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이탈리아 종단 자전거 여행 26일 차

by 존과 지니

25년 10월 13일(월)

[30일 차] Martina Franca ~ Monopoli 64km / 누적 거리 2,249km



세탁기가 있는 숙소를 우선순위로 선택했기 때문인지 오늘은 조식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어차피 바에서 먹을 수 있는 커피+빵 쿠폰을 주는 거라면 차라리 내가 양껏 사 먹는 게 낫다. 대신 커피머신과 토스트 비스킷이 간단하게 있었는데, 이걸 아침식사라고 우기지 않는 게 좋았다. 어제 식당에서 받은 포춘쿠키 두 개를 까서 함께 먹었다. 행운의 메시지는 장사하는 곳에서 주는 거라 당연히 좋은 말만 쓰여 있다.


준비를 하고 나와서 계단으로 자전거와 짐을 따로 내렸다. 계단이 워낙 좁고 가파르게 되어 있어서 자전거만 내리는 것도 신발이 미끄러워서 혼났다.


가방을 자전거에 동여매고 광장의 카페에 가서 라떼마끼야또와 크로아상 두 개를 먹었다. 6유로나 나오다니, 관광지 물가는 여윽시 비싸다.


해안으로 다시 나가기 위해 오스투니(Ostuni)로 가는 도중에도 트룰리가 계속해서 보였다. 오늘은 오스투니 구시가지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미 다녀와서 거기 언덕 경사가 대단히 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큰길로 빠져나오니 오스투니 전경이 아주 멋지게 보여서 잠시 서있었다. 그래, 이런 건 멀리서 봐야 이쁜 거다.


해안의 로자 마리나(Rosa Marina)까지는 거의 내리막 위주라 설렁설렁 가는데도 꽤 빨리 도착했다. 어차피 내 힘으로 다 올라갔던 곳에서 다시 내려오는 거라 너무 기뻐할 필요는 없다. 달리는 중 로드 아저씨들을 종종 마주쳤는데, 모두들 인사를 반갑게 해 주니 신이 난다.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면 내가 먼저 손을 흔들어 줄 여유도 생겼다. 고속도로 옆길로 달리다가 바닷가 마을을 만나니 이제 사람이 많아졌다.


며칠 만에 다시 바다를 만나니 괜히 반갑다. 적당한 카페에 앉아 라떼마끼야또, 크로아상, 오렌지 생과일 쥬스를 먹으며 오늘의 숙소를 한참이나 고민했다. 어차피 체크인 시간도 꽤 남았으니 한참을 눌러앉아있다가 떠났다.


바다로 나오니 맞바람이 느껴지지만 지난주의 강풍에 비하면 아주 보살이다. 그래도 날씨가 맑으니 다행이다. 모노폴리(Monopoli)에 진입할 때는 해안으로 에둘러서 들어가니 차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숙소에 도착했더니 호스트는 약속시간보다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1층 길가에 있는 숙소를 선호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나는 자전거 때문에 로드뷰를 보고서라도 1층에 있는 숙소를 고르는 편이다. 유럽의 건물은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작아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바로 체크인을 한 후, 자전거를 손쉽게 넣어두고 밖으로 나갔다.


중심가로 걸어가니 자연스럽게 성당을 시작으로 구시가지 골목이 나왔다. 성당 안에 들어갔더니 2층까지 대단히도 화려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나는 무교지만 이런 성당에 들어가면 작은 기도를 하고는 한다. 오늘은 술 안 마시고 왔어요..


발코니에 널어놓은 빨래와 꽃화분이 눈길을 끄는 구시가지 골목에 관광객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닌다. 나는 조금이라도 덜 까매지기 위해 매일 선크림으로 떡칠을 하고 있지만 까만 얼굴과 단벌의 삶이 한 달간 계속되고 있다.

구글 지도를 보다가 어느 젤라또 집의 파르페 사진을 보고는 헤매다가 어렵게 찾아갔는데, 사방이 다 공사 중이라 영업을 안 하는 듯했다. 바다 앞 젤라또 집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아이스크림을 찾아서 먹는 편은 아니라 처음으로 젤라또를 먹어보려고 했던 건데..


구시가지 골목 끝까지 걸어가니 바다가 나왔다. 다들 바다와 가까이 있는 바위 쪽으로 내려가길래 나도 계단으로 따라갔다. 원래는 쭉 이어지는 간단한 산책로인 것 같았는데, 아까 그 공사지점과 만나면서 이 길도 끊겼다. 사람들은 그저 널부러져서 일광욕하려고 내려왔던 것 같은데, 매일 자전거를 타는 나는 굳이 이 딱딱한 돌 위에 누워서 더 시커메지고 싶지 않다.


아까부터 배고픈데 지금은 식당이 문을 열 시간은 아니라 구시가지 골목에 있는 바에 갔다. 간단히 먹거리를 주문할 수 있어서 해산물 뽈뻬떼, 문어 샐러드, 리몬첼로 토닉, 리몬첼로 스프리츠를 먹었다. 고기가 아닌 해산물 뽈뻬떼는 처음 먹어보는 건데, 튀긴 참치볼인 것 같다. 뻑뻑한 것이 닭가슴살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꼭 맞다. 문어는 다리가 좀 작지만 역시나 부드럽다. 바깥 테라스에 앉았는데, 딱 내 자리에서만 대성당 종탑이 제대로 잘 보인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아까 가보지 않은 해안으로도 슬쩍 돌아본다. 이 마을은 대대적으로 하얀색 페인트칠을 했는지, 구질구질한 보통의 구시가지와는 다르게 아주 깔끔하게 군더더기 없이 이쁘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빠지지 않는 성벽도 있다.


숙소에 돌아와서 잠깐 낮잠을 자고 샤워를 하며 세탁기를 돌렸다. 건조도 되는 역대급 신품이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그냥 빨랫대에 널었다. 어차피 여행 중에는 손빨래를 해야 하는 운명이니 잘 마르는 옷만 가지고 와서 괜찮다.


내일이면 바리(Bari)로 들어가는데, 아직도 바리 숙소와 밀라노행 국내선 항공권을 예약하지 않았다. 이 게으른 녀석아.. 사실 일정은 거의 확정인데, 혹시 변수가 생길까 봐 미룬 것도 있다. 요 며칠 검색을 하긴 했는데 성에 차는 게 없기도 했다. 폰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니 세탁기가 다 돌아서 옷을 널어놓고 일단 나갔다.


구시가지로 다시 나가니 나처럼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호스트가 추천해 준 식당은 전부 로컬 인기장소인지 월요일인 오늘도 모두 만석이다. 느낌이 오는 적당한 곳을 골라 테라스에 앉았다. 저녁인데도 그닥 춥지 않아서 오랜만에 바깥에서 먹게 되었다. 라비올리와 모듬 해산물 구이를 주문했다. 오늘은 문어를 두 번이나 먹었더니 문어는 이제 그만 먹어도 될 것 같다. 마무리로 라떼마끼야또를 하나 주문했는데, 에스프레소만 있다고 해서 커피는 안 마셨다. 현금이 아직 좀 남아서 소진하려고 그걸로 계산했다.


소화를 시키기 위해 또다시 구시가지와 항구 근처를 걷는데, 갑자기 폰 인터넷이 안 된다. 휴대폰이 고장 나지 않도록 주의해서 다녔고, 바닥에 떨어뜨린 적도 없는데 이건 무슨 일이지? 바리-밀라노 국내선 티켓을 결제하려고 했는데!! 웃기게도 취리히에 도착한 지 딱 한 달이 돼서 로밍이 끝나버렸다. 타이밍이란..


일단 숙소로 돌아와서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로밍을 연장했다. 바리에서 밀라노로 가는 항공권을 예약해야 한다. 밀라노로 가는 비행기 편은 아침 새벽 아주 일찍이나 저녁에 있어서, 한국행 22시 비행기와 맞물리는 걸 찾기 힘들었다. 원래는 새벽 비행기를 타고 밀라노에 가서 공항 짐 보관소에 자전거를 맡겨두고 시내에 나갔다 오려는 일정이었는데, 그 오전 5시 반에 출발하는 표가 사라졌다. 새벽에 체크아웃하고 택시를 불러서 가야 하는 게 부담이라 결제를 안 하고 있었는데 다 팔렸나 보다. 아까 식당에서 검색했던 표를 어렵게 다시 찾았는데 그새 4만 원이나 올랐다. 그래도 시간대가 워낙 좋아서 예약을 했다. 아마 온라인 체크인 시 자전거 수하물 비용을 따로 지불해야 할 것 같다.


항공권을 예약하고 산책을 이어가기 위해 밖에 나오니 이제 동네가 조용해졌다. 길거리에 사람도 없고 적막해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바리에서 머물 숙소나 검색하는 것이 낫겠다. 아주 오래된 호텔을 리모델링해서 5월에 새로 오픈한 곳을 3박 예약했는데, 4성 같지 않은 4성 주제에 그놈의 별 좀 달았다고 비싸다. 그래도 마지막은 편안하게 지내고 싶었다. 이제 바리에 가서 자전거 포장 박스만 구하면 된다. 그리고 내일 바리의 한식당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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