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와 부상
2025년 9월 21일(일)
[8일 차] San Marino del Lago ~ Melara 89km / 누적 거리 680km
이 숙소는 조식을 따로 주지 않고 어제 테이블에 미리 세팅해놓은 것을 그냥 먹으면 된다. 쥬스 2개는 어제 도착하자 마셔버렸고 우유 2개를 아침에 마저 먹는다. 커피를 내려 뜨거운 물을 잔뜩 탄 아메리카노와 레몬차 티백도 우려서 몇 잔이고 따뜻한 물을 마신다. 입맛은 없지만 적당히 빵을 두어개 먹어본다. 어젯밤 왓츠앱으로 체크아웃 타임을 묻는 연락에 7-7반을 얘기했었다. 준비하고 나가니 어무이가 기다리다가 웃으며 반겨주셨다. 넘모 친절한 모녀.. 역시 부킹닷컴 평점 9점대는 차원이 다르다.
안개가 자욱해서 해가 뜬지도 모르겠다. 일단 바리아를 켜고 달려본다. 바리아는 첫날 취리히 인근에서 쉴새없이 울리다가 오전에 배터리를 소진했었다. 이후로 자전거 도로나 한적한 곳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아껴둔다.
아침 일찍이라 차가 별로 없다. 그리고 곧 샛길로 접어들었다. 이슬비같은 가느다란 물방울이 고글을 덮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잠시 벗고 달려본다.
25km쯤 달려서 어느 야외 카페에 왔다. 곧 강변길을 타면 마을로 빠지기가 번거로우니 레몬소다를 괜히 하나 마시며 쉬어본다. 처음에는 조용하더니 이내 마을사람들이 모여들어 시끌벅적해졌다. 현지인들이 주말 아침을 즐기기 위해 모이는 참새 방앗간 느낌이 난다.
강가로 가보니 바로 옆 뚝방길에 자전거가 많이 다니는 도로가 있다. 이 길을 타기 위해 이렇게나 남쪽으로 내려왔다. 길은 좁고,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다. 자전거 표시가 그려진 표지판을 보니 유로벨로 8코스인 듯 하다. 그리고 유로벨로답게 노면이 아주 별로다. 다 낡아빠지고 벗겨져서 표면이 아주 거친 이 아스팔트를 포장도로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차가 아주 적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다.
중간중간 나타나는 유로벨로 표지판이 나를 안심시킨다. 갈림길에서 헤매지 않도록 방향을 안내해준다.
어느새 날은 더워졌고 슬슬 배가 고파졌다. 64km 지점에서 식당이 있는 마을로 빠지기로 했다. 미니미한 회전교차로에서 길이 헷갈려 급하게 커브를 돌다가, 모래와 자갈바닥에 미끄러져 완전히 쿵하고 넘어졌다. 너무너무 아프지만 일단 차가 올지 몰라서 옆으로 빠졌다. 팔, 다리, 머리까지 한번에 충격을 받은 상황이라 머리가 띵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곧 식당이 나오니 어차피 쉴 거 일단 그곳으로 가는게 낫겠다.
큰일이다. 왼팔에 힘이 잘 안 들어간다. 자전거에 올라타고 내리기가 힘들다. 급기야 마을 입구에서는 그냥 자전거를 끌고 걸어갔다. 도착한 곳은 식당이 아니라 바였다. 먹을게 다양하지 않아서 내츄럴 오렌지쥬스, 제로콕, 초콜릿 크로아상을 먹었다. 존에게 연락하니 걱정가득한 답장이 왔다. 염좌일 수 있으니 노시셉톨이라도 발라보라고 한다. 화장실에서 흙먼지를 씻어내고 계속 마사지도 했더니 좀 나아지는 것 같긴 한데, 일단 좀 기다려 봐야겠다.
1시간을 넘게 쉬다가 일단 조금 타볼까 해서 다시 출발한다. 여전히 팔이 불편해서 살살 달린다. 시간은 1시반이고, 목표한 마을중에 제일 가까운 곳은 25km 정도만 가면 된다. 햇빛은 점점 더 뜨거워졌는데, 그래도 가을바람이 제법 시원해서 괜찮았다.
가다가 공사구간이 나와서 옆에 길이 난 개구멍으로 갔다. 이런, 비포장이다. 그나마 길이 매끈하니까 일단 살살 타본다. 그런데 갈수록 돌이 점점 커져서 결국 내렸다. 지금 팔이 성치 않아서 괜히 무리해서 타다가 또 넘어질 수 있다.
1km 정도를 걸었지만 공사구간은 끝나지 않아서 결국 옆에 도로로 나왔다. 그래도 여기를 질러오지 않았으면 아까 SS 도로를 잠시 타야했는데, 지금 몸으로는 갈 수 없다.
아까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주인장은 다른 마을에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급하게 오느라고 키를 잘 못 가져왔다고 기다려 달란다. 옆 카페에 가서 느긋하게 맥주를 마시며 땀을 식히고 있으니 금방 돌아왔다.
숙소는 무지무지 좋았고, 호스트도 엄청나게 친절했다. 나 오늘 넘어져서 팔 아프다고 했더니 자기가 병원에 태워다 줄 수 있다고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이게 부킹닷컴 9.7점의 위엄이군. 내일 일어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웰컴 드링크로 와인 한잔을 가져다줬는데 곁들여 먹으라고 과일과 스낵을 같이 챙겨줬다. 더울 것 같다면서 추가 물도 가져다주고 B&B 구석구석을 다 소개해줬다. 친절해, 9.7.... 괜히 평점에 집착하는게 아니구만.
물샤워를 하고 수영장으로 뛰어들어갔는데, 4시반이 지나니 슬슬 그늘이 지고 바람이 분다. 쌀쌀한 듯 하여 1분만에 나와서 바로 샤워&빨래를 했다.
아까 B&B 호스트가 메시지로 알려준 레스토랑을 예약하겠냐고 메시지가 왔다. Si!! Per favore!
어차피 식당 여기 하나밖에 없다. 하튼 오픈시간 7시15분에 맞춰 테라스 자리를 예약해달라고 부탁했다.
아까 준 와인 한잔이 맛있어서 찾아보니 이 지방에서 유명한 프로세코라는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이다. 달지 않아서 더 내 맘에 든듯? 와인 1리터와 카펠리티로 만든 숩, 그리고 스테이크를 시켰다. 와인은 아까만큼 맛있고, 숩은 완전 만두국이다. 완전 조아!!
심지어 스테이크는 두꺼운 안심에다가,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미디엄 레어로 아주아쥬 부드럽고 맛있었다.
나의 철칙, 맛난 곳은 디저트를 주문한다! 웨이트리스에게 물어보니 설명이 어려운지 같이 안으로 들어가서 디저트 진열장을 보자고 한다. 피스타치오 티라미슈와 라떼마끼야 주세요~ 음, 굿. 야미!
다 먹고, 남은 와인을 마시고 있었더니, 리몬첼로와 갈색 아마로를 가져다 줬다. 후식주로 먹으니 독하게 취기가 오른다. 저녁만 되면 도지는 기침때문에 옆자리 노부부에게 번역기로 '죄송해요 감기에 걸렸어요.'를 보여주니 손사레를 치며 괜찮다고 한다.
테라스도 좋고 음식도 넘모 맛있는데, 숙소로 돌아가는길에 또 다시 다친 팔이 걱정됐다. 지금은 자전거를 타기에 너무 아프고 힘들다. 제발 뼈에 금이 간게 아니면 좋겠다.. 라면서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표를 검색해보는 내 맘을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