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추 2

5. 도피(逃避)

by 김수현


용천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인터폰을 들었다.

“준비 됐지요?”

“네!”

실내 인터폰에서는 바로 옆에서 대화하는 듯이 카랑카랑한 대답소리가 들려왔다.

“가져오세요.”

용천의 연락을 받고 들어 온 사람은 김 처사였다. 그는 이미 준비해 놓은 트렁크 속에서 용천과 비슷한 체구를 한 시신 한 구를 꺼냈다. 그는 그 시신을 금순과 함께 서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껴 앉고 있는 모습으로 침실에 눕혔다. 김 처사의 시신 만지는 솜씨가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많이 만져 본 솜씨였다.

“수고했습니다!”

하고 일을 마친 김 처사에게 용천은 평소와 다름없이 치하했다.

“뭘요......”

“내가 당분간 거처할 곳은 마련해 놓았죠?”

“네, 말씀하신 대로 스님께서 잠시 머무르실 방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본채의 대문을 통과하지 않고 아주 한적한 골목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방입니다, 여기에 주소가 있습니다.”

용천은 김 처사가 내놓은 주소를 보고 훑어보았다. 그는 김 처사에게 상세하게 지리를 물은 후에 고개를 끄덕이며 또 한 번 당부한다.

“내가 말한 대로 모든 일을 차근차근 진행하십시오.”

“네, 알았습니다. 그럼 저는..... 아~ 그리고 여기.....”

하고 작은 비닐 가방 하나를 용천에게 내밀었다. 용천은 김 처사가 내민 비닐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몇 점의 옷가지와 안경, 그리고 콧수염이 들어 있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변장할 도구까지 준비한 것을 보면 과연 김 처사는 용천의 영원한 심복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김 처사는 시신을 만진 고무장갑을 벗어 비닐에 싼 후에 빈 가방과 함께 트렁크에 넣고서 트렁크를 끌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용천은 옷을 바꿔 입은 후에 화장대 앞에서 뿔테 안경과 콧수염을 달았다.

“흐흠~ 역시......”

화장대 거울에 비친 콧수염과 검은 뿔테가 있는 안경을 쓴 용천의 모습은 자신조차도 알아볼 수 없는 전연 다를 모습의 용천이었다. 그는 차렷 자세를 하고 목을 좌우로 흔들어 보고는 만족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는 두 시신이 누워있는 주변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는 자신의 가방을 챙겨 들고 밖으로 향했다.

네온의 불빛과 인간들의 물결로 출렁거리는 서울의 최 중심가인 호텔 앞 거리는 한낮이나 다름없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용천은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려고 한 동안 길에 서 있었으나 하나같이 다른 손님이 가로채 버린다. 할 수없이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버스길을 향해 발길을 옮기려다 마침 내리는 손님이 있어 택시를 탈 수 있었다.

김 처사는 용천의 마음을 잘 읽고 있었다. 우선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믿을 만한 숙소를 정해야 했다. 그는 전에부터 용천사에 열심히 다니고 있던 열렬한 신도의 집을 당분간 피신할 피신처로 마련해 두고 있었다. 숙소는 흑석동 비계에 있는 조그마한 단독 주택이었다.


용천은 김 처사가 안내한 쪽지대로 택시를 타고 흑석동 버스종점에 내렸다. 비록 밤늦은 시간 변두리의 버스 종점이었지만 대학가가 있는 이곳 술집들은 손님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한참 주위를 인식한 듯 고개를 숙이고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연못시장 앞을 지나 비개 앞을 오르자 그는 메모지를 들고 김 처사의 말을 되씹으며 좁은 골목길을 오르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움푹 가라앉은 보도블록들이 여기저기 보였고 제법 가파른 골목길을 서로 마주하고 총총히 붙어 늘어서 있는 단층 양옥들, 이 양옥들은 골목길 경계담장이 안방이든 작은방이든 방의 벽이요, 대문이 곧 마루를 통하는 현관문이었다. 이들 집들은 십삼사 평의 대지전부를 주택으로 쓰다 보니 사실상 마당이라곤 기껏해야 방 한 칸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런 집들이 뱀 같이 긴 골목길 양쪽을 이어가고 있었다. 시장 앞과는 달리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용천이 생각키로는 아마 산 중턱은 넘어섰는가 보다. 대문 옆에 창문을 사이에 두고 출입문 하나가 시커먼 자물통을 중간에 끼고 있는 것을 보면 김 처사가 그린 약도대로 분명 거기쯤이라 생각하고 발길을 멈췄다. 그는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문패를 확인하고는 대문 옆 조그마한 광창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또 다른 문의 잠금 쇠에 키를 꽂았다.

문은 도로 쪽으로 열렸고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골목 탓에 캄캄한 문틀을 손으로 더듬거리며 스위치를 찾았다. 스위치는 입구 문손잡이 옆에 있었고 스위치를 올리자 60촉 백열등이 어두운 골목까지 빛을 내뿜었다. 그는 무엇을 감추려는 사람처럼 얼른 문을 닫아걸었다. 바로 앞에는 신발 너덧 켤레를 벗어 놓을 만한 조그마한 현관하나와 바로 그 옆에 아궁이 하나가 철판으로 된 둥근 연탄 뚜껑으로 덮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좁은 면적을 최대한 이용하다 보니 연탄을 쌓을 공간조차도 없었으며 겨우 아궁이 턱 위에 바싹 마른 1 9공탄 4장이 비집고 자리하고 있었다. 문턱은 반자 높이였고 두 평정도의 조그만 방에는 노란 싸구려 얇은 장판이 용천을 반기고 있었다. 방은 깨끗하게 쓸고 닦아 놓았고 바로 마주 보는 방 벽에는 옷을 걸어 넣을 수 있는 새 캐비닛이 자리하고 있었다. 짧은 행적에도 김 처사의 충성스러운 배려가 깔려 있는 것을 용천은 흐뭇하게 느끼고 있었다.

벽과 천장에는 싸구려 종이 벽지로 도배되어 있었고 벽에는 옷걸이를 대신해서 몇 개의 못이 박혀 있었다. 비록 싸구려 재료로 치장을 했지만 제법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방의 출입구는 대문을 거치지 않고 아예 안채와 별개로 구분해서 세를 놓기 위해 만든 방이었다. 김 처사가 용천의 도피처로 사람들의 접촉을 피하려고 안채를 통하지 않게 지어진 가장 적합한 방을 구한 모양이다.

용천은 방으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캐비닛 문을 열어젖혔다. 캐비닛 속에는 이불과 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옷걸이에는 새 잠옷도 걸려 있었다. 용천은 이불을 방바닥으로 끌어내려 아무렇게나 펼쳐 놓은 뒤 뒤로 벌렁 누워 버렸다. 긴장한 탓에 피로가 겹쳐 왔다. 용천의 두 눈은 스르르 감기기 시작했다.

얼마를 지났을까. 여체에 대한 탐욕을 지나치게 즐겼던 용천으로서는 무척이나 피곤했던 모양이었던가. 아니면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해 지나치게 몰두했던 모양이었던가. 용천은 누가 업고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수면에 빠져 들었다.

용천이 천둥소리에 놀라 눈을 떴을 때는 다음 날 한 낮이었고 조그만 광창은 밤과 같이 꽉 막힌 어두움으로 덮여 있었다. 좁은 방안 역시 칠흑 같은 어둠으로 사방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이어서 천둥소리와 함께 굵은 물방울이 벽과 광창을 요란스럽게 두드리기 시작했고 자지러지는 듯한 번개 소리가 용천의 귀를 찢듯이 두드렸다. 어둠이 깃든 하늘에 억수 같은 비를 뿌리면 두려움이라도 있으련만 용천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잠에서 깨어나 빙긋이 혼자 웃음을 지으면서 전등불을 켰다.

“그래도 하늘이 금순의 혼을 위로해 주려고 비를 내려 주는군!”


한편 용천과 금순이 투숙했던 호텔 앞거리에도 어둠이 몰려오는 듯 하늘은 온통 새까만 구름으로 뒤 덮이더니 동에서 서에서 천둥과 번개가 연달아 치기 시작했다.

“두둑, 투둑, 투두둑!”

여기저기에서 주먹만 한 굵은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서 쏟아지는 빗방울이 아스팔트 위를 뚫어지라고 두드리기 시작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내리는 빗줄기 때문에 주변은 금방 깜깜해졌다.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들이 속도를 줄이고 더듬듯이 기어가고 있었다.

그 많던 행인들은 모두 어디로 피했는지 인도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도 보이질 않았고 차도에만 크고 작은 자동차들이 빵빵 소리를 질러댄다. 비바람을 동반한 폭우로 인해 한 행인의 우산이 까뒤집혔다. 앙상한 대나무 우산 끝에 달린 비닐이 겨우 붙어서 세차게 날리고 있었고 그는 텅 빈 거리에서 세찬 비바람을 맞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 어쩔 줄을 모르고 서있었다.

“비도 많이 오네!”

호텔 룸 청소원은 복도 유리창을 통해 칠흑 같은 하늘에 번쩍이는 번개를 무서운 듯 바라보다가 얼른 고개를 돌리고 룸 앞으로 청소 도구함을 끌고 갔다. 그리고는 용천이 묵었던 첫 번째 룸 301호 앞에 서서 도어 록을 눌렸다. 안에서 걸려 있는지 도어 록이 꿈쩍을 하지 않자 청소원은 혹시 사람이 안에 있나 하고 다시 벨을 눌렸다.

“딩동, 딩동, 딩동!”

벨을 수차례 눌려 봤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오늘따라 룸의 키 뭉치를 가져오지 않은 그녀는 우선 다른 룸부터 청소를 마쳤다. 그리고는 용천이 묵은 방 벨을 다시 한번 벨을 눌렀다.

“딩동, 딩동!”

여전히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녀는 혹 문이 열릴까 싶어 도어 록을 힘 있게 흔들어도 봤지만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방 키를 프런트에 맡기고 외출한 모양이지?”

이 룸 손님이 외출을 하면서 카운터에 키를 맡겼을 거라고 룸 청소원은 추측했다. 평소 손님들은 그렇게 하고 외출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늘따라 프런트에서 보조키 뭉치를 받아 오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머리가 나쁘면 수족이 고생한다더니만 내가 바로 그 짝이네......”

룸 청소원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1층 프런트로 내려갔다.

“키 좀 주세요!”

룸 청소원은 프런트의 카운터에 손을 얹고 안내양에게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건넸다.

“왜요? 룸이 잠긴 곳이 있어요?”

“301호가 잠겨 있어요.”

안내원은 수십 개의 키가 들어 있는 사각박스를 훑어 내려오다가

“아니? 손님이 키를 맡겨 놓지 않았는데요?”

하고 말하자 룸 청소원은 의외라는 듯이

“그래요?”

“아니 어젯밤만 자는 걸로 계약되어 있는데...... 뭐야, 벌써 2시가 넘었잖아, 혹시 손님이 안에 있는 게 아닐까요?”

프런트 안내양은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쳐다보면서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자 청소원은

“아뇨, 몇 번을 노크도 하고 벨도 눌려 봤지만 대답이 없던걸요?”

하고 안내양이 내민 보조키 뭉치를 받아 들었다.

“혹 룸 안에 손님이 계실지도 모르니 조심하세요.”

안내양이 노파심에서 한마디 던지는 말에 룸 청소원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찢어질 듯이 번쩍이는 번개와 함께 전차가 굴러가는 듯한 천둥소리가 이어졌다. 그녀는 얼른 엘리베이터에 타고 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빠른 손놀림으로 키 뭉치에서 301호실 키를 찾아서 다른 키와 섞이지 않게 빼내 들었다.

3층 룸에 다시 온 그녀는 키를 넣고 도어 록을 살며시 누르면서 문을 열었다. 그녀가 현관을 들어서자 거실로 통하는 덧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열린 덧문 사이로 베란다 창문에 걸려 있는 부라인 더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창문에 부딪쳐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런! 비가 쳐서 빗물이? 아이고 저런!..... 역시 키를 갖고 외출한 모양이군!”

열린 창문 사이로 빗물이 내려치면서 흥건하게 고인 물이 탁자 밑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거실 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밖에 있던 청소 도구함을 끌고 들어와 마포걸레로 물기를 닦아내고 난 후 투숙객이 머무는 방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 그곳 방문도 반쯤 열린 채였고 열린 문안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불을 켜 놓고 그대로 나간 모양이지?”

그래도 혹 손님이 있을까 봐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주먹을 쥔 채 중지손가락을 구부려서 반쯤 열린 문을 두드렸다.

“손님, 청소원입니다, 계십니까?”

안에서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자

“잠깐 들어가겠습니다.”

“.........”

예상대로 손님이 없다는 것을 느낀 청소원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또다시 자지러지듯 번개가 쳤다.

“애그머니나!”

룸 청소원은 깜짝 놀랐다. 두 남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꼭 껴안은 채 잠자는 듯 입을 맞대고 있었고 이불은 그들의 발밑에 차여 있어 나신을 그대로 들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얼른 고개를 돌렸다.

“.........”

놀라는 기척에도 잠시 동안이나마 두 남녀로부터 아무런 대구가 없자 그녀는 은근히 호기심이 발동했다. 슬며시 곁눈질을 해 보았다. 순간 그녀는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두 손님 곁으로 다가갔다.

“여보세요, 손님!”

하고 남자의 어깨를 건드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확 하고 소름이 끼쳤다.

“우르릉, 꽝! “

때를 같이해서 갑작스럽게 천둥소리가 들리고 번갯불이 번쩍였다.

“아악~”

입을 마주대고 있던 사내가 앞으로 폭 쓰러졌다. 심장이 멎을 뜻한 놀라움에 청소원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룸 청소원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단숨에 계단을 뛰어서 프런트로 내려갔다. 너무 놀란 그녀는 프런트를 향해 더듬거리며 소리쳤다.

“여, 여기, 사람이, 사람이.......”

“사람이 뭐라고요?”

“사..... 사람이 둘이나 죽었어요!”

프런트 안내원은 사람이 죽었다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집게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하고 얼른 룸 청소원을 프런트 한쪽 구석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아줌마! 정신이 있어요? 없어요? 지금 사람들에게 광고할 일이 있어요?”

안내원은 청소원에게 조용하라고 당부하고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그로부터 몇 분 뒤에 호텔로부터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달려왔다. 사복을 입은 사내가 다른 경찰관에게 룸 주변을 엄중하게 단속하라고 이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호텔의 책임자에게 신원을 물으면서 젖빛 비닐장갑을 꺼내서 끼고 한 동안 시신의 이곳저곳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동수사를 끝낸 경찰관은 경찰서로 돌아갔다. 얼마 뒤 경찰에서는 죽은 시신이 국회의원 신분으로서 구속되었다가 며칠 전에 보석으로 유치장을 나온 용천사의 주지인 용천이었으며 옆의 여자의 시신은 그와 내연의 관계인 신도 권금순이라고 발표했다.

수사 진행과정은 용천이 국회의원이란 신분 때문에 곧바로 상부에 보고가 되었고 상부에서는 이 사건을 검찰이 직접 비밀리에 수사한다는 지시를 경찰에 내렸다. 사건을 수사하던 수사과장은 자기가 맡은 사건을 초동수사 단계에서 빼앗기듯 검찰에 넘기는 것이 매우 불쾌했다.

“뭐야, 우리가 허수아비인가? 자기들 멋대로 사건을 뺏어가게?”

“뭔가 구린 냄새가 나는데......”

수사반장이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다음 날 한족 신문에는 또다시 용천의 죽음에 대해 머리기사가 실렸다. 신문 2면과 3면 역시 국회의원 용천의 죽음에 대해 낱낱이 파헤쳐서 기록되어 있었고 특히 용천이 보석으로 구치소를 나오게 된 석연찮은 동기를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또 자살 동기로는 뚜렷한 근거는 없었으나 용천이 보석으로 구치소를 일시적으로 나왔지만 사회의 여론으로 봐서는 결국은 다시 구속될 것이 틀림없고 중형을 선고받을 것임이 확실했기 때문에 이를 비관 자살했음을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용천이 소유하고 있는 많은 토지와 재산이 있음에도 유서 한 장 없이 자살했다는 것은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기에 충분했다.

광호 역시 용천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관할 경찰서로 달려왔으나 이미 검찰에서 조사한다는 지시와 함께 시신을 거두어 간 뒤라 아무런 단서도 확보하지 못했다.

“용천이 죽다니, 그럴 턱이 없어, 그것도 자살이라니 말도 안 돼!”

그는 이 사건을 캐내기 위해 다시 검찰청으로 쫓아갔다.

“우리가 알아서 수사하겠다는데 당신이 왜 그러냐?”

고 수사관이 오히려 건방지다는 듯이 내 쫒듯이 광호를 검찰청 밖으로 몰아냈다.

“분명 무엇인가 사건을 조작하고 있어, 용천이 죽어야 할 뚜렷한 사인이 없단 말이야!”

용천 주변에는 아직도 돈과 권력이 있는 세력들이 서로 똘똘 뭉쳐서 거대한 산맥을 만들어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 날 자신의 뜻대로 모든 일이 착착 잘 진행되는 것을 확인한 용천은 콧수염과 가발 그리고 검고 굵은 테 안경을 쓰고 도피처인 북한산을 가기 위해 문 밖을 나섰다.

같은 시간에 광호도 용천의 사실을 파헤치기 위해 출근을 서둘렀다. 그도 역시 용천이 묵은 그 집에 하숙을 하고 있었다. 광호의 뒤를 따라 그 집주인의 딸인 진경이도 같이 나왔다. 그녀는 간편한 등산복 차림에 등에는 앙증맞은 가방 하나를 메고 있었다. 꽤 큰 키에 서양인같이 갈색의 머리를 하고 있었고 머리는 뒤로 감아올렸으며 굵은 눈에 약간 붉은색의 눈동자를 소유하고 있었다. 눈썹은 끝이 살짝 위로 올라가서 굵은 눈에 비해 날카로운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한참 피어나는 부드러운 볼이 튀어나온 광대뼈를 잘 커버하고 있었다. 코는 알맞게 얼굴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끝이 뾰족하여 약간 건방진 모습이었고 입은 미소와 함께 하얀 치아를 들어내면서 관골에서부터 입 언저리를 타원형으로 한 예쁜 봉우리를 만들고 있었다. 용천은 언 듯 그녀의 인상에서 풍기는 강한 인상이 과부의 상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순간 용천은 옆에 있는 광호를 보자 무의식적으로 움찔하고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

그는 얼굴색이 금방 붉어졌다. 그러나 정작 광호는 용천을 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웃는 얼굴로 한 집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눈인사를 하면서 그대로 지나쳤다. 그때서야 용천은 자신이 변장을 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

용천 자신이 금순의 죽음을 보고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것을 광호를 보자마자 놀라서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을 생각하고

“흠, 저자가 내 평생에 천적이구만!”

하고 혼잣말로 내뱉으면서 광호와 진경의 뒤를 따라 천천히 골목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광호의 생각은 오늘 어떻게 하면 용천의 시신을 한 번이라도 확인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용천은 또 한 번 주변을 한 바퀴 돌아봤지만 광호는 죽었다는 용천이 이렇게 바로 곁에서 할보하는데도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바삐 제 갈 길만을 가고 있었다.

안심하고 흑석동 버스 종점에 도착한 용천은 얼른 가판대에서 신문을 한 장 사서 펼쳐 들었다. 혹 자신의 어제저녁일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보기 위해서였다.

신문 일면에는 용천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실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용천에 대한 기사가 빼곡하게 실려 있었다. 신문 2면과 3면에도 역시 용천의 죽음에 대해 낱낱이 파헤쳐서 기록되어 있었고 특히 보석으로 구치소를 나오게 된 석연찮은 동기를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기사와 여론이었다.

또 자살 동기로는 뚜렷한 근거는 없었으나 용천이 보석으로 구치소를 일시적으로 나왔지만 사회의 여론으로 봐서는 결국은 다시 구속될 것이 틀림없고 중형을 선고받을 것임이 확실했기 때문에 이를 비관 자살했음을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용천이 소유하고 있는 많은 토지와 재산이 있음에도 유서 한 장 없이 자살했다는 것은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는 기사였다.

마침 그때 버스가 들어왔고 승객들이 터질 듯이 밀려서 내리기 시작했다. 내리는 승객들은 거의 학생들이었지만 버스를 먼저 타기 위해 우르르 모여든 승객들은 대다수가 일반인들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밀어내면서 차문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들 역시 신문을 사든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느 한 사람도 용천을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용천은 몸을 구겨 넣듯이 함께 승객들 틈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터져 나갈 듯이 버스 발판에 발을 걸친 승객들이 키 작고 땅딸한 차장 아가씨의 엉덩이에 밀려서 차 안으로 점차 빨려 들어갔다.

“오라이!”

혹 얼굴이 금방 닿을 듯 코앞에, 뒤통수에 승객들 사이에 변장한 얼굴이 들어 날까 용천은 조심을 했고 차는 달린다. 열린 창문 사이로 그래도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야, 너 신문 봤어?”

한 승객이 비좁은 차내에서 다른 동료 승객에게 말을 건넨다. 코앞까지 얼굴을 마주 댄 한 사내가 대답한다.

“중 용천이 죽은 거?”

“야, 대단한 놈이던데!”

“정말 자살했을까?”

“글쎄 말이다, 너 같으면 그 많은 돈을 두고 죽을 수 있을까?”

“모르지, 돈이면 다 되는 세상, 그 거물 중이 죽었다는 게 도대체 믿을 수 없지!”

“수사를 검찰에서 한다고 했으니 잘하겠지 뭘.”

“검찰도 다 한 통속인데 하기는 뭘 해!”

같은 시간 오병일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신문을 펼쳐 들었다. 신문 1면부터 대문짝만 하게 용천의 이름과 함께 사진을 보자 얼른 글을 읽어 내려갔다.

한 참을 읽던 병일은

“아니? 이 양반이 죽다니? 그것도 금순이와 함께......?”

금순이 죽었다고 하니 병일로서는 일단은 한숨을 놓았다. 지금껏 금순의 눈을 피해 다녔던 것이 이제부터는 두 다리를 뻗고 편안하게 활개를 치고 다닐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죽기 전에 용천이 행려병자의 시신을 부탁했었지!”

그는 아무도 모르게 연고가 없는 행려병자의 시신을 김 처사에게 건네준 적이 있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이 양반이 시신을 어디에 써먹으려고 달라고 했을까?”

차는 어느덧 수유리 종점에 도착했다.

“어어?”

용천은 깜짝 놀랐다. 종점에서 내린 사람들 틈에 아까 광호와 같이 나왔던 그 아가씨가 가고 있지 않는가.

“흐흠, 그래? 그렇다면......”

그는 빠른 걸음으로 진경이에게로 다가갔다.

“어이, 색시?”

하고 부르자 진경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아~ 아저씨, 저희 집에서 나오신 분이죠? 어디 가세요?”

웃으면서 용천을 대하는 진경은 잠깐 본 아까와는 달리 대단한 미인이었다. 잠깐 본 첫인상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용천은 그녀의 광대뼈와 눈꼬리에서 풍기는 강한 인상만 없애 준다면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아까운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북한산 00사에 볼일이 있어서 간다오, 색시는 어디를 가오?”

“예, 저도 00사에 가는데, 아저씨는 무슨 일로 가세요?”

같은 방향이란 말에 용천은 말을 바꾸어

“아, 나는 요 아래서 볼일을 좀 보고 가야 하고....... 그런데 색시의 얼굴을 보니 혼자 살 팔자를 타고났구먼, 그래, 생시가 어떻게 되나?”

이 말에 깜짝 놀란 진경은

“아니 어떻게?”

“생시나 말해 보게.”

하고 용천이 재촉을 한다. 벌써 자신의 사주를 보려고 북한산에 가는지라 막힘없이 대답한다.

“네, 00년 0월 00일 생이고 진시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용천은 오른쪽 엄지손가락으로 다른 네 개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짚어 보더니 가슴속에서 만세력을 꺼낸다.

“색시가 선을 보고 결혼할 사람이 생겼구먼, 색시의 사주가 혼자 살 팔자라 그걸 다시 확인하려고 지금 00사에 찾아가는 것이구먼, 그렇다면 아무 말 말고 이 길로 돌아가게, 자네는 거길 가도 내가 한 말과 똑같은 말을 들을 걸세, 그리고 그 결혼은 하지 말게, 이 말을 명심해서 듣게, 그리고 3년 뒤에 국수리에 있는 용천사를 찾아오게.”

“예? 용천사요?”

진경이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용천은 주섬주섬 갈 길을 향해 떠나가 버렸다.

진경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용천은 수염과 안경 그리고 가발을 벗어버렸다.

가발을 벗어 버리자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시원한 바람을 동반한 햇살이 용천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었다.

“이제야 내 세상이군!”

북한산 입구로부터 매미 우는 소리가 용천의 발길에 의해 뚝 그치더니 용천이 지나가자마자 다시 길목에서 자지러지듯이 울기 시작한다.

용천의 발길은 계곡물을 끼고 양 옆에 숲이 들어차서 우거진 좁고 가파른 길을 올라가고 있었고 좁은 계곡에는 어제 내린 빗물이 그 큰 바위라도 굴러 버릴 듯이 흰 거품을 튀기면서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계곡 건너편에는 여러 겹 가로로 잘게 자를 되고 자르듯이 층층이 촘촘하게 쌓여 있는 이끼 낀 육중한 바위가 평풍 치듯 꿈틀거리며 깊은 산 골로 이어져 있었고 바위덩이 위에는 흙 한 줌도 보이지 않는데 소나무 한 구루가 구렁이처럼 굵은 뿌리로 바위를 끌어 앉고 불안스럽게 몸을 비틀고 아주 신기한 모양을 하고 서 있었다.

“참으로 삶이란 끈질긴 것이로군!”

용천이 보기에 어디서 영양분을 끌어들이는지 온통 바위 덩이뿐인데도 뿌리를 내리서 살아가고 있는 소나무의 삶이 새삼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진다. 잎사귀 하나도 시든 곳이 없이 어렵게 살고 있는 싱싱하고 윤기 있는 소나무를 보자 용천은 재삼 자신의 삶에 용기를 얻는다. 그는 금순을 저 세상으로 보낸 일을 깨끗하게 잊은 듯 발걸음을 가볍게 재촉하고 있었다.

북한산 골 깊숙이 가득 담겨있던 물안개가 햇살에 걷혀서 사라지고 있었다.

“스님 이제 오십니까?”

김 처사였다. 부지런하기 짝이 없는 김 처사는 필요한 생필품이며 기거할 물품들을 그 옛날 입산수도했던 움막집에 벌써 다 가져다 놓고 주변마저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용천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님, 제가 보름에 한 번씩은 필요한 것을 가지고 여길 오겠습니다, 혹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 주시면 더욱 고맙고.....”

오랜만에 온 곳이라 용천은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내가 이제부터 김 처사에게 부탁할 말이 있습니다.”

“네, 분부만 내리십시오.”

그는 정좌를 하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마시고 들으십시오, 나는 이곳에서 다시 수년을 기거할 것이오, 그 수년 동안 우리 사찰은 혜천을 보조하여 김 처사가 운영하여야 할 것이오, 내가 그동안 여기에 묻혀 있으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잊게 될 것이오, 그러니 내가 이르는 대로 빈틈없이 이행하면 수년이 지난 후에 나는 사찰에 내려가서 모든 이들에게 내가 부활했다고 공포하게 될 것이고 그리되면 무지한 신도들부터 나를 믿기 시작할 것이오, 내가 부활해서 나타나려면 지금부터 김 처사는 내 말을 명심해서 혜천에게 전하여 그대로 실천해야 할 것이오, 제일 먼저 우리 사찰의 안위를 위해서 혜천에게 김 총재를 찾아가라 이르시오.”

“예? 김 총재를요?”

“그렇소, 우선 사찰 식구들이 내가 죽은 줄 알고 나면 김 처사는 주지실로 가서 평풍 뒤쪽 맨 아래를 자세히 보세요, 그곳에는 작은 주머니가 달려 있을 것이오, 그 주머니에는 예전에 김 처사가 목숨을 걸고 지킨 필름이 들어 있을 것이오, 우선 이것을 혜천에게 주고 김 총재를 만나 우리 사찰을 위해서 흥정을 하라 이르시오.”

“흥정을요?”

“그렇게만 말하면 혜천은 잘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용천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김 처사의 눈빛은 의심 한 점 없이 진지하기만 했다. 이야기를 잠시 끊은 용천은 김 처사가 가지고 온 보따리 하나를 꺼내서 노트 한 권을 김 처사에게 주면서

“우선 내가 적은 계획서부터 보면서 내 이야기를 들으시오, 김 처사는 오늘 사찰로 내려가면 바로 혜천과 상의하십시오, 제일 먼저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요양원 환자들을 터널 뒤에 있는 건물로 모두 옮기도록 하시오, 그리고는 요양원 건물을 기도하는 광장으로 개조하게 하시오, 노트에도 도면과 함께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만, 요양원 남쪽을 향한 내부 앞부분에 제대를 설치하시오, 제대를 올려놓을 앞면은 높이 석자에 폭 수무자로의 틀을 만들고 오른쪽 끝에 오르는 계단을 만들어 바닥 전체를 대리석으로 까시오, 우선 그렇게 해야 이를 바라보는 신도들에게 위압감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바닥 전면으로부터 두자를 띄우고, 중앙에 자반 높이의 사다리꼴 넓은 면을 위와 아래로 두 개를 포개놓은 석자 높이의 틀 위에, 가로 열자에 세로 석자의 육중한 대리석판을 올려놓으시오, 그렇게 하면 일단 제대의 설치가 완성됩니다, 그런 다음에 제대 앞면중앙에 꽃으로 장식을 하고 이 꽃은 항시 시들게 하지 말 것이며 시들 기미가 보이면 즉시 교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제대 위에는 좌우 양쪽 끝에서부터 약간 띄워서 금으로 만든 촛대를 각각 세 개씩 띄어서 여섯 개를 좌우로 나란히 올려놓고 굵고 무게 있는 초를 꼽으시오, 금으로는 금 촛대 열두 개와 술잔, 주전자, 향로를 각각 한 개씩 만들고, 그런 다음 제물을 올려놓는 제기를 놋쇠로 만들고 앞 열부터 차례로 과일, 반찬, 탕은 육탕, 소탕, 어탕, 봉탕, 잡탕 등 오탕을, 적과 전은 육적, 어적, 소적, 봉적, 채소 적 등 오적을 다음으로 밥과 갱을 놓는데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고 소담하게 정성을 다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차리게 하십시오, 양은 매일 모두 풍족하게 준비하여 신도들을 먹이되 쓰던 재물을 두 번 다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대가 설치된 벽의 전면 또한 붉은 대리석을 붙이되 중앙에는 구름 위에 신선을 그려 넣고 그 얼굴에 내 모습을 그려 넣으시오, 그리고 날개 달린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을 그려 내 시중을 드는 모습을 그려 넣으시오, 시중을 드는 여인은 한 손에 상자를 들고 있는데 상자 안에는 사리를 넣고 그 사리 통은 유리로 만들되 빛을 넣어 사리가 환하게 보이도록 만드시오, 또 신도들 중에 아름다운 여인 열 명과 잘생긴 남자 열 명을 뽑아 주어진 시간에 이들이 춤을 추도록 하고 천정 중앙에는 매립 등을 넣어 밝지도 어둡지도 않게 약간 푸른색으로 비추게 하여 이들의 모습이 차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십시오.”

여기까지 이야기를 마친 용천은 목이 마른 모양이었다. 용천이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눈치 빠른 김 처사는 금방 밖에 나가 준비해 놓은 물을 떠가지고 오면서

“그러면 언제부터 이 일을 시행하면 됩니까?”

하고 묻자 한 대접의 물을 다 든 용천은 계속 말을 잇는다.

“며칠이 지나면 김 처사가 내 시신을 사찰로 가져오게 될 것이오, 그리되면 모든 신도들이 보는 앞에서 그 시신이 내 몸이 되어 다비식이 거행될 것이고, 내 몸은 모두 타서 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일도가 재를 뒤지게 될 것이고 일도는 다 타버린 내 시신에서 사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전환점이 되어서 나는 일약 깨달음이 경지에 이른 중의 대열에 들게 될 것이고, 그 소식이 신도들에 의해서 퍼지게 되면 사찰은 새로운 신도들로 들끓게 될 것입니다, 때를 같이해서 혜천이 공부를 해서 사찰에 이름을 내면 엄청난 신도들이 몰려올 것이오, 그런 후에 이 일을 시행할 것이고 그 시기는 혜천이 공부를 마치는 시기로 잡으시면 될 것입니다, 공부를 마친 혜천이 내 부활을 위해 기도를 하게 되면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신도들도 세월이 흐르면 점차 쇠뇌화가 될 것입니다.”

김 처사는 용천의 이야기에 감동되어 흥분한 나머지 연신 침을 삼키면서 정신을 잃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내 몸에서 나온 사리를 유리관에 넣고 사리는 신도들이 항상 볼 수 있도록 꼭 유리관에 조명을 넣어서 보관하십시오.”

“예!”

김 처사는 이제야 돌아가는 모든 일이 이해가 되었다.

“이제부터 하루에 세 번 제대에서 내 부활을 기도하라고 이르시오, 기도를 시작할 때는 징을 치고 중간과 끝날 때는 북을 두드리시오, 징소리는 신도들의 가슴을 찢어 놓겠지만 북소리는 신도들의 가슴속에 흔들며 희망을 심어 놓는다고 생각하시오, 내가 여기를 떠나 바깥세상에 나가는 날 나는 부활해서 신도 중에 병이든 병자들을 치료하게 될 것이오, 그 들이 병이 낫게 될 때면 그들은 나를 신처럼 추대할 것이오, 그와 같이 환자들이 하나 둘 늘어날 때면 우리 사찰은 반석 위에 올라 있을 것이고 우매한 사람들은 입에서 입을 거쳐 나를 찾아올 것이오, 이때를 대비해서 이들을 감시하고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데 묶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봉구라는 사람이오, 그를 찾아 우리 식구로 만드시오, 돈이 얼마가 들던 그를 매수하여 상명하달의 조직을 만들어야 할 것이오, 끝으로 내 친구인 영표와 재석도 찾아 우리 사찰에 머물게 하십시오.”

“그분들은 어디에 쓰시려고요?”

“다 쓸 곳이 있습니다, 내 계획의 성공 여부는 김 처사에 달려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예, 잘 알겠습니다, 그 외에 할 말씀은 없으십니까?”

“그다음은 추후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자, 이제 날이 저물어오니 하산하십시오.”

용천의 긴 말을 마치자 해는 벌써 서산에 걸려 있었고 붉은 저녁노을이 높고 푸른 저녁하늘에 촘촘히 깔려있는 새털구름에다 뿌려놓고 있었다. 이렇게 용천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모든 계획의 바탕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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