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프랑스로
2017년 9월 26일 - 출발 3일 차
이동 경로 및 거리 : 피게레스(Figueres)-나르본(Narbonne) 131 km
총 이동거리 : 293 km
아침에 일어나니 간밤에 내리던 비는 완전히 그치고 땅도 거의 말랐다. 다행이다.
이번 숙소는 조식 불포함이니 일찌감치 체크아웃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좀 떨어진 다른 건물에 있는 체크아웃 사무실에 찾아갔더니 딱 맞춰서 문을 열고 있다.
이제 프랑스를 향해 출발이다. 안 그래도 한국보다 기온이 낮은데 간밤에 비가 오고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더욱 쌀쌀하다.
피게레스에서 빠져나와 N-II 도로를 달리고 있으니 동쪽 하늘에 해가 나오기 시작한다.
떠오르는 햇빛을 맞는 것만으로도 몸이 따듯해진다.
가는 길목에서 뭘 밟았는지 지니님 자전거에 갑자기 펑크가 난다. 가져온 여분 튜브로 교체하고 어제 헤로나에서 사놓은 CO2 카트리지를 써서 편하게 공기를 채운다. 로드 바이크의 레이싱 타이어는 120 psi 정도의 고압이기 때문에 작은 휴대용 펌프로 넣기는 너무 힘들다.
이제 국경 마을인 라 홍케라(La Jonquera)에 들어간다. 곧 프랑스로 넘어가는데 그전에 스페인에서 마지막 아침 식사를 하고 싶다. 아마 당분간은 다른 곳에 가기 바빠서 스페인에 오지 않을 것이다.
대로 근처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을까 했더니 마을 아래쪽의 쇼핑몰 거리는 문을 열지 않은 식당이 많다.
라 홍케라 마을 쪽으로 들어가 보니 문을 열어놓은 바가 있다.
아쿠아리우스와 크로아상을 주문했는데 빵 한 개로는 달릴 에너지를 채울 수가 없다. 나는 좀 더 먹어야겠다.
코르타도와 하몽 토스타다를 주문하니 큼지막한 빵 위에 하몽이 충분히 얹어져서 나왔다.
다시 출발하면 마을을 관통해서 N-II 도로와 합류한다. 페르피냥까지 38 km 남았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간다. 정면 산 위에 무언가 보인다. Castell de Bellaguarda라는 프랑스 요새라고 한다. 저 요새 바로 앞부터 프랑스 땅인 것이다.
EU 마크에 프랑스(Francia)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다. 이제 곧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넘어간다. 이 고갯길이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를 막고 있는 피레네 산맥에서 가장 낮은 길이라고 한다. 그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라 아까 그런 요새가 있었나 보다.
ELS-LIMITS는 무언가 뜻이 있는 것인가 했더니 라 홍케라의 일부이면서 최접경 마을의 이름이었다.
저 앞의 게이트를 지나면 이제 프랑스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제 프랑스 마을인 르 페르튜스(Le Perthus)이다. 도로 바닥에도 프랑스어인 Payant라고 쓰여 있다.
르 페르튜스에서 언덕 꼭대기를 지나면 이제 한 동안 내리막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국도나 고속도로에서 엄청난 속도로 차를 몬다고 한다. 차들의 운전이 스페인보다 확실히 거칠어졌다. 싫다...
일부 자전거 도로가 있는 곳도 있지만 그리 많지는 않다. 그나마 차도 갓길이 꽤 넉넉하니 자전거 도로와 차도 갓길을 이용해서 달린다.
도로 노면도 왠지 거칠다. 그래도 감내할만한 수준이다.
국경 넘어서 가장 큰 도시인 페르피냥까지 17km 남았다. 프랑스의 큰 도시라니 벌써부터 복잡함에 머리가 어질 하다.
D900번 도로로 계속 달린다. 깨끗한 갓길 구간이 이어지긴 하는데 중간중간 유리 조각들이 좀 있다.
페르피냥 입구부터는 차량들로 정신이 없다. 원래 시내를 관통해서 테트(Tet) 강을 넘어가려 했는데 복잡한 시내를 관통하기 싫어서 외곽으로 돌아서 동쪽으로 빠지기로 한다.
이미 시간은 점심시간이 다 되었는데 이런 정신없는 곳에서 밥을 먹고 싶지는 않다. 이리저리 빠져나가다가 중간의 빵집에서 간단히 배만 채우고 잠시 쉬기로 한다.
빵집 안에 들어가 보니 온갖 종류의 화려한 빵들이 있다. 역시 빵이라 하면 프랑스인가. 주문하는 와중에 빵이 있는 진열대에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게 보이는데 손님도 직원도 아무도 신경 쓰질 않는다...
오렌지 주스와 크로와상은 지니님 것, 달디 단 에끌레르는 내 것이다. 바퀴벌레에 맘이 상했는데 국경 조금 넘어왔다고 맛이 바뀌어 버린 레몬 환타도 맘에 안 든다. 그래도 에끌레르는 맛있었다.
대충 배를 채웠으니 다시 달린다. 차들과 함께 달리는 게 영 불편해서 자전거 도로가 보이면 자전거 도로로 간다.
페르피냥에서 동쪽 어디론가 빠져나갔는데 고속도로 옆으로 낡은 시골길을 달리게 되었다. 길 상태가 영 좋지 않다.
프랑스에서는 흔하디 흔한 포도밭이 펼쳐져 있고...
지니님은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찾고 있다. 출발 전, 여행 경로를 미리 파악할 때, 페르피냥 외곽 도로망은 특히나 골치가 아파서 지도를 한참 봐놓았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쉽게 결정한다.
D617 고속도로 아래 연결 통로를 넘어가서 역방향으로 잠깐 달리면 다리를 넘어갈 수 있는 샛길이 있다.
이름도 어려운 작은 마을과 토레이유(Torreilles)라는 마을을 지나간다. 마을과 마을 사이의 큰길 옆으로 자전거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이를 최대한 이용해서 진행한다.
자전거길 표시가 있는 걸 보니 제대로 가고 있는 듯하다.
미리 봐 두었던 굴다리를 지나서 아글리 강을 자전거길로 건넌다.
다리를 건너니 반가운 자전거길 표시가 보인다. 지중해 자전거 루트라 할 수 있는 유로벨로8(EV8) 자전거 도로의 일부 구간이다. 유로벨로8 구간은 우리나라처럼 매끈한 자전거길도 있지만 로드 바이크로는 달리기 힘든 비포장 구간도 많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따라가긴 힘들다.
어쨌든 일단은 유로벨로8 자전거길을 따라간다.
아글리 강(L'Agly)을 따라서 스페인 말그랏 데 마르 이후 다시 바다가 나타났다. 그런데 역시나... 마을 입구부터 자전거길이 모래길이 되면서 로드 바이크로는 영 달리기 힘들다.
어쨌든 해변가 마을에 도착했다. 바르카레스(Le Barcares)라는 마을이다. 페르피냥 이후 제대로 먹은 게 없는데 식당들도 쭉 있으니 여기서 점심을 먹도록 한다. 테라스 쪽에 앉아서 메뉴판을 받아 들었더니... 모르는 단어들이 쏟아진다. 일단 점심으로 먹기 가장 좋은 "오늘의 메뉴"에서 고르기로 한다. 시간도 아슬아슬하게 2시 반이다.
일단 전채로 해산물 세트를 주문했다. 지중해 쪽 사람들은 생굴을 그렇게 좋아해서 식사시간에 보면 얼음을 채운 커다란 그릇에 굴을 가지런히 담아 먹는다. 여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싸게 먹는 굴의 가격이 비싸고 굴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아서 우린 세트 메뉴에 포함되어 있는 것 정도만 먹는다.
그리고 메인 요리인 소고기는 내 것, 생선은 지니님 것이다. Onglet이라는 부위인데 지방과 잡부위가 거의 없는 살코기가 맛있다.
후식으로 지니님은 쵸코 아이스크림, 나는 크림브륄레를 주문한다. 크림 위에 우리에게 문방구 앞 뽑기로 익숙한 잉어엿 맛난 설탕 엿이 시커멓게 올라가 있다.
밥 먹는 동안 식당 앞 공터에는 노인들이 점점 모이더니 커다란 구슬을 가지고 구슬치기를 시작한다. 빼땅끄(Pétanque)라는 전통 놀이라는데 대중화된 것은 100년 정도 전이라고 한다.
점심을 먹고 조금 쉬었으니 다시 출발한다. 해뜨기 전에 출발하고 주행거리도 긴 편이니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당분간은 자전거길이 있으니 계속 따라가면 된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가서 다시 돌아 나와서 자전거길을 따라간다. 차들이 많고 갓길이 없는 도로 옆으로 자전거길이 쭉 나있는데 노면은 그리 좋진 않다.
왼쪽은 호수고 오른쪽은 지중해 바다가 펼쳐진다. 물과 물 사이를 달리니 경치가 괜찮다.
자동차 길과 멀어지더라도 자전거길을 계속 따라 가면 호수와 바다가 이어지는 곳에 다리가 있으니 건널 수 있다.
다리 옆 작은 어촌에는 잡아온 물고기를 요리 해서 파는 곳들이 있다.
자전거길은 류카트(Leucate)라는 마을의 카르푸 앞까지 이어진다.
류카트 마을을 빠져나오면 차 많은 D627도로를 피해서 한적한 D327도로를 달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최악의 도로인 D6009번 도로를 만나면 D6009번 도로로 달려야 한다. 한참을 달리니 갈증도 나고 힘들다. 마침 나타난 주유소에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잠시 쉰다.
숙소가 있는 나르본으로 가는 D6009 도로는 차량 통행도 많은데 갓길까지 엉망이다. 한참 참고 달리다가 씨정(Sigean)을 지나서는 도저히 못 견디고 샛길로 빠진다.
샛길로 갔더니 우리가 원하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릴 수 있다. 오른쪽 숲 너머는 씨정 동물공원이다. 타조 우리가 바로 옆인지 타조들이 보인다.
샛길 중간에 짧은 비포장길이 있었지만 슬슬 걸어서 넘어가니 다시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샛길은 어느새 D105라는 한적한 지방 도로와 합쳐지고 상뜨 폴 연못(Etang de la Saint-Paul)이 나타났다. 연못과 지중해 사이로 난 길을 달린다.
연못 저 멀리에 플라밍고(홍학) 무리가 있다. 프랑스 지중해 근처의 얕은 연못에는 저런 플라밍고들이 잔뜩 산다.
북쪽의 막힌 연못은 연못 물이 거의 증발해서 소금밭이 되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흰 소금밭이 눈 쌓인 듯하다. 원래 경로대로 갔으면 못 보았을 풍경이다.
해는 점점 기울어 가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D105번 도로에서 다시 샛길로 빠져야 하는데 초입부터 비포장이다. 끔찍한 D6009번 도로를 달리기는 싫어서 비포장 샛길로 들어가 본다.
비포장 샛길은 원래 A9 고속도로 옆으로 나르본으로 들어가는 길인데 샛길도 고속도로도 몽땅 공사를 하느라 엉망이다. 이렇게 되었으니 공사를 마치고 잘 깔아놓은 미개통 고속도로를 달려본다.
미개통 구간은 얼마 안 가 끝나고 도로가 끝난 곳에 공사장 출입 계단이 다리 옆으로 연결되어 있다. 저 다리만 건너면 나르본인데... 이런 경우가 한두 번도 아니니 자전거를 들쳐 매고 계단을 올라간다. 어쨌든 힘겹게 나르본에 입성한다.
예약해놓는 호텔이 큰 로터리 건너 구석에 있다.
마을길을 빙빙 돌아서 숙소에 도착한다. 마침 해도 딱 떨어졌다. 자전거를 호텔 울타리 안쪽 밖에 두라는데 영 맘에 걸린다. 사람이 다니는 곳은 아니니까 문제는 없겠지. 얼른 짐 정리해놓고 저녁 먹으러 나온다.
여기는 주변에 호텔들만 있는 지역이다. 근처에 먹을만한 식당이 안 보인다. 옆 호텔의 스테이크 집이 괜찮아 보여서 가본다.
중앙의 그릴에서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다.
안심하고 프라임 립을 주문했는데 프라임 립은 고깃덩이는 큰데 잡부위가 많아 먹을 것이 적었고, 안심은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언덕도 넘고, 바다도 보고, 들판을 가로지르고, 차도에서 고생하고, 펑크도 나고, 비포장길로 끌고 다니기도 하고,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오르고 하면서 130 km가 넘게 달렸다. 마치 자전거 여행의 처음부터 끝을 한 번에 다 겪은 듯한 하루였다. 스페인에서 국경을 넘어 도달한 프랑스 남부의 첫인상은 자전거 타기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