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음이 불렀던 사람(일요일)
"위급상황이라 24시간 간병인이 필요한데 누가 하실 거죠?"
응급실 직원이 언니에게 다가와 물었다.
'카톡!'
작은언니가 막 도착했다는 알림이었다. 갑자기 하루 종일 굶주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옆에 있는 큰언니에게 나는 말했다.
"언니야. 오늘은 작은 언니한테 맡기자. 우리는 집에 가서 쉬었다가 다시 번갈아 오면 돼. "
큰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언니는 꼼꼼하게 엄마 상태를 파악하고 알았다고 했다. 돼지국밥을 무슨 맛으로 먹었는지 기억이 없다. 오늘, 그러니까 늦은 아침 마트에서 장 본 순간부터 엄마 입원 수속을 끝내기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건 확실했다.
집에 도착해 자리에 누웠더니 오후11시즘. 큰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간병날짜 조율 문제다. 통화를 끝내고 챗 gpt에게 일주일치 간병당번표를 작성해 달라고 했다. 꽤 쓸 만하다. 4남매 단톡방에 공유하고 억지 잠을 청했다.
'감정을 먼저 다스리고 움직이면 덜 불안할 거야.'
이튿날 새벽, 다이어리를 펼치고 떠오르는 불안을 적었다. 내가 해야 하는 것과 최소한만 해도 되는 것, 타인에게 맡겨도 되는 것, 당장 급하지 않지만 염두에 둘 것. 두서없이 문제들이 둥둥 떠올랐다. 가만히 훑어봤다. 내게는 언니가 둘이나 있고, 남동생도 있다. 천만다행인 것이 내가 간병휴직 중 아니던가. 할 수 있는 만큼 움직일 수 있는 상황에 우선 감사하자. 잠시 눈을 감았다.
'이건 충격이 아닌 경험이다. 불안은 감정이고, 구조화한 행동은 감정을 물러서게 한다. 하나씩 눈앞에 놓인 것에 집중하자.'
간밤에 소상하게 엄마 증상을 기록한 카톡이 계속 올라온다. 작은언니가 꼬박 밤을 새운 모양이다.
의사 말이, 엄마 뇌경색의 직접적 원인인 부정맥이 심한 상태라더라,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뇌경색으로 막힌 혈관이 하루 사이에 뚫려버려 도넛처럼 가운데 동그랗게 피가 도는 모양이란다. 필요하면 소변줄을 하고 이뇨량 확인 및 당뇨체크, 심전도체크, 뇌인지기억력 추이를 함께 보잔다,라는 내용이었다.
당장 보호자가 작은 언니이니 의견을 말해야 했다. 소변줄을 달게 될 경우 유의사항, 의사와 간호사 간 미세하게 상이한 조언들, 퇴원 전에 해 두어야 할 것들이 물밀 듯이 올라왔다. 우리는 4남매지만, 순간순간 한 몸 한 마음이 되어야 했다.
병문안 온 조카들은 멀쩡했던 할머니가 자신들의 이름을 더듬더듬 말하는 모습이 충격이었는지, 고등학생 장정임에도 할머니 두 손을 꼭 잡고 안쓰럽게 바라봤다.
엄마의 뇌는 아들, 손주, 며느리, 사위, 딸들 이름을 모두 기억하려고 했지만, 몇몇은 끝내 그 이름을 뱉지 못했다.
작은 언니가 간병하는 동안 강렬했던 기억 하나가 있다. 바로 동수 아저씨다. 엄마가 그 아저씨의 방문에 그렇게 깊이 반응했다는 건, 솔직히 뇌경색 판정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엄마 인생 고비고비마다 묻고 다닌 곳이 있었을까. 그래서 그분들의 이름은 그저 '○○동'으로 불렸던 것일까.
응급실에 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동수한테 전화해 보겠다며 엄마는 생떼를 부렸다. 본인 이름도 모르고 생일 이름도 까먹은 상태에서 아들도, 딸도, 손주도 아닌 동수? 동수라니? 도대체 동수가 누구야?
" 언니야, 예전에 시장에서 알고 지내면서 엄마랑 종종 밥 먹고 통화하던 그 아저씨 말하는 거 맞지?"
"어 맞아. 그분이 엄마 혼자 있을 때 말동무도 해주고, 밥도 같이 먹고 해서 엄마가 많이 의지했나 보다. 이 상황에서도 절박하게 찾는 걸 보니 다음에 식사 대접이라도 해야겠어."
입원한 다음날, 일요일. 그러니까 동수 아저씨는 진짜 엄마를 찾아왔다. 한참을 엄마 손잡고 괜찮을 거라며, 기도할 테니 걱정 말라하셨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엄마는 와줘서 고맙다며 나중에는 눈물을 줄줄 흘리셨다.
'엄마가 저리도 편안하게 눈물 흘리는 걸 본 적 있었나?'
동수 아저씨는 수더분한 인상으로 우리들에게 수줍게 인사했다. 그저 엄마랑 한 번씩 밥 한 그릇 같이 하고, 전화통화하며 이런저런 하소연을 듣다 보니, 엄마의 평소 생활습관도 잘 알게 되었다 했다.
엄마는 동수 아저씨에게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셨을까. 동수 아저씨는 다들 별일 없지요 하시면서 우리들 안부까지 챙기셨다. 아저씨를 배웅하고 병실로 돌아와 보니, 종이 가방에 맛깔스러운 빵이 한가득 들었다.
'어쩌면 그는, 엄마가 믿고 먹는 한약처럼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어도 꾸준히 의지하고 싶은 '○○동'같은 거구나.'
자식보다 자식걱정 자체를 털어놓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기어이 생떼 부리면서 "동수 전화번호 알리 도! 내 전화 이리 내놔라! 내 아직 병원 갈 때가 아니란 말이다!" 하셨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려 할 즈음, 큰언니가 간병채비를 하고 환하게 웃으며 입원실에 들어섰다. 나도, 작은 언니도 뭔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며 밖을 나섰다.
"엄마, 나 누구게?"
"어? 큰딸. ○○○. 아이고 예쁘다. 오늘 참 예쁘네."
다시 엄마는, 엄마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