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초입의 가벼운 트래킹
2017년 11월 18일 - 춘천 봄내길 1코스, 실레 이야기길
지자체에서 앞다투어 예산을 들이부은 결과로 어지간한 동네는 걷기 좋은 길이 하나씩 있다. 춘천도 예외는 아니라서 봄내길이라 하는 걷기 코스가 춘천 변두리를 따라서 총 9코스(메인 코스 7개, 연결 코스 2개)로 구성되어 있다.
지니님이 춘천에서 살게된 김에 시간이 날 때마다 한 코스 씩 다녀오기로 했다.
그 봄내길 1코스은 실레이야기길이다. 출발지라 할 수 있는 경춘선 김유정역은 유일하게 사람의 이름이 붙은 역이라고 한다. 전체 코스는 아래와 같이 그리 길지 않은, 천천히 걸어도 2~3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는 코스다.
코스 관련 정보나 GPS 파일은
http://www.bomne.co.kr
에서 구할 수 있다.
원래 코스를 시계 방향으로 걷는 것이 정방향인 듯한데 아무렴 어떠랴. 발길 가는대로 맘대로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김유정역이 있는 이 곳은 실레마을이라고 한다. 지번 주소로 춘천 신동면 중리다. 소설가 김유정이 태어난 고향이라는데 그 관련 시설 외에는 그냥 흔한 변두리 시골 마을이다.
마을의 가장 큰 길인 금병의숙길을 따라 올라가면 봄내길 1코스의 입구가 있다. 금병산 등산로로 올라갈 수도 있는데 우리는 간단히 실레 이야기길만 따라 가기로 한다.
소설가 김유정을 테마로 하는 관광지를 조성하다보니 봄내길 1코스의 이름도 실레이야기길이고 코스 곳곳에 김유정의 소설에 관련된 내용들이 있다.
저수지까지는 차량들도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길이 이어진다.
교과서나 수능 문제 예문에서 접하는 봄봄이나 동백꽃 같은 작품은 나도 읽었지만 그 외에 솟이나 만무방 같이 덜 유명한 소설의 내용은 와닿지 않는다.
저수지 입구에서 저수지쪽으로 가보니 한참 공사 중이라 돌아나온다. 실레 이야기길은 저수지 입구에서 산길로 올라가야 한다.
높은 나무가 쭉쭉 뻗은 호젓한 숲길이다.
편한 산책길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가파르긴 하지만 엄청 긴 오르막은 아니니 슬슬 걸어 올라간다.
오르막길을 열심히 올라가면 정상에 운동기구들이 있다.
글에는 글쓴이의 정신적인 부분들이 많이 묻어난다. 소설가로서는 2년 남짓 활동하고 폐렴으로 죽은 김유정은 얼마 못 산 인생의 대부분을 연예인 스토킹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김유정의 소설들은 암울하고 비정상적인 내용들이 많다.
실레이야기길의 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에 오르니 봉의산이 있는 춘천 시내가 보인다. 전망대 자체가 높지 않은 곳이라 풍경이 가득 펼쳐지지는 않는다.
산책로 곳곳에 실레이야기길과 실레마을에 대한 이야기들이나 이정표들이 잘 되어 있다.
사기와 도망은 김유정 소설의 단골 메뉴이다.
양지바른 언덕에서 따듯한 햇볕을 받은 개나리가 봄인줄 알고 피어버렸다. 네 덕분에 을씨년한 겨울에 꽃 구경을 하는구나.
산길에 얽힌 얘기를 여기저기 써놓았는데 밝고 따듯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소설 자체는 허구라지만 현실과 작가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암울하고 비극적인 내용이 현실에서 온 것이라면 실레마을은 어감처럼 아름다운 곳 만은 아닌 것이다.
들병이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들병이는 병에 술을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술과 몸을 팔던 여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소설에도 들병이가 자주 등장하는 만큼 김유정은 이 산골 구석에서도 들병이들과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어찌나 들병이들을 좋아했는지 후대에도 작가 김유정과 함께 하는 실레이야기길의 첫 번째 이야기로 들병이를 꼽아주었다.
이제 실레이야기길 비포장길은 끝나고 실레마을로 돌아왔다.
다시 실레마을로 돌아오니 김유정 생가를 복원한 김유정 문학촌이 보인다. 개인(초등학생이상) 2,000원, 단체(30인이상) 1,500원에 신분증을 소지한 춘천 시민은 50% 할인이라고 한다. 2시간을 넘게 걸어서 슬슬 피곤해지는데다가 김유정에 대한 인간적인 매력은 못 느끼니 그냥 지나쳐 간다.
차를 세워둔 김유정역 근처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봄내길 1코스 자체는 가볍게 걷기 좋은 짧고 편한 흙길이었다. 길 자체가 그리 길지 않으니 김유정에 관심있는 사람은 실레 마을을 둘러보고, 좀더 걷고 싶은 사람은 다른 봄내길 코스와 연계해서 걷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