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산타크루즈부터 몬테레이까지 몬테레이 만을 따라 달린다. 산타크루즈에서 몬테레이까지는 80 km 정도인데 숙소 도착 후에 17마일 드라이브라는 30여 km 코스를 더 달릴 것이라 결국 적지 않은 거리를 달리게 된다.
아침 식사가 제공되는 숙소인데 매우 조촐한 편이다. 그래도 샌프란시스코 호스텔의 조식에 비하면 호화롭다고 할 수 있다.
출발하려는데 날은 잔뜩 흐리다. 중앙 로터리 근처의 산타크루즈의 모습을 보여주는 벽화는 선명하다.
산타크루즈의 보드웍 놀이동산을 지나간다. 놀이기구들이 이것저것 있는데 우린 둘 다 놀이기구 타는 것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매일 아침마다 안개가 짙다. 이 짙은 해무를 뚫고 지나가면 고글에 엄청난 양의 물방울이 빼곡하게 맺혀 흐른다. 비 맞는 것이나 별 차이 없다. 안개 때문에 경치도 안 보이니 자전거 타는 것만 아니면 오전 10시를 넘겨서 숙소에서 나오고 싶다.
별 생각없이 해변 쪽 자전거 길을 따라서 달리다보니 막다른 곳에 도착해버렸다.
다시 돌아나가려는데 서핑보드를 타는 사람들 너머로 무언가 작은게 꼼지락거린다.
몬테레이 만에 산다는 해달이다. 멀리서 봐야 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열심히 조개를 사냥해서 까먹고 있다. 해달은 이렇게 해초가 많은 곳에서 산다. 잘 때도 해초에 몸을 감고 바다 위에 떠서 잔다고 한다.
압토스라는 마을을 지나는데 긴 벽화가 보인다. 그림처럼 여기는 아직도 말을 타는 사람들이 많다. 어디를 가도 시골 위주로 달리는 내가 느끼기에는 유럽에는 벽화보다 어지러운 스프레이 낙서가 많은데 미국은 이런 이쁜 벽화들이 많다. 이런 면에서는 유럽보다 훨씬 깔끔한 느낌이다.
오늘도 여전히 1번 도로를 따라 간다. 자동차 전용도로 구간이 많아 조금씩 돌아 가야 하긴 하지만 우회로 없이 자전거길이 갑자기 없어지는 경우는 없다.
나무들이 울창한 숲 속을 달린다. 쭉쭉 높이 뻗은 나무들이 시원하다.
아침마다 깔리는 이 진한 안개는 해가 뜨고 기온이 어느 정도 올라가야 없어진다.
길 옆으로 넓은 밭이 나타났다. 무얼 이리 재배하나 했더니 한참 딸기가 익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우스 딸기라 해도 보통 이른 봄에나 먹는 딸기를 여기 캘리포니아에서는 9월 말에 수확하고 있다.
아무리 넋 놓고 달려도 자전거 루트 표시는 확인해야 한다. 미리 경로를 조사하긴 했지만 우리가 가려는 길에는 거의 자전거 루트 표시가 있다.
그렇다고 마냥 길이 좋은건 아니다. 가끔 이런 오래되고 다 망가진 길도 마주친다.
아까부터 길 옆은 모두 딸기밭이다. 딸기는 사람이 직접 하나하나 따야 하기 때문인지 이렇게 많이 재배해도 그리 싸진 않다.
한참 수확하는 곳을 지날 때마다 딸기향이 물씬 풍긴다.
딸기밭이 끝나면 늪지대 같은 느낌의 습지가 나타난다.
모스 랜딩(Moss landing), 이끼가 깔렸다는 이름이 참 어울리는 곳이다. 여기서 점심을 먹을까 했는데 작은 마을이라 변변한 식당이 없어보여 다시 달린다.
한참 경작하는 밭 근처를 지나다보면 급수기에 물벼락을 맞기도 한다. 농업용수라 그리 깨끗하진 않겠지...
마리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 먹는다고 하면 신난다.
지니님이 스테이크 하우스를 검색해서 열심히 달려 가봤더니 식당이 망했다. 그냥 주유소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 받아서 샌드위치와 함께 먹기로 한다. 저녁을 맛있는걸 먹으면 되지.
마리나의 출구부터는 몬테레이까지 자전거길이 쭉 이어진다. 길 옆으로 땅다람쥐들이 엄청 돌아다닌다. 그냥 야생쥐나 다름없이 많이 사는데 들쥐보단 귀엽게 생겼으니 눈에 띄여도 나쁘지 않다.
철조망 안쪽 자전거길도 갈 수 있는데, 중간에 조금 돌아가야 하는데다가 깔딱고개까지 있는 길이다. 그냥 이 평평한 길로 가는게 좋다.
네 바퀴만 달린 수레에 개를 태우고 다니는 노숙자가 우리를 추월해 간다. 뒤에 탄 개도 늘 타던 것인지 익숙하게 균형을 잡는다.열심히 먼저 가더니 나중에 마을 입구에서 구걸 중이었다. 여기 노숙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시 외곽에 작은 텐트를 하나 펼쳐 놓고 자전거와 개 한 마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 이들도 자전거 여행자라 할 수 있을까. 사실 장기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꼬질꼬질해지는 자전거 여행자와 노숙자를 구별하는 방법은 구걸을 하는지 안 하는지 뿐이다.
쇼핑센터들이 모여있는 마을 입구를 지나서 1번 도로 옆의 작은 길로 들어서면 몬테레이 해변 자전거길이 시작된다.
여기는 마을 이름이 분위기와 참 어울린다. 모래가 많은 샌드시티 해변으로 자전거길을 따라 달린다.
S자로 돌아 내려가는 헤어핀 코스를 내려가면 몬테레이의 델 몬트 마을이다. 자전거길은 끊기지 않고 이어져 17마일 드라이브 코스까지 이어진다.
오늘의 숙소에 도착했다. 마침 체크인 시간인 오후 3시.
깔끔한게 맘에 드는 숙소다. 체크인을 하고 짐이 들어있는 안장가방을 방에 두고 자전거만 가지고 다시 나온다.
이제 17마일 드라이브 코스를 한 바퀴 돌러 간다. 얼마나 좋은 곳이길래 이렇게 꼭 가야 하는건지...
시계 방향으로 돌기로 했는데 시작부터 언덕을 넘어야 한다. 카멜 바이 더 시(Carmel by the sea)에 숙소를 잡았으면 이 언덕을 피해 17마일 드라이브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카멜 쪽 출구로 빠져나가면 되는데 그 동네가 워낙 숙소가 비싸고 식당이 얼마 없다보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언덕을 끝까지 올라가진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차도로는 꽤 높은 언덕을 꼭대기까지 빙 돌아 올라가야 하지만 1번 도로 옆의 저 점선 표시된 곳이 잘 포장된 자전거길이다.
어지간한 승용차 한 대는 지나갈 수 있는 길이지만 자전거와 보행자만 다니는 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차가 다닐만해 보이면 어디든 차가 들어오는걸 많이 보았는데 미국에서는 차량 주행이 금지되어 있는 이런 골목길에서 차와 마주친 적이 없다.
17마일 드라이브의 남쪽 출입구다. 차들에게는 입장료까지 받는 곳인데 자전거와 보행자는 무료다.
언덕을 쭉 따라 내려가면서 보이는 것은 부자들이 살만한 좋은 저택들이다. 마치 부동산 카탈로그를 보는 것 같다. 이런걸 보려고 여기 온게 아닌데...
페블비치 쪽은 관광버스에서 내린 중국인들로 혼잡하다. 해변과 골프장일 뿐이니 그냥 지나간다.
잘 사는 사람들 동네를 담 넘어로 구경하는 느낌으로 계속 달린다.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는지 조그만 공터도 모두 주차 금지로 도배되어 있다. 멋진 풍경의 대저택에 살고 싶어서 왔는데 모르는 사람들로 매일 소란스러우면 짜증날 법도 하다.
달리는 중간에 페블비치의 상징이라는 해안 절벽 위의 소나무가 있어 잠깐 멈춰서 구경을 한다. 사실 특별한 것은 없다.
아래 쪽 바다에 해초밭이 있는데 뭐가 움직여서 해달인가 하고 근처 망원경에 50센트를 넣고 봤더니 그냥 부표같은 것이었다. 내 아까운 50센트...
부자 동네를 벗어나니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바다가 펼쳐진다. 제주도 성산 세화 근처의 동쪽 해변과 비슷한 느낌이다.
뷰 포인트가 있어서 들어가봤더니 저 앞쪽 섬이 바다사자 서식지다. 다른 사람들은 가지고 온 쌍안경이나 카메라 망원렌즈로 바다사자를 구경하는데 우리는 가지고 있던 50센트를 아까 써버려서 망원경도 못 본다.
바닷가를 계속 달린다. 시계 방향으로 달린게 잘한 듯하다. 반시계 방향으로 달렸으면 처음에 이 해변을 보고 나서 볼거 없는 부자 동네를 지나, 늦은 시간 가장 힘들 때 긴 언덕길을 넘어 돌아왔을 것이다.
북쪽 해안 요금소를 지나면 이제 17마일 드라이브 코스도 끝이다. 몬테레이 해안 쪽 뒷길로 자전거길이 나있다. 자전거길을 따라서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씻고 빨래도 끝내면 날이 어둑어둑해진다. 저녁도 먹어야 하고 근처 구경도 할 겸 몬테레이의 올드 피셔맨스 와프로 걸어간다.
오늘은 9월 24일, 추석 보름달이 떠오른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었으니 저녁은 좀 맛있는걸 먹자. 와프에서 유명한 식당인 올드 피셔맨스 그로토에 갔더니 2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대기 예약 진동벨을 받고 근처 기념품 가게를 잠깐 구경하니 5분도 안 되어 벨이 울린다. 예약했던 사람이 취소했다고 한다. 저녁이라 날이 쌀쌀하니 따듯한 국물이 먹고 싶다. 클램 차우더를 한 그릇 먹고 게와 새우 요리에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마신다. 맛있는 식당이다.
달달한 와인을 그리 안 좋아해서 드라이한 걸 주문했는데도 꽤 단맛이 강하다. 캘리포니아 와인이 좀 달달한 편인가...
이 식당은 계산을 할 때 테이블에 여성이 있으면 장미꽃 한 송이 씩을 서비스로 준다. 남자에게는 계산서만 주고...
산타크루즈에서 몬테레이까지 80km가 채 안 되지만 17마일 드라이브 코스 때문에 35 km가 추가되어서 결국 오늘도 110 km 이상 달렸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은 빅 서 주립공원을 지나야 하는 내일이다. 보급할 곳이 거의 없으면서 만만찮게 반복되는 언덕길로 130 km를 달려야 한다.
자연이 그대로인 만큼 하루에 한 종류 씩은 야생 동물을 보는 듯하다. 바다사자와 해달, 빅 서 주립공원을 지나가는 내일은 무얼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