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육봉규와의 만남
용천의 다비식이 끝나고 일도마저 잡혀가자 주지가 없는 용천사는 그야말로 한 겨울이나 다름없는 싸늘한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니 혜천이 앞에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혜천은 비장한 각오로 마음을 다지면서 김처사에게
“김처사, 내가 땡추로 용천스님 밑에서 오랫동안 빌어먹고 살았지만 오늘 내 입장이 여기까지 올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소, 내 그동안 깊이 생각해 왔던바 이대로는 도저히 주저앉을 수는 없소, 예전에 용천스님이 입산수도해서 이 사찰을 일으킨 것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초심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오, 내 부족한 불심을 이제 공부로 채울 것이오, 세월은 금방 가오, 내 당분간 불도를 닦는데 전념할 것이오, 비록 그동안 우리 사찰이 신도들이 끊겨 폐찰이 될지라도 참고 기다려 주시오.”
하고 용천이 얼마 전 혜천을 법당으로 불러서 주문했던 말을 되씹고는 큰 결심을 한 듯 사찰식구들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법당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혜천이 시신의 입속에 구슬을 넣고 다비식을 치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일도가 그 구슬을 보고 사리라고 소리치게 만든 용천의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다.
용천의 몸에서 사리가 나왔다는 소문이 신도들의 입과 입을 통해서 세간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까지 용천의 불미스러운 사태는 점차 잊혀 갔고 신도들 사이에는 용천이야말로 득도한 스님이라고 재평가하기에 이르렀다. 요양원 사태로 떨어져 나갔던 신도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의 수제자인 혜천이 불도를 닦는다고 하자 모두들 기대에 찬 마음으로 혜천이 공부를 마치고 나타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혜천은 용천이 죽기 전에 뜯어보라던 편지 봉투를 개봉했다. 그 속에는 혜천이 공부를 마치면 새로운 불전(佛典)을 만들라는 지시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불전에 수록할 중요한 내용들까지도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던 것이었다. 혜천은 그의 뛰어난 머리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와 공부에 열중하는 한편 용천이 말한 불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용천사는 침묵 속에서도 새로운 기운이 피어나고 있었다. 김 처사는 우선 여러 곳을 수소문하여 새로운 스님을 모시고 와서 사찰의 평정을 찾았고 한편으로는 요양원의 식구들을 확보해서 운영에 만전을 기했다.
혜천 또한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돈오돈수(頓悟頓修)하여 단번에 육신통(六神通) 법을 깨우쳤다. 육 개월 만에 혜천이 육신통법을 깨우쳐 세상에 나오자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혜천의 설법을 들으려고 법당 안으로 모여들었다.
좌중은 혜천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기대를 하면서 숨조차 쉬지 않은 듯했다. 이윽고 침묵을 깨고 혜천이 입을 열었다.
“나는 육신통법을 깨우쳤다. 신과의 마음을 통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이하고 자유자재 하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법당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때 한 신도가 침묵을 깨고 정중하게 혜천을 향해 물었다. 그의 검고 큰 눈은 지혜가 넘쳐흐르는 듯했다. 그는 아무리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는 스님일지라도 6개월 만에 육신통법을 깨우쳤다는 사실에 의혹을 갖고 있는 듯했다.
“스님, 육신통법이란 무엇입니까?”
혜천은 마음속으로 당돌한 그의 질문에 비웃음을 감추려는 듯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또한 그의 입술 꼬리가 한쪽 볼로 약간 올라가는 듯했다. 가소롭다는 뜻일 것이다. 이어서 그는 입을 열었다.
“여기에서 신통이란 불기 사이하다는 의미이다, 즉, 불가사이하고 걸림이 없다는 말이다. 내 하나하나 신도들에게 설명하겠다, 첫째, 천안통이란 과거와 미래를 알아보고 그 예언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을 말하며, 천이통은 인간과 신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셋째, 신족통은 마음대로 변화하는 능력, 즉 내 몸을 여러 몸으로 나눌 수도 있고 하루 저녁에 천리를 오 갈 수도 있는 것을 말하며, 넷째, 타심통이란 천안통을 얻어야만 타심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으로 이는 다른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아는 것이다, 다섯째, 숙명통인데 숙명통은 사람들의 전생, 금생, 내생을 알 수가 있는 신통이다, 이와 같이 다섯 가지의 신통은 요가나 타 종교 수행자들 누구나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누진통이다. 이는 최고의 경지로 모든 번뇌가 소멸된 해탈 열반의 경지를 말한다. 육 근 블루의 경지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사유기관 등이 다른 곳으로 새 나가지 않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여섯 가지 신통을 모두 깨우쳤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의 구석구석까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혜천의 설명에는 막힘이 없었고 무슨 질문이든 무엇이든 마음껏 해 보라는 강한 암시가 내포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듣던 신도는 다시 한번 다짐하듯 혜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스님은 육신통법을 모두 깨우쳤다는 말씀입니까?”
“허허, 너희는 내가 한 말을 무엇으로 들었단 말인가,”
“오, 스님!”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림과 함께 감탄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혜천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신도들의 생각을 모으려면 한 치의 물러섬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숙하고 굳은 표정으로 눈을 부릅뜬 혜천은 다시 말을 이었다. 장내는 숙연해졌다.
“너희 중생들에게 한 마디 가르침을 주겠다, 인간이 죽으면 혼(魂)은 인간의 몸을 빠져나와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시체와 함께 썩어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오욕칠정이라는 놈은 우리 육신으로부터 생기는 것인데 육신이 없는 오욕칠정이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러하니 죽은 후에는 지옥도 천당도 존재할 의미가 없으며 곧 육신이 실존하는 이 세상이 오욕칠정을 느끼는 천당이고 지옥이다, 따라서 중생들 자신이 전생에 많은 죄를 지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면 그 죄 값을 받아 현세의 삶이 고달프고 괴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며, 또 전생에 죄를 짓지 않고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면 그 복을 받아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너희 중생들이 죽고 나면 이생에서 지은 죄나 복을 받으려고 미륵부처님 앞에 다투어 줄을 서려고 발버둥 치게 된다. 그러나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려면 복이 많은 중생도 이대를 기다려야 하는데 하물며 죄가 있는 중생들은 몇 대를 기다려야 하겠는가, 기다리다 기다리다 혼은 지쳐서 소멸되는 것이 대다수인 것이다. 이생에 다시 태어나 살고 있는 너희 중생들은 전생에서 그나마 복을 받은 것이 아니더냐, 다음 생의 기다림을 줄이려거든 내 말을 명심하고 따르거라, 나 말고는 누구도 믿지 말거라, 내 기도를 거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그 길을 알지 못하느니라!”
하고는 모든 신도들에게 기복신앙만을 강요하면서 부적신앙을 과감하게 탈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용천과는 달리 인연법을 깨우쳐 타심통의 법으로 신도들의 운명을 상담했다. 덧붙여 다음 생에 삶을 위해서는 오직 꾸준하게 혜천 자신만을 믿으면서 부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설파했다.
혜천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하늘을 대신하여 인간들에게 징표를 주는 자이며 후에 부활하여 나타나는 이를 천신이라 칭하고 가까운 시일에 죽은 용천이 천신으로 부활할 거라고 예언했다. 따라서 용천의 부활을 위한 기도를 하루 세 번 드려야 한다고 했다.
또한 성경과, 불경, 코란의 내용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혜천 스스로 책을 만들었는데 이 책을 천경(天經)이라 이름 붙였고 이 책은 하늘의 교리를 밝혀 놓은 전적(典籍)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 했다. 특히 교도들의 생활은 출생에서 사망까지 천경에 따라 생활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혜천은 용천사의 자산을 공개한다는 명분으로 혁신적인 개혁을 하는 동시에 신도들에게 육신통법을 적용하여 그들의 운명을 봐주니 용천을 능가하는 육신통 중에 타심통은 어리석고 불쌍한 그들로 하여금
“우리를 구원해 주려고 하늘에서 보내신 구세주다.”
하면서 신도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혜천은 매 주일마다 오전에는 법회를 열었다. 처음 설법을 시작했을 때는 법당에도 신도들이 차지 않았는데 한 달이 채 되지도 않아서 그의 설법을 들으려고 법당 밖 마당에까지 신도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래서 마당 앞 네 모퉁이에는 대형 스피커를 걸어 놓고 들을 정도였다.
“세상의 소유는 아무것도 자기의 것은 없다. 인간이 죽으면 모든 것을 놓고 가는 것이니 네 것이 어디에 있다더냐, 그러니 자신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는 남김없이 부처님께 바쳐야만 할 것이다.”
하면서 강력하게 신도들의 시주를 받아들였다. 우매한 신도들은 너도나도 재산을 가져다가 사찰에 바쳤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용천의 지시에 따라 요양원에 요양 중인 환자들은 요양원으로 통하는 동굴 밖에 있던 주택 옆에 새로운 건축물을 신축하여 그곳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본래 있던 요양원 자리에는 설치되어 있던 쇠창살을 모두 뜯어내고 아래층은 홀을 만들어서 기도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윗 층은 남자와 여자 방으로 분리하여 잠을 잘 수 있도록 큰 방을 여러 개 다시 만들었다. 이는 신도들을 장기적으로 기도하며 투숙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렇게 혜천이 용천사를 새롭게 운영해 가는 사이에 세월은 빨라 어느새 용천이 죽은 지 두 해가 지났다. 그동안 용천의 이름은 세인들에게 잊혀갔고 용천사는 혜천의 불사로 인해 몰라보게 달라져 갔다.
혜천이 용천과는 다르게 새로운 방법으로 사찰을 반석 위에 올려놓자 이를 따르는 새로운 중들과 행자들이 수십 명씩 줄을 이어 용천사로 들어왔다.
이제 혜천은 전에 경마장을 전전하며 돈 몇 푼을 벌기 위해 바랑을 걸머지고 남의 집 문전을 기웃거리던 그런 땡추가 아니었다. 그의 밑에는 수 십 명의 중들이 혜천을 보좌하고 있었고 수 천 명의 신도들이 혜천의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혜천은 용천이 해왔던 보이지 않았던 사업을 하나둘 찾아내서 점검하고 그 운영을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대비책을 암암리에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용천이 환자들을 이용해서 일궈놓은 수십만 평의 사찰 소유 전지도 용천과 같이 숨어서 경작하지 않고 아예 내놓고 환자들에게 경작을 시켰다. 그들을 강요해서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정량을 배정해 줘서 환자가 자기의 몫을 경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거기에서 나오는 소출은 환자 자신에게 돌아간다는 취지였다. 다만 경작한 소출은 환자 임의로 처분하는 것이 아니라 용천사가 일정 경비를 떼고 매매하여 환자에게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물론 환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감독하는 감독관이 필요한 것은 당연했다. 사실 명분이 개인 분배형식이지 실질적으로는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날 혜천은 김처사를 불렀다.
“김 처사님, 우리 토지 문제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님이 알아서 잘하시잖습니까, 뭐 때문에 그러십니까?”
“우리 토지가 전망권이 아주 좋은 곳 아닙니까, 택지로는 으뜸이지요.”
“거기는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지역이니 어디 손을 델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여기에 요양원을 지은 것은 처음부터 법이 허용해서 지은 것은 아니잖습니까, 예전에 김처사가 내게 필름을 준 적이 있잖습니까?”
“아~ 김 총재와 권 보살의......”
“내가 그때 그 필름을 가지고 김 총재를 바로 찾아갔지요. 그 필름을 들고 내가 찾아가니 자신이 얼굴을 들지도 못할 사건이 그 필름에 담겨 있으니 김 총재가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그 말에 김 처사는 매를 맞아 가면서 지킨 필름을 너무 쉽게 내어 준 것을 생각하고 몹시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리 되었군요.”
하고 힘없이 대답했다. 혜천은 바로 말을 이어서
“우리 셋이 끌려가서 그 혹독한 일을 당했는데 그 귀한 필름을 왜 아무런 대가도 없이 내가 그 사람에게 넘겨줬겠습니까, 바로 용천스님의 탁월한 지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용천스님께서 타계하시기 전에 선견지명이 있어 앞으로 우리 사찰을 살리라는 유지를 남기셨고 저는 그 유지를 따른 것일 뿐입니다.”
“어떻게?”
“지금도 정치 헌금 명목으로 김 총재에게 계속 자금이 빠져나가지 않습니까? 그것도 용천 스님의 유지에 담겨 있는 사실이지요.”
“아~ 그랬군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돈이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의아해했는데......”
“그래서 말인데요, 뒤편 우리 토지가 있는 지역에 그린벨트 해제를 부탁해 놓은 상태입니다. 이 전망 좋은 곳에 건축물을 지으려고 말입니다, 나는 전원주택지를 조성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 말에 김 처사는 일부러 눈이 번쩍 뜨인 척했다. 그는 입이 찢어질 듯 기뻐서
“그래요? 그런 계획을 가지고 계셨단 말씀입니까?”
하고 큰 소리로 말하다가
“쉿!”
하고 혜천이 말을 막자 혹 밖에서 누가 듣지 않았나 싶어 김 처사는 얼른 목소리를 낮췄다.
“바로 우리 전답이 산을 등지고 앞에는 한강이 흐르지 않습니까, 북쪽에는 산이 있어 겨울에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앞에는 탁 트인 한강이 흐르고 평평한 뜰이 있으니 교통의 발달이 충분히 예상되는 곳이지요, 풍수지리에 말하는 배산임수형 아닙니까.”
그렇다. 용천이 요양원 환자를 이용하여 애써 가꾼 전답은 후에 택지로 개발하기 위해서 묻어 둔 알토란 같은 땅이었다. 용천은 집을 지을 때 집 뒤의 산이 있다는 것은 생기를 불어넣는 지맥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용천은 집 뒤에 산이 없다는 것은 산천의 생기가 집으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며 바로 생기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멈추기 때문에 집 뒤의 산이 있으면 바람을 막고 들어오는 생기를 보호한다고 믿고 있었다. 또 물은 산으로부터 흘러온 땅의 기운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하며 산천의 생기를 북돋우어 만물이 잘 자라도록 하기 때문에 배산임수를 양택(良宅) 풍수라 하여 음택풍수(묘지)와 함께 가장 중요한 풍수의 원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 저는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논이나 밭으로 보았어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우리 사찰 땅이 황금알을 낳는 보토였군요. 과연 용천스님의 안목이 천 리를 내다보는 안목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하면서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김 처사는 입이 벌어져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척한다.
“아직 준비 단계이니 서두르지 마시고 주변에 말이 없도록 입단속을 잘하십시오, 우리 둘만 아는 일이요.”
“예, 예.”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때 제게 말씀하신 이영표와 재석을 찾을 차례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영표는 서울서 건축을 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 뒷 산 너머 우리 토지에 집을 짓자면 믿을 만한 건축업자가 있어야겠지요, 그래서 영표를 꼭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재석이는 무얼 하는지 모르겠어요, 재석이는 배짱이 보통을 넘는 사람입니다, 아마 난세에 태어났다면 큰일을 저질러도 몇 번을 저질렀을 겁니다, 우리 사업을 위하여 찾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만 찾으면 되지요?”
“그리고 봉구라는 사람도 찾아야지요, 그때 소승에게 말씀하셨잖습니까.”
혜천의 부탁을 받고 봉규와 영표, 그리고 재석을 찾기 위해 김처사는 다음날 서울역에서 안동역으로 출발하는 중앙선 밤 열차를 탔다. 이 열차는 급행열차였지만 주로 안동에서 서울을 오르내리며 장사를 하는 장사꾼들이 주로 이용하거나 장병들이 이용하는 군용 열차였다. 열차 승객인 그들은 경상도 특유의 언성 높은 대화들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김처사는 눈은 감고 있었지만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밤새 눈 한번 제대로 붙일 수가 없었다. 더구나 너도나도 번갈아 꼬나물고 피워대는 담배 연기로 열차 안은 그야말로 숨조차 쉴 틈이 없었다. 차라리 돈 몇 푼을 더 주고라도 침대칸을 탔으면 하는 아쉬움에 지나다니는 차장에게 말을 붙여 볼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까지 타고 온 시간이 아까워서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김 처사가 안동역에 내렸을 때는 새벽녘이었다. 김 처사는 우선 역 앞 여인숙에다 여정을 풀고 잠깐 눈을 붙였다. 새벽녘에 든 잠이라 잠깐 눈을 붙이려고 생각했던 것이 한낮이 다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허겁지겁 세수를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에 이들 셋을 찾아 나섰다.
김 처사가 이들을 찾아 안동에 도착한 날은 안동 장날이었다. 김 처사가 신시장 야채 골목을 지나칠 때는 시간이 한낮이라 장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서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게 복잡했다. 몸을 비집고 장꾼들 사이를 겨우 빠져나가는데 마침 지나가는 젊은 사내가 어깨를 어찌나 세게 받고 지나치는데 김 처사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면서 한 손으로 부딪힌 어깨를 주무르면서
“아, 여보시오, 젊은이,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가면 어쩌오?”
하고 아픈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자 사내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한마디 대구도 없이 휘적휘적 장꾼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멍하니 사라져 가는 사내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다른 한 사내가 다가와 김 처사의 뒷주머니를 날카로운 면도칼로 그었고 동시에 호주머니에 있던 지갑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면도칼로 김 처사의 뒷주머니를 그은 사내는 그대로 사라졌고 동시에 또 다른 사내가 떨어진 김 처사의 지갑을 얼른 주어서 주머니에 넣고선 막 발길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그때까지도 김 처사는 아픈 어깨에 온 신경을 집중했기 때문에 뒷주머니에 지갑이 떨어진 것을 전연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 놓거라!”
굵직한 목소리의 덩치가 대단히 큰 사내가 지갑을 막 주워서 달아나려는 사내의 팔을 비틀었다. 팔이 비틀린 사내는 찍소리 한번 지르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목을 처박고 돼지 새끼 모양 꽥꽥거리고 있었다. 팔을 비튼 사내는 봉규였다. 어느 틈엔가 김 처사의 어깨를 받았던 사내와 주머니를 면도칼로 그었던 사내가 다시 나타났다. 그들은 다른 곳으로 가버린 것이 아니라 장꾼들 틈 사이에서 김 처사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들 두 사내는 합세해서 봉규에게 달려들었다. 덩치 큰 봉규는 가소롭다는 듯이 이들을 바라보며
“왠 놈이야, 되질라고 환장을 했어?”
하자 대꾸 한마디 없이 두 사내는 봉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 싸움 구경거리가 생기자 웬일인가 하고 장꾼들은 봉규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 자식들, 너들 사람 잘못 봤어!”
봉규가 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내 둘이 면도칼을 들고 봉규의 면상을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봉규는 처박힌 사내의 면상을 걷어차면서 면도칼을 휘두른 두 사내의 팔을 양손으로 각각 잡았고 동시에 몸을 가볍게 숙이면서 두 사내의 사이로 빠져나갔다. 봉규에게 손목이 잡힌 두 사내의 팔이 안으로 꺾이면서 비틀렸다.
“또둑!”
두 사내의 팔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얼굴을 땅바닥에 처박고 죽상이 되어 한쪽 팔을 쳐들고 아파서 죽는시늉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너 이 자식들, 쓰리꾼들이구나!”
봉규가 손을 툴툴 털고 있는 순간에도 아무것도 모르고 한참을 정신없이 싸움 구경을 하던 김처사는 이 소리를 듣고서야 자신의 지갑이 든 뒷주머니가 생각났다. 그의 손이 뒷주머니에 닿는 순간 그는 무언가 모르게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내 지갑이?”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지갑을 넣었던 뒤 호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그러나 호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고 지갑은 온대 간데없었다. 그의 찢긴 호주머니 사이로 불쑥 손가락만 튀어나왔을 뿐이었다.
“내 지갑!”
그때 세 사내는 쓰러져서 낑낑대고 있었고 봉규는 지갑을 뺏어 들고 김 처사 앞으로 가져왔다.
“타지에서 온 모양인데 조심하잖코.......”
김 처사는 봉규가 내민 지갑을 보자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잘못했으면 사람을 찾는 것은 고사하고 안동까지 와서 차비 한 푼 없이 빈털터리 신세가 되어 서울을 되돌아갈 뻔했는데 요행히 지갑을 다시 찾게 되었으니 눈물이 나오도록 그 사내가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이 신세를 무엇으로 갚아야 될지, 감사합니다, 선생님 존함이라도?”
“조심하시면 됐지 이름은 알아서 뭐 하게요? 자 그만 갑시다.”
“그래도 존함이라도 알고 가야지요.”
사내는 별 대수롭지 않게
“내 이름은 봉규요, 육 봉규, 이제 됐소?”
하고 내뱉듯이 던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서 가려 하자 이름 석 자를 듣던 김 처사는 깜짝 놀랐다. 지금 자신이 육 봉규를 찾으려고 갈려 든 바로 그 사람이 아닌가. 이름만 같을 뿐 아니라 그 모습도 들은 대로 덩치도 산 만 한 데다 싸움도 잘하는 것을 보면 틀림없는 그 사람이었다. 김 처사는 너무 반가웠다.
“그럼 선생이 육 봉규 씨라고요?”
그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성명 석 자를 되씹는 사내를 다시 한번 쳐다보면서
“그렇소!”
하고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자 김 처사는 반가운 표정으로
“저 선생님, 혹 혜천, 아니 영근이라고 아십니까?”
“영근이?”
하고 한참을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봉규는
“나는 그런 사람 모르오.”
하고 가던 걸음을 재촉하려고 하자 김 처사는
“그러면 성욱이라고 모르시오?”
“뭐요? 성욱이? 성욱이 말이요? 사 찰주 지를 하다가 얼마 전에 자살해 죽었다는 그 성욱이 말이오?”
하면서 오히려 성욱을 어찌 아느냐는 듯한 눈으로 김 처사를 쳐다본다. 주먹으로는 누구에게도 져 보지 않았던 봉규가 그 옛날 무릎을 꿇고 빌기까지 했던 성욱이를 어찌 모르겠는가. 금순이가 탐이 나서 어떻게 해 볼 량으로 붙잡았다가 성욱이가 끼어드는 바람에 둘이 싸웠던 기억이 새로웠다. 성욱이가 얻어맞으면서도 몇 날 며칠 동안 싸움을 걸어왔고 두들겨 패면서도 봉규 자신이 지쳐서 꿇어앉아 빌었던 그 기억을 봉규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국회의원까지 된 성욱이 금순과 동반자살까지 했다는 기사가 온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나왔는데 그 성욱을 봉규가 모를 턱이 없었다.
“예, 제가 그 절에서 용천스님을 모시던 병도라는 사람올씨다, 마침 용천스님의 옛 친구이자 우리 사찰 새 주지이신 혜천스님이 처사님을 좀 뫼시고 오라는 연락을 받아서 지금 막 찾으려고 가던 중에 이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