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추 2

6. 다비식(茶毘式)

by 김수현


용천과 금순이 사찰을 나간 지 며칠이 지났다. 아직 용천이 죽었다는 소식을 모르는 용천사의 식구들은 공양실에서 아침 공양을 하고 있었다. 용천이 사찰 관계의 모든 책임을 일일이 분담하여 나누어 주고 자리를 비웠지만 용천사 식구들은 당장이라도 예전처럼 용천이 나타나 이것저것을 지시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용천이 없는 용천사 식구들은 서로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아침 공양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이보살이 며칠 묵은 신문을 들고 숨이 턱에 차서 허겁지겁 사찰로 올라왔다.

“아이고 큰일 났어요, 우리 스님이, 우리 스님이, 어쩌면 좋아요.”

“무슨 일이에요?”

모두들 이보살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스치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눈을 휘둥거리며 이보살을 쳐다보는데 김 처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손에 든 신문은 또 뭐고?”

입이 돌보다 더 무거운 김 처사였다. 수십 년 동안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자기 아내에게 조차도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던 김 처사였다. 그런 김 처사는 속으로 「이제야 일이 터졌군!」하면서 일부러 시침을 떼고 놀라는 척 아내 이보살에게 물었다.

“우리 스님이 돌아가셨어요, 권보살과 함께 돌아가셨데요....”

하면서 이보살이 훌쩍거리며 신문을 펴 들었다.

“뭐라고? 용천 스님이?”

일도가 깜짝 놀라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우린 어떡하면 좋아요?”

그러나 이미 예상하고 있던 혜천은 용천이 죽었다는 말에 속으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먼저 용천사를 책임질 사람부터 머릿속에 떠올렸다. 용천사의 문전옥답인 뒷산 너머에 있는 긴 계곡의 토지에서 해마다 산출되는 농산물은 얼마인가. 잘은 알 수 없지만 용천이 운영하던 사찰에서 예치한 돈에 대해 은행으로부터 들어오는 이자는 얼마며 신도들로부터 들어오는 시주 돈은 얼마인가. 거기다가 용천이 운영하고 있었던 요양원에 들어오는 정부 보조금은 얼마며 매달 환자들의 가족이 내는 돈은 얼마인가, 이곳저곳 밝혀지지 않은 사업체들과 어디엔가 숨겨져 있을 많은 현금, 그는 용천이 사망했다는 현실 앞에서 자신에게 다가올 기대에 벅차오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그만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이 얼마나 자신에게 닥쳐올 행운이란 말인가. 용천사에 빌붙어서 뚜렷하게 자신의 소유로 벌어 논 돈 한 푼 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혜천은 자신의 양심만이 유일한 재산이었다. 친구인 용천이 수천억 대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어도 지금까지 곁눈 한 번 쳐다본 적이 없었던 혜천이었다. 일도가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숱한 손 저지레를 하는 것을 보아왔어도 혜천은 달리 욕심 한 번 부려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용천의 사망 소식을 듣는 순간 용천이 가졌던 재산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돈 앞에는 정령 장사가 없다는 말이 옳은 말인가.

그런데 식구들은 혜천이가 용천의 사망 소식에 놀라 일어선 것으로 생각하고 모두들 혜천을 쳐다보고 있었다.

“스님 진정하시고 앉으세요.”

훌쩍거리던 이보살도 용천이 한 말이 생각난지라 역시 혜천이 다음 용천사의 주인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새 주인 될 사람에게 다감한 말로 말문을 던졌다.

“끄응!”

혜천은 기쁨을 들키지 않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괴로운 듯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스님조차 흥분해서 이성을 잃으시면 앞으로 일을 그르치고 맙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지만 돌아가는 사정을 깨알 보듯이 다 알고 있는 김 처사는 시침을 뚝 떼고 혜천에게 한마디 했다.

“알았습니다. 일이 워낙 이상하게 꼬이는지라 내가 잠시 이성을 잃었나 봅니다.”

그러나 일도는 김 처사의 말도 그리 달갑지 않았고 혜천의 행동에도 내심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용천이 미리 유언이나 다름없는 말로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혜천을 보고 사찰을 맡으라고 했다지만 그래도 빈말 한마디라도 자기에게 용천사에 대한 의견을 물어라도 보고 난 후에 그렇게 말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섭섭했다.

한참을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던 김 처사가

“혜천 스님, 잠깐 볼 일이 있으니 따로 이야기 좀 하십시다.”

하고 일어서면서 혜천을 밖으로 따라 나오라는 시늉을 하자

“저와 요? 무슨 일인데요?”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면서 혜천은 김 처사를 따라나섰다. 밖으로 나선 김 처사는 혜천을 주지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병풍 아래에 손을 넣어 필름을 꺼냈다.

“무슨 일입니까? 그 필름은 무엇이고요?”

하고 궁금하다는 듯이 혜천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스님, 제가 스님에게 드릴 것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 필름입니다.”

“뭐라고요? 필름이라고요?”

“예, 일도 스님과 우리 셋이 필름 때문에 잡혀가서 고초를 겪은 적이 있었잖습니까? 바로 이 필름 때문입니다, 이 필름이 김 총재와 권 보살의 정사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김 총재와 권 보살의 정사 사진?”

“예, 용천 스님께서 신변에 위험을 감지하고 급할 때 쓰시려고 만든 처방전입니다.”

“권 보살이라면 누군데요?”

“권 금순 보살입니다.”

“아~”

“타계하신 용천스님께서 이 필름을 혜천스님에게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용천사는 우리 혜천스님이 책임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이 필름을 당사자인 총재님께 직접 가져다가 드리고 우리 사찰의 안위를 부탁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용천스님께서 그런 세심한 말씀까지...... 알겠습니다.”

그때 마침 일도가 소변을 보러 나오다가 김 처사와 혜천이 소곤거리는 말을 들었다.

“이거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격이군!”

일도는 혼자 중얼거리며 화장실로 사라졌다.

혜천은 필름을 얼른 받아 넣고 다시 공양실로 나갔다.

혜천은 필름을 받고 몇 날 며칠을 혼자 생각에 잠겼다. 용천이 막다른 골목에서 이 필름을 써서 위기를 모면했지만 언론이 떠들고 일어나서 문제를 제기하니 자신의 안위에 더 이상 불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혜천을 통해서 이 필름을 김 총재에게 넘겨주고 새로운 사람이 새롭게 사찰 운영에 한다고 부탁하고 도움을 청하라고 혜천에게 넘겨준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한 혜천은 필름을 들고 김 총재를 독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스님께서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했습니까?”

김 총재는 용천의 식구가 또 무슨 귀찮은 일로 자신을 만나러 왔을까 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혜천에게 말을 걸었다. 혜천은 꽤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제가 타계하신 용천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용천사를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우선 총재님께 인사를 드리고 아낌없으신 성원을 부탁드리려고 이렇게 찾아뵈웠습니다, 소승은 혜천이라고 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혜천이 정중하게 합장을 하고 인사를 올리는데 김 총 재인들 떨떠름한 표정을 계속해서 지을 수는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같이 합장을 하고 웃으면서

“제가 스님을 도와 드리면 스님께서는 제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단도직입적인 요구를 제시했다. 혜천 역시 자질구레하게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장삼의 소매 속에서 필름을 꺼냈다.

“이것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필름입니다.”

필름이라는 말에 그렇게 찾던 필름이 쉽게 손에 들어오자 김 총재는 속으로 입이 한 바가지 벌어졌다. 김 총재가 이 필름을 찾으려고 김 처사와 일도, 혜천을 납치해서 며칠 동안이나 감금해서 고문을 한 일도 있었는데 눈치가 9단인 김 총재가 이 필름을 모를 턱이 없었다. 혜천 역시 필름의 내용을 아는 척하면 김 총재의 입장이 곤란해질까 봐 시침을 뚝 떼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용천스님이 타계하시기 전에 유서를 남기셨는데 그 내용에 이 필름을 김 총재님께 가져다 드리면 아실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면서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했다. 그제야 김 총재는 천천히 필름을 받아 들고 만족한 웃음을 지으면서 혜천을 쳐다보고

“그리고 또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예, 그리고 정치 헌금을 계속해서 드리라고 저희 소승에게 지시하셨습니다.”

필름의 원본을 손에 넣은 김 총재도 속이 후련했다. 만약에 이 필름을 소지하고 용천이 살아서 감옥 생활을 한다면 일파만파 자신에게 끼칠 누를 생각 하면 이만저만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또한 파헤치기를 직업적으로 하는 기자 나부랭이들이 용천의 구속을 빌미로 이곳저곳 쑤시고 까발리려고 한다면 현재의 자신도 까닥 잘못하면 헤어나지 못할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만한 금순을 죽이고 용천 자신도 거짓 죽음으로 사건을 만들어 놓고 숨어 버렸으니 스스로 모든 사건을 떠맡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설령 차후에 용천이 나타났다가 잡히기라도 한다면 금순을 죽게 한 살인자의 누명을 스스로 벗을 길이 없으니 이거야말로 김 총재는 손도 안 대고 코를 푸는 셈이 된다. 이제는 용천 스스로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할 터이니 김 총재 자신은 모르는 척 눈만 감으면 된다는 뜻이었다. 거기다가 필름까지 손에 넣었으니 이제 골치 아팠던 일에 한시름을 덜게 된 것이었다. 또한 정치 헌금까지 계속 내겠다고 하니 김 총재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혜천은 김 총재를 독대하고 난 다음 날 용천이 말한 수사기관의 모 검사를 만났다. 상부에서 지시가 있었던지 그는 두말없이 용천의 시신을 가져가도 좋다는 승낙을 해주었다. 용천의 시신은 이미 염까지 다 해놓은 상태였다.

드디어 용천의 시신이 용천사에 도착했다.

얼마 뒤에 광호가 용천사에 도착했다. 그는 사방으로 용천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거절당하고 생각해 낸 것이 용천사였다. 어떤 경로이든 결국에는 용천의 시신이 용천사에 올 것은 빤한 이치였기 때문이었다. 용천은 시침을 뚝 떼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서 경찰의 신분증을 내밀며

“조사할 것이 있어 잠시 주지 스님의 시신을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하고 혜천과 다른 용천사 중들에게 요구하자

“검찰에서 수사가 다 끝나고 우리에게 시신을 넘겨준 것을 당신이 왜 다시 조사하겠다고 나서는 거요? 정 그렇다면 검찰에 다시 연락을 취한 후에 조사를 하던지 결정하겠소.”

용천사에서는 광호가 용천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결국에는 용천을 구속까지 시킨 것을 모를 턱이 없었다. 그들은 광호의 요구에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였다. 용천의 시신을 절대로 보여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광호는 용천사에서조차도 푸대접을 받고 쫓겨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시신이 도착한 그날 밤은 여름밤 답지 않게 꽤 스산한 바람까지 불었다. 다른 식구들은 요사채에서 용천스님의 다비식을 의논하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일도는 시신이 든 관 앞에서 굻어 앉아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읊조리고 있었다.

가까운 나무숲에서 부엉이 우는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일도의 염불소리와 함께 쓸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방안에 모여 있는 식구들은 무거운 방안 공기의 탓인지 아니면 평소 미소를 지으며 모든 이를 대하던 바로 그 자리에 용천의 시신이 놓여 있어서 그런지 금방이라도 용천이 벌떡 일어나서 무슨 말을 할 것만 같았다.

잠시 뒤에 혜천이 엄숙하게 침묵을 깼다. 혜천은 일도에게

“스님, 용천스님께서 살아 계실 때 소승에게 부탁한 일이 있어 그러니 잠시 자리를 피해 주시면 합니다.”

하고 당부하니 일도는 염불을 멈추고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며 혜천을 쳐다보자

“다른 분들도 소승이 부를 때까지 자리를 피해 주십시오.”

하자 그제야 일도는 다른 스님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혜천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관뚜껑을 열었다. 관뚜껑이 열리자 시신의 얼굴은 이미 누구인지조차도 알아볼 수 없게 부패되어 있었고 동시에 역겨운 악취가 혜천의 코에 스며들었다. 잠시 찡그린 얼굴을 하고 고개를 돌렸던 혜천은 마음을 가다듬고 환한 미소를 머금고는

“용천, 자네와 내가 이렇게 만날 줄이야 어떻게 알았는가, 이제 자네는 죽어 저세상 사람이 되었으니 육 신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비록 혼이 떠난 육신이지만 내 잠시 자네가 부탁한 말씀대로 자네의 몸속에 유리구슬을 넣을 테니 우리 사찰의 안위를 위해서 용서하시게, 비록 구슬이라고는 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몸속에 사리를 담았다고 생각할 것이니 이는 자네 복이 하늘에 닿은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비록 신도들이 등을 돌렸지만 자네 말씀대로 자네 몸에 사리가 나왔다고 하면 많은 신도들이 이 절에 다시 모여들어 부처님을 받들 것이니 이제 자네는 죽어서 틀림없이 부처님의 은덕을 듬뿍 받을 것이네.”

하면서 비단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그 속에는 백여 개의 구슬이 들어 있었다. 그는 부패된 얼굴에 악취까지 나는 시신의 얼굴을 도저히 바로 바라볼 수는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는 더듬거리며 시신의 입 가까이 손을 가져갔다. 금방이라도 썩은 시체에서 벌레가 꿈틀거리며 혜천의 손등을 타고 손목으로 기어오를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시신의 입을 벌렸고 구슬을 넣기 시작했다. 그는 가슴을 두근거리면서도 억지로 참고 있었고 구슬 하나를 넣을 때마다 진심으로

“관세음보살.”

을 중얼거리며 목구멍 속까지 구슬을 쑤셔 넣었다. 긴장한 혜천의 이마에는 방울방울 땀방울이 맺히고 이내 턱 밑으로 흘러내렸다. 잠시 뒤에 백여 개의 구슬은 시신의 목구멍으로 모두 들어갔다.

“후유~!”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으나 정말이지 구슬이 다 들어갈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나 긴장했던지 구슬을 다 넣고 난 후에야 혜천은 긴 한숨을 쉬면서 관을 본래대로 닫은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얼른 관뚜껑을 덮고 우물가로 가서 시신의 목구멍에 넣었던 손을 한없이 씻었다.

다음 날은 용천의 다비식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소식을 들은 신도들이 하나둘 용천사에 모여들었다. 용천사 마당 가운데에는 나무와 숯, 그리고 가마니 등으로 화장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불은 삼독의 불이 아니라....... 이 불을 보고 자성의 광명을 돌이켜 무상을 깨달으라.”

어느덧 관이 올려졌고 거화 편(炬火篇)이 울려 퍼졌다.

뿔뿔이 흩어졌던 신도들도 용천이 죽었다는 소식에 각지에서 모여들어 마당을 가득 채웠고 이미 화장장도 사람들로 인해 빈틈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살아생전 용천의 밝은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이날은 7월 중순이니 동쪽으로부터 거화를 했고 아침부터 날씨는 용천의 죽음을 슬퍼하는지 잔뜩 찌푸리다가 비가 내렸으니 비로 인해 다비식이 무려 4시간이나 지연되었다. 다행히 처음 내린 장대 같은 빗줄기는 온 세상을 쓸어버리듯이 내리다가 이제 서야 가랑비로 바뀌었다. 불이 붙은 나무는 점점 거세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너 시간이나 흘렀을까 뼈를 뒤집는 기골 편(起骨篇)도 끝나고 시신이 완전히 불에 타서 재만 남게 되었다.

재 속에서 뼈를 수습하던 일도스님이 갑자기 탄식을 하며 하던 일을 멈췄다.

“나무관셈보살!”

이를 지켜보던 많은 신도들은 숨을 죽이고 일도의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흘러나오나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말로 만들었지 실제 사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일도였다. 재 속을 이곳저곳 헤집고 뼈를 수습하던 일도는 구슬 모양의 알갱이가 재속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재 속에 넣은 것도 아니고 시신을 올려서 불에 태웠을 뿐인데 구슬 모양이 재 속에 섞여 나왔으니 사리가 아니겠는가. 일도는 놀라서 가슴이 뛰었다.

“사리야, 스님의 몸에서 백여 개의 사리가 나왔어!”

사리장엄구에 구슬 모양의 사리를 조심스럽게 담던 일도의 목소리가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고 흘러나왔다.

“어디? 어디야?”

앞에서 일도의 말을 들은 이는 뒷사람에게 전하고 다시 뒷사람에게 이 말이 빠르게 전달되었다. 신도들 여기저기에서 웅성이기 시작했다.

“정말일까?”

신도들은 서로 사리를 보려고 고개를 자라같이 빼 들거나 발돋움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는 하나같이 ‘나무관셈보살’을 외고 있었다.

용천의 다비식이 거행되고 있는 동안 여러 신도들 사이에 병일이도 끼어 있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급하게 이 사찰을 찾아온 것이었다. 비록 용천이 사면초과에 처해 있었지만 호락호락하게 세상을 등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죽기 전에 용천이 큰돈을 주면서까지 아무도 모르게 시신을 요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분명 여기에는 무슨 계략이 숨어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눈치 빠른 병일은 타고 있는 시신에서 사리가 나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저 시신이 용천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흐흠, 이제야 나에게 행려병자의 시신을 가져간 이유를 알겠군, 분명 저기에 타고 있는 시신이 내가 준 행려병자의 시신이렸다? 그럼 지금쯤 어디에선가 용천이 숨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겠군, 참으로 가증스러운 사람이구먼, 쯔, 쯔, 용천이 금순을 죽였으니 나로서는 깨춤을 출 일이지만 이용만 당하다가 죽은 금순만 불쌍하게 되었군, 돈 빼앗기고 몸 빼앗기고 저 세상을 갔으니....... 이놈 용천아,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나까지 속일 수는 없지!”

병일은 혼자 웃음을 지으며 휘적휘적 사찰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평생 동안 죽은 용천 뒤에만 서 있으면서 돈이 굴러 들어오게 생겼군, 자, 그러면 이제부터 김 처사만 미행하면 되겠지, 분명 김 처사와 용천이 긴밀하게 내통하고 있을 터인즉, 그러면 누구를 붙일까?....... 일도? 불평불만이 많은 가장 적임 잔데...... 아니야, 다른 놈을 붙여 봤자 내 먹을 돈만 적어져, 아무도 모르게 내가 직접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병일의 옆에서는 광호도 다비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광호 역시 용천의 시신에서 사리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사리? 사리가 저런 땡추에게서 나와? 저런 땡추한테 사리가 나오면 조선 천지 죽은 사람 중에 사리 안 나올 사람 없겠네!”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용천사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어느덧 다비식은 뼈를 수습하고 재를 날리는 산골 편(散骨篇)으로 이어졌다.

일도가 죽은 용천의 영가를 향해 법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번 뒤집으니 허망한 몸뚱이가

마음대로 구르며 찬바람을 일으킨다

취해도 얻지 못하고 버려도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엇인가

뜨거운 불속에 한 줌의 황금 뼈를

이제 쇠 소리가 쨍그랑하며

뼈들을 부수어 청산녹수에 뿌리노니

불생불멸의 심성만이 천지를 뒤덮고 남음이 있습니다.

법문 낭독에는 역시 일도였다.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으며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그의 목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삶의 허무와 함께 부처님에 귀의를 더욱 일깨워주고 있었다. 일도는 법문을 외우면서 환귀본토진언(還歸本土眞言)인 옴자나 사모다를 외며 용천의 영가가 마지막 보련대에 오르도록 권하고 있었다.

누구인지도 일 수 없는 행려병자의 시신이 용천의 이름으로 많은 신도들이 보는 앞에서 다비식이 거창하게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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