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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과 지니의 지중해 자전거 여행 3

스페인이 우리를 붙잡았다.

by 존과 지니

2017년 9월 25일 - 출발 2일 차


이동 경로 및 거리 : 말그랏 데 마르(Malgrat de mar) - 피게레스(Figueres) 82 km

총 이동거리 : 162 km


일찍 잤더니 혼자 6시쯤 일어나 버렸다. 지니님이 일어나길 기다려서 7시쯤부터 준비하고 아침밥을 먹으러 간다. 어제 옷을 대충 짰더니 아직 덜 말랐다. 이럴 때는 헤어드라이어로 대충 말리고 따듯하게 열기를 불어넣어서 입고 있으면 금방 마른다. 헤어드라이어를 너무 가까이 대고 말리면 열 때문에 옷이 망가질 수 있다.


동쪽 하늘이 점점 밝아지고 있다. 슬슬 아침 먹고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


이번 호텔 조식은 꽤나 풍성하다. 빵 종류만 해도 꽤나 다양하다.


유럽 3~4성 호텔의 조식은 빵, 시리얼, 햄, 치즈, 과일, 커피, 우유, 주스라는 포맷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다양해도 차가운 음식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따듯한 오믈렛, 베이컨에 직접 만들어주는 계란 프라이와 크레페까지 있는 여기 조식은 호화롭다고 할만하다. 덕분에 아침을 거의 안 먹는 지니님도 배부르게 먹는다.


아침을 한껏 먹는 동안 해가 꽤 높이 떠올랐다.


날이 조금 쌀쌀하지만 출발이다. 편안하게 잘 쉰 말그랏 데 마르를 떠날 시간이다.

원래는 옆의 큰 도시인 Blanes 쪽으로 더 가서 자전거도로를 이용할 계획이었는데 언덕은 없는 대신 꽤 돌아가는 길이다. 그냥 N-II도로로 가로질러 가기로 했다. 일단 헤로나(Girona)까지 가야 한다.


질러가서 거리가 줄어든 것은 좋은데... 자꾸 언덕길이 나타난다.


한참 달리는데 도로가 공사 중이라 좁아진다. 가뜩이나 헤로나로 가는 차들이 많은데 2차선이 1차선으로 줄어드니 아무리 차들이 친절하게 양보해준다고 해도 우리 때문에 교통 체증이 더 생기는 듯하다. 더군다나 곧 자동차 전용 도로가 시작된다는 표시가 있다. N-II 도로의 일부 구간이 자동차 전용도로가 되는 구간이다. 마침 지니님이 도로 구석에 멈추더니 옆 길을 보라고 한다.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으면서 도로 공사로 막혀서 차 한 대 안 다니는 넓은 도로가 있다.


이 도로는 공사 중인 N-II도로의 확장 차선은 아니고 그냥 큰 도로 옆의 보조 도로라 차가 없다. 깨끗한 길을 따라서 편하게 달린다.


이 도로는 N-II 도로를 좌우로 넘나들면서 나들목과 합쳐지거나 크게 돌아간다.


이 보조 도로의 끝은 N-II 도로의 헤로나 진입 나들목의 로터리와 합쳐지기 때문에 헤로나 중앙도로까지 이어져서 헤로나 시내로 편하게 들어간다.


여기까진 차 없는 도로로 편하게 왔는데... 도시는 도시인가 보다. 도시에 들어오자마자 차들이 정신없이 다니고 신호등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헤로나 역시 카탈루냐 지방이라 집집마다 카탈루냐 깃발을 걸어놓은 곳이 많다.


마침 지나는 길에 꽤 큰 자전거 가게가 있어서 비행기에 싣고 올 수 없었던 CO2 카트리지도 구입하고 장펌프로 공기도 채워 넣는다.


그리고 괜찮아 보이는 바에 앉아서 잠시 쉰다.


스페인의 바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보통은 컵에 큰 얼음 한 조각과 레몬까지 띄워 준다.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쉬면서 시원한 음료수도 마시고 화장실도 쓸 수 있으니 스페인에서는 쉴 때 적당한 바를 이용하면 된다.


메인 도로를 따라서 조금만 가면 성당이 나온다.


오른쪽의 첨탑이 있는 건물이 헤로나 대성당이며 왼쪽의 근사한 건물은 성 펠릭스 성당이다. 성 펠릭스 성당은 대성당이 지어지기 이전에 성당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제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헤로나를 빠져나간다.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C-255 도로를 따라서 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N-II도로로 합류하게 된다.


도로 표지판에 프랑스까지 44 km라 나온다. 피게레스(Figueres) 20 km 표시가 복선이 될 줄은 아직 몰랐다.


국경 넘어 가장 가까운 프랑스의 큰 도시인 페르피냥도 75 km 남았다고 한다.


슬슬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인데 마침 카페테리아가 보인다. 바람도 점점 거세지니 잠시 피할 겸해서 들어간다.


스페인에서 가장 알차게 점심을 먹는 점심 세트 메뉴가 바로 메뉴 델 디아(오늘의 메뉴, Menu del dia)이다. 국경을 넘기 전에 메뉴 델 디아를 한 번 먹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

전채(Primer)로 지니님은 샐러드, 나는 펜네 파스타 알 라구를 주문했다.


그리고, 메인인 Segundo로 나는 돼지고기, 지니님은 소고기를 주문했더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나왔다. 돼지고기 꼬치와 쇠고기 찜이다. 닭고기 종류는 우리나라처럼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서 어지간해서는 안 시키는 것이 좋다.


그리고 후식으로 나는 가게에서 직접 만든 푸딩을, 지니님은 코르타도(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첨가한 커피)를 먹는다. 이렇게 두 접시에 디저트까지 해서 보통 1인당 10~12유로 정도이다.


다시 출발하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고 하늘이 점점 흐려진다. 바람이 강하지만 그나마 역풍이다. 최악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불어 자전거를 도로 가운데로 밀어버리는 강한 측풍인 줄 알았는데 시칠리아에서 겪어보니 전후 좌우에서 예측할 수 없게 불면서 언제 자전거를 차도 중심으로 밀어낼지 모르는 미친 바람도 경험했다.


앞에 달리는 할아버지는 아까 식당에서 만나서 잠시 얘기를 나누던, 불편한 다리로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대단한 분이다. 벨기에 사람이라 그런지 우리 자전거가 자기네 나라 제품인지 알고 있었다. 안전을 위해 할아버지의 친구가 차를 타고 중간중간 기다리며 서포트해준다.


삼거리에서 벨기에 할아버지의 친구가 차를 멈추고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서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니 걱정이 되나 보다. 날은 점점 더 흐려지고 빗방울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가끔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피게레스에 들어서니 점점 쏟아지기 시작한다.


피게레스 시내에 들어올 때쯤에는 꽤 심해져서 어느 상가 건물의 처마 밑으로 피신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비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피게레스 중앙 광장의 주차건물에 널찍한 공간에서 비를 피해 보지만 금방 그칠 비가 아닌 듯하다. 이 비에 젖은 노면은 우리 자전거의 타이어로 달리기에는 위험하다. 설상가상으로 국경을 넘으려면 언덕을 오르내려야 한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여기 피게레스에서 하루 머물기로 한다. 이미 80 km나 달렸으니 일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당장 급한 것은 숙소 예약이다. 광장 근처의 바에서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숙소를 찾는다.


프랑스의 르 블루라는 작은 마을에 이미 예약하고 결제까지 끝낸 숙소가 있지만 포기하고 근처의 B&B를 예약하고 찾아간다. 그럭저럭 괜찮은 가격으로 적당한 방을 구했다.


비와 추위에 떨면서 숙소까지 구했더니 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이다. 숙소로 가다가 눈여겨봤던 식당을 찾아간다. 시커먼 발굽의 하몽 이베리코가 주렁주렁 달려 있으니 하몽을 잘 하는 집인 듯하다.


하몽과 함께 먹으면 맛있는 빵을 곁들여서 하몽 이베리코를 먹는다.


식당의 하우스 와인인 듯한데 그럴듯하게 병으로 판매한다. 그래서 그런지 일반 하우스 와인보단 조금 비싸다. 맛은 무난했다.


피게레스는 초현실주의 작가이자 영화 제작자로 유명한 살바도르 달리의 고향이면서 세상을 떠난 곳이다. 달리의 시신이 안치된 달리 극장-박물관도 있어서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미술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흐물흐물 녹아서 늘어진 시계가 그려진 기억의 지속이란 그림이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1931)

살바도르 달리는 유명한 사탕 브랜드인 츄파춥스 마크를 그린 사람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 츄파츕스 공식 홈페이지


그러나, 피게레스는 지나쳐 가기만 하려던 곳인 데다가 기억의 지속처럼 그의 잘 알려진 작품들은 다른 곳에 소장되어 있으니 비가 잦아드는 것을 기다리느라 시간도 많이 허비한 우리의 일정 상 관광까지는 하지 않는다.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에도 비는 여전히 내린다. 밤이 깊어질수록 빗소리는 더 요란하다. 내일 아침까지 비가 그치고 땅이 어느 정도 말라야 할 텐데...


건조해서 비가 자주 내리지 않는다는 스페인이 지난 여행에서도, 이번 여행에서도 떠나기 전에 비를 뿌려준다. 우리를 떠나보내는 것이 아쉬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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