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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과 지니의 지중해 자전거 여행 11

이탈리아 북부 해변

by 존과 지니

2017년 10월 3일


이동 경로 및 거리 : 디아노 마리나(Diano marina) - 첼레 리구레(Celle ligure) 75 km

총 누적 이동 거리 : 983 km


푹 자고 느긋하게 조식을 먹으러 간다. 이탈리아의 호텔에는 자동 커피 메이커가 있다. 원하는 커피를 누르면 알아서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나 가지고 싶을 듯하다. 다른 곳에서는 커피를 거의 안 마시는 나도 이탈리아에서는 하루 두 잔 이상 마실 정도로 이탈리아 커피는 맛있다.


이번 호텔도 엄청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풍성하게 먹을 수 있는 조식이다.


유럽 사람들은 꿀을 참 좋아한다. 단 것을 좋아하는 나도 너무 달아서 잘 안 먹는 꿀을 참 잘 먹는다.


체크아웃을 하고 자전거를 꺼내 출발 준비를 한다. 이탈리아라 그런지 옆에 세워진 렌트용 호텔 자전거도 비앙키다. 이 근처에 수풀이 좀 있고 실내는 따듯하다 보니 추운 날씨에도 모기가 우글거린다. 여기저기 달라붙어 피를 빨려고 하길래 얼른 빠져나간다.


해변으로 나가서 디아노 마리나를 벗어난다. 조용하고 편한 마을이었다.


자전거길은 없지만 한적한 해안도로로 바다 풍경을 보면서 달린다. 좀 흐리지만 비가 안 오기만을 바란다.


우리나라의 강원도 쪽의 평창강, 동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피암 터널이 여기에도 있다. 피암 터널을 통과해서 계속 달린다.


오늘 코스도 약간의 오르막길들이 있지만 경사가 급하고 힘든 길은 아니라 달리는데 큰 문제는 없다.


갈리나라(Isoletto Gallinara)라는 섬이 보인다. 섬이 작은데도 뭔가 건축물이 있다. 대단히 역사적인 유적은 아닌 듯하지만 자연 보존구역이다.


알벤가(Albenga)라는 도시는 입구부터 터널을 피해 해변으로 빠져 지나간다.


길 가의 가로수들이 가을이 부쩍 다가왔음을 느끼게 해준다.


최대한 해변으로 달리려니 기찻길을 피할 수가 없다. 건널목에서 기찻길을 건너야 하는데 계속 기차가 지나가는 때에 걸려서 잠시 멈춘다. 이탈리아는 기차가 지나가는 전후로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차단봉을 내려버리기 때문에 한 번 걸리면 꽤 오래 기다려야 한다. 차단봉이 내려오면 얼른 뛰어서 건너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달려가는 방향으로 동쪽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비만 안 왔으면 좋겠는데...


바람 부는 해변길의 오래 되어보이는 샌드위치집에서 쉬기로 한다. 철로 된 기둥에 녹쓴 흔적과 겹겹이 바른 페인트로 꽤 낡아보인다. 주방이 작아서 그런지 간단한 샌드위치와 빵 종류만 파는 곳이다.


햄버거를 주문해보았는데 의외로 먹을만하다.


다시 출발해도 날씨는 여전하다. 날이 맑았다면 훨씬 대단했을 풍경의 지중해 바다가 펼쳐진다. 지중해는 10월 초부터 날씨가 조금 안 좋아지는 듯하니 다음부터는 추석 전에 와야겠다.


자전거길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그래도 불편한 것은 거의 없으니 날림으로 만들어놓은 우리나라 동해안 자전거길보단 훨씬 낫다.


열심히 달리는데 도로 공사로 정체되는 구간이 있다. 우리랑은 상관없지만...


첼레 리구레라는 마을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여기 이탈리아 북부 해안 지역이 리구리아(liguria)라서 피레트로 리구레, 피날레 리구레처럼 무슨무슨 리구레라는 이름이 붙은 마을이 많다.


본격적으로 비가 오기 시작하니 일단 근처의 바에 들어가서 비를 피한다. 날도 추우니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해서 몸을 덥히면서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근처 숙소를 예약한다. 마침 멀지 않은 곳이 적당한 호텔이 있다.


이제 숙소 예약도 끝냈으니 맘 편하게 생맥주도 한 잔씩 주문해서 마신다. 보통 생맥주를 주문하면 기본 안주로 감자칩이 나오니 좋다.


지니님도 나도 맥주 한 잔에 취하지는 않지만 술을 마시면 자전거는 절대 타지 않는다. 자전거를 끌고 슬슬 걸어서 예약해둔 숙소에 도착한다. 급하게 예약한 숙소치고는 나쁘지 않다.


적당히 정리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이제 비는 거의 그친 듯하다. 나오는 길에 이 동네 트립어드바이저 1위 맛집이 있는데 입구도 좁고 낡아보이는 것이 지니님이 왠지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 동네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다른 음식점들은 모두 닫았다. 어쩔 수 없이 아까 본 식당에 들어갔는데 하필이면 손님이 우리 밖에 없다. 그래도, 내부는 생각보다 아늑하다.


식사와 함께 와인을 주문하려니 와인 리스트에 마침 이탈리아 북부에서 유명하다는 바롤로 와인이 있다. 주문하니 식당 주인인 모세 아저씨가 간단히 디켄팅까지 해서 준다. 이 집은 전채요리를 자기 간단한 샐러드바 형식으로 먹을 수 있는데 우린 주문하지 않고 샐러드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간단히 안주삼아 먹을 수 있도록 주인 아저씨가 샐러드바 음식을 조금씩 담아다 준다. 시골 식당의 이런 마음 씀씀이가 좋다.


이탈리아 북부는 여기 첼레 리구레에서 50 km 정도 떨어진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의 와인이 유명하다고 한다. 주문한 이 바롤로 와인도 이 가게에서는 조금 비싼 와인이지만 맛과 향의 벨런스가 좋다.


샐러드와 생선, 스테이크, 파스타를 하나씩 주문했다. 모세 아저씨가 와서 샐러드 소스에 대해서 물어보더니 맛있는 비율로 즉석에서 소스를 만들어 준다. 맛있다. 우리 이후로 손님들이 점점 들어와서 가게가 바빠졌는데도 우리는 물론, 여러 손님들을 지극 정성으로 대접한다.


주문한 파스타는 이 지역인 바라체(Varazze) 지역 특산인 만딜리 디 바제(Mandilli de vaze)라는 네모난 수제비같은 파스타다. 바라체의 문장까지 찍혀있는 파스타다. 수제비나 칼국수 같은 식감이 난다.


며칠 전에 먹었던 스테이크와 비슷한 녹색 후추가 잔뜩 들어간 스테이크가 나왔다. 녹색 후추가 너무 많아서 고기 맛을 방해하길래 옆으로 좀 밀어놓고 소스와 고기만 먹었다.


지니님은 생선을 먹는데... 모세 아저씨가 큼직한 생선 한 마리를 우리 뒤쪽 테이블에 가져가더니 직접 살을 발라서 플레이팅을 해준다. 저거 먹을껄... 하고 지니님이 아쉬워한다. 물론 이 생선 요리도 훌륭하다.


잘 먹었으니 디저트도 주문한다. 디저트도 멋진 것이 나왔다.


그리고, 이제 슬슬 계산하려 하니 모세 아저씨가 무언가를 꺼내온다. 리큐르 아이스라는 감초를 베이스로 한 술이다. 시칠리아 특산의 오리지널 감초주인데 북부 지방에서는 귀한 것이라면서 우리에게 한 잔 씩 서비스해준다. 지니님은 신나서 한 잔 더 마셨다. 술이지만 감기나 발열에 약으로도 마시는 약술이라 그런지 계속 몸이 안 좋던 나도 다음 날부터는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추운 날씨에 얇은 옷으로 여행다니는 우리를 생각해서 챙겨준 듯하다. 시칠리아에서도 못 먹은 것을 여기서 먹었다.


친절한 주인장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저녁을 푸짐하게 먹었다. 날이 밝을 때는 낡고 음침해보였던 식당 입구가 저녁이 되니 따듯하고 아늑해보인다.


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멈춘 첼레 리구레지만 즐거운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 내일은 해안을 달리다가 내륙으로 들어가야 한다. 날씨가 더 좋았으면 환상적일 풍경에 살짝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비가 안 오는 것만 해도 하늘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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