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6일(금)
[13일 차] Comacchio ~ Cervia 71km / 누적 거리 916km
8시에 조식을 준다고 해서 일어났는데, 간밤에 계속 비가 왔는지 땅이 아주 많이 젖어있다. 일단 차려진 아침 식사를 먹는다. 너무 오픈런을 해서 그런가, 지금 시간에는 나 혼자 먹고 있다. 크로아상, 씨리얼+요거트, 핫초코와 커피, 우유, 바나나까지 먹으니 배가 찢어진다.
주인아저씨는 바로 옆 건물에서 철물점을 하고 있다. 이 숙소는 후불이라 체크아웃을 하면서 숙소비+도시세를 같이 결제했다. 계산대가 안쪽에 있어서 내가 계속 자전거를 쳐다보고 불안해하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막 웃었다. 오늘 리미니까지 간다고 하니 100km 정도인 걸 알고 있다. 역시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맞는 것 같다.
마을 안쪽 도로는 온통 돌바닥이라 슬슬 걸어서 나간다. 그러면서 마을 풍경을 한 번 더 눈에 담기.
마을 앞의 다리를 건너 마을 남쪽의 경포호 같은 호수를 둘러 가려고 했다. 매끈하게 잘 달리는데 갑자기 비포장 도로가 나온다. 이런... 길을 잘못 들었다. 어제 지도를 제대로 안 봤더니만 이런 사태가...
다시 돌아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질러가려고 샛길로 들어서니 아스팔트 길이 누더기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 주저앉았다. 조심조심 타다가 나중에는 조금 걸었다. 도저히 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그냥 원래 길로 돌아갔으면 훨씬 빠를뻔했다.
겨우 SP 도로를 찾아 나와서 다시 달려본다. 날이 맑아져서 물에 비치는 하늘이 아주 예쁘다.
라벤나로 들어가기 위해 샛길로 꺾었더니 자전거 도로가 시작됐다. 그런데 쉼터에 사람들이 모여서 다들 사진을 찍고 있다.
플라밍고다!! Federica의 남편이 말했던 홍학 떼가 여기에 있다. 좀 멀긴 하지만 정말 많이 모여있다. 기분이 좋아졌다. 자전거에서 내려 한참을 바라봤다. 수천 마리는 아니지만 수백 마리는 족히 될 것 같다.
자전거 도로를 계속해서 따라 가는데 갑자기 길이 끝나더니 다리 없는 강물이 나와버렸다. 이게 뭣이여... 다행히 거기에는 전동으로 움직이는 배가 있어서 1유로를 내고 탑승했다. 오토바이는 2유로, 차는 3유로라고 나와있었다.
이제 라벤나 시내를 뚫고 지나가야 한다. 복잡한 도시는 차라리 관통하는 편이 낫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차도 빠르게 달릴 수 없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는 자전거 도로가 오히려 시내에 잘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중국식당을 발견했다. 50km 가까이 탔으니 밥을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들어갔다. 아시아 식당은 보통 테라스 자리가 없어서 자전거를 보관하는 게 꽤 불안한데, 이곳은 입구 풀들이 시야를 가려줘서 좋았다.
여기 중국인 아저씨 사장님은 영어를 거의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탈리아어로 주문해야 하는 웃기는 상황이 펼쳐졌다. 그래, 여기 이탈리아긴 하지. 중국식 해산물 밥을 시켰는데, 약간 오징어볶음 맛이 나는 덮밥이 철판에 맛깔스럽게 나왔다. 쌀밥이라 햄복하고, 맛까지 있어서 넘모 햄복하다. 힘내라, 대륙!
다 먹고 다시 출발하려니 비가 슬슬 온다. 많이 오는 게 아니면 일단은 간다. 라벤나를 나가는 길은 SS 도로와 구글이 안내하는(확인되지 않은) 도로가 있다. 어젯밤부터 고민했는데, 샛길을 가보기로 했다.
긴장의 연속 속에 비포장길의 입구에 도착했다. 다행히 여긴 큰 공원이었고, 사람들이 하도 걸어 다닌 건지 땅이 꽤 평평하게 다져져 있고 울창한 나무가 비를 거의 막아주었다. 비가 오니 땅이 더 단단해져서 자전거 타기에는 낫다. 살금살금 타고 가는데, 나무뿌리가 울퉁불퉁하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서 간다.
긴긴 비포장이 거의 끝날 무렵 그물잡이가 한창인 풍경을 보면서 진흙탕을 지나가다가 자전거는 엉망이 돼버렸다.
나뭇잎으로 진흙을 살살 닦아보지만 소용이 없다. 브레이크를 잡을 때마다 소리가 나서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마을이 나오자마자 카페로 들어가 음료수를 마셨다.
자전거를 살펴보는데 답이 안 나오고 신발도 엉망이 되었다. 결국 자전거가 걱정돼서 목표한 지점까지 못 가고, 근처 숙소를 예약해 버렸다. 해변이 시작되고 나서는 숙소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아졌는데, 여름 성수기가 지나서 그런가 파격 할인가가 종종 있다.
조식 포함 46유로인 호텔에 들어가서 쳌인을 했다. 아줌마 사장이 쿨시크의 끝판왕이라 미처 식당을 물어보지 못했다. 자전거를 방에 가져가서 보관해도 좋다고 해서 너무너무 좋았다.
먼저 자전거를 씻어본다. 시커먼 체인부터 물티슈로 닦아내고 자전거의 흙먼지와 진흙을 구석구석 씻기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시간이 은근이 늦어져서 바로 샤워&빨래를 했다. 가방에 튄 흙도 물로 씻어냈다.
호텔 앞 테라스에 앉아서 저녁 먹을 곳을 찾아보는데, 해변에 오니 식당이 너무 많아져서 선택하기가 힘들다. 간만에 트립어드바이저에서 검색하니 잘 나가는 몇 군데는 여름에만 장사하는지 다 문을 닫았다. 적당한 오스테리아를 찾아서 가보기로 했다.
식당으로 걸어가는 길에 일부러 해안에 나가서 모래사장을 맨발로 거닐어 본다. 생각보다 날씨가 추워서 바닷물에 몸 한 번 담궈보지 못했다. 해변은 전부 레스토랑과 펍에서 내다 놓은 비치체어로 그득하다. 서늘해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식당에 들어가니 친절한 직원들이 자리를 안내해 줬다. 오늘은 프로세코가 아닌 프라차코르타를 주문해 봤다. 그렇지만 와인은 잘 모르겠다. 이게 더 비싸니 좋지 않을까.. 호호^_^
참치 스테이크와 하얀 해산물 파스타를 골랐다. 참치야 뭐 아는 맛인데, 같이 나온 콥샐러드가 심하게 내 취향이다. 크루통, 토마토, 오이, 샐러리, 볶은 적양파를 아주 적당히 상콤하게 비벼냈다. 파스타 소스는 해산물로부터 자작한 국물을 뽑아내서 역시나 맛있었다. 같이 나온 치아바타로 국물을 싹싹 긁어먹으니 바지락 칼국수가 생각났다.
숙소로 돌아오는데, 가게에서는 이미 겨울 옷을 팔고 있다. 나만 옷 없네..
오늘 불금이라 그런가 사방에서 아주 그냥 쿵짝거린다. 이 사람들아 하나도 안 부러워. 난 매일매일이 휴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