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하나. 영어편
내 안의 주디 ∥ 키다리 아저씨(Daddy long-legs) ①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소설이다. 이 소설은 실제로 진 웹스터가 ‘레이디스 홈 저널’에 편지글 형식으로 연재하다가 단행본 출간 직후, 단박에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다. 1912년 출판작.
한국이 1910년 한일합방한 지 2년째 되던 해였다.
고아원 출신인 제루샤 애벗(고아원 원장 리펫이 묘비명에서 혹은 전화번호부 첫 장에서 아무렇게나 따와서 지은 이름이라며 불쾌해한다.)은 작품 속에서 ‘주디’라는 애칭(애칭도 스스로 지은 것이다)으로 불러 달라며,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쓰기를 시작한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들은 적도 없는 후원자에게. 조건은 한 달에 한 번 용돈을 줄 테니 자신의 대학 생활상을 편지로 쓸 것, ‘존 스미스’라고만 알고 있으면 되니, 답장은 기대하지 말 것. 이렇게 후원하는 이유는, 주디가 수업 시간에 쓴 수필 ‘우울한 수요일’이 매우 흥미로웠기 때문이며, 작가의 습작 훈련으로 편지쓰기만큼 좋은 게 없다는 판단하에 내거는 조건이었다.
주디에게 작가 기질이 있다는 걸 알아본 후원자. 주디 자신도 몰랐던 재능의 씨앗 ‘가능성’. 이사회 모임에서 서둘러 나가는 후원자의 뒷모습만 기억하는 주디는, 존 스미스고 뭐고 간에, 뒷모습이 만들어낸 긴 그림자를 따서 “Dear daddy long legs”로 부르며 편지를 써 가기 시작한다.
글쓰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편지 쓰기라는 숙제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를. 그러나 이 거미 다리 꺽다리 아저씨는 사람 제대로 골랐다. 주디는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봇물 터진 듯, 사나흘에 한 번씩 써대기 시작한다. 어차피 편지 쓸 사람도 없는데 잘됐다, 재미없으면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세요, 하면서. 급기야 도대체 아저씨는 어떻게 생겼냐며, 키 크고, 돈 많고, 여자아이 싫어한다는 건 전해 들어서 알겠는데, 외모가 궁금해졌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렇다.
#1
You never answered my question and it was very important.
ARE YOU BALD?
...
I can’t decide whether you have white hair or black hair or sort of sprinkly grey hair or maybe none at all
...
But the problem is, shall I add some hair?
대한민국 중년 남성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생각이냐고. 보면 볼수록 명문장인데, 키다리 아저씨 답장이 없으니 이렇게 적는다. “아저씨는 절대 제 질문에 대답을 안 하시네요. 제겐 중요한 문제인데요. 아저씨....대머리에요? 아니....저기....제가 지금 아저씨 생김새가 궁금해서 그림 좀 그려보고 있걸랑요? 근데 흰 머리칼인지, 검은 머리칼인지, 희끗한 회색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서요. 문제는, 머리칼 좀 추가해 드릴까요?”
아, 진짜. 천하의 저비스 도련님도 후원자로서 순간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텐데. 이 나이에 원서 읽으면서 실실 웃음이 난다. 그렇다고 주디가 건방진 소리만 해대는 아이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고아원에서 보육 일로 업무 과중에 시달려 봤고, 어렸을 때 배고파서 쿠키 좀 먹은 걸 들켜서 개처럼 묶인 채 감금 생활도 견뎌낸 슬픈 기억이 있다. 갑자기 승천해 버린 대학 기숙사 환경에 황홀해하면서도 여느 여대생과는 결핍의 공백이 크기에 학업에도 맹추격전이 절박한 상황이다.
#2
I have to, you know,
becauses there are eighteen blank years behind me.
You wouldn’t believe, Daddy, what an abyss of ignorance my mind is;
심연
I am realizing the depths myself.
The things that most girls with a properly assorted family and a home and friends and a library know by absorption,
I have never heard of.
아무리 내일 아침까지 제출해야 할 과제가 많아도 밤에는 책을 읽겠다. 나만의 독서 시간을 확보하겠다. 주디는 담담하게 고백한다. “아저씨는 모르실 거예요. 제 뒤에 18년의 무지의 공백이 얼마나 깊은지를요. 저는 지금 스스로 그 깊이를 절감하는 중입니다. 다른 대부분 여자아이는 가족과 가정에서, 친구와 도서관에서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알게 된 모든 것들을, 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이 뼈 때리는 멘트 앞에서 왜 나까지 울컥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한국에서 자란 수험생이라면 나보다 박식하고 교양 있고, 집안 환경이 멋진 또래 친구 앞에서 주눅 들어 본 경험, 다들 있지 않을까. 쉽게 말해, 고등학교 졸업할 나이까지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는 받아 본 적 없는 평범한 아이가 명문대학에 운 좋게 진학했을 때, 마냥 기쁘기만 할까. 기꺼이 배울 열의가 흘러넘칠지언정, 실제로 노력해서 그 친구들 실력까지 따라잡을 수 있을(catch up with)지는 또 다른 문제다. 주디는 고아원 출신임을 굳이 친구들에게 밝히지 않았다. 약점 잡힐 패를 내보이지 않으면서 대학 생활에 진심으로 충실했다. (여기서 동정이나 자선을 ‘이용’하는 캐릭터와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후반부에는 모든 후원금을 되갚아 드리겠다는 당찬 멘트도 압권이다!) 과락한 과목도 있었지만, 편법을 쓰지 않았고, 재시를 택하여 제대로 이수한다. 가정 환경이 배경이 되어 수월하게 학점 이수하는 친구들도 만나지만, 키다리 아저씨를 만난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친구들의 할머니나 가족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부러워하며 키다리 아저씨에게 ‘대리 삼촌’이나 ‘대리 할머니’가 되어 친구들과의 대화에 낄 수 있었으면 하는 하소연까지 한다. 슬프면서도 지나치게 솔직해서 가슴이 아려오는 감정선이다.
#3
Thank you, Daddy, a thousand times.
Your flowers make the first real, true present
I ever received in my life.
If you want to know what a baby I am I lay down and cried
because I was so happy.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서러움’이 어떤 건지 이해할 것이다. 주디가 그랬다. 고아였지만 보기 드물게 후원을 받아 대학 생활이라는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를 헛되이 쓰지 않기 위해 밤마다 얼마나 ‘열공’을 해왔던가. 그런 주디도 무리를 했는지 끙끙 앓는 때가 있다.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도 몰랐던 주디. 키다리 아저씨에게 못할 말 제대로 갈겨 적어 보내 놓고서는, 급 현타가 왔는지 용서해 달라며 ‘I am a BEAST(나는 짐승이에요!-->‘내가 미쳤었나 봐요’ 정도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로 시작하는 사과 편지를 쓴다. 고아원에서 자랐으니 교양 없이 한 번씩 못된 성질이 튀어나오는 걸 어쩌겠냐, 내가 지금 병원인데 순간 정신이 나가서 그런 것이려니 하고 이해해달라는.
이튿날, 간호사를 통해 전해 받은 길고 흰 상자. 그 속엔 핑크빛 장미가 한가득 들어 있었고, 개성 있는 필체로 정중한 내용의 카드도 동봉되어 있었다. 꺅! 키다리 아저씨 뭐야! 다 지켜보고 있었잖아. 다 알고 있었잖아! …주디는 북받친 서러움이, 지독한 외로움이, 먹먹한 감동으로 변하는 기적을 경험한다.
“아저씨, 진짜 감동했어요.
그 꽃은 제 인생에서 처음 받아 본, 찐 선물이었어요.
제가 얼마나 아기 같았는지 아세요? 너무 기뻐서 침대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니깐요.”
잘 생각해 보자.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사실은 키다리 아저씨 있지 않나. 내 존재 자체를 쭈욱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 그래서 주디가 저렇게까지 기뻐서 울며 감동하는 장면이 왠지 ‘데자뷰’같다는 느낌. 그렇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모두에게도 주디와 같은 마음이 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