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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과 지니 Nov 14. 2016

지니의 까미노 은의길 자전거 여행 3

지니의 Via de la Plata (까미노 은의길) 자전거 여행 - 3일 차


일정 : '16.09.07(수)

구간 : Mozarbez ~ Plasencia

거리(당일/누적) :  120km / 330km


여느 때와 같이 7시 반쯤 나서려고 나왔지만 시간이 너무 이른 까닭에 데스크에 사람이 없다. 바에 있는 직원이 밀려오는 아침 손님을 맞으랴, 나와 같은 호텔 투숙객의 체크아웃을 받아주랴 정신없는 통에 기다리다 보니 출발이 지연됐다. 오렌지쥬스를 원샷하고 8시가 훨씬 넘어서야 길을 나섰다.


오늘은 길가에 소가 많다.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고 자란 하와이 소들은 매우 맛있었는데, 스페인의 스테이크는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동물도 그저 먹을 것으로만 보이는 나란 원시인..)


길을 나서자마자 오늘의 일정이 걱정이다. 이제 어느 정도 몸이 풀려 150km는 거뜬히 탈 수 있을 듯한데, 은의길의 가장 큰 문제인 숙소 생각이 한참이다.

가는 길에 숙소가 있을만한 규모의 마을이 많지 않다. 120km를 가느냐, 170km를 가느냐 오전 내내 고민했는데, 출발시간도 약간 늦어지고 아무래도 170km는 무리일 것 같아서 아쉽지만 120km만 가서 쉬기로 결심한다.


어제와 같은 메세타 지역이 계속되어 보급할 곳도 자주 나오지는 않는다. 물통도 잃어버린 터라 바르샤에서 산 생수병에 호텔에서 받은 수돗물로 며칠을 연명한다.


남쪽으로 갈수록 날이 더워지니 아침에도 그리 쌀쌀하지 않다. 오히려 8~9시가 선선하게 가장 타기 좋고, 9시부터는 오후까지 계속 더워지기만 한다. 그래서 오늘 출발이 약간 늦어진 게 더 아쉬웠다.


그래도 어제 묵은 호텔이 언덕의 꼭대기라 시작은 다운힐로 가뿐하게 한 뒤 음료로 갈증을 씻어냈다. 쉬어가는 타임엔 아쿠아리우스 두 병에 얼음컵이 진리다.


전방에 산이 보이는 것이 곧 다시 업힐이 시작되는 것 같다. 지방도로 돌아가면 저 언덕을 피해갈 수 있지만 오래된 핸드폰의 배터리가 오래가지 못해서 그냥 N-630 도로를 택했다.

배터리 문제로 인해 오전에는 폰을 꺼둔 채로 달리거나, 존이 내 라이딩 진도를 파악하고 숙소를 예약하여 바우처를 문자로 보내주는 날도 있었다.


오전인데도 불구하고 무더운 날씨에 힘겨운 업다운과 업업업힐을 참고 달리니 아까 보이던 산꼭대기에 도착한 듯하다.


고도가 꽤 높은 산에 올라와있는데도 날씨가 참 더웠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어젯밤 자기 전에 Salamanca와 Caceres의 날씨를 찾아봤는데, Caceres는 내륙에서도 정말이지 더운 도시였다. 해가 진 후에도 38도라니.. 우리나라의 대구 같은 곳인가 보다.


주위를 둘러보니 척박한 땅에 말라비틀어진 풀떼기뿐이다.


세상에서 제일 뜨듯한 다운힐로 내려와 또다시 바에 들어가 쉬었다.


한국에는 없는 환타 레몬맛은 유럽여행 중 나의 활력소이다.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아 간단한 문어 타파스를 함께 먹었다. 환타는 역시 두 병이지.!


테라스에서 쉬고 있으니 자전거를 탄 아재들이 많이 지나간다. 내가 지나온 산을 향해 모두들 열심히 업힐 중. 여기는 로드바이크를 타는 사람이 95%는 되는 것 같다. 그중 다시 90% 이상이 모두 클릿 페달을 사용한다. 과연 라이딩의 천국이로군~


업다운은 계속 이어졌고, 더운 날씨는 더더욱 더워졌다. 그래도 1200 고지를 지나고 내리막 위주라 다행이었다.

오늘 달리는 구간부터는 반대방향에서 오는 자전거 여행자들이 종종 보였다. 더워서 그런가 달리는데 여념이 없는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니 다들 반갑게 받아준다.

다들 앞뒤 패니어에 프런트 백까지 한 짐 지고 달리는데, 나만 너무 홀쭉한 가방을 메고 다니니 동네 마실 온 사람인 것 같다.


Leon 지방의 Salamanca 지역도 이제 끝나고,


Extremaudura 지방의 Caceres로 진입했다. 본격 더운 지방의 핵을 오늘 지나게 될 것이다.


잊지 않고 나타나 주는 노란 표지판이 반갑다. 정오 근처에는 그늘이 많지 않아 이런 큰 나무가 나오면 꼭 쉬어간다.


까미노 표지판이 나올 땐 흰둥이를 세워두고 꼭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본다. 잘 나온 사진이 내 프사가 되겠지..ㅋㅋ


말 두 마리가 커플인가 보다. 몸통을 부비부비 연애 중이다. 짜식들..


내리막의 헤어핀에서 폰을 확인할 겸 쉬어간다. 자전거를 눕혀놓으니 간혹 지나가는 차들이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속도를 낮추는데, 손을 흔들어 인사해주면 미소 짓고는 슝~ 가버린다.

내리막 급경사에서는 항상 안전이 제일이다.


뜨거운 날씨에 아스팔트가 열을 받으니 숨이 턱턱 막힌다. 오후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아 레스토랑에 쉬어가기로 했다. 어지간한 날씨에도 테라스에 앉았던 나는 오늘만큼은 실내로 들어갔다.


소고기가 들어간 플라토 콤비나도를 시키고 착석하자마자 바로 옆에 메뉴 델 디아를 파는 레스토랑이 보인다.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미 조리가 시작된 것 같아서 아쉽지만 포기했다.ㅠ

소고기는 아주 별로였다. 예전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 집 소고기 안 그래도 질긴데 너무 바짝 익혀서 칼질도 잘 안 먹힌다. 배를 채우기 위해 사이드로 나온 토마토와 감자튀김만 먹어댔다. 흑흑..


벌써 5시가 넘었는데도 너무 더워서 겨우 10km를 더 달린 뒤 바에 들어가 음료를 마시면서 쉬고, 거기서 5km를 더 달린 뒤 나무 그늘에 주저앉아 또 쉬었다.

여름에 태어난 덕에 더위를 잘 안 타는 편인데, 여긴 이번 한국의 여름보다도 훨씬 더 뜨거운 날씨가 아주 인생 역대급이다.


그나마 한국보다 건조한 것이 나았지만 건식 사우나에 들어와 있는 듯 숨이 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 170km를 가려던 객기를 참은 것이 천만다행으로 여겨졌다. 내리막 위주의 120km를 왔는대도 지쳐버린 걸 보니 다음 도시에 도착하지 못해 오지의 미아가 될뻔했다.


나름 대도시인 Plasencia를 막 지난 대로변에 숙소를 잡아놨다. 국도는 다행히 도시를 관통하지 않고 옆으로 비껴갔지만 공사 중인 구간이 짧게 있어서 도로가 매우 좁았다. 하지만 츤데레한 스페인 언니 오빠들은 경적 한 번 울리지 않고 느리게 달리는 나를 당연하게 기다려줬다.

존이 오후에 미리 호텔을 예약해줬는데(당일이라도 온라인으로 예약을 해야 훨씬 저렴하다.) 잘못해서 내일 날짜로 해버렸다. 데스크에 다행히 영어를 무지 잘하는 직원이 있어서 당황하지 않고 추가 요금 없이 날짜 변경을 해줬다. 자전거를 들여놓으라며 방도 더 큰 곳으로 배정해줬다.

고마워요, 에스빠뇰 어빠..


하루의 마무리는 역시 맥주지.! 오늘도 저녁시간까지 기다리기 지겨워서 까냐 그란~데 두 잔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바 안쪽에 나오는 TV를 봤는데, 오늘 스페인에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지도에서 가장 빨간 부분은 내가 지금 있는 바로 여기 Caceres 지역. 어쩐지 오늘 좀 더웠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 자신이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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