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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방이 Mar 26. 2020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윤동주의 <길> 중에서


할머니 한 분이 울면서 들어오셨다.


"집이 헐려, 집이 헐려. 빨리 와봐, 빨리. 큰일 났어. 집이 헐려."


서 경위님과 나는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어떻게 좀 해줘. 그 놈들이 집을 막 부수어. 포클레인으로 지금 막 부셔. 빨리 와봐. 아악." 할머니는 소리쳤다. 다급했고, 슬펐고, 무서워했다.


우리는 할머니와 함께 현장으로 갔다. 정말 포클레인이 집을 부수고 있었다. 두세 명의 인부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고, 15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공무원인 듯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이죠?" 나는 그중 현장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다.


"대집행 중입니다. 왜 그러시죠?" 왜 물어보냐는 투였다.


신고를 받고 왔다고 간략히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왜 대집행 하는 거죠?"


"여기 부지가 원래 철도청 부지예요." 그는 길 건너 아파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파트 건설하면서 여기는 원래 공원으로 조성하기로 한 부지입니다. 여러 차례 이주 통보했고, 이미 보상금도 지급했습니다. 물론 수령하지 않으셔서 법원에 공탁된 상태이지만. 주변 아파트에서 민원이 너무 거셉니다. 몇 년째 이전 기회를 드렸는데, 전혀 통하지 않으셔서, 이렇게 대집행 하게 됐습니다." 그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주택은 불법 무허가 건물이었다. 무허가 건물이라도 서울시가 소유한 땅에 지어져 있으면 임대 주택 등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철도청 부지를 점유한 무허가 건물에 대해서는 그런 후한 보상 규정이 없다. 적게는 몇 백만 원, 많게는 몇 천만 원의 보상금이 주어질 뿐이다. 그 돈으로 서울에 살 집을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시 소유 부지에 살던 이웃 사람들은 임대 주택을 받아 떠났다. 철도청 부지를 점유한 할머니는, 이웃 사람들처럼 임대 주택을 받지 못해 억울했을 수도 있다. 버티고 싸우면 자신에게도 임대 주택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던 모양이다.


연세 많으신 할머니가 법이나 규정 같은 것, 알 도리가 있겠는가. 그저 몇십 년째 살아온 집이다. 자식도 가족도 없다. 이사 갈 여력도 없었을 것이다. 정부의 이전 명령에 버티고 고집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 간 살아온 내 집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온 몸으로 맞서야 했다.


"남에 땅에 불법으로 건물 짓고 지금까지 혜택 누렸으면 됐지. 남들은 월세다, 전세다 하며 없는 돈, 있는 돈 다 끌어다 내는데." 한쪽에서 저들끼리 하는 대화가 들렸다. 할머니에게 문제가 있다는 투였다. 맞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법적으로 그의 말은 옳다.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정당성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으나, 가치관의 차이일 수도 있다. 자신이라면 더 어렵더라도 그런 불법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며, 불법을 저질렀다면 수긍하고 인정할 것이라는 태도이다.


서울에는 아직도 무허가 건물이 많다. 해방 후 가난에 떠밀려, 서울로 몰려온 실향민들은 아무 땅에나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 부동산 투기가 아닌, 그저 살기 위해 지은 집이었다. 토지 소유에 대한 개념이나 규정이 희미할 때였다. 살다 보니 국유지네, 시유지네 하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 날 몇 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점용료 고지서도 받았을 것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나라에서 내라는 돈이니 당연히 내는 것으로 알고, 없는 돈을 긁어모아 점용료도 냈다. 가난은 대물림됐다. 아빠는 술에 빠져 살았고, 엄마는 집을 나갔다. 가난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즈음, 재개발을 한단다. 쫓겨나야 했다.


재개발은 더불어 살기보다는, 가난한 자들을 쫓아내면서 이루어졌다. 무허가 주택에 살던 사람들은 강남에서, 목동에서, 서대문으로, 노원으로, 수도권으로 계속 밀려났다. 재개발은 최하층을 자꾸 밀어냈다. 그들은 점점 더 이방인이 되어갔다. 굴곡진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맞선 자들. 그들은 전방에서 가난으로부터 우리를 지켰지만, 우리는 그들이 떠난 자리에 아파트를 지었다.


대한민국의 지상과제는 서울에 아파트를 사는 것이다. 구입한 아파트 값은 무조건 올라야 한다.  떨어지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 모아 구입한 아파트이다. 집값을 떨어트리는 요인은 무조건 온몸으로 막아야 한다. 아파트 옆 흉측한 무허가 건물은 철거 대상 제1호이다. 장애인 학교도 안된다. 요양원도 안된다. 재개발은 결국 사람을 쫓아내는 일부터 시작된다.


"이 놈들아, 그만해, 이 놈들아." 할머니는 울부짖었다. 포효했다. 소리 지르고 악을 썼다.


"아니, 아직 사람이 사는 데, 아무리 법 집행이라지만, 이렇게 막 철거해도 됩니까? 오늘 철거한다고 사전에 미리 안내는 하셨나요? 할머니는 몰랐다는데, 언제 계고하셨죠?" 나는 정중히 따지듯 말했다.


"네, 저희도 오래 기다렸고요, 주변 민원도 만만치 않아서요. 그리고 저 집 한 가구만 사는 게 아니에요. 저 집에 세 집이 있어요. 오늘은 비어있는 앞집만 철거할 거예요. 할머니 댁은 오늘 철거 안 해요. 할머니도 다 아세요. 아시면서 저러시는 거예요." 무리 중 지위가 높아 보이는 사람이 나서서 대답했다.


오늘 철거되지 않는다는 말에, 나는 다소 안심이 됐다. 할머니께도 사정을 설명드렸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할머니는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왔다며 가지러 가도 되냐고 물었다. 내가 함께 가주었다. 할머니는 핸드폰을 들고 나오더니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포클레인이 다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포클레인 돌아가는 소리와 돌 깨는 굉음은 굉장했지만, 하늘은 맑고 고요했다. 할머니와 무허가 건물을 제외하면 온 세상이 고요했다. 중장비의 소음으로 찢어지는 것은 할머니의 삶뿐이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내였다.


"오빠, XXXXX." 소음 때문에, 전화가 잘 안 들렸다.


"아이고, 안되는데, 어찌해 쓰까, 안되는데, 안돼, 이놈들아!"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울면서 통곡을 했다.


"응, 잘 안 들려 크게 말해봐, 뭐라고?" 할머니의 통곡과 굉음 때문에 전화가 잘 안 들렸다.


"오빠, 우리 드디어 XX 됐어." 아내가 말했다.


"이놈들, 천벌 받은 놈들!" 할머니가 소리쳤다.


"뭐가, 뭐라고? 안 들려." 나는 다시 더 크게 말해달라고 했다.


"아이고, 어쩔 거냐, 이놈들아. 저 찢어 죽일 놈들, 안돼, 이놈들아!" 할머니는 갑자기 더 크게 소리쳤다.


"아파트 청약 말이야, 아파트 당첨됐다고." 아내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파트 당첨. 찢어질 듯한 철거 굉음과 할머니의 '떼려 죽일 놈아' 하는 울부짖음 속에서, '아파트 당첨'이라는 말이 또렷이 들려왔다. 순간, 나는 기뻤다. 결혼한 지 10년 만이었다.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난 소음을 피하기 위해 전화를 붙들고 철거 현장에서 좀 떨어진 쪽으로 걸었다. 돌담이 끼어 있는 길이었다. 어느새 긴 그림자가 길 위에 드리웠다. 나는 분명 기뻤다. "정말이야? 진짜야?"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자꾸만 길을 걷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이 부끄럽게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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