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1)

노름

by 김수현

1


초저녁에 따뜻하게 데운 군불이 새벽녘이면 방구들이 식어 등짝이 시렸다. 첫 닭 울음소리에 잠이 깬 황 영감은 소죽을 끓이려고 일어났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뒤뜰에 쌓아놓은 장작을 한 아름 가져와 얼른 아궁이 앞에 내려놓았다. 손이 무척 시렸다. 아궁이 안에 얼기설기 장작을 걸쳐놓고 그 사이로 마른 솔잎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성냥불을 붙였다. 바짝 마른 솔잎에 불길이

바르게 옮겨 붙자 따스한 온기가 황 영감의 식은 앞가슴에 와닿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는 엉덩이에 깔고 앉은 장작 토막을 다시 들고 몸을 바짝 아궁이 앞으로 당겨 앉았다. 부지깽이를 들어 불이 잘 붙도록 조심스럽게 갈비 사이를 헤집었다.

"따다닥!"

장작 껍질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한참 뒤에 솥뚜껑 사이로 주르륵 물이 흘러내리더니 이젠 ‘식식’ 거리며 김 빠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황 영감의 얼굴은 열에 달아서 뜨거워 오는데 등짝은 차다 못해 시렸다.

“푸드덕~”

건너 집 담장 너머 닭장에서 날개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곳도 새벽 첫닭 우는소리가 들렸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나자 영감은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며칠 보지 못했던 장남 만석이가 막 사립문을 들어서는 것이었다. 영감은 며칠 만에 보는 만석이를 보니 너무 반가웠다.

"야, 애니야! 어데 갔다가 이 새벽에 오누!"

아들 만석은 아비의 말에 대꾸 한마디 없이 고개만 푹 숙인 채 얼른 제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허허, 그놈, 지 아비가 묻는데.......”

며느리인 봉내는 얼굴도 예뻤지만 심덕도 무척이나 좋았다. 사실이지 가진 재산이란 지지리도 없는 가난한 황 영감 댁에는 과분한 며느리였다. 며칠 만에 들어오는 자기 남편에게 말 한마디 원망도 없이 조용하게 일어나 물자 배기를 머리에 이고 앞산 샘물가로 향했다.

이 추운 겨울 새벽에 자배기로 여러 차례 물을 이고 날라 큰 항아리를 채우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녀의 손과 귀가 시렸지만 독을 다 채운 뒤에 아침을 하려고 아궁이에다 성냥불을 붙이면 빨간 불이 힘차게 타들어가는 것을 볼 때 그 누구도 느끼지 못할 따스한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그녀는 어제 삶아서 광주리에 담아 놓은 보리밥을 가마솥 바닥에 깔고 바가지에 씻어 놓은 조와 쌀을 얹고는 물을 부었다.

먼동이 트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에서 굴뚝에서 올라오는 아침 연기가 부드럽게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하얀 서리가 내린 겨울 날씨는 콧구멍을 따갑게 쥐어뜯고 있었다.

황 영감은 소죽을 끓이고 다 탄 장작불을 화로에 가득 담아 사랑방에 들여놓았다. 그러고는 솥뚜껑을 뒤집어서 그 위에 물을 가득 채웠다. 솥뚜껑 위에 물은 금방 따뜻해졌다. 영감은 여물을 푸는 바가지로 물을 떠서 얼굴을 씻었다. 손바닥이 얼굴을 떠나자마자 짧은 수염이 얼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손에 쩍쩍 얼어붙는 문고리를 잡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한 뼘 간격으로 대 여섯 개가 박혀 있는 옷걸이 대용인 못에 걸려 있는 흰 광목 조각으로 만든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후에 다시 문밖으로 나갔다.

“아가, 요즘 아범이 밤새 어디 다니니?”

“예, 아버님, 마실 친구분들과 어울리는가 봅니다.”


2


동네의 늙은 노인네들은 대다수 하루 종일 양지바른 사랑에서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 멍석을 짜며 소일거리를 하지만 젊은이들은 나무 한 짐 하고 나면 할 일이 없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동네 같은 또래끼리 모여 화투나 치고 노는 것이 농촌의 일과였다.

오늘도 학교 앞 봉석이네 가게 뒷방에 아래위 동내 젊은이들이 모여서 화투판과 막걸리 판을 벌리고 있었다.

고일 골에 가게라곤 아래, 윗마을 통틀어 학교 앞 딱 밭머리 봉석이네 가게 하나뿐이었다. 도로와 접한 두 평반 남짓한 가게 좌판에는 담배며 몇 개 안 되는 과자 봉지, 아이들의 공책과 연필 등 얼마 되지 않는 문구, 몇 병의 술이 전부였다. 실상은 마당을 지나 안채에 딸린 방에서 밤늦도록 동네 청년들을 상대로 화투판을 벌려서 막걸리, 소주를 팔았고 두부나 묵, 닭, 오리를 잡아 술안주를 해서 파는 주막집이었다.

가게는 하동댁의 늙은 시어머니가 소일거리로 하고 술이나 밥, 안주는 과부인 하동댁이 팔고 있었다.

다른 젊은이들과는 달리 겨울철에도 일만 하던 만석이가 어느 사이엔가 달봉이와 함께 어울리더니 며칠 전부터 딱 밭머리 가게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딱 밭머리 가게에는 며칠 전부터 읍내에서 달봉이와 야간 고등학교를 함께 다니면서 사귄 친구들이라며 고일 골에 놀러 와서 함께 화투판을 벌리고 있었다.

읍내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고 옷도 희멀끔하게 차려입은 그들에게 동내 젊은이들은 손님 대하듯이 정중하게 대했다. 만석이 또한 이들 뒤에 앉아서 심부름이나 하면서 구경하다 가끔 패거리 중에 잠깐 자리를 뜨거나 할 때 몇 푼 안 되는 심심풀이 화투를 거들고 있었다.

며칠을 어울려 치다가 패거리 중 만석이와 친구인 병태가 먼저

“야, 달봉아, 맨 화투는 너무 심심하다, 우리 가기나 짓고땡으로 한 판 해보자, 어때? 안동 친구들은 어떻소?”

하고 말을 꺼내자 안동에서 온 영갑이와 태호는 못 이기는 척하면서

“그럽시다, 한 번 돌려 보소.”

하면서 모두 찬성했다. 처음에는 작은 돈이 오고 가더니 며칠이 지나자 판돈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읍내에서 온 영갑이가 담배 필터를 지근지근 씹다가 담배 필터에 붙은 종이를 재떨이에 뱉으면서

"씨발, 끗발이 이렇게도 없나? 벌써 며칠째야! “

하고 투덜거리자 비썩 마르고 키가 큰 태호도 역시 돈을 잃고 있는지 한마디 거들었다.

“형씨들 속이는 거 아닙니까?"

"참내....... 우리 같은 촌놈들이 뭘 알아서 속입니까!"

“그래도 이거 너무 안 되니 원!”

병태 앞에 제법 많은 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병태 끗발 괜찮네, 한턱 내지?"

달봉이가 화투장을 끌어모아 치면서 싱글벙글하며 병태를 은근히 띠웠다.

"까짓것, 한턱 쓰라면 쓰지 뭐, 만석아! 여기 닭 한 마리 잡고 술상 좀 다시 봐 달라고 해라!"

오늘도 뒷전에 앉아 화투판 고리나 뜯고 심부름이나 하는 만석에게 병태가 한마디 하자 여러 차례 고리로 받은 돈이 제법 많은지라 만석은 신바람이 나서 얼른 문밖으로 나가 하동댁을 불렀다.

만석은 달봉과 초등학교 동창이고 이웃에 살지만 평소에 달봉은 만석을 못 잡아먹어 난리였다.

본래 만석이의 부인 봉내는 처녀시절 달봉이가 죽도록 따라다녔던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공부 잘하고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만석이에게 하루아침에 빼앗겨 버렸으니 달봉이로서는 만석이가 원수 같은 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두 사람 사인데 근래에 달봉이와 만석이가 서로 붙어서 다니니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둘이 아래윗집에 사는 터라 친구들은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와서 달봉이가 더더욱 만석에게 붙어서 살살거렸다. 노름판이 붙자 달봉이는 만석을 보고

“만석아, 자네가 고리 봐라!”

하고 자기 앞에 있는 돈을 쿡 집어서 만석에게 쥐여 주면서 인심을 쓰자 만석은 지금까지의 모든 허물을 일시에 벗어버리고 거리낌 없는 옛 친구로 대하기 시작했다.

돈이란 고리에 묶인 시골 젊은이들은 잃은 사람은 본전을 찾으려고 딴 사람은 더 따려고 날밤을 세워가며 화투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때 영갑이란 친구가 만석이를 보고

"며칠 내리 잃고 나니 본전 생각 간절하네, 만석 씨도 한판 붙어 보지요!"

며칠을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화투 치는 것을 본 만석은 이 정도면 자기네들 놀 때 치는 화투나 별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갑이와 태호가 돈을 수도 없이 잃는 것을 본 만석은 안동 깍쟁이들도 별것이 아닌 것 같았다.

“고리 돈도 제법 있겠다, 까짓것 한판 붙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석은 큰맘 먹고

"한번 돌려 보소! “

하고 엉덩이를 화투판 앞으로 당겼다.

"야~ 만석이가?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담배 연기가 눈이 따갑도록 자욱하게 방안을 감싸고 있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담배가 떨어지기 무섭게 달아 물고 있었고 호롱 불은 길게 그을음을 올리고 일렁이고 있었다.

차가운 방안 선반에 매달린 매주 뜨는 냄새가 만석에겐 오늘따라 유달리 구수한 것 같았다.

만석이가 화투판에 달려들자 태호의 패 돌리는 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흩어진 화투판을 손으로 걷으면서 패 두 장을 다른 패와 함께 오른손에 잡았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화투패를 엄지와 검지로 살짝 눌려 놓고는 패를 섞은 후 기리를 하라고 화투 목을 만석이 가까운 담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자, 첨 들어오신 분이 기리 하시지요.”

만석이가 얼른 화투패를 두세 번 갈라놓자

“자 다시 한번 더 기리 하세요.”

하고 무척 공정한 듯한 자세로 이번에는 병태를 향해 화투 목을 내밀었다.

“왜 그러십니까, 첨 하시는 분처럼, 그냥 돌리면 될걸."

병태는 제법 숙달된 화투 꾼처럼 검지로 화투 목맨 위의 장을 살짝 떨어뜨렸다. 그리고 남은 화투 목을 그 위에 올려놓으면서 화투 목을 태호 앞으로 밀었다. 태호가 화투 목을 다시 잡고 돌리기 시작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위 장부터 화투장을 빼는 것 같았지만 실은 때에 따라서는 빠른 손놀림으로 검지가 화투의 밑장을 빼내 엄지와 함께 상대에게 돌렸다.

만석이는 시작부터 땡이었다. 만석이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몇 판을 이기니 돈이 만석이의 앞에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남이 볼세라 오른손으로 왼손을 가리며 엄지손가락으로 화투장을 누르며 훑고 있는 만석이의 목구멍 울대가 어두운 호롱 불빛에서도 보일 만큼 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태호와 영갑이는 화투장을 훑으면서도 꾼들의 표정을 단 한 번도 지나치지 않고 주시하고 있었다.

만석은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았으나 돈을 따고 있었으니 일어설 수가 없었다. 눈치를 챈 태호가 패를 돌리자 이번에는 만석이 패가 망통 아니면 따라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 때다 싶어 만석은 오줌을 누려고 밖으로 나왔다.

벌써 새벽 서리가 내린 모양이다. 추위가 옷 사이로 파고들며 오줌 줄기조차도 얼게 하는 것 같았다.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그중 별 하나가 교회의 십자가에 걸려 있었다. 만석이는 뒤 개울가에서 볼일을 다 본 후 몸을 한번 떨고는 바삐 화투 방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태호는 먹다 남은 술상을 끌어당겼다. 그는 술상 위에 있는 빈 대접에다 막걸리를 가득 부어 한 잔을 마시고 한 손으로 입을 썩 문지르면서 다시 한잔 가득히 부은 술잔을 들어 영갑이에게 권하면서

"씨발, 더럽게 안 되네! 야, 한잔 받아라!"

"자네도 그렇게 안 되나? X도 어제나 오늘이나 나도 끗발 더럽게 안 붙네."

하면서 널름 술잔을 받아 마신 영갑은 손가락으로 김치를 쭉 찢어서 먹은 후에 상위에다 썩 문질렀다.

"형씨들, 오늘은 이만 눈 좀 붙이고 저녁에 큰판 한판 벌립시다, 어디 이래 가지고 본전이나 찾겠소!"

하고 영갑이가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사실 만석이도 오금이 저려와 몇 번이고 다리를 고쳐 꼬면서 화투를 치고 있었다. 돈도 땄고 이젠 좀 쉬었다 하고 싶었으나 돈은 혼자 딴 것 같아 얼른 일어서자고 말하기 거북했다. 그런데 다행히 영갑이가 먼저 끝내자고 하니 무척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아, 예, 그럽시다, 오늘 저녁에 다시 만납시다."

병태가 얼른 말을 받았다. 병태도 오금이 저려오고 허리가 꼬이는 것은 만석이와 다를 바 없었다. 태호가 화투판을 접어 넣는 사이에 두 사람은 엉덩이 밑에 깔린 돈을 대충 모아서 저고리 안에다 쑤셔 넣었다.

"그래! 이따 저녁에 보자!"

세 사람이 주전자에 남아있는 술을 마시고 있는 사이에 만석이는 병태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석이와 병태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학교 담장을 지나 뱀 꼬리처럼 길게 흐르는 계곡 안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바삐 걸었다. 가슴 아래에 부석거리는 돈뭉치를 양 저고리로 겹쳐 여미고 어깨를 구부려 팔짱을 꼈다.

"이 대로 간다면 내년에는 논마지기를 살 수 있을 것 같군."

만석이가 매형이 보내 준 돈으로 산 샘내 두 마지기 반짜리 논 옆에 얼마 전에 매매하려고 내놓은 논도 누구의 도움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가슴이 뿌듯하고 무척 흐뭇했다. 논이라고는 여태 천수답 몇 뙈기 산비탈 여기저기에 있는 것과 샘내에 있는 논이 고작이었다. 지금까지는 여름 내내 죽으라고 고생해도 한번 가뭄이 들면 보릿고개까지 가기도 전에 곡식 알맹이조차 구경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나마 샘내 논을 매형이 사줘서 겨우 연명하고 살았던 자신이었다. 평생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연히 노름판에 끼어들었더니 이제 내 논이라고 십여 마지기 만져 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이 생겼다. 그런 그의 상상은 꼭 꿈만 같았다.

희미하게 새벽을 알리고 있건만 무슨 미련이 남은 지 서쪽 하늘에는 아직 넘어가지 않는 반달이 만석이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병태야, 조심해 가라, 한숨 자고 이따 보자.”

“그래, 이따 보자.”

아직 이른 새벽이라 마을 전체는 어두운 침묵에 싸여 있었다.


평소에 일밖에 할 줄 모르는 착하디 착한 만석이가 그렇게 노름판에서 돈 몇 푼을 따고부터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매일 밤 딱 밭머리 석봉이네 가게에 내려가서 집에 들어올 줄 몰랐다.

그리고 사나흘이 지난 늦은 저녁이었다.

그날 저녁 황 영감은 하루 종일 터 밭 건너 친구 집에 가고 없었고 봉내는 석유 아끼느라 일찍부터 호롱 불을 끄고 아들 봉기와 함께 잠이 들어 있었다.

만석이는 큰 판을 벌려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는 노름 밑천을 만들기 위해 아내가 깊이 잠든 안방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손으로 윗목 벽을 더듬다가 시렁 위에 얹혀 있는 조그만 옷장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빼곡하게 들어 있는 옷가지 뭉치를 가만히 시렁 옆으로 빼놓고 다시 옷장 밑으로 손을 넣어 이리저리 더듬었다.

“분명히 여기 있을 텐데?”

그는 옷장 속을 뒤지면서 얼마 전에 아내가 옷가지를 챙겨 넣으면서 집안에 주요 문서가 든 서류 봉투를 옷장 밑바닥에 챙겨 넣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렇지!”

옷가지 맨 밑 안쪽에서 종이봉투의 감촉을 느끼자 얼른 꺼내 그의 앞가슴속으로 집어넣었다. 장롱에서 꺼내 놓은 옷 뭉치를 다시 넣고 그는 혹 아내가 깨어날까 조심스럽게 문을 닫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히 노름판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3


그날 밤도, 이튿날 밤도 만석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들어오지 않는 것을 아내 봉내는

“이이가 아마 담배 치기나 술값 내기 화투로 친구들과 함께 보내겠지!”

하고 평소처럼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 보름 동안 나무 한 짐 하지 않고 노는 데만 정신이 팔린 남편이 야속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워낙 말이 없고 건실한 남편이니 찾아다니면서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초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보내는 구들장이 싸늘하게 식은 새벽이 되자 잠이 깼다. 윗목을 더듬어 성냥갑을 찾아든 그녀는 호롱에 불을 붙였다. 불이 밝혀지자 언제 들어왔는지 남편 만석이가 아들 봉기 옆에 쪼그리고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이가 언제 들어왔나? 저런 이불도 덮지 않고?”

남편 만석이가 쪼그리고 자는 모습을 본 봉내는 측은한 생각이 들자 자신이 덮고 자던 이불을 당겨서 덮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밤새 위풍으로 식어버린 옷가지를 주섬주섬 입었다. 다시 호롱 불을 끄고 방문을 열고 나섰다. 문을 열자마자 그나마 따스한 체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고쟁이 밑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자배기에 바가지를 담고 머리에 똬리를 얹었다. 그녀는 사랑방에서 들리는 시아버지의 인기척을 뒤로하면서 우물로 발길을 돌렸다.

어느새 아침이 오고 있었다. 만석이네 집은 동쪽 뒷산을 등지고 있었다. 날이 훤하게 밝아 오고 있었지만 만석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보내는 남편과 아들 밥을 떠서 보자기로 싼 후 남편이 잠든 방안 요 밑에 묻었다. 그런 후에 머리맡에 별로 차린 것이 없는 개다리 상위에 몇 접시 안 되는 반찬을 잘 여미어 놓고 상보를 덮어 두었다.

아침 태양이 훌쩍 마당 한가운데로 들어섰고 태양을 받은 아침 서리가 보석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양지바른 앞산을 향해 발길을 옮기는 동안 만석은 목이 타오는 것을 느끼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손으로 빗으면서 흘러내린 바지를 허리춤 위로 잡아당겼다. 못 마시는 술을 과하게 먹은 탓에 눈을 뜨기가 힘들 정도로 머리가 아파졌다. 상보를 젖히고 물그릇을 찾았으나 아내가 떠 놓은 숭늉밖에 없었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항아리 둘레에는 물이 줄어드는 만큼 어름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는 살얼음 밑으로 바가지를 누르고 물 한 모금을 떠서 마셨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목구멍이 시리다 못해 따가웠다.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온 만석은 천진스럽게 잠들어 있는 아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아들이 커갈수록 영락없이 할아버지를 닮아간다고 생각했다.

“불쌍한 자식!”

가만히 아들의 손을 잡아 보았다. 실개울 어름 판에서 팽이를 치고, 썰매를 타고,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다가 추운 겨울이라 제대로 씻지도 않은 탓에 잠든 아들의 손이 터서 무척 거칠해 있었다.

“후유, 노름판에서 재산을 몽땅 날려 버렸으니 나는 이제 어떡해야 하누!”

앞으로 살아갈 걱정이 태산같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잠에서 깬 그는 어젯밤 일이 꿈이 아니라 생시인 것이 원망스러웠다. 군데군데 기워서 옷을 입은 초라한 아내의 풀 죽은 얼굴이 떠올랐다. 밥 한 끼라도 덜어보려고 아래위 동내 어디든 경조사가 있으면 창피를 무릅쓰고라도 단숨에 달려가시던 아버지의 가난이 몹시도 가슴에 저며 오고 있었다. 주름으로 앞산 콩밭 골보다 더 깊은 골을 하고 있는 키 작은 아버지의 쪼그린 모습이었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돈을 빌려줘가며 노름판을 부추겼던 달봉이가 원망스러웠다. 징그러울 정도로 살이 찐 영갑이와 비쩍 말라 앙칼지게 생긴 태호의 모습도 원망스럽게 떠올랐다.

“나쁜 놈들!”

만석은 몸을 부르르 떨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달봉이의 꾐에 빠진 줄을 모르고 있었다.


어제저녁에 있었던 일이었다. 제법 돈을 따고 있을 때 가겟집 봉석이가 만석을 불렀다.

“야, 넌 끗발 한참 오르는데 왜 오라 가라 하냐?”

하고 반갑잖은 눈초리로 한마디 하자 어디서 듣고 알았는지

“만석아, 재들이 유명한 노름꾼이란다, 얼마 전에 재 넘어 어담 마을서 저 사람들이 노름판을 벌여 몇 사람 집안을 거덜 냈단다, 처음에는 돈을 잃어주다가 판을 키워서 나중에 몽땅 끌어가는 유명한 노름꾼이란다, 이제 정신 차리고 그만해라!”

하고 귀띔해 줬을 때 봉기 말만 들어도 아무 걱정이 없었을 텐데 그때는 한참 돈을 따고 간이 커질 만큼 커진 만석이 귀에는 봉석이의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막판은 태호가 패를 돌리고 있었다. 태호의 널찍한 오른쪽 손바닥에는 삼광 한 장이 숨겨져 있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만석은 순조로웠다. 손에 잡힌 화투 석장으로는 이미 짓고 있었고 한 장은 단풍잎 아래에 한가로운 사슴 한 마리가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만석은 포개놓은 다른 한 장을 조심스럽게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면서 훑어 내렸다. 만석이의 마른침 삼키는 모습은 한층 긴장 고조되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

하마터면 만석이의 탄성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모두 자기 패에만 열중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만석은 가슴이 두근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집에 키우는 황소를 담보로 한 돈과 지금껏 딴 돈을 앞으로 내밀었다. 태호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돈을 더 얹었다. 다시 만석은 가져온 논문서도 앞으로 내밀었다. 언제부터 만석이의 배짱이 그렇게 늘었는지 만석이 자신도 몰랐다. 아니었다. 조금 전에 영갑이가 자기 몫을 보면서 화투 패 위에 얹는 것을 슬쩍 보았는데 분명 팔 광 한 장이 화투장 속에 섞인 것을 언 듯 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삼팔 광 땡은 잡은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영갑이와 달봉은 만석이가 자신 있게 논문서까지 얹는 것을 보자 자신 없다는 듯이 뒤로 물러나 만석이의 패를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야, 뭐로? 한번 보자.”

그러나 꼭 움켜쥔 화투장을 두 손으로 덮은 채 만석은 태호의 결과에 가슴을 울렁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앞에 보이는 태호 앞에 있는 저 많은 돈이 분명 자신 앞으로 끌어올 것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의 가슴은 처녀가 널을 뛰듯 한층 더 뛰고 있었다.

“만석 씨, 까보시지요.”

짧은 시간인데도 태호가 왜 그렇게도 늦게 답하는지 답답했다. 얼른 판돈을 자기 앞으로 끌어오고 싶었다. 급했다. 만석은 태호의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자기 패를 뒤집어서 힘껏 내려쳤다. 화투 뒤 귀퉁이에 있는 단풍잎을 바라보는 노루 한 마리가 군용 담요 위에서 펄떡 뛰었다. 이어서 푸른 띠가 가운데 있는 단풍잎 한 장이 노루 위로

“짝!”

하는 소리를 지르며 겹쳐서 환하게 만석을 향해 웃고 있었다.

“모두 내 거야!"

만석이는 깔린 장땡을 개선장군처럼 바라보며 판돈을 앞으로 끌어 다니려는 순간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만석은 숨이 막힐 듯한 이 순간이 빨리 지났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내 거도 보고 가져가든지 해야지!”

태호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한마디 하는 순간 만석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태호가 다른 화투 목의 삼광 한 장을 손에 끼고 있다가 자기 몫으로 뜬 화투장을 검지와 중지로 손바닥에 숨긴 화투장 밑으로 넣는 동시에 엄지손가락으로 숨긴 화투장을 빼내 밀면서 화투판을 향해 힘 있게 두드렸다. 삼광과 팔경, 삼팔 광 땡이었다.

“이, 이럴 수가?”

만석이의 얼굴이 그만 사색이 되어 버렸다.

“분명 삼광인가 발광이 앞에 놓인 화투 목 아래 들어갔는데?.......”

만석은 얼빠진 얼굴을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누구 한 사람도 화투 목을 확인해 보려는 사람은 없었다. 만석이가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신경을 쓴 탓인지 현기증이 났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어지러워 만석은 쓰러질 뻔했었다. 만석은 한참 만에 정신이 들었다. 만석이의 앞에는 돈도 논문서도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 가서 돈을 구할까?”

정신이 들자 그는 아쉽게 잃어버린 그 돈은 되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오늘 끝 발이 없어진 것일 뿐 다음번에는 분명히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장땡을 잡은 그가 아쉽게도 단 한 끗 차이로 그 많은 돈이 태호에게 넘어갔다니 분하기만 했다. 그는 벌떡 일어서면서 돈을 빌릴 곳을 생각했다. 화투판이 깨지기 전에 얼른 이곳을 빠져나와 돈을 빌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내 돈 갖고 올 테니!”

만석이 눈에 독을 품은 것은 지금까지는 아무도 본 적이 없었다.

“걱정 말고 빨리 갔다 오시오.”

능글맞은 영갑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 말을 귓전으로 들으며 만석은 문을 젖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단 한 번도 남의 돈이란 빌려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 가서 무슨 핑계로 돈을 빌려 달라고 해야 할지 만석은 몰랐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안동에 있는 동서가 생각났다. 안동에서 장사를 하는 봉내 언니 봉순이가 있는 것을 생각해 냈다. 오랫동안 장사를 해서 거기에는 돈이 있을 것이다. 올해는 차떼기로 쌀 도매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분명히 집에 돈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안동 시내까지 이 저녁에 삼십 리 길을 갔다가 와야 하니 그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잃은 돈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런 중에도 달봉이 집에 자전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그는 단숨에 노름방 달봉이에게로 달려갔다. 모두 노름판에 정신을 쏟다가 화들짝 문 여는 소리에 놀란 듯이 시선을 만석이에게로 향했다.

“야, 달봉아, 자네 자전거 좀 빌려주라.”

“아니, 이 밤중에 자전거는 왜?”

“잔소리 말고 몇 시간만 빌려 주거라.”

“그래, 집에 가서 끌고 가라. 우리 삽짝 앞에 있을 거다."

“고맙다. 빨리 갔다 올게........”

“조심해서 타라, 산 지 얼마 안 됐으니.”

하는 소리를 귀전으로 들으며 열쇠를 거머쥐고 불이 나게 발길을 달봉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그는 얼마나 페달을 힘 있게 밟았는지 온몸에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다리는 뻐근하고 숨이 가빠와도 그는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았다. 십 리나 가까운 좁고 험한 배고 기재를 택하지 않고 무릉으로 향해 구 철둑 옆 옥야동 처형 집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전등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마침 집에는 동서도 없고 처형 혼자 이불을 펴고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처형!.”

하고 숨이 차서 부르는 소리에 미닫이문을 열면서 놀란 봉내 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이고, 이 밤중에 제부가? 추운데 어서 들어오시소. 저녁 진지는 드셨고요?”

하면서 아랫목에 깔아 논 이불을 걷으면서 반갑게 맞이해 준다.

“아닙니다, 다른 게 아니고, 저, 저.......”

말을 더듬거리자

“추운데 우선 방으로 들어와서 말하지요. 어서요.”

“아닙니다, 다른 게 아니고, 지금 돈이 급해 그러니 아무 말 말고 있는 대로 돈 좀 빌려주세요. 내일 바로 드릴게요.”

그녀는 제부가 노름을 하다 온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날 이때까지 단 한 번도 남의 돈을 빌리지 않던 착실한 제부가 이 밤중에 허겁지겁 달려와 돈을 빌려 달라니 분명 무슨 이유가 있는 듯했다. 그녀는 신문지에 말아서 싼 돈뭉치 하나를 장롱 속에서 꺼내면서

“서울 쌀 도매를 한다고 다 가져가고 이게 전부예요, 뭔 일인지는 모르지만 이거라도 가져가실 압니까?”

“얼맙니까?”

“백만 원이에요."

그는 그의 처형이 든 돈을 빼앗다시피 받아 들고 자전거를 돌렸다. 그녀는 서두르는 만석이를 보고

“뭘 그리 급하게 서둘러요? 물이라도 한 그릇 자시고 잠시 숨이라도 돌리고 가시지 않고?”

“예, 논 때문에 계약하려고, 사람이 기다려나서... 그만 갈랍니다, 아무튼 고마워요.”

논을 사려고 계약금을 빌린다는 말이 엉겁결에 튀어나왔다. 말을 하고 보니 잘 둘러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석은 돈뭉치를 말아서 셔츠 속에 넣고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만석이 도착한 밤늦은 시간은 노름꾼들에게는 한참인 시간이었다. 만석이가 도착하자 병태는 잃었다 땄다 한참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만석은 병태와 달봉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가슴에 넣어 둔 돈뭉치를 꺼냈다.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돈을 싼 신문지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자, 나한테도 패를 돌리세요.”

돈 일백만 원이 노름판에서는 돈도 아니었다. 너 댓 판을 치고 나니 빈털터리가 되었다. 늦은 밤에 삼십 리 길을 자전거를 타고 안동 처형 집에서 빌려온 돈도 빌려 올 때는 몇 시간이 걸렸지만 잃을 때는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날려 버렸다. 만석은 멍하니 노름판을 바라보았다. 꼭 꿈을 꾸는 듯했다.

태호는 소위 노름꾼들이 사용하는 탄지 신통(彈指神通), 낙영 장법(落影掌法), 초상비(草上飛)를 알고 있는 노름꾼이었다.


방금이라도 노름꾼들이 문을 벌컥 열고 빚진 돈을 받으려고 만석이를 찾아오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외양간 소를 끌고 가는듯한 착각도 들었다. 또 집문서와 논밭 문서는 어찌하고, 읍내 처형이 돈 이야기를 하면 무슨 말로 대답을 할 까도 걱정이었다. 매형 돈으로 사준 샘내 논은 어디 가서 찾을 것인가. 매형에겐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가. 꽉 막힌 태산 같은 걱정이 밀물처럼 가슴에 밀려왔다. 아내, 아버지, 매형, 처형,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도저히 바라볼 재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꼭 귀신에게 홀린 것 같았다. 그는 아들의 손을 슬며시 놓고 힘없이 일어섰다.

“내가 살아서 뭐 하나, 나만 없으면 된다.”

그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그 많은 사람들이 원망하는 모습을 볼 일이 끔찍할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처형이 원망스럽게 쳐다보는 모습도 떠올랐다. 그는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그 수밖에 없다!”

그는 중얼거리면서 중문을 지나 사랑방으로 향했다. 그는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 같았다. 아버지가 항시 거쳐하던 사랑방은 아내가 나가면서 깨끗하게 쓸고 닦아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시렁가래 위에 걸어 놓은 메주 뜬 냄새가 강하게 그의 코에 스며왔지만 그는 아무 냄새도 느끼지 못했다. 밝은 아침햇살이 방안을 무척 따사롭게 밝혀주고 있었다. 허리띠를 풀었다. 그리고 걸어 놓은 메주를 밀쳐냈다. 메주를 묶은 새끼줄이 정신 줄을 놓은 만석이의 손에 잘 밀려나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을 똑같이 메주를 묶은 새끼줄을 밀려고 애를 썼으나 역시 제자리에 있을 뿐 밀려나지 않았다. 메주가 달려 있는 새끼줄 바로 옆 시렁가래에다 허리띠를 걸고 묶었다. 허리띠가 풀린 만석의 바지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는 바지가 흘러내리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발끝을 들고 시렁가래에 걸려 있는 허리띠 사이에 목을 넣었다. 눈앞에 죽은 둘째 아들 채기를 안은 어머니가 만석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그러나 목소리는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고 입술만 작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반갑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여 어머니를 안으려고 앞을 향해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4


만석이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었다. 소복을 하고 슬프게 울면서 상여를 따라가는 봉 내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달봉은 이제 봉 내를 차지할 새로운 희망에 차 있었다. 오늘따라 상복을 입은 봉 내의 모습이 다른 때 보다 더욱 예뻐 보였다.

“병신 같은 자식, 저렇게 예쁜 마누라를 놔두고 죽긴 왜 죽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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