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느긋하게 보내기
2014년 10월 3 ~ 5일
10월의 개천절 연휴
어찌저찌해서 생긴 서울-부산 왕복 KTX 표로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작년에 하필이면 부산 불꽃 축제 기간에 겹쳐서 10월 말에 다녀왔으니 거의 1년만이다.
두 번째로 가는데다가 기차 시간도 조금 애매해서 일정을 많이 잡지 않고 느긋하게 돌아다니다 왔다.
지난 번에 갔던 자갈치 시장, 태종대, 국제 시장 등도 이번엔 가지 않는다. 사실 태종대를 들르는게 시간을 꽤 잡아먹는 일이라 두 번 가기 힘들다.
KTX 출발 시간이 딱 점심시간이라 점심을 시청 근처에서 먹고 그리 멀지 않은 서울역까지 걸어간다.
12시 반 출발해서 부산역에 도착하니 오후 3시 반 정도이다. 작년에 시간이 조금 모자를 듯 해서 못가본 감천마을로 바로 가기로 한다.
토성역 6번 출구에서 조금 걸어 부산대병원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가파른 길로 달동네를 올라간다. 연휴라 그런지 감천마을 가는 관광객들로 버스가 미어터진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이상했지만 어쨌든 무사히 도착한다.
관광객들이 엄청 많다. 알고보니 얼마 전에 뭔 방송에 한 번 나오는 바람에 사람이 더 몰린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 많고 소란스러운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작년에 왔어야 했는데 아쉽다. 이젠 조용한 마을을 볼 수 없겠구나.
일단 지도겸 도장찍는 가이드북을 하나 구입한다. (2000원)
가이드북에는 상세한 지도와 코스가 잘 나와있으니 구입해서 따라서 도는게 편하다. 어쩌다보니 거꾸로 돌게 되었는데 방향은 상관없다.
원래 민가였던 곳을 다시 꾸며놓은 곳도 있고
그대로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도 있다.
어쨌든 감천마을은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멀리 감천항이 내려다보이는 오밀조밀하고 이쁜 달동네이다.
어린 왕자와 여우상이 가장 유명한 명소라는데 한 번 사진이라도 찍을려면 줄서서 몇십 분을 기다려야 한다. 그냥 옆 건물의 벽에 그려진 어린 왕자로 만족한다.
잠깐 배를 채울겸 분식집에 들어가니 분식집 창가 자리에서 마을이 잘 보인다.
평범하지만 충분히 맛있던 쫄면 한 그릇을 간식삼아 둘이 나눠먹는다. 배는 나중에 생선회로 채울 것이니까...
뭔가 예술가들이 꾸며놓은 공간들도 여기저기 있지만 이해불가라 그냥 보면서 지나간다.
골목 구석구석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게 더 좋다.
골목 여기저기 고양이들이 많이 산다.
뚱~ 해보이는 퉁퉁한 고양이가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원래는 가장 먼저 스탬프를 찍는 곳인 감천마을 문화센터 '감내어울터'를 마지막으로 들렀다.
감내어울터 옥상에 오르니 감천 마을이 한 눈에 보인다. 이런 별거아닌 듯하면서도 감천마을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이쁜 풍경이 있다.
감내어울터 역시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닌 오래된 대중탕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옥상에 예전 모습 그대로 건강탕 굴뚝이 남아있다.
이제 스탬프를 모두 모았다. 스탬프를 다 모아봐야 엽서 두 장이 보상이지만 복잡한 동네 골목을 쉽게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이 좋다.
이제 다시 달동네 사이사이 계단을 걸어올라 마을버스 정류장 쪽으로 올라간다.
모두 올라오면 189 계단이다.
계단 너머로 감내어울터 건강탕 굴뚝이 보인다.
189계단을 올라서 버스정류장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마을버스 종점이 있다.
문화마을 정류장에는 다시 빠져나가려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데 이곳 종점에는 출발 전의 버스라 사람이 없기 때문에 편히 앉아 갈 수 있는 것이 팁이라면 팁이다.
내일은 개금역 근처부터 백양산을 올라갈 예정이다.
마침 개금역 근처에 저렴한 횟집이 있다고 해서 이 근처에서 하루를 묵기로 한다.
저렴한 집답게 조촐한 상차림이다. 여기에 가자미구이가 하나 나오는 정도이다.
생선 모듬회 소 20,000원 하나 주문했더니 가격에 비해서 푸짐하게 나온다.
양껏 먹고 3,000원에 매운탕 하나 주문해서 마무리 한다.
모기 덕분에 제대로 못자고 일어났다. 오늘은 백양산을 올라간다. 예전부터 꼭 올라가보고 싶었던 산이다.
개금 고등학교 옆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타기 위해서 언덕을 쭉 걸어올라간다.
중간에 분식집이 있어 라면과 김밥을 맛있게 먹고, 조금 더 가니 동네 제과점이 있어서 간식으로 먹을 빵과 마카롱을 구입한다.
개금고등학교 옆으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다.
등산로는 중간에 임도와 만난다. 이제 길찾기도 어렵지 않고 경사도 적당하다.
임도는 신라대학교 뒤쪽부터 선암사까지 이어지고 중간에 백양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삼거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MTB를 타고 임도를 열심히 올라간다. 운동하기 딱 좋아보이는 코스이다.
임도삼거리에서 제과점에서 사온 간식을 먹는다.
마카롱이 이만큼에 3천원이다.
임도 삼거리에서 정상쪽으로 올라간다. 정상 밑 헬기장 전망대에서도 부산이 한 눈에 전부 들어온다.
이제 정상의 애진봉까지 마저 올라간다.
해발 642미터의 백양산 정상 애진봉이다.
애진봉에서는 낙동강도 보이고
저 밑에 낙동강 하구둑, 을숙도도 보인다.
내 고향인 덕천동 쪽은 봉우리에 가려 안보인다.
해운대 장산과 불꽃놀이 관람 명소라는 금련산, 황령산도 보인다.
황령산에 올라가면 부산이 모두 보인다는데 그건 아니고 북구나 사상구 쪽까지 보려면 백양산을 올라야 한다.
늦은 점심이라도 먹어야 하니 초읍동 쪽으로 슬슬 내려간다.
초연중학교 옆으로 내려왔다. 바로 근처에 가온밀면 본점이 있어서 들어가서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비빔밀면 2개 주문해서 뚝딱 해치운다. 깔끔하고 맛있다. 밀면이 맛있다고 느껴진건 이번이 처음인 듯 하다.
밀면집 근처에서 송정 해수욕장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 편하게 타고 간다.
태풍이 북상하면서 강풍으로 모래먼지가 마구 일어나는 송정 해수욕장을 거닐다가 날이 어두워진다. 이제 저녁 먹어야지..
송정도 해운대랑 비슷하게 해변 식당들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광어 소짜도 5만 원씩 하니 돈주고 먹기 아깝다. 바로 어제도 2만 원에 먹었쟎은가.
송정역 쪽으로 가보니 꼬부랑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함께 하고 있는 회 떠주는 조그만 집이 있어서 들어가본다.
매우 허름하고 테이블도 세 개 뿐인 조촐한 가게이다. 사실 테이블 5개 중 하나는 할아버지께서 약주하는데 쓰시고 한 테이블은 티비가 올려져 있다.
광어회 3만원짜리 하나 주문한다. 저렴하기에 다양한 것은 안나오지만 부족함 없는 상차림이다.
할머니께서 약주하신 손을 덜덜 떨면서 광어회를 느릿느릿 썰어오신다. 날카로운 칼에 다치지 않을까 염려되지만 오랜 경력의 전문가이시다.
푸짐하니 만족스런 매운탕. 이렇게 푸짐한데 따로 매운탕값을 안받으신다.
맛있는 회를 주변 다른 횟집들 반 값도 안되게 잘 먹고 나와서 숙소에서 쉰다.
등산을 해서 그런지 기분좋게 푹 쉬고 일어났다.
나와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해운대로 간다.
해운대 입구의 스포츠 매장 앞에서 넉살 좋은 고양이가 아무한테나 애교를 부린다.
비쩍 말라서 아직 어린 고양이인줄 알았는데 새끼를 둘 데리고 있는 어미고양이였다.
해운대해수욕장에는 부산 국제영화제를 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해변을 산책하다가 근처 커피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젤라또라고 되어 있던데 그냥 아이스크림이었다.
점심 시간에 맞춰서 부산에서 유명한 분식집이라는 광안리 다리집에도 가본다. 세트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가래떡 떡볶이는 그냥저냥 평범하고 튀김들이 맛있다.
가장 대표 메뉴이기도 하고 맛있기도 한 오징어튀김을 더 주문해서 먹었다.
아직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광안리 해변도 산책한다.
해운대보다 광안리가 노천카페에 편히 앉아서 바다 경치를 즐기면서 시간보내기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이제 열차 시간이 되었으니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맛있는 것들 많이 먹고 즐거웠던 부산 나들이였다.
고향이 부산이기도 하고 작년부터 부산을 자주 내려와서 이제 부산의 어지간한 곳은 다 가본 것 같다. 그래도 부산은 매력 넘치는 곳이라 다음에 또 와서 햇볕 좋은 날에 광안리 노천 카페에 앉아서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