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여성이란 이런 거지! ∥ 키다리 아저씨(Daddy

1장 둘. 영어 편

by 스쿠피

주디의 꿈은 작가다. 두 번 다시 존 그리엄 보육원으로 다시는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키다리 아저씨의 후원금이 헛되지 않도록,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책을 읽는다. 그녀에게는 작가가 되어야만 하는, 그래서 키다리 아저씨에게 당당하게 그 모습을 내보여야 하는 의무감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갓 대학생이 된 주디는 기숙사에서 자신만 『작은 아씨들』을 읽지 못했다는 사실에 몰래 용돈으로 사서 읽더니, 급기야 편지 곳곳에 엄청난 문학 작품 이야기가 쏟아진다. 햄릿,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스티븐슨, 요절한 러시아 여류작가 마리 바슈키르체프에 이르기까지. 어느 날은 '작가들 특유의 이야기 원천은 뭘까' 하는 생각에 이르며 이런 편지글을 키다리 아저씨게 보내기도 한다.


#1

“Everybody likes a few surprises; it’s a perfectly natural human craving. But I never had one until Mrs. Lipett called me to the office to tell me that Mr. John Smith was going to send me to college.

...

You know, Daddy, I think that the most necessary quality for any person to have is imagination. It makes people able to put themselves in other people’s places. It makes them kind and sympathetic and understanding. It ought to be cultivated in children.“


우리 모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 그 추억의 영양가를 따지기 전에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당신은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 편인가. 다른 건 다 제쳐두더라도 그 시절을 겪어 본 어른들이 ‘절대 사수’해야 할 바로 그 항목은? 주디는 ”상상력“이라고 단언했다. 보육원에서 제대로 학대받아 본 자의 소신성 발언이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며 ‘뭔가 특별한 일 없을까’하고 상상하는 힘. 그 상상력이야말로 진짜 삶에 큰 힘이 되는 거라고.


#1

“사람은 누구나 뜻밖의 일을 기대하죠. 그게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리펫 원장님이 저를 불러 존 스미스 씨가 저를 대학까지 보내줄 거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저는 그런 일을 겪어 본 적이 없어요.

...

근데요, 아저씨. 저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상상력 아닐까 해요. 그래야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래야 친절해질 수 있고, 동정심도 느낄 수 있고, 이해심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건 어린 시절부터 길러줘야 해요.”


모르긴 몰라도 이즈음부터 키다리 아저씨는 주디에게 단단히 매료되지 않았을까. 작품 후반부에 나오듯, 자신의 엄격하고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가 숨막히게 괴로워서, 어린 시절 그렇게 록 윌로우 농장 여기저기를 뛰어놀았던 사람이니까.


편지 횟수가 거듭할수록 내용도 깊어지면서 사건도 많다. 주디가 샐리 캠프에 가는 걸 잔뜩 기대하면서 마음이 부풀어 올랐을 때, 무슨 질투심인지(주디의 절친 ‘샐리’의 오빠->지미가 주디에게 관심을 보이긴 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비서를 통해 ‘이번 방학은 록 윌로우 농장에서 보내시오’라는 단문의 편지를 통보하기도 하고, 단단히 삐친 주디가 ‘아이고, 아저씨. 진짜 너무하시네요. 나 같으면 이 넓은 세상 많이 경험해 보고 쑥쑥 자라거라 하겠구만. 제 입장이 좀 되어보라니까요!’ 하기도 한다. 게다가, 가면 갈수록 주디가 예뻐지는 느낌, 생각의 폭과 넓이까지 한층 성숙하며 필력이 향상하는 게 독자인 내게도 다 보였다.


#2

“It’s true, you know. The world is full of happiness, and plenty to go round, If you are only willing to take the kind that comes your way. The whole secret is in being PLIABLE.“

"맞아요, 아저씨.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해요. 가 볼 곳도 많고요. 자신에게 찾아오는 길을 잘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죠. 비결은, 유연한 사고예요."


샐리 캠프에 못 가서 단단히 화가 난 주디. 성난 마음 추스르며 꾸역꾸역 편지 써대고 있는데, 록 윌로우 농장에 저비스 도련님이 직접 출두하시겠단다. 갑자기? 농장 모든 사람과 주디는 열심히 대청소했고, 둘은 꿈 같은 캠핑놀이, 낚시놀이, 수다 데이트를 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중이다. 스티븐슨의 시 “세상은 수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으니, 모든 사람은 왕처럼 행복해야 한다”라는 부분을 편지 머리글에 옮겨 쓰며, 유연한 사고를 강조하는 주디. 저비스와 함께 마신 블랙커피 때문에 밤 열한 시에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 쓰는 저 마음. 주디의 마음에 누군가가 자리 잡으려는 몽글몽글함이 너무 사랑스럽다.


#3

“It isn’t the great big pleasure that count the most; it’s making a great deal out of the little ones- I’ve discovered the true secret of happiness, Daddy, and that is to live in the now. Not to be for ever regretting the past, or anticipating the future; but to get the most that you can out of this very instant.”


#3

“정작 중요한 건 대단한 즐거움에서 찾는 게 아니에요. 많고 많은 작은 것들에서 나오는 거였어요. 전 행복해지는 진짜 비결을 알아냈어요, 아저씨. 그리고 그건요, 바로 현재를 사는 거예요. 과거에 얽매어 평생 후회하거나, 미래에 기대를 거는 게 아니라요,

지금, 이 순간에서 최대한 누리는 거예요.”


웬일이야. 평소 부러운 배경을 가지긴 했지만, 참 재수 없다고 느끼던 친구가 자기 집에 오겠냐고 초대한다. 미운 정이 들었나. 주디에겐 줄리아가 그렇다. 그러나 모처럼의 그 호의에도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은 생각도 다르고, 행동도 다른 법. ‘단 한마디도 진심으로 대화할 수 없었다’고 느낀 줄리아의 집안 분위기에 질려 버린 주디는, 역시 캠퍼스 생활이 최고라며, ‘일상의 소중함’이라는 엄청난 진리를 키다리 아저씨게 전한다.


대학 생활 처음부터 주디가 가장 싫어했던 줄리아. 그랬던 주디가 내적으로 많이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줄리아 집안의 불편한 분위기를 정확히 짚어내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장소와 의미 있는 것들을 되새겨가며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라니. 아니나 다를까,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 지점이 정확해서인지 손목이 나갈 정도로(writer’s cramp) 집필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일전에 출판사에서 냉정한 평가와 함께 되돌아온 초고를 ‘아이를 화장하는 기분으로 태웠다’(I felt as though I had cremated my only child! )고 표현했으니 재집필하는 기분이 오죽하겠는가.


#4

“When I first came to college I felt quite resentful because I’d been robbed or the normal kind of childhood that the other girls had had; but now, I don’t feel that way in the least. I regard it as a very unusual adventure. It gives me a sort of vantage point from which to stand aside and look at life. Emerging full grown, I get a perspective on the world, that other people who have been brought up in the thick of things entirely lack.”


#4

“처음 대학에 왔을 때, 좀 분하더라고요. 왜냐하면, 다른 아이들이 누린 정상적인 어린 시절이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하나도 안 들어요. 고아원 생활이 특별한 모험처럼 여겨지거든요. 그 경험 덕분에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어른이 된 지금, 전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란 이들은 절대 모르는, 세상에 대한 안목이 생겼답니다.”


아는 자가 위너다.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고 감사할 줄 아는 것. 키다리 아저씨 입장에서는 받지 말라는 장학금도 다 받아 버리고, 보내준다는 유럽 여행도 마다하고, 미친 듯이 글만 쓰는 주디 아닌가. '얘, 진짜 베스트셀러 작가 되어서 후원금 다 갚고 훨훨 날아갈 기세네?'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훌쩍 커버린 주디는 정중하게, 이러지 말라고, 자신에게는 이런 축복을 받을 만한 복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원서에서는 ‘세상으로부터 받을 빚이 하나도 없다’-->it owes me nothing이라고 표현하는 게 신선했다) 자신이 부려야 할 욕심과 부리지 말아야 할 욕심을 정확히 알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런 식으로 ‘빌려’ 쓰다가는 언젠가 세상에 제대로 뱉어야 하는 순간도 오지 않겠냐, 하면서 거절하는 주디의 모습은 키다리 아저씨를 더욱 애타게 했으리라.


힘겹게 성장하면서도 내면이 꽉 찬 주디의 행보가 잭팟을 터뜨리는 부분은 어디일까. 주디가 드디어 자신의 책을 내고 키다리 아저씨에게 후원금 1,000달러를 먼저 갚겠다 했을 때? 아니면 키다리 아저씨가 바로 부잣집 저비스 도련님인 걸 알았을 때?


신데렐라 이야기의 전형이라며 비판할 생각은 말자. 주디는 멍청하고 예쁘기만 한 여자가 아니다. 키다리 아저씨의 치사하고 고약한 기질은 이미 편지글에서 엄청나게 싸워봐서 잘 안다. 인생 최대의 자존감 배팅에서 그녀는 자신을 지켰다. 후원금을 갚을 만큼 능력 있게 성장했고, 사랑을 가꾸었다. 사랑의 현실을 직시했고, 선택했다. 100년 전의 주디는 지금 살아도 손색없다.



“주디에게.

주디야, 네가 보육원 원장이 되려던 꿈, 작가가 되겠다는 꿈,

그게 모두 진 웹스터 작가의 인생과 겹쳐 있다는 걸 알아.

네가 작품 속에서 보여준 모습을 잊지 않을게.

10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너를 통해 진 웹스터를 볼 거야.

부디 행복하게 지내렴. ”


“Dear Judy.

Judy, I know that your dream of becoming the director of an orphanage—

and your dream of becoming a writer—echo Jean Webster’s own life.

I won’t forget the self you revealed to us within those pages.

Though more than a century has passed,

we will still see Jean Webster through you.

May you be happy, always.”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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