. 더구나 부정과 착취로 생긴 막강한 부(富)를 이용해서 정계에 까지 발을 들여놓은 막강한 그를 어떻게 해야 잡을 것인가.

한참을 궁리해도 광호의 머리로는 대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광호가 답답한 마음에 막 일어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차분하고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어이, 최 광호!”

“누구신지?”

광호는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의 전화라 누구인가 짐작이 가지 않아 더듬거리고 있는데

“야, 나야, 도일이야, 벌써 동창 목소리도 잊었나?”

도일이라는 말에 광호는 퍼뜩 생각이 났다. 안동에 있는 한족일보사 주재기자로 근무하고 있다는 고등학교 동창생이었다.

도일은 초등학교 때부터 태권도를 배워서 고등학교 때 벌써 공인 5단을 딴 태권도유단자였다. 만나서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는 군 생활을 청와대 경호원으로 있다가 나와서 그 힘으로 신문사 기자 생활을 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아~ 그래, 도일이, 그래 정말 오랜만이다, 너 요사이 뭐 하냐?”

“나? 아직 몰랐어? 나 지금 안동에 있는 한족일보사 주재기자야, 야, 한번 만나서 술 한잔하자, 내가 그리로 갈까? 네가 이리로 올래?”

비록 지방에 있는 한족신문사 안동지국이지만 우리나라의 4대 일간지였다.

언젠가 젊은 학생들이 패싸움을 해서 의성 경찰서에서 학생 몇 명을 구속 수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향토신문사 주재기자가 와서 반장을 보고 무조건 풀어 달라고 하자 반장은 아직 수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풀어 줄 수가 없다고 단호하게 거부를 했다. 기자는 다짜고짜 하는 말이

“야, 이 개새끼야, 너 이 새끼 나한테 부탁할 일 없을 것 같아? 이 망할 놈의 새끼야!”

하고 걸 팡 지게 욕을 하며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풀어 준 것을 본 광호였다. 그도 경찰 생활을 하고 있지만 기자라고 하면 그 끗발이 대단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요즘 일이 잘 풀리지 않은 터라 도일이를 만나서 겸사겸사 바람이라도 쐬면서 하소연이라도 할까 해서

“내가 그리로 가지 뭐.”

하고 얼른 대답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만나서 몇 시간 동안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광호는 도일을 만나고 난 다음 날 깜짝 놀랐다.

일간지 한족일보의 1면에 대문짝만 한 글씨로 ‘용천사 요양원서 살인 미수사건’ 국회의원 김 성욱(법명, 용천) 의원 사주인 듯, 이라는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사의 내용은 광호가 술을 마시면서 용천의 행위에 대해 소상하게 털어놓은 모든 사실이 빠짐없이 기사화되어 있었다.

사실 용천이 국회의원이고 더군다나 그 뒤 배경이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술자리에서 한 말을 기사화시킨 도일의 배짱도 대단했다.

광호는 앞으로 자신에게 미칠 일에 대비하지 않으면 어떤 화를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천의 기사가 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자 용천은 즉각적인 해명에 나섰다. 물론 용천 자신은 그런 사실은 추호도 없으며 사실무근이라는 해명이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 증거를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다만 이 기사의 핵심적 제보자인 최 광호는 당시 그의 어머니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그 가족들이 병을 고친다고 전국에 있는 병원을 전전긍긍하다가 치료가 불가능해지자 자신이 운영하는 수용소에 왔기 때문에 그녀를 수용시켰다. 그리고 수개월 후 수용소에서 본인의 지병으로 인해 사망하였는데 이때 다소의 불미스러운 소요사태는 있었으나 부검 후 다수 환자 가족들은 의사의 부검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인정했는데 유독 최 광호만 이를 부인 사찰에서 행패를 부렸다. 그 후 항상 마음속으로는 자기 어머니의 죽음이 요양원의 소홀로 사망했다고 앙심을 품어온 것 같으며 작금에 와서 수사관으로 근무하면서 그 직위를 이용하여 지금의 사태를 조작했다고 본다는 것이다. 만약 지금이라도 스스로 신문 지상을 통해 사과하면 자신은 최 광호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을 인정하고 종교적인 자비로 그의 모든 행위를 용서하고 불문에 부친다는 것이었다.

용천,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사실을 뒤집어서 오히려 용천사에서 죽은 광호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앙심에서 나온 날조된 기사라는 것이다.

“허어, 적반하장이래도 유분수지, 이런 죽일 놈을 봤나.”

광호는 기가 차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생각하고 자시고 할 마음이 없었다. 죽기 살기로 용천과 싸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사가 나오자 여기저기에서 격려 전화가 빗발쳤고 야당 중진으로부터 소신껏 일하면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라는 전화도 걸려 왔다. 용천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었고 기사의 내용으로 봐서 그 뒤를 여당 총재가 봐주고 있다는 추측에서였다. 그러자니 광호는 점점 자신이 생겼다.

한족일보 김 도일이 지방 주재기자로서 광호의 수사과정을 듣고 일면 톱기사를 내고부터는 각신문마다 용천에 대해서 연일 대서특필해서 이 기사를 내고 있었다. 국회의원이 수년간 이 사실을 은폐했다면 그 뒤에는 보다 큰 권력의 힘이 도사리고 있지 않겠느냐는 기사도 나왔다.

용천의 요양원사건이 도마 위에 오르자 광호의 수사는 언론 보도와 국민들의 눈 때문에 훨씬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었고 상부기관이라 해서 함부로 제지할 수 없게 되었다.

광호가 서울에 올라오자 우선 미주부터 만나고 볼 일이었다. 그러나 주지의 뻔뻔한 상판 때기도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래, 이왕 서울에 왔으니 용천을 한번 만나 따져라도 보자.”

그날 광호는 용천의 국회 개인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비서관으로부터 광호라는 이름을 듣고는 용천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용천도 역시 이 마당에 거머리 같은 광호를 한 번 만나 담판을 짓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광호가 용천을 만난 것은 다음 날 어둠이 깃든 저녁이었다.

“할 말이 많습니다,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갑시다.”

광호가 용천에게 말하자 용천도 그러자고 했다.

“그러지, 나도 자네에게 할 말이 많네.”

온갖 일에 얽히고설킨 두 사람은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 말없이 인적이 드문 여의도 벚나무 길을 걸었다. 퇴근시간이 지났는데도 서강대교에서부터 마포대교까지는 오가는 차량으로 온통 뒤엉켜 있었다.

어느덧 앞장선 용천의 발길이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젊은이 몇 명이 농구골대 주변에서 공 하나를 놓고 땀을 뻘뻘 흘리며 서로 빼앗으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둘은 말없이 이들을 지나쳤다. 제법 긴 거리였다. 눈앞에 검은 물결이 출렁이는 한강 바로 앞에 다다르자 용천은 먼저 발길을 멈추고 방파제 위에 걸터앉았다. 미풍이 불어왔다. 용천은 광호에게 자기 옆에 앉으라는 손짓을 하면서

“자네도 앉게.”

하고 권했지만 광호는 그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서 겉치레 인사말로

“나랏일을 보시는 분을 이렇게 불러내서 미안합니다, 대한민국 최말단 경찰관 최 광호라고 합니다.”

용천은 이 말에 피식 멋쩍게 웃으면서

“자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되지도 않은 일은 이제 그만두고 나한테 와서 나를 도와주면 어떻겠나?”

“말씀은 대단히 고마운데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의원님께 취직을 부탁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이제 의원님께서 모든 욕심을 내려놓으시고 양심 있는 종교인으로 돌아가라는 충언을 드리러 온 것입니다.”

“이 사람아, 자네도 나와 같은 동향이 아닌가, 그러지 말고 이쯤에서 물러나 앉게.”

“동향이기에 내가 이렇게 찾아와서 부탁드리는 것 아닙니까, 고향을 더 이상 더럽히지는 마십시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의원님께서 힘으로 나를 저지한다고 하면 그 힘 때문에 내가 없어질지는 모르지만 제2, 제3의 내가 나타날 것입니다, 손바닥으로 눈은 가릴 수 있을지언정 어찌 하늘을 가리겠습니까, 다시 한번 고향 후배가 한마디 드리겠습니다, 제발 이쯤에서 종교인의 참모습으로 돌아오십시오.”

하고 광호는 진정 어린 말로 용천에게 말하자

“이 사람아, 나를 설득하려 들지 말고 자네가 내 말을 듣게, 그래야 자네의 앞길도 트이네, 그리고 자네가 내게 대들면 자네가 뭐로 나를 당할 건가, 돈으로 당할 건가, 권력으로 당할 건가, 돈은 내 곡간에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있고 권력은 내 위로 단 둘밖에 없네, 누군지 아는가? 대통령과 총재일세, 어느 누구도 나를 당할 방법은 없네, 이 세상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법이야.”

잠시 말을 끊은 용천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내 이야기 하나 해 줄까? 자네 동물의 왕국이란 프로 알지? 나는 그 프로를 무척 좋아하네, 지난 준가? 아마 지난주일 거야, 거기에서 말이야, 사자에게 쫓기는 수백인지 수천인지 모를 「가젤」 무리들이 온통 화면 전체를 차지해서 질주하더군, 그러더니 화면이 바뀌어 또 다른 「가젤」 무리들이 푸른 초원 위에서 여유 있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비치더군, 어미 「가젤」이 꼬리를 살레살레 흔들면서 새끼 「가젤」이 제멋대로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안심이라도 하는 듯이 시선은 먼 지평선을 향하고 있었어, 새끼「가젤」은 깡충 뛰어 보다가, 몸을 이리저리 뒤틀다가, 어미 앞을 향해 달려들다가, 그리고 뒷걸음치며 다리를 뻗어보다가 온갖 장난을 치고 있었어, 참으로 평화롭고 여유로운 모습이었어, 그런데 말이야,「가젤」 무리들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적이 있었어, 바로 어미 「치타」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리고 새끼「가젤」을 노려보며 점차 거리를 좁혀오고 있는 것이야, 「치타」는 날렵하고 가볍게 발을 옮기기 때문에 어미 「가젤」이나 새끼「가젤」은 새끼「가젤」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지 뭐야, 공격거리에 접어든 「치타」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온 힘을 다하여 먹이를 향해 앞발에 힘을 가하고 달리기 시작했어, 「치타」의 먹이 대상은 바로 만만한 새끼「가젤」이었어, 그때야 즐겁게 놀고 있던 새끼「가젤」은 깜짝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지, 그런데 어미「가젤」은 뜯던 먹이를 잠시 멈추고 좌충우돌하며 「치타」에 쫓기는 자기 새끼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어, 드디어 달아나던 새끼「가젤」의 목덜미에 강한「치타」의 이빨이 꽂히고 말았지, 새끼「가젤」은 한동안 다리만을 버둥거리다가 온몸을 축 늘어뜨리고 말았어, 「치타」는 죽은 새끼「가젤」을 땅에 내려놓고 목을 길게 위로 향하여 울부짖기 시작했지 뭐야, 왜냐고? 그것은 새끼「치타」를 부르는 울음소리였어, 몇 번의 울음소리에 새끼「치타」는 먹이 앞으로 모여들어 어미「치타」가 잡은 먹이를 먹기 시작했지, 그때 독수리 몇 마리가「치타」가 잡은 먹이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지, 잠시 뒤에는 수십 마리의 독수리 때가 모여들었어, 그리고 독수리 때는「치타」 새끼들의 먹이를 빼앗기 시작했어, 어미 「치타」는 먹이를 빼앗는 독수리를 쫓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그 많은 독수리를 감당할 수가 없었지, 결국 잡은 먹이를 독수리에게 빼앗겨 버리고 새끼「치타」들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어, 이때 「하이에나」가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서로 빼앗아 먹으려는 독수리 앞에 나타났어, 독수리는 「하이에나」를 당할 수가 없었지, 결국 먹다 남은 먹이를 독수리는 「하이에나」에 빼앗기고 말았다는 거야.”

긴 이야기를 다 한 용천이 잠시 숨을 고르자 광호는 이야기 취지를 파악하고도 모르는 척

“순수한 동물들의 먹이 사슬을 여기서 무엇 때문에 이야기합니까?”

하고 말하자

“이봐 광호 씨, 잘 들어 보게, 동물들도 하나같이 자신의 삶을 위해서 자기보다 약한 동물을 사냥하지 않아? 연약하고 불쌍한 동물을 무자비하게 말이야, 목숨이 채 떨어지지 않고 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동물들,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갈기갈기 찢어 잡아먹는 동물들, 측은한 생각과 잔인한 생각이 동시에 들겠지, 허지만 세상은 오직 자신의 삶을 위한 것일 뿐이야, 강자는 먹어야 살고 그래서 약자는 먹히지 않은 수가 없지, 그래서 살아 있는 강자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야, 약육강식, 나도 오직 이 불변의 진리에 따라 행위할 뿐이야, 자네도 냉철하게 생각해 보게.”

“이봐요, 의원님, 동물들은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일 외에는 추호도 약자를 해치는 일은 없소, 그들은 배만 차면 잡아먹었던 약한 동물들과 같은 친구일 뿐이요, 당신같이 끝도 한도 없이 필요에 따라 헤치는 그런 몰염치가 아니란 말이요.”

“나는 내 배를 채우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불쌍한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그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야,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랴만 큰일을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자네는 그냥 나를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네, 그 끝이 어찌 될지 모르는 자네이기 때문이지.”

“중생을 구하려고 다른 중생들을 짓밟고 헤치는 일이 오른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큰 걸 위해서는 작은 것은 희생되어야지!”

“하늘이 두렵지 않습니까?”

“그만큼 이야기해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군, 그래서 자네는 그만큼 밖에 살지 못하는 거야, 오늘은 이만하고 끝내겠네, 돌아가서 내가 한 말을 곰곰이 잘 생각해 보게, 그리고 내 말이 옳다고 생각되면 나를 찾아오게, 그러면 자네를 내가 긴요하게 쓰겠네.”

“의원님,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는 법입니다, 의원님은 같은 동향 선배이고 그래도 젊을 때는 한다는 주먹잡이 아니었습니까? 이쯤서 각성하시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지요.”

“오늘은 내 많이 참고 가네, 노파심에서 한마디만 더 하겠네,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광고도 있지 않는가? 잘 생각하게, 그만 일어나겠네, 자네 답 기다리겠네.”

광호 역시 더는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자 옷을 툴툴 털고 일어섰다. 용천은 광호를 뒤로하고 어둠 속을 헤치며 언덕 위 불빛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멀리서 무슨 차인지 브레이크를 밟는 찢어질 듯한 금속성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광호가 언덕 가까이 갔을 때쯤 용천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차들은 꼼짝을 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었다. 꽉 막힌 도로에는 뒤차가 앞차의 엉덩이를 처박고 있었고 앞차의 한쪽 귀퉁이는 움푹 들어가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다. 차량 옆에 운전자인 듯한 사내 둘이 서로 멱살을 잡고 밀고 당기면서 싸움을 하고 있었다.

미주는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전에 광호가 얻어 준 조그마한 전셋집에 거주하면서 역시 광호가 소개해준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본래 어미를 닮아 타고 난 미인인 데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라 광호가 비서실에 소개해준 덕택에 회사에 잘 다니고 있었다. 미주는 광호가 찾아가자 그때 일이 너무나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눈물까지 흘리며 맞아 주었다.

“최 형사님, 너무 고마워서...... 그때 그 일 때문에 수사가 중단되고 죄 없는 우리 아버지만 감옥에 갇혀 고생하고 계세요, 우리 재산은 나쁜 그 여자가 모두 날려버리고 우리는 돈 한 푼 없는 거지 신세가 되었답니다, 억울한 아버지를 위해 변호사를 사려해도 돈 한 푼 없는 신세이니 어떡해야 좋을지...... 흐흑.”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다시 수사에 손을 대고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아무리 악한 무리들이 진실을 숨기려고 해도 손바닥으로 자기 눈만 가릴 뿐입니다, 지금은 그들이 이겼다고 다리를 뻗고 잠들을 자겠지만 머지않아 정의는 우리 편이라는 것을 내 손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광호는 측은한 마음으로 미주를 달랬다. 광호가 수사를 재개했다는 말을 들은 미주는 눈물을 그치고 반가운 얼굴로

“정말입니까? 정말 수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예, 걱정 마십시오, 내가 살아 있는 한 결코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겠습니다.”

미주는 강한 의지가 담긴 광호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비록 말단의 수사관이었지만 세상에서 둘도 없는 믿음직한 사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호가 미주를 바탕으로 수사를 다시 시작하자 용천은 김 총재를 찾아갔다. 그렇게 용천을 아끼고 좋아했던 김 총재는 신문 보도를 접하고 사회의 여론이 일개 지방의 수사관에게 집중되자 점점 용천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용천을 공적인 신분 외에는 절대로 만나지 않던 것이 이제는 공적인 일에도 용천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용천은 움찔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온 강물이 흙탕물이 되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일생일대에 위기를 맞이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럴 때일수록 차분해야 돼, 마음이 약해지면 안 돼. 절대로......”

그는 용천사 법당에 들어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정말 오랜만에 기도하는 순간이었다. 옛날 북한산에 들어가 기도를 했던 순간들이 그의 뇌리에 번득였다. 마지막 하산할 때 용이 승천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채 승천을 하기도 전에 호랑이 한 마리가 용을 물고 늘어지던 모습도 떠올랐다. 그러자 용천의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럴까?”

다시 눈을 감았다. 마음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공한 것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자꾸만 호랑이와 광호가 서로 엇갈려 가면서 그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도저히 눈을 감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만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 법당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오늘따라 용천사에는 일도도, 김 처사도, 공양주 보살도 기침이 없었다.

텁텁한 밤공기는 그의 호흡을 더욱 거칠게 하고 있었고 이름 모를 산새의 울음소리가 적막한 밤공기를 타고 용천의 마음을 후벼 파고 있었다.

“에잇!”

그때 그의 뇌리에는 금순이가 떠올랐다. 그는 주지실 옆 요사채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요사채 문을 당겼다. 문고리가 안으로 잠겼는지 문은 열리지 않고 흔들거리며 덜커덕덜커덕 소리만 내고 있었다. 좀 뒤에서야 안에서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하고 잠이 채 깨지도 않은 금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쎄!”

안에서 용천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금방 불이 켜지고 이어서 문고리 벗기는 소리가 들렸다.

“불을 끄세!”

용천이 들어서기 무섭게 금순이가 올렸던 스위치를 다시 내렸다. 잠깐 불빛에서 잠에 취한 금순의 모습을 본 용천이 금순의 몸을 덮치면서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탄력 넘치는 젖가슴이 용천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 감촉이 황홀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아,”

하는 탄성을 지르며 몽롱한 의식으로 빠져들었다. 용천은 그녀의 육체를 마음껏 애무하고 즐겼다. 그녀도 괴성을 지르며 용천의 품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황홀하고 감미로운 순간이었다. 용천은 마침내 그녀의 육체에 깊이 천착해 들었다.

아까 울던 산새가 깊어가는 산사를 흔들듯이 울어 대다가 훌쩍 멀리 날아갔다.

그들이 공유한 격렬했던 순간들도 모두 지나가 버리고 두 사람은 조용한 산사를 베개 삼아 잠이 들었다.

“그만큼 이야기해도...... 쯧쯧쯧, 정 앞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군......”

어둠이 짙은 밖에서 순자가 가만히 서성이다가 속으로 한 마디 중얼거리면서 공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깊은 잠에 떨어진 용천과 금순에게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아직 여명의 시간이 멀었는가. 용천의 기침에 금순도 깨었다.

“여보게, 자네도 신문을 봐서 알겠지만 광호라는 놈이 우리 뒤통수를 치고 있네, 자네가 도와줘야겠네.”

금순은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뭘 도와줄 게 있어요?”

“지금 광호라는 형사 놈 때문에 내 힘이 반으로 죽어 버렸네, 자네 힘이 필요할 때일세.”

“오빠의 일이라면 뭐든지 할게요, 제가 도울 일이 뭐예요? 말씀해 보세요.”

“........”

“뭔데 말을 못 하세요?”

한참을 뜸을 들이던 용천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광호 놈이 일을 벌이는 바람에 김 총재가 나를 만나 주지 않네, 자네에게 못 할 말이네만 머지않아 한번 큰 어려움이 나에게 닥칠 것 같은이, 자네도 알다시피 이 일을 막아 줄 사람은 김 총재 밖에 없네.”

하고 말을 돌리다가 말끝을 흐리자

“무슨 부탁인데 그러세요?”

오히려 금순이가 더 안달이 나서 용천에게 바짝 무릎을 당기자 한참 뜸을 들이는 용천은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말을 이었다.

“부탁이네, 자네 김 총재에게 한 번만 수청을 들어주면 안 되겠나?”

용천의 말에 금순은 그만 말문을 잃고 말았다.

“수청이라니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용천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금순을 보고

“ 아니야, 아니야, 됐어, 됐어, 내가 잘못 생각했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했어, 자네가 무슨......”

차분하던 용천이 당황하면서 횡설수설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금순은 어쩔 줄 몰라하는 용천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용천은 날이 밝기 전에 금순을 뒤로하고 주지실로 향했다.

날이 밝기 무섭게 용천은 우선 일도를 불러 자신의 사찰 내의 요양원을 다시 한번 재정비하라 이르고 지금까지 외부 의사와 간호사들을 필요할 때만 불러서 쓰던 것을 직접 고용해서 누가 봐도 옛날부터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인양 꾸며 놓았다. 또 경찰에서 빼내 온 도연과 기주를 불러 해외로 도피시킬 계획을 짜기 시작하는 한편 미주를 잡아들이려고 일도를 시켜 깡패들을 고용했다. 이번 기회에 요양원을 총 점검해서 자신에게 불리한 사건의 뿌리를 모조리 뽑아 없애려는 의도였다.

하루 종일 용천은 금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 질 녘 해서 몸단장을 하고 주지실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금순이었다. 주지실로 들어서는 금순이의 몸단장한 자태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야말로 형광등 불빛보다 훨씬 훤하고 밝게 빛났다.

“아, 자네가!......”

용천은 금순을 보고 새삼 놀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잡았다.

금순은 용천의 말을 듣고 하루 종일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보도는 용천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것 같았다. 그런데도 용천은 큰 산과 같이 그들의 중심에서 떡 버티고 서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용천이 이번 사태로 곡예를 하고 있다는 것을 금순도 알고 있었다. 만일 한 발만 삐끗하다가는 천 길 만 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송곳 같은 날카로운 끝 날이 용천의 큰 산 한 귀퉁이를 야금야금 후벼 파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나에게 어찌 몸을......”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그 일을 말한 용천의 입장이 오죽이나 급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자신을 얼마나 믿었으면 그런 말까지 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걸어온 자신을 돌아봤다. 처녀 때부터 단 한 번이라도 마음을 준 사람에게 몸을 맡겼는가 하고 생각을 해봤다.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욕망이 흐르는 대로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몸을 던졌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키지 않는 재수에게 시집을 와서 운전기사와 불륜을 저지르고 지금에 이른 것이었다.

그러나 용천은 금순이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이었다. 비록 용천은 지신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최선책이었을지 모르지만 처녀시절부터 지금까지 금순은 자신을 구해 주었던 용천을 진정한 사내로 대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차츰 용천을 이해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이 기울어지다 보니 그녀는 마음에도 없는 김 총재에게 몸이라도 바쳐서 용천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감으로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 일은 자신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해 낼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생각에 잠겼던 금순은 옷을 갈아입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용천은 금순을 바라보자 감탄을 마지않았다.

“역시 자네는 아름다워! 늙다리 노인에게 바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야......”

그날 밤이었다.

김 총재는 용천이가 끈질기게 간절한 청을 하는 바람에 결국은 용천의 청을 받아들여 모처럼 대작을 하게 되었다. 용천은 단 한 마디도 자신의 사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잡다한 이야기로 술잔이 오고 갔고 마음을 놓고 김 총재가 술이 거나하게 취했을 때였다. 용천이 웨이터를 불러 귓속말로 몇 마디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한복을 곱게 단장한 여인이 들어왔다. 금순이었다. 별 흥미도 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던 김 총재는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을 마주하자 눈이 번쩍 뛰었다.

“아니, 누구신가?”

비록 술에 취했으나 여인의 아름다움에 더욱 마음이 취한 그는 자신의 늙음도 잊은 채 자리를 고쳐 앉았다.

“예, 소승의 친척 동생입니다.”

용천은 금순을 친척동생이라고 김 총재에게 소개를 올렸다. 한눈에 반한 김 총재는 용천의 다음 말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요, 흐흠, 내가 스님을 너무 소홀하게 대했나 보군요, 잘 알겠소.”

그는 용천을 너무 홀대해서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바치려고 자기에게 데리고 왔다고 생각했다. 용천이 자기 친척 여동생이라고 말했지만 김 총재는 곧이곧대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분명 느슨해진 자기와의 관계를 재충전하기 위해 이 여인을 데리고 왔다는 생각이었다.

“까짓것, 용천 지놈이 잘못해서 교도소에 들어간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똥물만 약간 내 옷에 튕길 뿐 별다른 일은 없는데 내가 지나쳤군, 그래, 괜한 거리감을 둔 것이야.”

하며 취한 마음에 아름다운 여인을 보자 스스로 용천을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다. 먹은 술은 딱딱했던 늙은이의 마음에 빈틈을 갖도록 작용했지만 그보다도 아름답고 풍만한 금순이가 그의 마음을 더욱 흔들어 놨다.

용천은 금순에게 눈길을 한 번 주고 총재를 향해 공손히 합장하면서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그럼......”

“알았소, 걱정 말고 가서 기다리세요.”

용천이 밖으로 나가자 김 총재는 기다렸다는 듯이 금순의 손목을 덥석 잡고 자기의 그곳으로 끌어당겼다.

“이러시면......”

김 총재는 살짝 몸을 꼬면서 손을 빼고 엉덩이를 드는 척 피하려는 금순을 향해 마른침을 삼키면서 더욱 그녀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누군지 아시는가?”

김 총재는 제법 거드름을 피우면서 금순의 의중을 떠보았다.

“예, 용천 오빠에게 들어서.......”

“이리 가까이 오시게.”

“초면에......”

용천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면, 또 용천이 자신에게 금순을 맡기고 자리를 떠났다면 당연히 자신에게 몸을 줄 마음을 가진 것 아니겠는가. 아무리 능구렁이 총재라도 여자가 풍기는 향기에는 이성을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줄듯 말듯한 금순의 행동에 몸이 바짝 달아올랐다. 한 손으로 금순의 어깨를 감싸 안자 다른 한 손은 치마를 걷어 올리고 금순의 허벅지 사이에 손을 넣었다. 총재의 손마디 사이로 금순의 까칠하고 무성한 풀잎이 소담하게 잡히면서 작은 연못 사이 얕은 봉우리 위로 끈적한 물기가 촉촉하게 솟아올랐다.

“이러시면......”

하면서 금순은 몸을 꼬며 총재의 손을 살짝 잡고 무릎 위까지 밀어내자 총재는 더욱 몸이 달았다. 총재의 온몸에 피가 용솟음치고 그 피가 한쪽으로 고이기 시작했다. 총재는 한곳에 집중되는 피로 인해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늙은 자신을 상실한 채 소파 위에서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총재라고 별것이 드냐 한 꺼풀만 벗기면 똑같은 사람인 것을, 당대의 제 이인자라고 자부하는 김 총재를 금순은 무안 무치의 사내로 만들고 말았다.

그날 밤에 금순이가 늙은 총재를 어떻게나 녹여 놓았던지 김 총재는 그다음 날도 용천을 통해 금순을 찾았다.

광호가 얻어 준 미주가 살고 있는 집은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바로 골목길로 들어서는 승용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골목길이었다. 달동네는 아니지만 잘 사는 사람도 없는 고만고만한 동네였다.

보도 블록이 깔려있는 골목길 여기저기에는 빠진 보도블록 대신 보기 흉하게 시멘트로 채워져 있었고 새로 지은 2층집과 구옥들이 한데 어울려 붉은 벽돌로 단장한 담장과 이곳저곳 갈라진 시멘트 담장이 뒤섞여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골목길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골목길이 꺾일 때마다 띄엄띄엄 전신주가 서 있어 희미하나마 백열등이 골목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그날 미주는 퇴근을 하고 날이 어두워서야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미주가 정류장에 내려서 제법 긴 골목길을 지나 막다른 골목인 숙소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좁은 골목길 옆에 평소에 보지 못한 쥐색 봉고차가 사람 하나 지나갈 구멍만 남기고 길을 꽉 막고 세워 놓았다.

미주는 이상하다는 듯이 차 안으로 시선을 향하며 막 지나치고 있었다. 순간 봉고차 문이 열리면서 건장한 사내 두 명이 내렸다. 그들은 미주가 소리칠 틈도 없이 입을 틀어막고 봉고차에 던지듯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바로 시동을 걸고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한편 광호는 미주를 만나기 위해 막 골목길을 들어서려 할 때 미주를 실은 봉고차는 광호의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하마터면 봉고차와 광호가 부딪칠 뻔한 것을 평소 예민한 운동신경 덕에 사고는 피할 수가 있었다.

“저 양반들 큰일 낼 양반들이군, 뭐가 그리 급해서 이 좁은 골목길에서......”

하면서도 시선은 수사관의 본능으로 차량 번호판을 향했다. 광호가 미주 집 가까이 다다르자 백열등 불빛 아래 차바퀴에 눌린 여자 핸드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상한 예감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얼른 핸드백을 집어 들었다. 핸드백은 차바퀴에 눌려 금속으로 된 테두리가 망가져 있었고 백 속에 든 몇 개의 화장품 샘플과 루주는 그대로 있었지만 눈썹마스카라 케이스와 작은 손거울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그는 백 속에 들어 있는 작은 손지갑을 꺼내서 열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지만 분명 미주의 것임을 확인하는 주민등록증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광호는 얼른 골목길을 빠져나와 버스 길로 달려 나왔다. 차량들이 불빛을 이어가며 질주하고 있었지만 아까 본 그 봉고차는 이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놈이야, 그놈의 짓이야!”

광호는 순간 용천의 모습을 떠올렸다. 금순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서장에게 지시하여 자신을 지방으로 전근시키라고 고함치는 용천의 모습이 떠올랐다. 도연을 취조하고 있는데 검찰을 앞세워 그를 빼내 가는 용천의 모습도 떠올랐다.

“한심한 자식, 어디 네 놈이 한 번 나를 이겨봐!”

용천의 비웃음 속에 내뱉는 침 튀기는 목소리가 광호의 귀에 쨍쨍하게 들리는 듯했다. 광호의 온몸에 있는 피가 머리끝까지 위로 치켜 올라갔다.

“야, 이 개새끼야!”

광호는 갑자기 욕지거리가 섞인 고함소리를 내뱉었다.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이 광호를 쳐다보다가 그의 옆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속으로

“별 미친 사람 다 있네......”

하고는 지나쳤다.

몇 날 며칠을 용천의 기사가 신문 지상에 도배하듯 올라왔다. 그렇게 떠드는 대도 용천은 콧방귀만 뀌고 있었다. 증거가 될 만한 것은 모두 용천의 손아귀에 들어 있으니 소문만 무성했을 뿐 아무런 대응책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결국 광호로는 꼭 집어 수사할 단서가 없으니 속 빈 강정이지 아닐 수 없었다.

용천은 광호를 상대로 목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이참에 광호를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더는 반항하지 못하도록 반쯤은 죽여 놓자는 것이었다. 먼저 그는 기사를 올린 한족일보에게 정중한 사과를 요구했고 거짓 기사를 쓴 기자와 이를 제보한 제보자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기사도 함께 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 곧 검찰에 이 사건수사도 의뢰할 것이라는 으름장도 빼놓지 않았다.

한족일보에 맨 처음 기사가 올라올 때는 광호가 넓은 바다 위를 자유롭게 헤엄치듯 유리한 입장이 되었다가 미주가 없어진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꼼짝없이 용천에게 역공을 당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거기다가 도연과 금순도 행방이 묘연하니 수사를 진행할 근원지가 하나도 없었다. 또다시 용천이 라디오 시사프로의 대담을 통해서

“한족 일보는 말단 형사의 근거 없는 분풀이 말을 듣고 현직 국회 의원인 본인을 기사화시켜 명예에 큰 손실을 가져오게 했음에도 본인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신문사에는 이를 묻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숙하는 기미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를 기사화시킨 기자를 상대로 고소할 것이며, 여론을 호도시킨 말단 형사는 법이 미치는 한 최고형에 처할 것을 제의한다.”

고 말하면서

“경찰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제 식구라고 감싸고 있지는 않는가? 왜 근거도 없는 일로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런 몰상식한 자를 경찰 자체에서 조사해서 법대로 처벌하지 않고 지금까지 감싸 안고 있는가? 또 경찰은 그렇다 치더라도 검찰은 무엇을 하는가? 거짓 기사 사건이 신문 지상에 올라온 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가? 그런데도 검찰조차도 나서서 조사를 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면서 광호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광호가 용천사 요양원을 들어와 본 것은 2년 전 박 형사와 한번 와서 보고는 처음이었다. 그때 주변 지형을 세심하게 관찰했었지만 오랜만에 이곳을 와 보니 많이 변하기도 했구나 싶었다.

계곡 사이로는 보다 울창한 숲이 가로막아 숲 사이로 난 좁은 길이 없었다면 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숲을 막 지나고 나자 협곡 양쪽을 가로지르는 일곱 자 정도의 높은 담장이 가로막고 있었고 담장 위에는 철조망이 두자 정도의 높이로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담장 가운데 출입구에는 바리케이드를 쳐 놓았고 경비실 지붕과 반대편 담장에는 바리케이드를 향한 서치라이트가 개미 새끼 한 마리라도 찾아내겠다는 듯이 강한 불빛을 내리쪼이고 있었다.

경비실에는 경비원 두 사람이 무슨 말인지 서로 웃으며 주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오른쪽 담장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는 담장 높이 보다 더 높은 바위들이 자연 옹벽처럼 둘러 있었다. 광호는 미리 준비한 등산용 밧줄을 타고 힘들게 바위 위로 올랐다. 그리고 빽빽하게 들어선 소나무의 틈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치고 계곡 끝까지 갔다. 다행히 건물에서 비치는 옅은 빛 때문에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를 잘 피해서 건물 끝까지 쉽게 갈 수가 있었다. 건물 끝이라 그런지 다행히 여기에는 불빛도 없었지만 인기척이라곤 아예 없어 너무 조용했다.

광호는 들고 온 밧줄을 다시 소나무에 걸어서 절벽을 타고 요양원 건물 아래로 내려갔다. 요양원은 예전에 와 본 그대로 기역자 지붕을 한 이층 건물이었다. 경비실 출입구와는 달리 요양원 출입구는 감시하는 사람은 없었고 광호가 살며시 문을 밀자 그대로 쉽게 문이 열렸다. 아마 삼면이 계곡으로 이루어진 철통 같은 지형과 호리병 주둥이 같은 경비실 입구를 서치라이트로 환하게 밝히고 있었으니 누가 함부로 이곳을 들어올 수 있겠느냐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층으로 지어진 건물의 북쪽 벽에는 위층을 오르는 외부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고 서쪽을 향해 한자 폭의 캐노피 아래에 주 출입구인 육중한 두 쪽의 철재로 된 현관문이 버티고 있었다. 현관문 중앙에는 투박스럽고 큰 자물쇠로 굳게 채워져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한쪽 현관문에는 보조 출입문 하나가 누가 드나들었는지 문이 덜 닫힌 채 열려있었다.

광호는 출입문을 조심스럽게 밀고 들어가자 좌측에 제법 큰 식당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식탁 일부에는 몇 개의 씻지 않는 그릇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마 이 시간에 경비원들이나 감독관들이 밤참으로 먹고 그대로 둔 그릇임이 분명했다.

식당 바로 옆에는 창고 같은 건물이 창문도 하나 없이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곳을 지나자 바로 정면으로 잿빛 유리로 된 여닫이 출입문이 형광등 불빛을 흐릿하게 투영하고 있었다.

광호는 그때야 생각이 났다. 전에 왔을 때와는 다르게 식당과 창고의 구조를 변경해서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그 외는 전과 다름없어서 감독관실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광호는 출입문 옆에 창문을 살짝 밀어 보았다. 문은 소리 없이 열렸고 안에는 감독관이 순찰을 도는지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그는 얼른 출입문을 열고 감독관실 안으로 들어갔다.

감독관실과 환자들이 요양하는 통로 사이에는 굵은 파이프로 된 철창이 어른 주먹하나가 겨우 빠져나올 정도로 촘촘하게 수직으로 박혀 있어 보기에도 안과 밖이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가운데 있는 유일한 통로인 철창문은 감독관이 들어갔는지 삐죽이 열려 있었다.

광호는 철창문이 소리 나지 않게 살짝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안은 예전에 본 그대로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길게 방이 들어서 있었으며 두 평 정도 크기의 방 수십 칸이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칸과 칸은 서로 두꺼운 벽돌로 분리되어 방문마다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었다.

문고리는 쇠사슬을 세 번씩이나 감아 자물쇠를 걸어서 채워 놓았다.

방마다 출입문은 사람의 키 높이보다 작았고 출입문 아래는 폐쇄되어 있었고 위쪽에는 감독관들이 복도에서 안이 훤하게 들여다보이게 굵은 쇠창살만 촘촘하게 설치된 철제 문으로 되어 있었다.

방에 붙어 있는 창문은 사람의 키보다 높게 만들어 놓아서 아예 안에서는 제법 키가 큰 사람이라도 내다볼 수도 없도록 만들었고 창은 안팎으로 보이지 않게 희부연 유리로 되어 있었다. 창문은 사람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작았으며 벽은 백색 페인트를 칠해서 구석구석에는 곰팡이가 핀 자국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던 광호는 위층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리자 발소리를 더욱 낮추어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겼다. 주위를 살피던 광호는 내부 끝에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전에 광호가 와서 봤을 때는 없었던 계단이었다.

그는 민첩하게 내부 계단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흰 페인트칠을 한 계단은 아마 최근에 칠한 것처럼 깨끗했다.

요양원 환자들이 모두 잠에 취해서 그의 발소리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금 뒤에 위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광호는 얼른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으로 몸을 숨겼다.

그때 환자 중에 한 사내가 어두운 방구석에서 눈을 멀뚱멀뚱 뜨고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준혁이었다. 멀쩡한 정신이었던 그가 가족들로부터 정신병자로 취급받아 여기까지 끌려 온 바로 준혁이었다. 몇 번인가 이곳을 탈출하려다가 붙잡혔고 이로 인해 일도에게도 숱한 매를 맞은 그였다. 한때 배포가 대단했던 그는 이제 깡마른 얼굴에 눈만 커다랗게 멀뚱 거리는 초라한 사내로 변해 있었다.

“누군가? 이 요양원에?...... 혹 내가 여기를 나갈지도......”

준혁의 생각으로는 숨어서 이곳에 들어 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사관?”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계단 위에서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고 발자국 소리는 점점 광호의 귀 가까이로 들려왔다. 계단을 내려선 사내는 발길을 멈추고 습관적으로 방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다시 발걸음을 감독관실로 향했다. 동시에 몸을 숙인 광호는 날쌔게 계단 위로 올라서 이층 출입문 아래로 몸을 숙였다.

“어때, 미주는 얌전히 있던가?”

용천이 일도에게 묻는 목소리였다.

“무슨 일인지 얌전하게 밥도 잘 먹고 고분고분하더군요.”

“제들은 어떻고?”

“아, 도연이하고 기주 말이죠?”

“그래, 가들 말고 또 누가 있나?”

“도연이와 기주는 큰스님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습죠, 그리고 준비는 다 해놨습니다, 여권도 만들어 놨고, 이젠 떠내 보내면 됩니다.”

“실수 없도록 일처리를 잘하게!”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광호는 출입문에 난 조그만 창으로 살며시 고개를 들고 그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풍채 좋은 용천의 모습 옆에 일도와 혜천의 모습이 이층 감독관인 듯한 사내와 함께 있는 것이 보였다.

용천이 그들과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벽에 손을 갖다 대자 6자 정도의 벽면이 미닫이문처럼 양쪽 벽 사이로 들어가면서 통로가 나타났다. 산의 끝자락에 붙어 있는 건물이고 보면 이 통로는 산 중턱을 파고 들어가는 굴일 것이라고 광호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계단은 저 굴속 통로를 위해 만든 것이라......”

그때 안에서 용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는 가서 일을 보게.”

용천이 같이 따라다니는 감독관에게 말을 하자 그는 용천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복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용천 일행이 문 안으로 들어가자 광호는 들키지 않게 몸을 숨기면서 문 앞까지 다가갔다. 바위를 깨서 만든 넓은 동굴은 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요양원 내부와는 달리 동굴 속은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무엇을 넣어 뒀는지 큰 항아리가 두 줄로 10여 미터씩 양쪽으로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는 사람 둘이 다닐 수 있도록 통로로 비워두고 있었다. 통로 가운데에는 겨우 전등 하나만 켜져 있어 여기저기에 떨어지는 물방울 때문에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지만 광호가 생각건대 이 동굴은 아마 최근에 파서 만든 아주 깨끗한 동굴이었다.

그때였다. 동굴 끝에 있는 문이 열리면서 용천의 일행이 다시 나오자 광호는 그들이 눈치채지 않게 장독 사이로 몸을 숨겼다.

“내일 아침 일찍 기주와 도연이를 비행기로 보내게, 그리고 미주는 당분간 저 안에 감금해 놓았다가 외부 사정이 좀 조용해지면 그때 가서 요양원에 수용하더라도 지금은 절대로 동굴 밖으로 내보내면 안 되네, 알겠지?”

“예!”

용천 일행이 밖으로 나가자 문은 닫히고 광호는 장독 사이를 빠져나와 다시 용천일행이 다녀간 동굴 안에 있는 문 앞까지 왔다.

그는 살며시 문을 열려다가 멈추었다. 용천이가 나갈 때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 동굴 안에는 어떤 시설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미주도 있을 것이요 도연과 기주라는 사내도 있을 것이다. 용천이 이곳까지 왔다가 그냥 나가는 것을 보면 이 동굴의 끝은 바로 여기라고 광호는 생각했다. 그는 돌아서 나가려다가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호는 살며시 문을 열어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이곳 내부가 동굴 안임에도 불구하고 바깥 동굴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내부 공기를 어디로 순환시켰는지 그리고 떨어지는 물방울을 어디로 내보냈는지 습기 하나 없이 쾌적한 공기 그대로였다.

옆으로 굴을 파서 방을 만들어 문이 나 있었고 안에는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분명 기주와 도연이리라고 광호는 생각했다. 바로 옆에 또 다른 동굴이 있었고 그곳에는 사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게 쇠창살로 봉쇄되어 있었다.

광호는 발소리를 죽여 가며 가까이 다가가자 미주가 그곳 안쪽 구석에 쪼그리고 잠이 들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여기 와서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저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다시 잡혀 들어와서 저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미주를 구해 주고 싶었다.

“죽일 놈의 자식, 저런 놈이 어째 종교 지도자고 거기다가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 지도자란 말인가?”

자신의 출세만을 생각하고 출세에 방해되는 선량한 사람들을 저렇게 가두어 고생시키는 것을 생각할 때 광호는 괘씸한 생각에 몸을 떨었다.

“그래, 한시바삐 이곳을 나가서 미주를 구해야지......”

광호는 한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기주와 도연을 때려눕히고 미주를 구해 나가고 싶지만 만에 하나라도 이곳에서 잘못하여 싸움이라도 붙게 되면 이들은 이곳 동굴 문과 요양소 문을 차단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영락없이 광호 자신은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어 이들에게 잡히겠지만 이곳을 빠져나가 다른 요원과 급습한다면 오히려 이들이 독 안에 든 쥐의 꼴이 되어 모두 잡힐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 미주 씨 조금만 참으세요, 내가 꼭 구해 드릴 테니......”

우선 광호는 혼자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는 독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궁금해서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들자 독에서 김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아마 요양원 환자들에게 공급할 김치일 것이다. 그는 독 한 개를 깨서 김치를 통로 앞에다 쏟아부었다. 그리고는 얼른 감독관이 보라는 듯이 내부에 있는 버튼을 눌러 동굴 문을 열게 하고 장독 사이로 몸을 숨겼다.

동굴문은 서서히 열렸고 이를 눈치챘는지 조금 뒤 감독관이 출입문에 감긴 쇠사슬을 푸는 소리가 들렸다. 비록 거리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감독관이 이곳의 문이 열렸음을 발견했음이 분명했다.

“큰 스님 일행이 나갔을 때 분명 문이 닫혔는데?...... 어라? 저건 뭐야?”

문 가까이 다가온 감독관은 김치가 흩어진 것을 보았고 주변을 찬찬히 살피던 그는 김치 항아리가 깨진 것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는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얼른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무엇을 찾는 듯이 두리번거리더니 구석에 있는 막대기를 집어 들고 주섬주섬 흩어진 김치를 한 곳으로 끌어모았다.

“아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는 용천이 지시했던 말이 생각 난 모양이었다. 그는 김치를 끌어모으던 일을 그만두고 동글 안에 있는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방에는 불이 켜져 이야기 소리가 들렸고 미주는 감금된 채 잠이 들어 있었다. 예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그대로였다.

“뭐야!”

인기척 소리에 문을 열고 도연이 머리를 내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 싱겁긴......”

하고 도연은 문을 다시 닫았다. 모두가 제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한 감독관은

“후유! 십 년은 감수했네.”

하면서 감독관은 다시 문을 빠져나왔다. 그 사이 앞에 숨어 있던 광호는 얼른 이곳을 빠져나와 요양실 쇠창살을 의지해서 감독관실까지 무사히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평소에는 이층 감독관실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문을 잠가놓고 사용하지 않았으나 용천 일행이 다녀간 뒤라 그때 문을 열고 감독관이 잠그지 않은 탓에 광호는 힘들이지 않고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아침이 되기 무섭게 광호 일행이 용천사에 들이닥쳤다. 먼저 일도에게 수색영장을 보여주고 바로 요양원으로 쳐들어가자 요양원 정문에는 용천이 들어가는 수사관 일행을 막아섰다. 용천으로서는 자기 부하 직원들이 수사에 대비할 시간을 벌자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 사람들아, 내가 누구인 줄은 아는가, 국회의원일세, 자네들이 뭔데 신성한 남의 영업장소를 급습하려고 하는가, 이곳은 환자들을 수용하는 요양원일세, 자네들이 소란을 피워 환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면 책임을 질 텐가?”

환자들에게 온갖 모진 일과 착취를 일삼았던 그는 환자들의 보호자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말했다.

용천을 바라보던 광호는 따귀라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 꾹 참았다.

“들어가세!”

광호는 더 이상 말은 하지 못했지만 대신에 몸으로 용천을 밀어붙이듯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때를 같이해서 용천은 빠른 걸음으로 광호의 앞을 먼저 지나서 요양원 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두 사람을 따라 들어온 광호 일행이 요양원과 동굴 속을 샅샅이 뒤져 봤지만 정작 있어야 할 미주와 기주, 도연은 어디로 갔는지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사찰 식구들 모르게 불의로 이곳을 급습했기 때문에 지금 들어온 이 통로 말고는 결코 이들이 이곳을 빠져나가지는 못했을 터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수색대원들은 속속 요양원 밖으로 나갔고 이층 동굴 출입구에서는 용천이 감독관과 무슨 말인지 서로 주고받으며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자신만만했던 광호는 그만 어깨가 축 처지고 말았다.

“절대로 내가 올 걸 미리 알고 도망갔을 턱이 없어......”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미주니, 도연이니, 기주니 모두 이 안에 있었는데 단 한 사람도 없다니 광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양원 아래층을 왔다 갔다 하면서 광호는 어젯밤에 일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환자 한 명이 요양원 철창문 사이로 손을 빼서 지나치는 광호의 옷 뒤를 잡으면서 나직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아무도 이 앞으로는 빠져나가지 않았소, 동굴을 만들고 나서부터는 이층 외부 통로는 폐쇄했고 특별한 일 외에는 이층과 일층의 통로는 저기 내부 계단 말고 아무도 동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어 있소, 어서 동굴 끝 방에 있는 가구를 들어내 보시오, 가구 뒤에는 새로운 통로가 있을 것이오, 서두르시오.”

생각에 잠겼던 광호가 깜짝 놀라면서 속삭이듯 말하는 사내를 돌아봤다. 볼품없이 비쩍 마른 사내가 철창문 사이로 굳은 표정을 짓고 광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굴을 파던 당시, 여러 명의 환자들과 함께 작업 인원으로 차출되어서 이곳 동굴을 파 들어갔던 준혁이었다.

광호가 수색대원 둘을 불러 급히 이층 계단을 올라가자 동굴 입구에서 감독관과 이야기를 나누던 용천이 무슨 눈치를 챘는지 급히 광호를 따라왔다. 광호가 수색대원을 시켜 방안에 설치된 장을 치우라고 이르자 갑자기 용천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고함을 질렀다.

“당신들 뭣 하는 거야!”

수색대원들이 치우고 난 장 뒤에는 또 다른 동굴이 뚫려 있었다. 이 동굴은 다른 동굴과 달리 잘 정리되어 있지도 않았으며 사람 두 명이 동시에 빠져나갈 수만 있도록 낮고 좁아서 통로의 역할만 하는 동굴처럼 보였다.

빠른 몸동작으로 용천이 동굴로 뛰어 도망가자 바로 그 뒤를 광호가 쫓았다. 몇십 보를 앞서 달아나던 용천이 동굴 벽에 손을 갖다 대자

“우리륵!”

하고 흙과 돌덩이가 천장에서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광호는 깜짝 놀라 용천을 따라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바로 뒤에 있는 동굴이 흙과 돌 더미에 묻혀 그만 통로가 막혀 버리고 말았다. 뒤를 따라오던 수색대원 둘이 돌과 흙더미에 묻혔는지 보이지 않았다. 과연 용천의 준비는 용의주도했다. 이런 일의 발생을 대비해서 흙과 돌 더미를 동굴 위에 가두어 두었으니 말이다.

다시 광호는 용천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굴 밖이 나왔다. 요양원 내부 반대편 동굴 입구에는 외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나무숲으로 잘 가려져 있었다.

정원이 갖추어진 건물의 뒤편이었고 산을 위시하여 넓은 삼면은 주택을 중심으로 보기 좋게 정원수를 심어 놓았다. 주택 정면 중앙에는 분수를 설치한 연못이 있었다. 광호는 낯익은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본 듯한 집인데......”

하면서 주변을 다시 돌아보려는 순간 용천이 기주와 도연을 대동하고 광호 앞에 나타났다. 기주와 도연의 손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식칼이 쥐어져 있었다. 용천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광호 앞으로 다가왔다.

“자네는 참 아까운 후배야, 동향이고 근성이 제법 있는 후배라 내가 키우면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인데, 쯪 쯪 쯪.....,”

그는 잠시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네, 모든 것을 잊고 내 편이 되어 주게, 자네만 내 편이 되어주면 자네의 앞길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지겠네, 어떤가? 나를 도와주지 않겠나?”

이 말을 들은 광호는 엄숙한 얼굴을 하고

“아직도 돌아가는 상황을 모릅니까? 이제는 손을 놓으시죠.”

“한 번 더 이야기하겠네, 오늘 일은 내가 깨끗이 뒤처리할 테니 자네는 이만 모른 척하고 뒤로 물러나 있게.”

“그럼, 체포하겠습니다.”

하고 용천에게 다가서자 동시에 용천의 발길이 광호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왔다. 광호가 옆구리를 맞고 비틀거리는 순간 다시 주먹이 명치를 향해 날아왔다. 광호는 배를 움켜쥐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또다시 눈앞이 뻔쩍였다. 이번에는 턱을 맞고 뒤로 나자빠졌다. 용천은 뒤로 넘어진 광호의 가슴을 발로 밟으며

“왜? 내가 그렇게 못 할 짓을 했나? 이 세상에서 아무 쓸모도 없고 가치도 없는 인간들을 잡아서 깨끗하게 청소를 해 주는데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내려놓으라고? 흥, 한때 너 놈 집구석에서도 네 어미가 미쳐서 네놈 식구들이 감당을 못해 내 요양원에 맡긴 일도 있지 않느냐? 내가 아니었다면 정신병이 든 네 놈의 어미 때문에 집구석은 벌써 거덜 나지 않았겠느냐? 그런 은인 같은 나를 뭐? 체포하겠다고?”

용천의 말에 광호가 반작을 했다.

“비록 사람이 병이 들어 아무것도 분별을 못 한다고는 하지만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요, 내 어머니가 정신은 이상했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어머니요, 당신을 쓸모없고 가치 없는 인간으로 대한다면 당신은 어떻겠소? ”

“내가 왜? 멀쩡한 내가 왜 그런 취급을 받는데?”

“만약 지금 당신이 그런 취급을 받는다면 당신이 멀쩡하든 그렇지 않던 그런 취급을 받는 사람은 역시 당신 자신 아니요?”

“아이고, 공자님 촛대 뼈 까는 소리 하는군, 내가 그따위 궤변을 들을 만큼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나?”

하면서 발로 가슴팍을 짓이기려는 듯 비틀려는 순간 광호의 양손이 용천의 발을 잡고 몸을 일으키면서 얼굴을 짓이기려는 방향을 향해 힘껏 틀었다. 용천은 몸이 뒤틀리면서 중심을 잃었고 동시에 몸을 일으킨 광호의 발길이 용천의 면상을 향해 날아왔다. 순간 그 잘난 용천의 얼굴이 그만 피투성이가 되면서 일그러졌다. 이때 기주와 도연이 칼을 고쳐 잡고 광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야, 너들은 뒤로 가서 구경이나 해, 너희들이 나설 일이 아니야!”

진흙탕 속에 몸을 담고 있었던 용천의 입에서 제법 사람다운 말이 흘러나왔다. 기주와 도연은 뒤로 물러났다. 피가 뭍은 입술을 손으로 쓱 문지르며 일어서려는 용천에게 광호의 주먹이 다시 날아갔다. 용천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광호의 발뒤꿈치가 용천의 등을 무자비하게 내려찍었다. 광호는 비틀거리는 용천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마무리 펀치를 날렸다.

그러나 비록 용천이 십여 년을 주먹을 쓰지 않고 살아왔다지만 한때는 주먹잡이였다. 그는 광호의 주먹을 수직으로 가볍게 받아 틀면서 동시에 오른손 주먹이 광호의 인중을 향해 날아왔다. 광호가 옆으로 얼굴을 틀자 주먹은 빗나갔고 광대뼈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광호는 정신이 삐쩍 들었다. 주먹이 지나친 자리에 꽤 묵직한 통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용천의 발길이 광호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갔다. 광호 역시 가볍게 손으로 받아치며 오른쪽 팔꿈치로 턱을 치려고 하자 용천은 몸을 뒤로 뺐다. 순간 광호의 돌려차기 한 방이 용천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갔다. 용천은 다시 몸을 살짝 앞으로 들어 밀었다. 그 바람에 오히려 광호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 기회를 놓칠 용천은 아니었다. 용천의 주먹이 광호의 명치를 향해 날아왔다. 명치 바로 아래에 강한 주먹이 파고들었다. 광호는 숨이 막혀 겨우 몸을 가누고 있었다. 다시 용천의 팔꿈치가 광호의 등을 내려찍었다. 광호는 그만 앞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 순간부터 용천의 주먹과 발길은 광호의 얼굴과 가슴 옆구리 할 것 없이 무자비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광호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는 하늘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용천이 하는 대로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어디 다시 한번 덤벼 볼래? 형사 나부랭이가 국회의원이란 신분인 나에게 감히 도전을 해? 나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야, 간덩이가 배 밖에 나와도 유분수지, 네놈이 백번을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 내겐 상대가 안 되지, 자, 지금 다시 한번 도전해 봐, 어떤 것이든 말이야, 모두 받아 줄 테니깐!”

용천이 제법 신사다운 모습으로 쓰러진 광호에게서 발을 떼면서 잠시 뒤로 물러섰다. 광호에게 일어날 여유를 주자는 것이었다. 사실 제까짓 것이 일어나 봤자 이제는 별 힘을 못 쓰리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소나기 뻔치로부터 벗어난 젊은 광호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 순간 광호는 몸을 왼쪽으로 뒤틀면서 오른쪽 발로 용천의 왼쪽 정강이를 힘껏 걷어찼다.

불의에 습격으로 왼쪽 정강이를 걷어 차인 용천의 몸이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었다. 벌떡 일어선 광호의 발길이 용천의 턱을 향해 날아갔다. 용천은 길게 뒤로 자빠져 일어날 줄 몰랐다.

용천이 나자빠져 일어나지 못하자 기주와 도연이 다시 칼을 들고 광호에게 대들었다.

“당신들, 아직 정신 못 차렸어?”

하고 짧고 강한 어조로 한마디 호통을 치자 기주와 도연은 공격하려던 자세를 멈추고 주춤하는 사이 광호의 발이 도연의 칼 든 손을 향해 날아갔다. 칼은 보기 좋게 연못에 빠져 버렸고 광호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전광석화같이 몸이 돌면서 다른 한쪽 발이 기주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갔다.

“퍽!”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기주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전의를 상실한 도연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미주는?”

“네, 저 안에......”

광호는 입술 가에 말라붙은 피를 한 번 쓱 문지르고는 미주를 찾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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