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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과 지니 Nov 18. 2016

지니의 까미노 은의길 자전거 여행 4

지니의 Via de la Plata (까미노 은의길) 자전거 여행 - 4일 차


일정 : '16.09.08(목)

구간 : Plasencia ~ Aldea del Cano

거리(당일/누적) :  100km / 430km



오늘은 호텔에서 조식을 제공해준다. 빵과 주스와 씨리얼을 먹는다고 먹었는데, 아침을 원래 잘 안 먹어서 그런가 어쩐지 입맛이 없고 배가 금방 찬다. 게다가 어떤 햄을 먹다가 역한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나와 토할뻔해서, 오렌지 하나를 챙겨 그대로 나와버렸다. (나중에 존이 비슷한 걸 먹더니 스페인식 순대 같다고 했다. 난 순대를 먹지 않아서 그랬던 것..)


오늘도 오늘의 해가 뜬다. 아침밥을 7시 반부터 준다고 했는데, 역시나 약속한 시간을 훨씬 지난 8시 넘어서부터 주는 바람에 오늘도 출발이 1시간가량 늦어졌다. 


오늘도 달리자마자 저녁에 어디서 쉬어갈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100km를 가느냐, 130km를 가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평소라면 당연히 130km 거리의 숙소를 선택했겠지만 어제의 더위를 경험한 뒤라 무리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늘은 상대적으로 달려야 할 거리가 짧으니 오전부터 여유 있다. 음료를 마시려고 쉬어가는데, 동네 동호인들이 이미 바에 모여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토스타다에 카페콘레체, 그걸로 밥이 되니? 하긴 난 환타 레몬맛 두병..;

매우 갖고 싶은 스페인 브랜드 ORBEA orca 로드를 타는 사람이 있는가 보다. 멋들어져서 한컷 찍었는데, 흰둥이랑 나란히 있으니 뭔가 초라해지네. 미안..


구름 한 점 없을 정도로 며칠째 날씨는 무지 좋다. 더워서 지치더라도 비가 오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비가 오면 시야도 짧아지고, 바닥이 미끄러우니 특히 자전거 순례자에겐 더욱 위험하다. 

그래도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덜 더웠으면 좋겠다. 아직 Caceres 도심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긴장감이 한가득이다.


내리막을 씐나게 내려가는데, 오늘도 자전거 순례자들이 오전부터 종종 보인다. 너네 이제 다 죽었다. 지금 고도 겨우 300m인데, 앞으로 1200m 산까지 계속 업힐 해야 한다구.! 이 무시무시한 기분 알고 있니? 내가 업힐을 오를 때도 반대편 사람들이 다들 날 불쌍해했을까..ㅠ

아까 아침을 먹던 라이더들이 보란 듯 나를 추월해서 슝~ 앞질러간다. 차 없는 기나긴 국도 근처에 사는 기분은 어떨까? 그들에겐 지겨운 한강 자전거도로쯤으로 여겨지려나~


까미노 표지판 뒤로 드넓은 호수가 나타난다. 여러 개의 물줄기가 사방의 강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왠지 마음에 들었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별로 없었다. 


물을 지났더니 다시 산이 나온다. 언제나 반가운 노란색 까미노 표지판이 나의 길을 비춰준다. 


산을 지났더니 다시 들판이 나온다. 들판은 무서운 곳이다. 그 흔한 바 하나 나오지 않는다. 

오늘은 도보 순례자도 몇 명 봤다. 햇빛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온 몸을 꽁꽁 싸매고 들판 한가운데를 걸어간다. 자전거를 타고 가도 이렇게 힘들고 불안한데, 도대체 어떻게 걸어서 간단말인가.. 4군데의 까미노 루트를 다니다 보니 왜 은의길로 도보 순례자들이 잘 안 오는지 알 것 같았다.


차도 옆에 기찻길이 따라온다. 비록 내가 가는 동안 기차는 한대도 지나가지 않았지만.. 시골이라 하루에 1-2대씩만 운행이 되나?


아직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아서 (도대체 제대로 된 식사는 언제 하는 걸까?ㅋㅋㅋ) 바에 다시 들렀다.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칼로리를 채우기 위해 저런 미니 파운드 케이크를 두 개씩 먹는 게 나의 은의길 주요 식사 거리다. 목이 메일 때는 아쿠아리우스로 촉촉이 적셔 삼켜주면 된다. 무슨 푸드파이터도 아니고..ㅠ // 빵은 많이 먹기 힘들어서 저 정도면 하루는 버틸 수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난 한국에서 보통 1인분 이상을 섭취하는 대식가임)


스페인 전역에서 보이는 바람직한 표지판이 보인다. 사이클리스트를 주의해라, 최소 1.5m의 간격을 유지해라.. 대략 이런 의미. 아주 바람직한 나라일세~


정열의 스페인에서도 가장 핫한 Caceres에 도착했다. 대도시인 만큼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무리 없이 도시를 관통해왔다. 아무래도 어제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듯했고, 오늘은 그나마 덜 더워서 참을만한 수준이었다. 이렇게 점점 시원해지면 좋으련만..


은의길은 어렵지 않다. N-630만 따라가면 Seville 입구까지 갈 수 있다. 시작 지점이 몇 km였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지금 많이 왔다. 


이노무 척박한 땅은 언제나 끝날까? 메세타 노래를 불렀었는데, 이제 좀 지겨워진다. 사람이나 차 모두 없어도 너무 없다. 

이런 순간 펑크 날까 봐 너무 걱정이다. 펑크를 때운 후 펌프질을 하는 게 만만치 않은데, 온전히 혼자서 해내려면 Seville 도착이 반나절은 늦어질 것 같다. 아직까지는 다행히 새로 산 미니 펌프를 사용할 일이 없었다. 


오늘의 숙소는 알베르게로 정했다. 옷을 빨려면 다 벗고 자야 해서 호텔이 편하지만 이 근처는 마땅한 호텔이 없다. 오히려 알베르게보다 호텔을 고르는 조건이 더 까다롭다. 국도변에 있으며 악평이 없어야 하고 온라인으로 예약이 가능한 곳.. (비싸니까 자꾸 따지게 되나?)

구글 등의 지도 앱에 나와는 모든 숙소를 믿어서는 안 된다. 망해서 장사를 접은 곳도 꽤 있는 편이다. 물론 거기에 나오지 않은 숙소도 있지만 불확실성을 기대하기엔 확률이 너무 낮다.


세탁기가 있는데도 빨래를 못했다. 언제 누가 들어올지 모르는데 옷을 다 벗고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샤워하며 손빨래..ㅠ


젖은 옷을 최대한 꽉 짜서 다시 입고 나왔다. 옷을 말리기 위해 마을 강제 관광을 시작했다. 사진과는 다르게 바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흥겨운 음악소리와 시끄러운 대화 소리가 퍼져 나왔다. 주말도 아니고, 축제도 아닌데 즐겁게들 사는 것 같다. (일은 언제 하나요?)


마을은 아담했다. 국도를 건너 반대쪽으로 갔더니 고요함만이 골목을 가득 채운다. 

이렇게 씻고 돌아다녀도 아직 4시도 되지 않았다. 100km밖에 안 달렸더니 설렁설렁 달린다 하더라도 너무 일찍 도착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마을은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좀 더 갈걸~하는 후회를 했다. 


이제 옷이 얼추 마른 것 같아서 알베르게 근처로 다시 돌아간다. 알베르게를 같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가서 까냐 그란~데 세잔으로 이른 저녁을 대신한다. 


자외선에 노출된 온 피부가 다 새까맣게 타버렸다. 잃어버린 짐에는 나의 새 선크림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없다. 수포가 올라오더니 함께 뭉치기 시작해 커다란 물집이 형성되고 있지만 가렵거나 아프지는 않다.


일찍 도착했는데 할 일이 없어서 맥주 한 잔 더 먹었는데 토할뻔했다. 어우~ 4잔은 역시 과하다. 할 일도 없는 게 그냥 일찍 잠이나 자야겠다. 물론 침낭은 없다.

더워서 일정을 느슨하게 변경하였더니 아무래도 존이 오는 날에 맞춰서 도착하긴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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