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셋. 영어편
‘지적 생활이라고? 그런 게 따로 있기는 한 걸까.’
한 세기를 훌쩍 거슬러 지적 생활이라는 것에 대해 입체적인 시각으로 조목조목 분석한 책을 발견했다. 게다가 철저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꾹꾹 눌러 담아 전수하겠다는 필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저자는 필립 길버트 해머튼. 시인이 되고자 했으나 전업 화가로도 활동했고, 이런저런 산문집으로 더 유명해진 듯하다.
제목이 생소했다. 무슨 이런 제목의 책도 다 있나 싶었는데, (하긴 요네하라 마리의 ‘대단한 책’,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도 처음에 얼마나 신기해했던가.) 읽으면서 점점 책장 넘기던 손길을 멈추고, 밑줄 긋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지적 활동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개념과 실천적인 방법들이 풍요로운 시각으로 실려 있었다. 오히려 웬만한 자기 계발서보다 이 책 한 권이면 족하겠는걸. 특히나 지적 생활인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인간으로서 지성의 사명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행복을 이해해야 하는지 설파하는 부분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작가의 글은 진심이고, 진짜이구나.
#1
“So that, however circumstances may help us or hinder us, the intellectual life is always a contest or a discipline, and the art or skill of living intellectually does
not so much consist in surrounding ourselves with what is reputed to be advantageous as in compelling every circumstance and condition of our lives to yield us some tribute of intellectual benefit and force.
...
Intellectual living is not so much an accomplishment as a state or condition of the mind in which it seeks earnestly for the highest and purest truth.”
*not so much A as B: A라기보다는 B
“그러므로 상황이 우리를 돕든 방해하든,
지적 생활은 언제나 투쟁이거나 훈련이며,
지적으로 살아가는 기술이란
단지 유리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로 자신을 둘러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조건과 상황으로부터
지적인 이익과 에너지를 끌어내도록 강제하는 데 있다
...
지적인 삶이란 어떤 업적이라기보다는,
가장 고귀하고 순수한 진리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마음의 상태나 태도이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우리가 금수저로 태어났든 아니든, 지적 생활을 못하는 이유를 환경 탓이라고 치부할 생각은 마라. 부유해도 너무 좋은 자극에 익숙해져 제대로 된 지식을 체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오히려 가난할수록 의지할 것이 그것(지적 활동)밖에 없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체득하게 된다. 그러니, 의지의 문제이고, 훈련의 문제이다. 나아가 네 앞에 놓인 모든 환경적 요소를 압도하면서까지 진리를 추구하려는 마음 상태와 삶의 태도 문제다. 난들 부유한 자가 지적 생활하기 좋은 환경에서 갖가지 유리한 이득을 취하고 산다는것을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그들을 위해 쓰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지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썼다. 그러니, 같이 지적으로 살아보자.
1873년 작이니, 흡사 조선 말기에 산전수전 겪은 선비가 삶에 찌든 무지한 서민들에게 ‘당신들도 진리를 추구할 수 있어’라고 어필하는 격이다. 이러니 내가 어찌 그의 필력에 반하지 않겠는가.
훌륭한 서문을 필두로, 그는 차근차근 편지글 형식으로 지적 생활을 위한 필수 요건에 관해 설명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책 읽기가 적성에 맞지 않는데도 지적 생활을 해 보겠다는 허영으로 책과 드잡이질하는 건 시간 낭비라는 말, 독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몰입감이 중요한데 이것은 시간의 질과도 연관되니 반드시 두어 시간 시간을 확보하여 ‘책 속으로’ 제대로 들어갈 태도를 갖추라는 말, 글쓰기를 가장 중요시한다면 글쓰기만큼이나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취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기초체력을 위한 운동, 산책, 혹은 정원 가꾸기, 그림 등)이었다.
#2
“The loss intellectually is greater than any one
who had not suffered from it could imagine.”
“지적 손실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나만 유별난 것은 아닐 것이다. 한참 몰입해서 읽고 있는 순간, 마치 책 속 문장을 하나하나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생생해서 숨이 멎을 듯한 장면에서였다. 남편이 나를 찾고, 아이들이 나를 부르고, 이런저런 메시지와 전화벨에 독서의 맥이 끊긴 게 어디 한두 번인가. 그럴 때마다 다짐하곤 했다. ‘혼자 있을 공간’이 필요하다고. 중요한 순간에는 다급하게 책장을 넘길 게 아니라, 천천히, 때로는 일부러 생각하느라 멈추기도 한다. 힘겹게 터득한 시간의 ‘질’을 100년 넘은 그의 글로 확인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3
“We need this faith in exercise—this firm conviction of its necessity—the sort of conviction that makes a man go out in all weathers, and leave the most urgent engagements in order to be alone with a book.”
“우리는 믿음을 실천할 줄 알아야 한다. -
(꼭 필요한, 확실한 믿음 말이다)
그것은 어떤 궂은 날씨에도 나가서,
가장 긴급한 약속조차 뒤로한 채,
책과 단둘이 있을 수 있도록 만드는 확신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독서를 실천한다는 것은 단순한 일상을 넘어선다. 내 내면에서 불피운 확실한 믿음에서 나온 행동이므로, 이것이야말로 내 지적 생활의 출발이자 원동력으로 작동한다. 내 마음의 상태, 삶의 태도가 하나로 통합하는 순간이다.
#4
“Those men may be truly esteemed happy and fortunate who can say to themselves in the evening of their days— ‘I had so prepared myself for every successive enterprise, that when the time came for it to be carried into execution my training ensured success.”
“노후에
‘나는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훈련이 나의 성공을 보장했다’
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행복하고 복된 사람이라 볼 수 있다”
길버트는 책 전체에서 일관성 있게 호소한다. 지적 생활이 꾸준한 내적 신념을 실천하는 시간이어야 한다고. 지적 생활인으로서 단련이 되면, 자연스럽게 자긍심과 겸손함이 배어나는 삶이 되어 있을 것이고, 바로 이것이 인간으로서 지성의 사명을 따라야 하는 이유이자 이 과정에서 얻게 되는 꽃, 행복과도 맞닿아 있는 거라고 말이다.
철학이 위대한 건 그들이 살아낸 인생 때문이라는 그의 말이 마음에 든다.
좋은 책을 꾸준히 읽기 위해 운동을 한다. 생각을 잘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쓴다. 좋은 생각을 잘 실천하기 위해 오늘의 소망을 품는다.
“Have faith in the value of intellectual labour.”
"지적 노동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가져라."
–<The Intellectual Life>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