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추 2

3. 용천사의 위기(危機)

by 김수현

용천이 구속되고 기주는 광호에 의해 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있었다.

광호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지만 기주는 묵비권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광호는 우선 도연이 잡혔을 때 진술한 진술서를 바탕으로 기주에게

“당신, 김철을 왜 죽였어?”

하고 엄숙하게 반말을 하자 잠시 움찔하던 기주는 금방 얼굴빛을 고치고는

“무슨 말씀인지?...... 김철은 도연이가 죽였지 않습니까?”

하고 시침을 뚝 때고 말하자 광호는 안 되겠다는 투로

“이 양반아, 도연이가 벌써 당신이 죽였다고 진술했어, 한 번 대질심문을 해봐야 사실대로 말을 하겠어?”

이 말을 들은 기주는 흥분한 빛이 역 역했다. 그는 도연이 괘심 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김 철이란 사람을 때린 것은 도연이가 그자에게 목이 조여서 다 죽어 가는 것을 살려 놓은 것이 바로 자기였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면 그저 오리발이나 내밀면 충분할 것인데 하필 자신의 이름까지 밝힐 이유까지는 무엇이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도연이 그 자식이 그렇게 말했다고요? 이 자식이 자기 때문에 때린 걸 가지고...... 형사님, 그 자식도 사람을 죽였어요, 몇 년 전에 그 자식이 시골에서 올라온 아주머니를 죽여 놓고 주지가 힘을 써서 빼낸 거예요, 그게 뭐 자랑거리라고 평소에 식사 시간 때면 자주 아주머니 이야기를 꺼냈어요, 아마 공양주 보살도 알 거예요.”

얼마 전에 검찰청으로 도연을 조사한 모든 서류를 빼앗기다시피 넘겼기 때문에 구체적인 진술은 듣지 못한 광호는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뭐라고요? 그 아주머니가 누구입니까?”

“예, 안동에서 올라온 아주머닌데 무척 뚱뚱했어요, 그때는 지금 요양원을 짓지 않았을 때였고 몇 채의 무허가 건물에서 환자를 받을 때였어요, 그 아주머니는 집을 찾아간다면서 자주 방을 이탈했어요, 당시는 감독관들도 몇이 없었고 그래서 감시도 소홀했지만 어쩐 일인지 다른 사람보다 도연은 이상하리만치 그 아주머니를 미워했어요, 그날도 도연은 아주머니의 엉덩이를 발길질을 해서, 구둣발로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걸음을 못 걸을 정도였어요, 그뿐인 줄 아세요? 아주머니가 매일 밥은 많이 먹고 똥을 옷에다가 그대로 싸는 바람에 그 뚱뚱한 아주머니를 남자들 아니고서는 뒤처리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어요, 사실 나라도 별수가 없었을지는 모르지만 도연은 너무 지나칠 정도로 아주머니를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팼습니다, 아무리 병든 아주머니라도 매에는 장사가 없더군요, 그렇게 맞고서는 뚱뚱한 몸으로 스스로 일어나서 어렵게 뒷 처리를 하는 것을 보았으니 말입니다, 그 아주머니는 몸이 귀찮은지 매일 쉬지 않고 똥 싸는 일을 반복했으니 도연 역시 거의 매일 묶어 놓고, 때리고, 수면제를 먹이고, 사실 여자 아닙니까, 옷을 홀랑 벗겨서 몸을 드러내게 하고 겨울에 찬물로 씻기는데 정말로 도연은 사람 못 할 짓을 많이 했습니다, 아마 공양주 보살이 같은 안동사람이라고 그 아주머니를 많이 돌봐 주었습니다만 그분은 자기의 소관이 아니라 함부로 나서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결국에는 아주머니가 견디다 못해서 어느 날 아침에 묶인 채로 죽은 것 아닙니까.”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광호의 눈에는 매에 못 이겨 몸부림치는 어머니가 눈에 선하여 두 눈에는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기주는 말을 잠시 멈춘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큰 스님도 잡히셔서 모든 것이 다 끝났는데 무슨 말인들 다 못하겠습니까, 사실 검시관들도 다 우리 편 아니겠습니까? 우리 큰 스님이 발이 넓어 정계나 관계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검시관인들 골치 아프게 피해자 편을 들겠습니까? 거기다가 수시로 돈을 뿌렸으니 그 그늘이 얼마나 넓었겠습니까, 하물며 피해를 당한 사람들 가족에게도 적당하게 돈을 탐내는 가족 친지를 골라서 돈질을 했으니 서로 합의가 안 되는 것이 무에 있겠습니까, 그때 그 아주머니도 친척분이 와서 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큰 스님에게 돈을 받아서 갔는 줄 알고 있습니다.”

결국 용천이 잡히고 도연과 기주가 잡히자 도연이 기주가 김 철을 죽인 사실을 실토했다는 말에 광호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기주로부터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연은 광호 어머니가 팔다리를 묶어 놓고 나갔다 들어오니 죽어 있더라고 하면서 자신은 절대로 매질이나 구박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다음 날은 공양주인 순자가 참고인으로 들어왔다. 순자는 광호 어머니의 죽음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광호가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용천사에 갔을 때 주변에서 시중을 들다가 광호 친척들로부터 용천의 첩자로 오해를 받았던 바로 그녀였다.

순자는 광호가 그때 오열했던 그 청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도 감독관 도연이라는 사람이 가끔 발로 차는 것을 봤니더, 뚱뚱한 몸을 잘 가누기가 힘이 든 데다가 맞은 엉덩이가 아픈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을 다시 발로 차자 얼른 일어 나디 더, 나중에는 변을 많이 본다고 가져간 밥도 보리밥으로 바꿔서 반 그릇만 주디더, 자꾸 밖으로 나가니 자기들이 편 하려고 밤에는 수면제를 먹이고 잠을 재웠어요, 정신이 안 좋은 아주무이가 그 무거운 몸을 움직이자면 감독관들이 어떻게 했겠어요, 당시에는 나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부엌 때기인 내 힘으로는 도저히, 참 안 됐었어요.”

“그럼 그들이 행한 것을 사실대로 증언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광호가 묻자

“예, 하고 말고요.”

만약의 사태를 미리 대비한 용천은 머지않아 김 총재의 수족 중에 누군가는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늘같이 떠받치던 용천이 구속되자 용천사는 그야말로 적막감이 흘렀다. 지금껏 용천만 믿고 살아왔던 김 처사는 답답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 처사는 용천에게 하루 한 번이라도 면회를 가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었다.

면회를 가면 용천은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여기 처박혀 있을 위인이 아닌걸 아직도 모르시오?”

하면서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신 있는 본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니 김 처사는 용기도 생겨 수시로 영치금을 넣어 주었고 그 후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용천사 식구들과 함께 번갈아 가며 용천에게 면회를 갔다.

그날은 일도와 김 처사가 함께 면회를 갔는데 일도는 잠시 나가 있으라고 하고는 김 처사를 불렀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김 처사, 병풍 뒤편 맨 아래쪽 검정 테두리를 누르면 칼로 잘린 부분이 보일 겁니다, 그곳에 손가락을 넣으면 열쇠가 잡힐 겁니다, 내 탁상서랍 열쇠예요, 그 열쇠로 탁상서랍을 열면 편지 한 통과 필름이 들어 있을 겁니다, 필름은 내 지시가 있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보이지 말고 김 처사가 잘 보관해 두고 편지는 김 총재에게 우편으로 보내시오, 그러면 됩니다.”

“필름은 무슨 필름입니까?”

하고 김 처사가 용천에게 반문하자

“내가 여길 빠져나가는 중요한 열쇠요, 김 처사 본가에 내려가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다가 잘 보관해 두시오.”

누구의 말인가. 김 처사가 하늘같이 떠받치고 있는 용천의 말이 아닌가. 김 처사는 용천이 지시한 대로 열쇠를 찾아 김 총재에게 편지를 보내고 필름은 아무도 모르게 작은 항아리에 넣어서 뒤뜰에다 묻었다.

김 총재는 용천이가 쓴 편지를 받아 보자 깜짝 놀랐다. 편지에는 애원하는 듯한 내용이었지만 실상은 협박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용천은 이미 김 총재가 자신을 멀리하자 자신을 죽도록 사랑하는 금순을 설득하여 김 총재에게 수청을 들게 하고 총재 몰래 정사 장면을 찍어 필름에 담아 둔 것이었다.

김 총재는 김 처사가 보낸 용천의 편지를 받아 보자 용천과 대작을 하던 날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그날 이후 금순의 미모에 반해서 마음을 풀어놓고 여러 날 금순과 함께 호텔에서 밤을 보낸 일이 새삼 후회스러웠다.

“굼벵이도 뒹굴 재주가 있다더니 중놈의 자식이 이런 일을 꾸밀 줄이야......”

그는 금순과의 그날 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면 지금껏 쌓아 온 정치생명이 하루아침에 끝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강력한 리더 쉽 때문에 대놓고 대적할 사람은 없었지만 노심초사 뒤에서 비수를 들고 혹 빈틈만 보이기를 기다리는 자가 부지기수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놈이 구치소에 들어앉아 이런 편지를 보냈다면 분명 밖에 심복이 있을 터이니 그놈을 잡으면 필름을 찾을 수가 있겠구나, 그렇다면 어이, 비서!”

그는 용천사 사람들을 샅샅이 파악해서 용천의 심복들을 찾아내라는 지시를 내리는 한편 구치소로 사람을 보내서 용천을 달랬다.

“내가 스님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시오, 그리고 변호사를 통해 보석 신청을 내시오.”

김 총재가 보낸 사람의 말을 전해 들은 용천은

“내가 보낸 편지의 약발이 먹혀드는군.”

하고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용천은 김 처사를 시켜 바로 변호사에게 보석신청을 해 놓으라고 일렀다.

비록 용천이 구치소에 구속되고 그의 행실이 만천하에 소문은 퍼졌지만 용천사의 신도들이 더러는 발을 끊었지만 열혈신도들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요양원 또한 꿈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일도를 위시하여 혜천과 김 처사는 용천을 빼내려고 온갖 궁리를 다 해 봤지만 그럴싸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용천이 없는 기울어져 가는 용천사를 다시 일으켜 세울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용천의 보석 신청을 한 그날 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세 사람이 공양실에 모여서 대안을 모색하는 중이었는데 검은 봉고차 한 대가 용천사로 들어왔다.

“이 밤중에 누구야?”

발 빠른 김 처사가 의아해하면서 먼저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데 점퍼를 입은 건장한 청년 대여섯이 봉고차에서 내렸다.

“잠깐 따라가셔야겠습니다.”

맨 앞에 선 사내가 손을 들고 지시를 하자 다른 사내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세 사람을 방 안에서 끌어냈다.

“누구신데 왜 그러십니까?”

끌려 나오면서 그래도 힘깨나 쓰는 일도가 반항을 했지만 턱없는 짓이었다. 그들은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없이 세 사람을 쓸어 담다시피 봉고차에 처넣었다. 건장한 사내들은 봉고차에 끌려 온 셋의 손을 뒤로 묶은 후에 눈을 검은 천으로 가렸다.

“당신들은 누구요? 뭣 때문에 우리를 납치하는 거요?”

“야, 이 새끼야, 가보면 알 거 아니야, 너 이 새끼, 제일 말이 많아!”

하면서 한 사내가 일도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어이쿠!”

정강이를 구둣발로 걷어 차인 일도는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아픈 통증을 느꼈지만 손이 묶인 터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정강이를 차인 일도의 목소리에 미리 겁을 먹은 두 사람은 입 한번 벙긋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렇게 김 처사가 끌려간 곳은 두서너 평 크기의 시멘트 바닥에 덩그러니 나무 책상과 의자만 놓여 있는 밀폐된 공간이었고 출입구는 육중한 철문인데 철문 상부에는 달랑 사방 한자 크기의 좁은 철창문 하나만 밖과 안이 통하는 유일한 공기구멍일 뿐이었다. 다른 한쪽 벽면에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역시 사방 한자 크기의 쇠창살로 된 작은 창문 하나가 방과 방이 통하는 유일한 구멍이었다. 이 두 개의 창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싸늘한 콘크리트 벽과 천장뿐이었다. 천정에는 피복을 입힌 긴 전선줄이 갓을 쓴 백열등을 달고 있었고 백열등은 눈에 보일 정도로 굵은 먼지덩어리와 함께 사면 벽 아래와 나무 책상을 향해 무서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일도와 혜천은 어디로 끌려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국방색 군복을 입은 말끔한 사내 한 명이 한쪽 팔을 의자에 걸치고 다른 한 손으로 책상 위에 놓인 양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끈 후 천천히 김 처사를 향해서 일어서고 있었다.

“야, 너 그 필름 어디에 뒀어?”

“필름이라니요, 무슨?”

“이 자식이 어디서 능청을 떨어!”

군홧발이 김 처사의 앞가슴을 후벼 팠다.

“헉!”

김 처사로서는 이렇게 숨이 막혀 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아마 늑막 쪽에 맞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사내는 맞아서 허리를 구부린 김 처사의 어깨와 어깨 사이를 군화의 뒤꿈치로 내리찍었다. 그만 김 처사는 시멘트 바닥에 엎어져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사내는 김처사의 얼굴을 향해 물동이를 던지듯 퍼부었다. 김 처사의 입과 코 사이로 물이 들어왔다.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떴다. 다시 군홧발이 면상을 향해 무자비하게 날아왔다. 눈앞이 온통 시커멓다가 수많은 불꽃이 튀면서 코에는 핏덩이가 흘러내렸다. 손이 묶여 만질 수는 없었지만 김 처사가 생각하기에 아마 온 얼굴이 퉁퉁 부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두덩이도 입술도 모두가 부어서 당나발같이 튀어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묻는다, 필름 어데 있어?”

“무슨 말씀인지...... 제발, 나는 정말 몰라요.”

“이 새끼, 더 뒈져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그래, 이제 시작이야!”

얼마 뒤에 물통이 들어왔다. 손과 발이 묶인 김 처사를 책상 위에 걸치더니 뒷머리를 손으로 눌러 물통에다 담갔다. 김 처사는 버둥거리며 한참을 숨을 쉬지 않고 버텼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호흡은 곧 물이 그의 콧구멍을 타고 폐로 들어가고 있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때 그 사내는 김 처사를 눌렸던 손에 힘을 뺐다. 김 처사는 힘껏 고개를 위로 쳐들고 숨을 쉬었다. 그것도 잠시였다. 사내의 손목에 다시 힘이 가해졌다. 사내는 김 처사가 죽지 않을 정도로 수차례나 물통 속에다 얼굴을 넣었다 뺏다를 반복했다.

김 처사는 초주검이 되어서 책상에 늘어진 채로 쓰러져 있었다. 머리카락은 물에 젖어 머리에 찰싹 달라붙어서 그의 사각 얼굴이 더욱 각이 져 보였다. 그때 옆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일도 아니면 혜천이 일 것이라고 김 처사는 짐작했다. 잠이 쏟아졌다. 그는 작은 창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이 자식이 여기가 너희 안방인 줄 아냐? 일어나 이 자식아!”

사내의 구둣발이 다시 김 처사의 다리를 걷어찼다. 다리가 경직됐는지 감각이 없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니 맞은 다리가 다른 나무토막같이 김 처사의 몸에 그대로 붙어 있어선지 사내가 하는 대로 따로 노는 것 같았다.

“까짓것 말해 버릴까? 아니야, 아니야.”

김 처사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눈을 감아 버렸다. 용천이 자기더러 일부러 잘 치워 놓으라고 했는데 이걸 가르쳐 주면 용천사는 하루아침에 요절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견뎌야지, 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견뎌야지, 우리 주지 스님이 나올 때까지 이를 물고 견뎌야지!”

그때 그의 눈앞에 따뜻한 온기와 함께 밝은 빛이 비치자 감았던 그의 눈이 부셔왔다. 전등을 눈 바로 앞에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잠이 와? 자, 자봐!”

김 처사는 눈을 뜨고 그 사내를 바라봤다. 여기 끌려 와서 처음으로 바로 앞에서 사내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참 잘생긴 사내라고 김 처사는 생각했다. 가름한 얼굴에 짧게 깎은 머리를 뒤로 넘긴 그는 넓은 이마에 오뚝한 코하며 귀공자 같은 타입인데 어떻게 저리도 잔인할 수가 있는지 김 처사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잠이 쏟아졌다. 사내는 잠도 없는지 김 처사의 코앞에 전등을 갖다 대고 얼굴을 발로 짓이기고 있었다. 그러기를 족히 하룻밤을 보냈을 거라고 김 처사는 생각했다. “필름 어디에다 치웠어? 그것만 말하면 풀어 줄게.”

“도대체 무슨 필름인지 나는 모르겠는데 왜들 그러시오.”

“지독하게 독한 놈이군, 아직 덜 당했다 이거지?”

그는 일어서서 김 처사의 묶은 다리에다 밧줄이 달린 고리를 걸고 위로 당겼다. 김 처사는 팔이 묶인 채로 푸줏간 고기처럼 거꾸로 천장에 매달렸다. 그리고는 사내는 물을 담은 주전자를 가져와서 김 처사의 코에 붓기 시작했다. 콧구멍에서 따가운 통증이 눈을 거쳐 머리끝까지 찌르다가 이제는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사내가 콧구멍에 물 붓기를 잠시 중단했을 때는 그래도 살만은 했으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호흡을 할 만하면 다시 붓고를 반복했다.

“지기미, 될 대로 돼라!”

김 처사는 이제 이 일도 이력이 났다. 어쩌면 이런 고문을 당해보니 짜릿하고 묘한 쾌감까지 들었다. 다음에는 어떤 고문을 할까 하는 기대도 됐다. 그러면서 김 처사의 의식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김 처사와 일도, 혜천이 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끌려갔다는 공양주 보살의 연락을 받고 쫓아온 이보살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럭저럭 날이 밝았다.

세상일이라고는 절 일밖에 모르는 이보살로서는 구치소에 있는 용천을 찾아 면회를 갈 수밖에 없었다. 그 길 말고는 누구 한 사람도 상의할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생각으로는 비록 구치소에 용천이 수감되었을망정 시원하게 이 일을 해결해 줄 사람은 용천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기 남편 김 처사와 함께 용천사 일을 보기 시작하고부터는 용천이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신처럼 믿고 따랐다. 본래 이보살은 용천사의 크고 작은 일이나 주지 용천의 건강 외에는 다른 일이라곤 거들떠보지를 않았다. 그러니 남편이 없는 지금으로서는 용천이 하늘 같은 구세주일 뿐이었다.

밤새 잠 한숨도 못 잔 이보살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허둥지둥 구치소로 가서 면회신청을 하고 용천을 기다렸다. 그녀는 용천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아이고 스님,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아니, 김 처사는 어디로 가고 이보살이?......”

“예, 어제저녁 왠 건장한 사람들이 찾아와서 두 스님과 우리 남편을 봉고차에 싣고 어디론지 데리고 가버렸습니다, 스님 어떡하면 좋아요? 흐흑.”

“건장한 사람들이? 봉고차로?......”

“예, 어디로 갔는지...... 흐흐흐.”

용천은 김 총재가 자기에게는 보석을 신청하라고 유화책을 써놓고 뒤로는 필름을 찾기 위해 세 사람을 데려갔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일도와 김 처사가 면회를 왔을 때 용천이 일도를 나가 있으라 이르고 입이 태산보다도 무거운 김 처사를 불러 그 일을 맡긴 것은 뒤에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문을 열었다.

“이보살, 걱정 말고 집에서 기다려요, 수일 내에 김 처사가 올 것이니 세 사람 영양 보충이나 시킬 준비를 해 놓으세요.”

“영양 보충이라니요?”

생뚱스럽게 영양 보충이란 말에 이보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용천을 바라보자

“글쎄, 내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하고 웃음을 짓고 구치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이보살 생각으로서는 도저히 짐작 가는 것은 없었으나 어쨌든지 용천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지금까지 답답했던 체증이 한꺼번에 쏙 내려간 기분이었다.

용천의 예상대로 만 삼일만에 세 사람은 초주검이 되어서 기어서 왔다. 역시 잡혀갈 때처럼 눈을 가리고 데려와서 용천사 입구 도로에 던지듯 버려놓고 훌쩍 갔기 때문에 어디에 갔다 왔는지 셋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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