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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과 지니의 지중해 자전거 여행 5

프랑스 남부 평야지대를 달리다.

by 존과 지니

9월 27일 - 4일 차


이동 경로 및 거리 : 나르본(Narbonne) - 팔라바스 레 플롯(Palavas-les-Flots) 120 km

총 이동거리 : 400 km


오늘은 프랑스 남부의 평야 지대를 달린다. 지도 상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도 해발 80m 정도 밖에 안 되니 거의 평지인 구간이다.


어제 나르본 입구에서 묵었던 숙소는 시설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충분히 깨끗하고 쾌적했다. 근처에 아침 먹을만한 곳이 없어 보이기에, 또 해뜨기 전에 일찍 출발하면 너무 추워서... 추가 비용을 내고 조식을 먹었다. 따듯한 음식은 거의 없는 기본 조식이지만 크로아상이 맛있으니 나쁘지 않다. 주스나 커피는 기본적으로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무료 서비스라 어제저녁에 체크인하자마자 몸에 당분을 채우느라 몇 잔을 마셨었다. 나는 커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주로 핫초코를 마시는데 프랑스의 핫초코는 적당히 진하고 달아서 따듯하게 마시기 좋다.


해가 슬슬 떠오르고 우리도 슬슬 출발한다. 지니님이 바람막이를 입고 있으면 날씨가 쌀쌀한 것이라 보면 된다.


나르본 역 앞을 지나서 시내를 관통한다. 평일 출근시간이라 복잡하겠지... 했는데 숙소 근처의 큰 로터리에만 차들이 많고 시내는 생각보다 혼잡하지 않다.


어제 고생하느라 다시 만나도 싶지 않은 D6009번 도로를 다시 타고 가는데 도시 근처라 그런지 노면이 나쁘진 않다. 그렇게 나르본을 벗어나 쿠르상(Coursan)이란 마을을 지나서 계속 달린다.


나르본 근처는 완전한 평지 지대이다. 쿠르상에서부터는 좀더 한적한 D31번 도로로 살르도드(Salles-d'Aude)를 지나 플뢰리(Fleury)란 마을까지 달린다. 평지 구간이라 자전거 타기 좋은지 평일 아침인데도 로드 바이크를 타러 나온 사람들이 꽤 많다. 마침 한 무리의 로드 바이크 동호회도 지나간다.


뢰리를 나가는 출구 도로 공사로 잠깐 멈췄다. 먼지를 한껏 피우면서 공사하다가 우리가 지나갈 때는 잠시 멈추고 지나가라고 친절하게 손짓해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한적한 길로 레스피냥(Lespignan)과 벙드르(Vendres)를 지나간다.


벙드르부터 세리녕까지는 자전거길도 조금씩 있다.


자전거길은 세리녕(Serignan)에서 끝나고 이제부터는 작은 샛길들을 골라서 계속 달린다. 길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지만 한참 끌고 가야 할 만큼 심한 비포장은 없었다.


프랑스 남부에서는 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도로 근처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동물이 말이고 이탈리아 남부나 스페인 남부에서 자주 볼 수 있던 양은 보기 힘들다. 야생 동물은 들판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쉽게 보기 힘들다. 로드킬의 흔적으로 고슴도치나 토끼가 많이 사는지는 알 수 있다.


노면이 나쁜 길을 달리다 보면 잘 포장된 새길만 나와도 신난다.


포르티라네스(Portiragnes)라는 마을 들어가기 전에, 배가 다니는 미디 수로(Canal de Midi)가 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수로의 물을 저장하고 수위를 조절하는 수문 앞에 모여 있다. 좀 있으면 배 뒤쪽 수문이 닫히고 앞쪽 수문이 열려서 배들이 상류로 갈 수 있게 된다.


배 한 대가 수로 아래쪽에서 올라오고 있다. 수로 오른쪽으로 자전거길이 보인다.


수로 자전거길로 갔어야 했는데 그냥 지나쳐서 포르티라네즈 마을 안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미디 수로의 자전거길에 다시 들어섰다. 프랑스의 오래된 자전거길은 기본적으로 생활자전거나 MTB들이 통행하는 것을 상정하고 만드는지 완전하게 포장해놓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미디 수로 자전거길은 비포장 구간도 있기 때문에 마을 쪽으로 살짝 돌아간 것이 다행일 수 있다. 다른 로드 바이크들도 이쪽 차도로 다닌다. 수로 위를 넘는 다리를 건너서 자전거길과 다시 만났지만 중간의 보트 선착장과 캠핑장 구간의 자전거길은 완전히 비포장길이라 갈 수가 없으니 차도 쪽으로 돌아간다.



캠핑장 출구 쪽에 문 닫은 놀이공원이 있다. 프랑스 여기저기에 문 닫은 놀이공원들이 꽤 많다.


미디 수로 옆 샛길을 벗어나도 계속 샛길로 달려 에로(Hérault) 강을 따라서 내려간다.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다리로 강을 건너서 꽤 큰 도시인 아그(Agde)로 갈 수 있지만 일부러 복잡한 도시로 뛰어들 생각은 없다. 에로 강을 따라서 다리가 없는 하류로 내려간다. 막힌 길 표시가 있는 곳에 나룻배 선착장이 있다.


뱃삯은 왕복 1인 당 2유로, 편도는 1.5유로, 자전거를 실으려면 1대 당 1유로를 더 내야 한다.


반대편에 손님을 내려주던 뱃사공 아저씨가 우릴 보더니 부리나케 배를 몰고 온다.



친절하게 자전거도 배에 실어주신다.



친절한 뱃사공의 나룻배를 전세 내서 타고 가니 지니님이 신났다. 작은 배지만 주변 풍경도 좋아서 나름 운치 있다.


거리가 얼마 안 되는 만큼 에로 강을 금방 건넌다. 뱃사공 아저씨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 르 그로 다그(Le Grau d'Adge)에 도착했다.



해변 보행로에는 자전거 금지 표시가 있지만 우리 외의 모든 자전거 이용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간다. 점심 먹을 식당도 찾아볼 겸 자전거를 끌고 슬슬 걸어간다.


가장 바깥쪽의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식당이 깔끔하다. 자전거 세워둘 곳을 찾느라 머뭇거리는데 직원이 자전거 세울 곳도 안내해준다. 그래, 여기서 점심을 먹자.


앉은 자리에서 뒤쪽을 보면 에로 강이고


앞쪽을 보면 지중해 바다이다.


이런 풍경을 보면서 밥을 먹으면... 같은 퀄리티에 다른 곳보다 좀 더 비싸다.

지니님은 프랑스식 육회인 타르타르를, 따듯한게 먹고 싶은 나는 생선 수프를 주문한다. 타르타르는 프랑스식 육회라 해서 시켰는데 맛이 좀 시큼한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지니님이 시킨 메인 요리는 무언가 오징어 덮밥 같은 것이다. 쌀밥도 나오니 더욱 덮밥같다. 나야 늘 먹는 대로 스테이크다. 고기다.


후식은 나만 쵸코렛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디저트를 뺀 코스 메뉴도 있는 식당이다.


바다와 만났으니 이제 바다 옆으로 해변 라이딩을 할 수 있을까? 해변을 잠깐 따라가다가 마을길과 자전거길을 따라서 깝 다그(Le Cap d'Agde)를 벗어난다.


깝 다그의 끝자락 들어가기 전에 D612번 도로와 만나는 자전거길이 있다. 초입이 잠깐 비포장이라 진입이 망설여졌지만 조금 걸어 들어가니 탈만한 길이 나온다.


D-612번 도로 옆으로는 자전거길이 있고 이 길을 직진해서 계속 따라가면 차도는 끝나지만 해변에 붙어 달리는 자전거길이 세트까지 이어진다.


차들은 가지 못하고 걸어가기엔 너무 긴 해변길이다. 성긴 울타리가 있긴 하지만 바람에 모래가 자전거길로 넘어와서 여기저기 쌓여 있으니 조심해서 달려야 한다.


우리 외에도 많은 자전거 이용객들이 이 길을 이용한다. 지중해의 바다와 맑은 하늘 아래서 쭉 뻗은 해변 자전거길을 달리니 즐겁다.


한참을 달리니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세트(Sete)라는 도시이다. 집들이 골고루 퍼져 있는 저 언덕을 중심으로 호수와 바다 사이의 좁은 땅에 집들이 빽빽하게 모여있는 도시이다. 유럽의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언덕 위에는 잘 사는 사람이 살겠지...


꽤 큰 도시라 입구부터 조금 붐빈다는 느낌이지만 자전거길이 계속 나있으니 큰 어려움 없이 시내에 들어선다. 한참 달리는 동안 슈퍼나 바도 없었으니 중간의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서 갈증도 달랜다.


바다 쪽에 성벽같은 것 옆으로 난 자전거길을 따라 세트 항구에 들어간다. 이 성벽같은 것은 바다의 극장(Théatre de la Mer)이라는 노천 극장이다. 왠지 성벽이 높은 것이 예전에 Fort Saint-Pierre라는 해안 방위 요새로 쓰였다고 한다.


자전거길 덕분에 꽤 큰 도시라 할 수 있는 세트(Sete)에 편하게 도착했다. 항구에 배들도 많고 사람들도 많다.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차들과 사람들로 뒤엉켜 있다.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천천히 건너간다.


세트를 관통해서 나가려 했는데 이번에는 내 자전거의 뒷바퀴에 펑크가 난다. 프랑스의 도로 상태를 생각하면 펑크가 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여분 튜브로 교체하고 근처의 친절한 자전거 가게에 잠깐 들러서 펌프를 빌려 공기를 채운다. 여분 튜브도 구입하려 했더니 자전거 대여 전문점인지 로드바이크용 튜브는 없다고 한다. 친절한 주인장이 로드 바이크 튜브를 살만한 근처 가게 위치도 알려주지만 너무 시내로 들어가는 것 같아서 들르지는 않는다.


다리를 건너고 건너서 D612번 도로를 달린다. 이 도로는 갓길도 적고 차들도 빠르게 달린다. 앞에 달리던 여성 자전거 여행자도 있어서 좀 안심이 되는지 지니님도 열심히 달린다.


다행히 얼마 안 가서 프론티녕(Frontignan)이라는 마을 앞에서 이 복잡한 도로를 벗어나서 D60 도로로 나간다. 여기부턴 자전거 도로가 있다. 호수와 마을이 보인다.



물 가를 달리는 자전거길은 기분이 좋다. 다만, 연못 물을 너무 가까이서 보면 그리 깨끗하진 않다.


계속 자전거 도로를 따라 달린다. 양 옆으로 다 호수이고 바다는 마을 건너편에 있다. 수심이 얕은 호수에 플라밍고들이 모여 있다.


항상 사람이 보기 힘든 호수 저편에 있더니 몇몇 녀석들은 그나마 길 가까이에 있다. 원래부터 색을 제외하면 이쁘게 생긴 새는 아닌데 색깔까지 붉지 않으니 좀 구질구질해 보인다. 홍학의 붉은 색은 스스로의 색이 아니라 특이한 미생물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하얀 개체들도 있나보다.


저 멀리에 오늘 우리가 숙소를 예약해놓은 Palavas-les-floits이란 마을이 있다. 비포장을 갈 수 있는 자전거들이라면 수로를 따라서 쭉 뻗은 비포장길을 달려 가로질러 가면 되지만 우리는 로드바이크니 호수를 빙 돌아서 가야 한다.


돌아가든 어쩌든 자전거 도로만 있다면야 걱정이 없다.


이번 가을은 일찍 찾아왔는지 프랑스 남부도 그리 따듯하진 않다. 덕분에 자전거길 옆의 포도밭에도 단풍이 곱게 들었다.



이런 유럽의 들판에는 어김없이 야생 토끼가 산다. 주의 깊게 보면 꽤 자주 보이는데 지니님은 안 보이나 보다. 그때, 자전거도로로 뛰쳐나온 조그마한 아기 토끼가 우리를 보고 놀라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수풀 속으로 들어간다. 이제 지니님도 토끼를 봤다.


Palavas-les-Flots에 도착했다. 생선가게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해변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비린내가 확 풍긴다.


어휴 빨리 벗어나서 숙소로 가야겠다.


해변에는 성수기가 지나서 문을 닫은 렌트형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호텔에 도착했다. 3성이라고 되어 있는데 솔직히 2성급이다. 옆집 고양이가 우리를 신기한 듯이 쳐다본다.


유럽 숙소들은 자전거를 실내에 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곳이 많다. 여기는 아예 비용을 내고 지하 주차장에 보관하라고 한다. 어두컴컴한 지하 주차장 구석에 자전거를 보관해둔다. 보관비를 내는 것은 주로 바깥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비밀번호나 허가가 있어야만 열리는 곳인 경우가 많다.


그냥 무난한 숙소이다. 근처에는 먹을만한 식당이 보이질 않는다. 프론트의 아줌마에게 저녁 먹을만한 곳을 물어보니 좀 거리가 있는 식당이 열었을 것이라고 알려준다.


저녁 먹으러 나가는 길에도 아까 맞이해주었던 고양이가 있다. 우리에게 관심은 많은데 쓰다듬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 녀석이다. 주인이 집에 돌아오니 반기러 가버린다.


아주머니가 알려준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가격은 그리 싸진 않지만 분위기가 좋다. 해물 위주로 먹으려고 와인도 가벼운 화이트 와인으로 하나 주문한다. 군것질거리로 준 삶은 고둥도 먹을만하다. 지니님은 뭔가 특이한 생선살을 주문했다. 참치 카르파쵸라는 이탈리아식 생선회이다. 생 생선살을 양념과 기름으로 살짝 절인 느낌이다.


나는 환절기에 계속 몸이 안 좋아서 따듯한 생선 수프를 주문한다. 치즈를 조금씩 넣어 먹으면 후추의 얼큰함과 치즈의 담백함이 어우러져서 맛있다.


그리고, 고기는 그동안 많이 먹었으니 나는 생선 구이를, 지니님은 부야베스를 주문한다. 부야베스는 프랑스식 해물 잡탕이라 할 수 있는데 당연히 프랑스식이니 우리나라의 해물탕 종류와 전혀 다른 짜고 비린 맛이다. 원래 상당히 비싼 부야베스를 한 번 정도만 먹으려 했는데 적당한 가격에 먹어봤으니 차라리 잘 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부야베스가 되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과 티라미수... 티라미수는 그냥 생크림에 과일과 과자 가루 같은 것을 올린 티라미수 같지 않은 것이 나왔다. 여기 뿐만 아니라 다른 식당에서도 이런 티라미수가 나오니 프랑스에서는 이게 일반적인 것인가보다. 앞으로는 다른 디저트를 주문해야지...

가장 가까운 식당인데도 숙소에서 편도 1 km 넘게 걸어갔다 와야 했지만 그래도 먹을만한 식당이었다. 이 식당마저 없었으면 더 먼데로 가서 아무거나 먹어야 했으려나...


일단 오늘까지 400 km를 달렸다. 하루 100 km 씩은 달린 셈이다. 첫날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출발하기에 컨디션 관리를 위해 조금 달리고, 둘째 날은 오후에 비가 와서 조금 달렸는데 전체 일정은 예정대로 달리고 있다. 내일은 카마르그 자연공원을 가로질러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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