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의 이탈리아 종단 자전거 여행 25일 차

by 존과 지니

2025년 10월 12일(일)

[29일 차] Matera ~ Martina Franca 83km / 누적 거리 2,185km



어젯밤 자기 전에 누워서 폰을 보는데, 마테라(Matera)에 한식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야 말았다. 흙흙..ㅠ 하지만 나는 오늘 호텔 조식을 먹는 날이니 지난 일은 잊고 거대한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여기는 특히 빵 종류가 엄청나게 다양했는데, 크로아상만 먹는 나에게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오트밀 씨리얼을 무가당 요거트에 비벼먹고, 라떼마끼야또를 내려서 종류별 크로아상과 먹었다. 계란말이, 햄&치즈, 모짜렐라 치즈 덩어리와 과일도 먹었다. 더 먹을 수 있는데 입맛에 맞는 게 이것뿐이네.. 그래놓고 배는 이미 찢어지기 직전이다..=_=


언덕 위의 도시 마테라(Matera)에서 내리막길을 타고 오늘의 라이딩을 시작했다.


SS 도로는 더 이상 타고 싶지 않기 때문에 바로 샛길을 찾아서 탔는데, 이런, 비포장이다. 살살 타고 갈 만도 한데 간혹 큰 돌멩이도 있어서 그냥 끌고 걸어갔다. 팔이 멀쩡했다면 아마 타고 갔을 듯하다. 말을 타는 아저씨 두 명과 MTB 아재 한 명이 지나갔다. 진작에 가을이 와버린 풀리아에는 추수가 끝난 누런 허허벌판이 잔뜩이다. 해가 떠서 날이 맑으니 등짝이 따땃하고 좋다.


오늘은 페페가 노시(Noci)에 사는 여사친과 같이 자전거를 타는데, 동선이 겹치면 같이 타거나 점심을 먹자고 연락을 했다. 경로는 일부 겹치는데, 시간이 안 맞을 것 같다. 나는 가야 할 길이 있으니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게 부담스러워서 기약 없는 다음을 약속했다. 하룻밤 무료로 머물 수 있는 곳도 알려줬는데 내가 가야 할 방향과는 맞지 않아서 들르지 못했다.


지오이야(Gioia del Colle)로 가는 길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일부러 어제와 다른 길을 가고 있는데, 오늘 이 길로 가려고 아껴두길 잘했다. 중간에 지오이야로 가는 자전거 경로 표지판이 나와서 들어갔는데, 길이 너무 좁고 노면이 별로라 한 100m 가다가 다시 나와서 SP 도로를 타고 갔다. 2,000 km 넘게 자전거를 탔더니 슬슬 피로가 쌓이고 기운이 나지 않아서 오늘은 편하게 달리고 싶었다.


어제의 굴다리를 다시 건너 오늘까지 네 번째 지오이야에 왔다. 풀리아에 있는 이 마을은 나에게 이제 마음의 고향이 된 것 같다. 시내는 복잡하니 통과하고 노시(Noci)로 향하는 방향에 있는 평점이 좋은 카페로 갔다. 아, 일요일이라 그런가 사람이 너무 많다. 음료수나 하나 먹으려고 한 건데, 언제 나올지 모르는 이곳에서 주문할 수는 없다. 고민하다가 화장실만 들렀다 바로 출발했다.


노시(Noci)로 가는 길은 왠지 샛길이 나을 것 같았지만 초반부 길은 좀 안 좋았다. 모래가 많이 깔린 구간들이 있어서 잔뜩 긴장했다. 모래바닥에 미끄러져서 넘어졌던지라 살살 달려서 노시의 시내로 들어갔다.


사실 시내까지는 안 가도 되는데 오늘 기분도 애매하고 이미 60 km나 밥을 먹지 못한 채로 달렸으니 제대로 된 식당에 가고 싶었다. 봐둔 식당을 두어 군데 갔는데 예약을 안 하면 자리가 없다고 했다. 이놈의 주말, 진짜.. 다음 주 주말은 나도 한국에서 밥 먹을 거다!


외곽의 일식당은 사람이 없겠지 싶어서 갔는데, 웬걸.. 사람이 무진장 많다. 직원은 나를 받을지 말지 한참 고민하다가 자리를 안내해 줬다. 여기는 태블릿으로 주문을 해야 하는데, 알고 보니 22.9유로에 점심메뉴를 무제한으로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볶음밥, 치킨까스, 오징어튀김, 연어회, 참치회, 연어샐러드, 중국식 새우요리와 매운 소고기 요리, 미소장국 등을 먹었다. 미소는 뚜껑이 있는 사기그릇에 뜨듯하게 그득 나오는데, 세 번이나 리필해 먹어서 흡족했다. 다른 곳에서는 이것도 하나에 3유로는 내야 먹을 수 있다.

이곳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인데, 사장 가족이랑 나 빼고 이 넓은 식당에 모두 서양 사람들뿐이다. 야끼소바에 간장을 추가로 팍팍 뿌리는 아저씨와 롤만 잔뜩 시켜 먹는 커플이 신기했다.


오늘의 목적지인 마르티나 프랑카(Martina Franca)로 가는 길에는 트룰리가 쫌쫌따리 보이는데, 다시 알베로벨로(Alberobello)와 가까워져서 그런 것 같다. 내륙에 들어오고 나서는 계속 업다운을 해서 그런지 왼쪽 허벅지와 종아리에 멍이 다시 올라오고 있다.

마르티나 프랑카(Martina Franca)로 들어가는 입구의 메인도로는 공사로 완전히 막혔다. 옆의 오르막으로 낑낑대며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어차피 도시가 언덕에 있어서 언젠가는 올라가야 할 높이다.


숙소 주소가 애매해서 근처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호스트에게 전화를 했더니 오토바이를 타고 금방 왔다. 숙소가 3층에 있어서 번지를 제대로 못 찾았던 것 같다. 아저씨는 태권도 선수 시절에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갔던 사진을 마구 자랑했다. 심지어 키링도 현대 로고.. 건장한 호스트가 고맙게도 내 자전거를 3층까지 손수 날라줬다. 계단이 가파른데 이걸 내일은 내가 내려가야 하니 벌써부터 걱정이다.


근처에 있는 성당 앞 광장으로 나가서 얼른 생맥주를 한 잔 마시고 돌아왔다. 그리고 숙소에 있는 세탁기에 빨래를 돌려놓고 샤워를 했다. 식당을 몇 개 찾다 보니 세탁기가 다 돌아서 옷을 널고 밖으로 다시 나섰다.


해가 저물어가니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중심가를 둘러보며 아까 찾아봤던 트립어드바이저 1위 맛집으로 슬슬 걸어갔다. 골목에 있는 카페·식당 테라스의 꽃장식이 야경과 어우러져서 나를 유혹하지만 나는 나의 갈 길을 간다.


1위 맛집이라 예약이 꽉 차 있을 줄 알았는데, 가격이 좀 나가서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없다. 오히려 좋아~ 랍스터가 들어간 리조또와 오늘의 생선 중 농어를 주문했다. 리조또에는 랍스터가 넉넉하게 들어있었고, 생선은 야들야들하게 잘 구워져 나왔다. 직원들은 유쾌한 농담을 건네며 친절하게 생선 가시를 발라줬다. 뽈살을 먹기 위해서 항상 머리를 남겨달라고 말하는데, 유럽의 생선은 왠지 뽈살이 토실하지가 않다. 여기에 물, 와인 한 잔, 샐러드까지 주문했더니 거의 100유로가 나왔다. 이제까지는 거의 카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남은 현금을 조금 소진했다.

오랜만에 유럽을 오니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카드결제가 돼서 계속 놀라움의 연속이다. 코로나 이후로 유럽도 변화한 건가.. 심지어 컨택리스(contactless) 카드가 주를 이루는데, 내가 가진 트래블 카드도 컨택리스가 가능해서 이질감이 없었다.


커피는 다른 곳에서 마시고 싶어서 식당에서 디저트를 먹지는 않았다. 일단은 배부르니 동네 구경을 하기 위해 길거리를 배회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이 동네는 특이하게 스프리츠 베네치아를 집집마다 팔고 있다. 5유로에 파는 바에 들어가서 한 잔 마셔봤다. 음, 아페롤과 깜빠리를 섞어놓은 듯한 맛이군.. 그러고 보니 난 베네치아에 가본 적도 없는데 말이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바실리카 성당이 개방되어 있길래 안에 들어가 봤다.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짧은 기도를 했다. 성스러운 장소에서는 항상 취해있는 내 기도를 들어주실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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