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 출발
2017년 9월 24일
1일 차
이동 경로 및 거리 :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 - 말그랏 데 마르(Malgrat de mar) 80km
총 이동거리 : 80km
아침 7시 반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한다. 지상에 내려서 버스로 이동한다. 버스 이동이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게이트를 이용하는 것보다 불편하고 느리고 사람을 모아서 이동하니 복잡하고 귀찮아서 싫다. 아직 하늘은 어둑어둑하다. 여기 스페인은 8시는 되어야 해가 뜬다. 늦게 뜨고 늦게 지는 해에 맞춰서 저녁 식사도 조금 늦게 하는 편이다. 왠지 해가 떠있는 시간을 알차게 보낸다는 느낌이다.
바르셀로나 공항에 온 것이 처음은 아니기에 큰 짐을 찾는 것에 익숙하다. 수하물 찾는 곳 양쪽 끝에 큰 짐 나오는 곳이 있다. 찾아갔더니 우리 자전거 박스 외에도 다른 자전거 박스들도 있다. 우리 박스가 나오기 전에 저 뒤편의 똑같은 박스가 포장이 열려있어 깜짝 놀랐다.
박스 자체에 충격 가해진 흔적이 없으니 일단 안심이다.
이제 얼른 자전거를 조립하고 출발해야지...
자전거를 조립해서 끌고 나왔더니 왠지 길이 이상하다. 바르셀로나 공항은 터미널 1과 터미널 2로 나뉘어있는데 터미널 2가 도심 방향이고 우리는 터미널 1의 맨 구석이다. 차들과 같이 넓은 도로를 달려서 터미널 2 근처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큰 도로로 달리는데 오른쪽에서 합쳐지는 나들목 진입부 도로를 고속으로 달려오던 택시들이 우리가 갓길로 들어서기 편하도록 일제히 서행하면서 양보해준다. 스페인의 운전자들, 특히 운전을 업으로 삼는 택시, 트럭, 버스들은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한없이 친절하다.
공항을 드나드는 대부분의 차들은 자동차 전용도로를 사용하니 공항 주변 도로로 접어들면 차량 통행이 거의 없다. 터미널 2 근처부터는 자전거 도로가 있으니 자전거 도로를 통해서 빠져나간다.
공항 관제탑이 보인다. 자전거 도로는 조금 돌아가긴 하지만 공항을 빠져나가는 데에는 가장 편한 선택이다.
금방 한적한 도로로 빠져나가서 슬슬 달린다.
바르셀로나-엘 프랏 공항처럼 스페인의 공항들은 큰 도시-공항이 있는 도시 순으로 이름을 표기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인천 공항이나 서울-김포 공항인 셈이다. 공항이 있는 동네인 엘 프랏(El prat de Llobregat)으로 빠져나오니 경찰이 교통을 통제 중이다.
마침 달리기 대회가 열린 듯하다. 지니님 앞으로 몇 명의 선수들이 달려 지나간다.
엘 프랏에서 발음하기도 어려운 Llobregat 강을 B-250a번 도로로 건너서 바르셀로나에 들어선다.
바르셀로나의 남쪽 구역은 큰 회사들이 줄지어 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한산해서 다행이다. 평소라면 큰 화물차들이 질주를 할 것 같다.
트램 라인을 따라서 달리니 몬주익 언덕이 보인다. 원래 계획은 몬주익 언덕을 오른쪽으로 우회해서 바르셀로나 해변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항만 시설로 막혀있다. 원래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일요일이라 닫혀있는 듯하다.
어쩔 수 없이 몬주익 언덕을 올라간다. 해발 213미터의 낮은 언덕인 데다가 꼭대기까지 가지는 않고 도로로 넘어가기만 하는 길이니 큰 부담은 없다. 사실 몬주익 언덕 자체도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한 번쯤은 자전거로 오르고 싶긴 했으니 언덕을 올라가는 것이 즐겁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딴 곳으로 유명한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장 옆으로 올라간다. 바르셀로나 시내 방향에서 올라오면 황영조 조각상도 볼 수 있다.
언덕 꼭대기까지 가는 케이블카도 있지만 우리는 그냥 도로를 따라서 넘어갈 뿐이다.
언덕 중턱에 있는 Plaça de Carlos Ibáñez라는 공원에서 잠시 멈춘다. 몬주익 언덕에서는 조금 낮은 곳이지만 시야를 방해하는 나무가 없어서 바르셀로나 전체를 보기에 좋은 곳이다.
가장 눈에 띄는 3개의 굴뚝이 있는 건물은
Red Eléctrica de España라는 전기 회사이다. 그 왼쪽으로 멀리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있다.
슬슬 점심 먹을 시간이니 최단 거리로 해변까지 내려간다.
요트들이 세워져 있는 바르셀로나 항구를 지난다. 몬주익 언덕 옆부터 도심 쪽으로 큰 항만 시설, 요트 선착장, 모래사장 순으로 지나가게 된다.
딱 점심시간이니 이전에 한 번 왔던 문어요리(pulpo)와 새우요리(gambas al ajillo)가 먹을만했던 식당에 다시 들른다.
문어 뒤로 맥주처럼 보이는 음료는 맥주가 아닌 레드불이다. 존과 지니는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음주 주행을 절대 하지 않는다.
여기는 바르셀로나 여행 가이드들이 자주 추천하는 집이라 한국 사람들이 꽤 많이 오는 곳으로 지금도 근처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다. 엄청 맛있고 특별한 곳은 아니지만 맛없는 집도 아니다. 그래도 지난 여행에서 발렌시아의 Almarda 해변에서 먹었던 새우와 문어가 훨씬 맛있었다.
요트 항구와 음식점 뒤로 바르셀로나 해변의 백사장이 펼쳐진다. 점심을 든든히 먹었으니 다시 출발이다. 지금부터 해안 도로를 따라 달려서 바르셀로나를 벗어난다.
바르셀로나 해변 끝에는 자연사 박물관과 공원들이 있다. 차들은 B-10번 길의 지하차도로 통과해서 해변을 벗어나는데 자전거나 사람은 직진해서 화력발전소 옆으로 빠져나오면 된다. 자전거 타는 사람이 꽤 지나다니기 때문에 자전거들이 오가는 곳을 따라 가면 길 찾기가 어렵지 않다. 여기서부터는 바르셀로나 도심을 벗어난 위성도시인 바달로나이다.
Besos강을 다리로 건너야 하는데 기찻길 옆으로 도로와 자전거도로가 있다. 앞에 보이는 높은 굴뚝도 화력 발전소이다.
한동안은 자전거길이 계속 이어지니 왼쪽에 기찻길을 끼고 그냥 달리면 된다.
어느새 바르셀로나가 저만큼 멀어졌다. 멀리 몬주익 언덕이 보이고 아까 지나왔던 화력 발전소도 보인다.
자전거길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노면 상태는 로드 바이크로 달리기에 쾌적하지는 않은 단단한 비포장 흙길이나 타일블럭길이 많다.
지난해에, 그리고 봄에 시칠리아에서 봤던 지중해를 다시 보니 반갑다. 바다를 본 날 수만 따지면 올해는 우리나라 바다보다 지중해를 더 많이 본 듯하다.
몬그랏(Mongrat)이란 곳에서 차도도 자전거길도 끝이 난다. 여기서 자전거 통행금지 표시가 있는 비포장 도보길을 따라서 다음 자전거길로 갈 것인지 N-II번 도로로 빙 돌아나가서 달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자전거 통행이 금지인데 여기까지 온 현지 자전거 이용자들은 모두 이 길로 간다. 비포장에 자전거 통행 금지니 입구까지만 타고 걸어가기로 한다.
바다를 보면서 슬슬 걸어가는데 목침을 세로로 둔 데크길이 자주 나온다. 가뜩이나 얇은 로드바이크 바퀴로는 빠질 것 같다.
어느 정도 걸어가면 다시 자전거, 보행자 겸용 도로가 된다. 하지만, 보도블록 길이라 로드바이크로 달리기엔 적합하지 않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MTB나 생활 자전거를 탄다. 철길 건너편을 보니 로드바이크들은 모두 도로로 달리고 있네...
한참 동안 보도블록의 진동에 시달렸더니 지니님이 힘들어한다. 게다가 쉴만한 가게들은 모두 철길 건너편에 있다.
근처의 지도를 보니 이 자전거 도로도 곧 끝이 난다. 자전거 도로 끝에서 나가서 차도를 달리다가 적당한 가게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기로 한다.
그런데 하필 도로 끝이 계단이다. 자전거를 들고 지하 통로로 철길을 건넌다.
이제 한참 동안 이용하게 될 N-II도로를 달린다.
도로 옆의 파르페 가게에 들러서 바로 짠 오렌지 주스와 레몬맛 환타를 마신다. 레몬맛 환타는 나라마다 맛이 다른데 나는 스페인의 "레모나 맛" 환타가 가장 좋다. 1년 만에 맛보는구나.
다시 N-II도로를 달린다. 마타로(Mataro)라는 동네를 지나면 de mar라는 이름이 붙은 마을들을 차례대로 지나가게 된다.
지중해 바다가 보이지만 N-II도로와 바다 사이를 기찻길이 가로막고 있어서 풍경이 썩 와 닿지를 않는다.
저 언덕 위의 하얀 집은 카레야 등대(Lighthouse Calella)이다. 등대가 있는 언덕을 지나면 카레야라는 동네에 들어서게 된다.
길 옆으로 풀장이 있는 리조트형 호텔들이 말그랏 데 마르(Malgrat de mar)까지 쭉 이어진다. 고급스러운 호텔들이 지니님에게 멋져 보이나 보다.
그래서, "우리 숙소가 여기야."라고 하니 지니님은 어리둥절하다. 오늘은 테라스에서 수영장과 바다가 훤히 보이는 4성 호텔에서 편하게 쉬기로 한다. 물론 가격은 조식 포함해서 70유로가 안 된다. 비싸면 지니님한테 혼나니까...
바르셀로나 도심은 숙소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지만 어느 정도 벗어난 스페인의 지방 도시들은 숙박비가 매우 저렴한 편이다. 물론 예약 사이트를 통해야 저렴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리 예약해두었다.
체크인하고 자전거를 창고에 보관하고 근처 마트에서 맥주부터 사 온다. 자전거를 타고난 후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은 언제나 최고의 맛이다.
말그랏 데 마르(Malgrat de mar)를 천천히 둘러보는데, 동네가 작으니 크게 볼만한 곳은 없는 전형적인 여름 휴양 도시다.
저녁은 미리 검색으로 찾아두었던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먹기로 한다.
지중해 3국 자전거 여행이지만 스페인에서는 이틀밖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스페인스러운 지중해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 한다. 문어와 새우는 아까 먹었으니 남은 것은 빠에야와 하몽 이베리코이다. 카탈루냐 와인도 당연히 곁들여야 한다.
아주 만족스러운 하몽 이베리코 데 베요타와 빠에야가 나왔다. 하몽은 세라노> 이베리코 세보> 이베리코 데 베요타로 등급을 크게 나눌 수 있는데 보통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 식당에서는 하몽 이베리코 이상을 판매한다. 세라노는 백돼지라 발굽이 하얗고 이베리코 등급부터는 흑돼지라 발굽이 까맣기 때문에 식당에서 손질해놓고 썰어주는 하몽이 이베리코 등급 이상인지 아닌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베리코 데 베요타는 숙성 기간이 길기 때문에 좀 더 육포 같은 느낌이 나서 지니님보다는 내가 더 좋아한다.
와인은 우리도 즐겨 마시지만 동호인 수준은 아니라 자세한 지식은 없이 맛만 좋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식당에서 주문할 때 직원에게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보통은 너무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적당한 가격에 즐기기 좋은 와인들을 추천받을 수 있다. 우리는 주로 근처 가까운 와인 산지에서 나온 와인으로 즐긴다. 이번에는 Villafranca de Penedes라는 바르셀로나 서쪽 카탈루냐 지역에서 생산한 와인을 선택했다.
빠에야는 보통 2인분 이상을 주문해야 하는데 다른 음식과 이것저것 시켜서 함께 먹기엔 양이 많아서 부담스럽다. 이 집은 1인분도 가능하니 부담 없이 주문하였는데 맛도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와인도 일반적으로 11도가 넘는 술이기 때문에 둘이서 한 병을 나눠 마시더라도 어느새 알딸딸해진다. 신나게 마시고 즐기고 숙소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든다. 비행기를 탔던 피로감에 자전거를 탄 피로감까지 겹치니 눕자마자 잠이 들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