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추 2

4. 금순의 죽음

by 김수현


아니나 다를까 보석을 신청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용천의 죄가 중벌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보석 허가가 떨어졌다.

“그러면 그렇지, 누구의 말인데......”

하고는 용천이 의기양양하게 구치소를 나왔다. 그러나 한족신문에서는 집요하게 용천을 쫓아 기사를 냈다. 용천의 죄질을 봐서 보석 허가란 당치도 않는 결정이며 이러한 결정이 내린 배후에는 분명히 보이지 않은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한족신문의 기사를 정점으로 다른 신문사에서도 연일 이 사건을 다시 화제로 등장시켰다.

온 세상에 용천의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되기 시작하자 유치장에서 나온 용천은 스스로 이번 사태에서 무슨 특단의 조치가 없고서는 자신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니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용천이라도 마음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고래심줄 같은 끈을 갖고 있더라도 지금으로서는 온전치 못할 터, 살길을 찾아야 되는데.......!”

비록 지금은 보이지 않는 권력의 힘으로 바깥세상을 나오긴 했어도 확실한 명분 없이 아무런 방도도 취하지 않고 이대로 주저앉아 있다가는 감방 말고는 대명천지에 발붙일 곳이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가 생각해도 자명한 일이었다.

“위유~”

탄탄대로를 질주하던 용천이 조무래기 경찰 하나 때문에 당한 일을 생각하면 철저히 방비를 하지 못한 후회가 쥐어짜듯 가슴 속속히 밀려오기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깊은 한숨을 몰아쉰 용천의 발길은 공양실 뒤쪽에 있는 우물가로 향했다. 이 우물물은 여름에는 어름물 같이 차가웠고, 겨울에는 솜털 속에 들어간 듯 따뜻했다. 언제부터인가 부지런한 김 처사가 짬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이 우물 주변에다 울타리를 만들고 그 위에다 비바람이 치지 못하도록 슬레이트로 지붕을 덮어 놓았다. 거기다가 바닥에는 솜씨 좋게 시멘트를 바르고 문짝까지 달아 놓았기 때문에 사시사철 몸을 깨끗하게 씻기에는 아주 적격이었다. 이 우물물이 피부병 치료에 좋다는 소문이 나고부터는 일부러 몸을 씻으려고 오는 신도들이 많았다.

용천이 더운 여름이면 자주 찾았던 이곳이었다. 옷을 몽땀 벗은 용천은 차디찬 물을 퍼붓기 시작했다.

“좌르륵~”

용천의 머리부터 뼛속 깊숙이까지 찬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겨울철에도 냉수마찰을 했던 내가 이 무슨 일인가?”

놀란 그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깨끗이 씻은 용천은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님 앞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그때 서야 시원한 기운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용천은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모두 잊으려는 듯이 눈을 감았고 동시에 마음속에 있는 오늘의 처지에 대해서 하나둘 생각의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는 요 며칠 사이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보다 순수하고 명확하게 관찰하고 의식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분하게 가라앉았던 마음이 온갖 잡념으로 뒤엉켜 하나의 생각을 정립할 수가 없었다. 긴 한숨을 쉬며 눈을 떴다가 다시 감고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끝내 생각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 한 곳으로 집중하지를 못했다.

“마음을 모아야 해!”

다시 마음을 비우려고 안간힘을 써 본다. 그의 뇌리에는 지나온 발자취가 차근차근 영화 필름처럼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산에서 수도하던 일, 산에서 내려와 김 처사를 만났던 일, 금순을 만났던 일, 광호와의 대결과 구치소에서 생활,....... 온갖 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금껏 가고 싶으면 어디든 훨훨 날아서 마음대로 갈 수가 있었던 그가 지금 생각해 보니 도무지 갈 곳이 없었다. 비록 몸은 자유로웠으나 마음은 사찰 밖을 한 치도 나갈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시커멓고 육중한 무엇이 그를 가로막으면서 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용천의 생각이 금순에게로 향했다. 김 총재와 함께 잠자리를 하는 금순의 애교스러운 모습도 떠올랐다. 순간 무슨 일인지 모를 질투의 욕정이 그의 육신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점차 그것이 김 총재로 향했다. 금순이 살아서 용천의 곁에 있다는 것은 김 총재로서도 달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금순이가 김 총재에게 붙어서 생을 즐긴다면 김 총재로선 쓸모가 있을 때까지 써먹다가 필요 없으면 돈이라도 한 보따리 안겨서 멀리 국외로 보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자신과 붙어서 김 총재와의 정사를 약점 잡아 그것을 이용한다는 것은 김 총재에게는 자신과 금순이 평생에 고질 덩어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런 사실 만으로도 김 총재에게는 자신과 금순이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김 총재에게 금순이라는 약점만 없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은 차가운 감방 안에 갇혀서 영영 빠져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곳 말고는 갈 곳이 없단 말인가? 내가 다시 차가운 감방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말인가?....... 아니야, 그곳으로는 갈 수가 없어, 지금 내가 그곳에 들어간다면 내 일생에 밝은 햇빛은 두 번 다시 볼 수가 없어, 그러면 어떻게 해, 죽어? 죽음을 택해? 아니야, 이렇게 살만한 이곳을 두고 내가 죽다니, 이 많은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는 없어, 살아야지, 내가 감방을 들어가지 않고 살려면 무슨 방법이 있을까? 무슨 방법이 있을까? 아니야, 분명히 있어, 내가 살 방법은 분명히 있다고, 내가 생각하지 못해서 그렇지 분명 궁하면 피할 곳이 있다고, 피할 곳이.......”

용천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난국을 헤쳐 나갈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른다. 밖에는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작은 미풍으로 인해 법당 추녀 끝에 걸린 풍경소리가 용천의 귓전에 들릴 듯 말 듯 부드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눈은 아래로 쳐졌고 고개가 앞으로 숙이는가 싶더니 스르르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용천은 저려오는 다리를 펴면서 천장을 향해 몸을 틀었다. 법당문을 열어 놓지 않았는데도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스친다.

“내가 구치소에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인가?”

그는 잠결에도 몸이 허약해졌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본다. 그때였다. 천장 위로부터 이상한 낌새가 느껴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법당 천장 위를 쳐다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울긋불긋 단청을 한 천장에는 대들보가 지나온 사이에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었고 이제 막 그사이를 빠져나온 구멍보다 몇 십 배나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대들보를 칭칭 감고 혀를 날름거리다가 용천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잠시 구렁이는 긴 몸뚱이를 풀고 용천 코앞까지 내려와서 잡아먹을 듯이 독을 품기 시작했다.

“아악~!”

엉겁결에 용천은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구렁이를 손으로 치면서 눈앞을 가렸다. 온몸이 오그라든 순간 용천은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용천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징조인가? 구렁이라....... 구렁이면? 저 좁은 구멍으로 큰 구렁이가 나왔다?.......”

용천은 땀을 훔치고 나서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순간 용천의 머리에 번득이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죽음을 가장한 부활?....... 옳거니, 그래, 이 꿈이 내가 어려운 처지에서 빠져나온다는 꿈이로다.”

구렁이는 보통 여인네의 태몽 꿈이다. 그러나 지금의 용천의 처지로 꿈을 해석해 보면 저 작은 구멍에서 큰 구렁이가 나왔다는 사실이 지금의 어려운 처지에서 자신이 빠져나온다는 꿈이 아니겠는가. 용천은 해몽을 해 보니 결코 나쁜 꿈이 아니었다.

“그래, 막다른 골목이야, 그럴 수밖에 없어!”

순간 용천은 금순을 생각했다. 그것은 끔찍한 생각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영구히 자신을 살리고 기울어졌던 사찰을 다시 일으켜 세울 일거양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천은 세간에 자신이 죽어야 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금순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아니 자신이 살기 위해서 자신을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을 제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용천은 마음을 굳힌 듯 법당문을 박차고 나가 우물에서 다시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는 법당에 들어와서 다시 한참을 생각한 후에 이곳저곳에다 분주하게 연락을 취했다. 자신의 계획대로 모든 일을 마친 용천은 그때야 혜천을 불렀다.

“여보게 혜천, 이제부터 내 말을 명심해서 듣게, 자네가 내 말을 명심해서 들어주면 나는 다시 살아서 자네를 볼 수가 있다네, 그래, 자네는 내 말을 들어주겠는가?”

혜천이 법당 안으로 들어오자 용천은 혜천을 돌아보지도 않고 부처를 향해 염주를 굴리면서 눈을 감은 채 말을 던졌다. 다소곳하게 그 뒤에 앉은 혜천은

“들어주다 마다겠는가, 내가 누구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었겠는가, 주지 자네 때문이 아니겠는가, 무슨 말인가 해 보게, 설령 목숨을 잃는 일이 있더라도 자네를 저버릴 수가 있겠는가.”

하고 혜천은 엄숙한 얼굴을 한 채 한 점 막힘없이 대답했다.

“고맙네, 역시 옛날 벗인 자네밖에 없네,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언론들이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을 하고 난리들을 치고 있네, 내 처지가 지금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쥐의 형상이네, 세인들의 입방아를 피하려면 나는 죽지 않으면 안 된다네.”

갑자기 죽는다는 말을 들은 혜천은 깜짝 놀라 다시 자리를 용천 앞으로 당기면서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가 죽다니?”

하고 놀라서 묻는 혜천의 말에

“나는 죽어야 살아나네, 지금 죽지 않고선 살아날 방법이 도저히 없다네.”

하고 더욱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자

“아니, 죽어야 산다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자네와 김 처사만 알고 있게, 나는 이제 죽어서 다시 부활을 할 걸세.”

“허허 참, 점점 더 알 수 없는 소리를.......”

“자네는 며칠 뒤에 내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모 검사를 찾아가게, 그 사람을 찾아가면 내 시신을 자네에게 줄 걸세, 자네는 내 시신을 찾아다가 이 절에다 안치하고 아무도 모르게 미리 백여 개의 구슬을 준비하여 내 시신 입안에다 넣게, 그리고 다비식을 거행하게, 내 몸이 불에 타고나면 자네가 넣은 그 구슬이 나오게 될 것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일도가 사리가 나왔다고 고함을 칠 걸세, 그리되면 지금까지 흩어졌던 신도들이 다른 신도들을 보태서 구름같이 다시 모여들 걸세, 그러면 자네는 다시 공부를 해서 이들 신도들을 잘 관리하면 되는 걸세, 자네의 머리라면 내가 없는 동안 충분히 이 절을 맡아서 부흥시킬 수가 있을 걸세.”

“그럼 자네가 정말 죽는다는 말인가?”

“그건 나중에 알게 될 걸세. 이제 됐네, 자네는 나가서 김 처사를 들어오라고 이르게.”

하고 돌려보내자 한참 뒤에 김 처사가 들어왔다.

“내일 내가 사찰 모든 업무에 대해 인수인계를 할 것이오, 인수인계를 모두 마치면 나와 권 보살이 함께 나갈 것이오.”

“권 보살이라면 권 금순?......”

“그래요, 내가 나가면 김 처사는 큰 트렁크 하나를 준비해서 모 병원으로 가시오, 내가 지금 전화를 걸어 놓을 테니깐 거기 가서 모 과장을 만나시오, 그 사람이 행려병자의 시신 한 구를 줄 것이요, 그 시신을 트렁크에 넣어 모시까지 아무도 모르게 내가 투숙하고 있는 호텔로 싣고 오면 됩니다, 그리고 김 처사는 호텔 302호에 투숙하고 내 지시가 있을 때까지 꼼짝 말고 호텔 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됩니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해야 합니다, 이 일은 김처사와 나만 아는 무덤까지 가져가야 될 비밀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만 됐습니다, 나가 보십시오.”

김 처사는 두말하지 않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일도는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혜천에게도 물어보고 김 처사에게도 물어봤지만

“아무 일이 아닙니다.”

하고 모두 시침들을 뚝 뗀다. 분명 용천이 혜천과 김 처사를 불러 가면서 비밀리에 무슨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을 보면 중대한 이야기인 듯한데 자기 자신만 빼놓고 속닥거리는 것이 무척 서운했다. 그러나 별 수 있으랴, 두 사람이 입을 채웠는데 당장 알아낼 도리는 없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음 날이 밝자 아침 공양을 마친 용천이 어제와는 달리 엄숙한 얼굴로 식구들을 불렀다.

“내가 여태껏 남의 운은 봐주면서 나 자신의 운은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후회스럽네, 하늘이 짜 논 거미줄 같은 운세를 거스를 수가 없다는 것을 이제야 겨우 깨달았으니...... 내가 작은 사찰의 주지 아들로 태어나서 천여 명의 사찰 신도들과 수백 명의 요양원 환자들을 총괄하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주제넘게 나라 백성들을 주무르려고 욕심을 부린 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으니...... 용천이란 그릇을 모르고 무조건 퍼 담으려고 했으니...... 그것이 결국은 하늘의 노여움을 사게 된 것이네, 그런 후에야 겨우 내 눈앞이 보이기 시작하지 뭔가, 지금 나는 내 운이 여기 까지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네, 지금까지 그것을 거부하려고 한없이 버둥거려 봤지만 결국은 짜인 내 운대로 빈틈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으니, 꼭 수억 년 동안 한 치의 변함도 없이 해가 뜨고 지구가 돌고, 사계절이 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일세.”

용천은 잠시 숨을 돌리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혜천, 일도, 내가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내가 다시 유치장으로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일세, 그리되면 지금 사찰과 요양원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빠지고 말 걸세, 이제 사찰과 요양원은 주인이 바뀌지 않으면 곧 몰락할 걸세, 당장이라도 주인이 자네들로 바뀐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지 않으면 안 되네, 그리고 혜천이, 자네는 나를 거울삼아 부지런히 공부하게, 이 사찰의 운은 오직 자네에게 달렸네, 명심하게.”

“네!”

이 말을 들은 혜천은 비장한 각오로 대답한다. 그리고 용천은 말을 이었다.

“또한 두 분께서는 사양하지 말게, 그리고 김 처사님, 이 사찰과 요양원을 끌고 오는데 정말 사심 없고 충실하게 따라와서 고맙습니다. 이 두 사람을 앞세워 어리석은 내 전철은 밟지 마시고 잘 운영하시길 빕니다. 이 일 또한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니 사양하지 마세요.”

셋은 용천의 말에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어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말을 마친 용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인 자리에서 일도를 다독거려 준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처지와 앞으로의 사찰 운영 모두를 각자마다 직분에 맞게 배분한 다음 잘 다린 승복을 갈아입은 후에 금순이 거처하는 요사채로 들어갔다.

금순 깨끗하게 한복으로 곱게 갈아입고 용천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 일어서시게, 우리 같이 나가세.”

“어디를요?”

“따라오시게.”

용천이 차를 몰고 간 곳은 호텔이었다.

아담한 한옥 가구로 방안을 장식한 호텔이었고 윗목 한쪽 곁에는 시원한 산수도가 그려있는 여덟 폭 병풍이 펼쳐져 있었다. 그 앞에는 원앙금침이 구김살 하나 없이 반듯하게 깔려 있었다. 용천은 금순을 금침 위에 앉혔다.

“자네 아니었으면 살아생전 세상 구경을 두 번 다시 못 할 뻔했네, 자네가 나 때문에 맘에도 없는 사람에게 몸까지 바쳤으니 이 또한 하늘이 나에게 내려 주신 귀한 내 짝 아닌가, 내가 지금껏 결혼하지 않은 이유가 자네를 만나기 위해 하늘이 정해준 연분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네, 자, 내 절을 받으시게!”

하고는 평소 용천답지 않게 금순에게 큰절을 올리려고 하자

“아니? 오빠, 왜 이러세요?”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뜬 금순은 어찌할 줄 모르고 용천을 일으켜 세우려고 안절부절못했지만 오히려 용천은 일어선 금순을 다시 앉히고 하려던 절을 한 후에

“여보게, 내가 이 마당에 못 할 말이 무엇 있겠는가, 자네가 그때 미국으로 가져가려던 그 돈은 내가 병일이란 사람에게 돈의 일부를 주고 나머지는 내 정치 헌금으로 사용했네, 내 끝없는 욕심, 허망한 욕심, 지나친 것을 용서 바라네!”

용천은 자신의 솔직한 마음 모두를 금순에게 맞기는 듯 병일에게 받은 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당연히 금순이 이 사실을 추측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이 말에도 금순은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나 역시 그 돈이 내 돈도 아니에요, 온갖 고생을 겪고 모은 미주 아버지의 돈이 예요, 나도 그 돈으로 캐나다로 가서 오빠와 여생을 즐기려고 작정한 돈이었어요,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죠, 지금 오빠와의 이 순간이 나는 무엇보다도 더 소중한 시간이에요......”

용천은 금순을 자신의 품으로 고이 끌어 다녔다. 금순은 용천의 품 안이 이렇게 포근하고 아늑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따뜻한 봄날에 유리창 너머로 아롱거리는 아지랑이를 바라보는 그런 몽롱한 느낌이었다. 금순은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었다. 그녀는 용천의 품속에 기대서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고 이 꿈이 깨지 말기를 마음속으로 한없이 빌고 있었다.

이때 용천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자네 참 고마우이, 지금까지 자네와 내가 비록 세속의 깊은 정을 마음껏 나누지는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진정한 이성으로서 자네를 대하려고 하네, 사랑하네!”

용천은 지그시 눈을 감으면서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위에 포개졌다. 그리고 그의 혓바닥은 그녀의 작은 입속으로 파고들었다. 따뜻하고 감로수 같은 그의 신성한 액체가 그녀의 입안 가득히 맴돌았고 그녀는 단 한입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그의 혓바닥을 빨아댔다. 그녀의 몸은 용천에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고 그녀의 작은 우물은 뜨거운 용광로 속처럼 용천의 뼈 마디마디를 녹여 주고 있었다.

“정말 사랑해요, 사랑해요......”

숨이 넘어갈 듯한 그녀의 입에서는 연신 이 말만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격정의 시간은 너무나도 짧게 지나가 버렸다. 팔베개 속에 얼굴을 묻은 금순의 얼굴을 용천은 감싸 안았다. 그리고 구슬을 굴리듯 분명하고도 다정스러운 목소리로 용천은 말했다.

“우리 이대로 편안하게 죽었으면 좋겠다.”

용천의 입에서는 자꾸만 죽음이란 말이 나왔다.

“여보게, 죽음이 무엇인가. 살아 있는 인간이면 당연히 가야 할 길이 아닌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의 죽음은 이미 시작된 것 아닌가, 무엇이 두려운가,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지 않은가. 삶의 연속이지 않는가. 오직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 그래, 내 삶에 대한 최초로 부닥치는 두려움일 뿐이야, 그것은 두려움일 뿐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나의 기대를 생각지 않는 두려움뿐이야, 결코 그것은 아니야, 부처님은 우리에게 삶의 기대를 준 만큼보다 큰 죽음에 대한 기대도 줬다고 생각해, 다만 그것을 내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기 때문일 뿐이지, 이 사실도 모르고 내 평생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땅 넓은 줄만 알고 중구난방 헤집고 다녔으니...... 이제 내가 구차한 생명을 연장하려고 버둥거린다면 내 인생에 오점만을 남기는 것, 더 이상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또한 나는 남이 누리지 못한 모든 복을 다 누리고 살았으니 지금 죽어도 한 점 억울할 것이 없네, 다만 자네와 내가 젊은 나이에 서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제라도 진정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짧은 순간이지만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그 긴 세월이 이 순간과 같은 것을......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과 맞바꿀 수 있는 자네와 사랑을 해 봤으니 더 이상의 여한은 없네, 다만 이 세상에서 미련이 있다면 자네와 더 깊은 정분을 오래오래 나누지 못한 것이 한이라면 한이 되네, 그러나 이승이 있으면 저승도 있는 법, 못다 한 자네와의 정분은 저승에서 영원히 함께 누리세.”

“그래요, 처음부터 잘못 들여놓은 내 지우지 못할 과거사를 어찌 이생에서 다 씻어 내겠어요, 진정 내 죽음으로 이생의 모든 것들을 다 떨쳐버릴 수만 있다면 저승에 가서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요, 이제야 나도 사랑이 무엇인 줄 진정 깨닫게 되었는데......”

그녀는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결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 둘, 영원히 함께 하려면...... 그 길이라도......”

용천의 넓은 가슴을 파고든 금순은 담담하게 죽음까지도 받아들일 자세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승에서의 황홀한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고 있었다. 금순은 간교한 용천의 속셈을 깨닫지도 못하고.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금순은 진정 용천의 고백에 모든 것을 다 주리라고 마음먹었다. 아니 그녀는 용천을 위한 일이라면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자세였다. 금순에게 용천이 어떤 사람이었던가. 처녀시절부터 유일하게 마음에 그리던 사내가 아니었던가, 그 사내를 만나 보지도 못하고 나이 많은 홀아비에게 시집왔다가 다행하게도 시주승 혜천을 만나 십여 년 만에 다시 만나서 지금에 이른 것이 아닌가, 그런 그녀가 용천을 위하여 김 총재에게 몸까지 바쳤으니 용천의 사랑 고백에 온 정신이 팔린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진수와 그의 딸 미주의 생존,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가 된 자신, 거기다가 사랑하는 용천이 사면초가가 된 지금의 처지, 세상 어느 한 고소인들 용천을 제외하고 마음을 기대고 속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용천의 다음 세상에 대한 말은 밝은 희망의 빛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녀가 기댄 용천의 가슴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포근하게 껴안아 준 용천의 가슴은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탁 트인 그녀의 호수였고 따뜻한 고향이었다. 이 순간만 지나면 다음 세상에 용천과의 새로운 희망이 그녀를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우리 이제는 헤어지지 말아요, 네?......”

“걱정 말아요, 이제는 모든 일을 다 버리고 오직 당신과 함께 하겠소.”

“정말, 정말 당신을 사랑했어요.”

그 말에 용천은 대답도 없이 금순을 다시 끌어안았다. 사랑에 목이 메어 죽음도 불사하지 않은 금순의 모습이 보기에도 가련했다. 그러나 용천은 하나하나 자신의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용천은 금순을 사랑했다는 듯이 얼굴을 두 손으로 꼭 감쌌다. 그리고 그녀를 자신의 입술로 당기면서 진한 키스를 요구했다. 그리고 난 후에 천천히 얼굴에서부터 기린 목 같이 긴 그녀의 목에까지 혀로 핥기 시작했다. 용천의 입술은 점점 아래로 내려와 대춧빛 같은 유두에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는 호흡을 멈추다가 깊은숨을 몰아쉬며 유두를 빨기 시작했다. 비록 의식된 그의 행위였지만 스스로 육체의 향연에 자신도 점점 도취해가고 있었다. 금순의 몸 구석구석은 모두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용천은 그런 금순의 몸을 차근차근 혓바닥으로 더듬었다. 혓바닥은 차츰 배꼽 아래를 향했다. 이제 금순의 몸은 불덩이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온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아~ 이대로가 좋은데, 이대로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허리를 쳐든 금순의 욕정은 희열에 몸을 떨었다. 그럴수록 용천의 입술은 그녀의 배를 타고 내려와 무성한 수풀 사이의 아담하고 작은 봉우리에서 멈췄다.

“아~”

금순의 그곳은 촉촉하게 이슬을 머금고 있었고 그녀는 흥분에 못 이겨 자신도 모르게 용천의 머리를 잡고 끌어올렸다. 용천은 다시 그녀의 입술을 빨기 시작했고 숨이 넘어갈 듯한 그녀는 온 힘을 다해서 포개진 용천의 몸을 끌어 다녔다. 순간 그녀의 몸 전체가 용천의 몸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녀는 온 우주가 자신의 중심부로 꽉 채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천으로 인해서 채워진 몸속 어느 한 곳도 다른 물체가 그녀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을 것만 같았다. 순간 용천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순은 숨이 넘어갈 듯한 희열이 몇 차례나 자신에게 도래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금순이 용천을 믿고 모든 것을 주고 있을 때 용천은 자신의 삶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는 거추장스러운 일부분을 떼 내야만 한다는 생각과 육체의 향연이 한데 겹쳐서 그의 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용천이 던진 사랑이란 달콤한 마약에 취한 금순은 그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교활하고 잔인한 용천의 간계를 전연 눈치채지 못하고 흥분에 못 이겨 그저 허공을 향해 괴성만 지르고 있었다. 허기사 한 울타리에서 십수 년 동안 한솥밥을 먹은 병 도와 일도, 혜천이도 그의 속임수를 눈치채지 못했는데 하물며 사랑에 눈이 먼 금순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이제 금순은 격정의 순간들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녀는 아편 중독자와 같은 눈동자를 하고 있었고 자신을 꿈속으로 끝없이 한없이 끌어가고 갔다. 때를 놓치지 않고 용천은 입을 열었다.

“여보게!”

용천은 다정스럽게 금순을 부르면서 일어섰다. 아쉬운 듯 금순은 용천의 팔을 놓지 않으려 했으나 용천은 부드럽게 금순의 팔을 내려놓았다. 그는 벗어놓은 상의 호주머니에서 캡슐 2개를 꺼냈다. 금순은 취한 듯 게슴츠레하게 눈을 치켜뜨면서 용천을 바라보았다. 캡슐은 흔히 보아 왔던 지름이 5mm에 길이 약 2.5cm 정도의 양끝이 둥글고 짙은 녹색바탕에 비타민 종류를 담은 캡슐과 같다고 금순은 생각했다.

“그게 뭐예요?”

“고농도 비타민이야, 이걸 먹으면 피로가 싸악 가실 거야!”

용천은 피식 멋쩍게 웃자 금순도 따라 웃는다.

금순 역시 피로감을 녹여 줄 영양제라는 말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자~ 맥주도 한잔?”

그는 금순의 의사와 상관없이 작은 냉장고 문을 열고 진열된 맥주병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금순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질을 하면서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용천에 내놓은 캡슐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용천 역시 두 개의 캡슐을 손에 들고 맥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드러운 유방을 곁에 있는 용천에게 밀착시키며 용천의 팔을 꼈다. 그리고 행복하다는 듯이

“우리 이렇게.....”

하고 러브 샷을 청했다. 그윽한 눈으로 금순을 바라보던 용천은 다시 한번 금순의 팔짱을 바짝 겨드랑이에 꼈다. 그리고는 다른 한 손으로 먼저 캡슐을 입에 넣고는 컵에 담긴 맥주를 단숨에 마셔 버렸다.

“사랑하오!”

금순의 이마에 살짝 입술을 가져다 댄 용천의 이 말은 감미롭고 달콤한 말이었다. 순간 금순도 거리낌 없이 캡슐을 입에 털어 넣고 술을 마신다.

“나도 당신을....... 윽!”

순간 말을 채 끝나기 무섭게 금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강한 충격을 받은 듯 머리끝이 조여 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다가 미친 듯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동시에 금순의 혀는 목구멍으로 말려들어 가기 시작했고 잠시 뒤에 눈을 까뒤집은 채 입이 벌어졌다. 얼굴은 괴로움으로 가득 찼고 점차 흑갈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마귀의 얼굴같이 일그러지면서 깨끗한 피부에 자주색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통을 참지 못해서 앞가슴을 쥐어뜯었다.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녀가 쥐어뜯었던 앞가슴에는 손톱이 파고 들어간 자리에 작은 고랑이 파였고 금방 그곳에는 붉은 피로 골을 채워서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정사한 분비물이 배어 있는 금침 위로 하얀 그녀의 살결 사이로 흘러내린 새빨간 피가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그녀가 치를 떨 듯 괴로워서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면서도 용천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이 끔찍한 광경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힘없고 가련한 곤충이 그랬듯이 그녀는 무심하게 죽음을 내려다보는 방관자의 모습을 조금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죽음의 고통 때문에 설령 인식을 했어도 그 고통 속에 묻혀 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2~3분의 시간이 흘렀다.

한동안 몸부림을 치던 금순은 사지를 쭉 뻗었고 이제 그녀는 용천을 향해 눈을 부릅뜬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는 보통 사람이면 소름이 끼치련만 아무렇지 않은 듯 용천의 손은 그녀의 부릅뜬 눈 위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쓰다듬으면서 조용히 아래로 내려갔다.

“미안하고 고맙네, 잘 가게......”

용천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에는 부릅뜬 금순의 눈이 아까와는 달리 편안하게 감겨 있었다.

장수면 명덕리에서 태어나서 여러 남성들을 농락했던 금순은 사랑했던 용천의 말에 속아한 호텔에서 그렇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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