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소확행

나아진다는 믿음 하나로(화요일)

by 스쿠피

"오늘 엄마 상태는 어때? 의사 회진 했겠네."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서둘러 간병채비를 하면서 카톡을 남겼다. 두근두근. 2분 뒤 큰언니 카톡이 올라왔다.


" 엄마 오늘 상태 호전됨. 잘 잤고, 눈도 훨씬 잘 보임. 대신 뇌인식오류처럼 이상한 글자나 헛것 보임. 소변줄 뗀다 하고 폐에 물 찬 건 더 뺀다 함."


다행이다. 심장 엑스레이도 없고, 심전도 측정 장치도 다 했고 오늘은 피검사뿐이란다. 신경정신과 약을 먹고 세상 편하게 자는 모습이라니. 입원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엄마가 잘 잔다는 것. 그게 이렇게 감사한 일인 줄 미처 몰랐다.


오전 11시즘. 큰언니가 노인장기요양등급신청을 해보지 않겠냐를 얘기를 했다. 그래. 입원했을 때가 가장 증상이 정확한 거니 퇴원 전에 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등급을 높게 받자고 병을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일은 남동생이 온라인신청을 맡기로 했다. 작은 언니는 다들 엄마 퇴원 직후, 매일 붙어있기 어려우니 홈캠하나 사 두는 게 좋겠다며 주문했다.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미리 해 두는 과정에서 다들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믿는다.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만 큰언니가 병원에서 잔다. 언니는 2박 3일째 연속간병은 무리일 것 같으니 나더러 화요일 낮에 올 수 있으면 와달라 했다. 나는 월요일도, 화요일도 시간 나면 들르겠다 했다. 내가 간병휴직 중임에도 자유롭지 못한 건 초등자녀가 둘이기 때문이다.


언니가 화요일까지 병원에서 자고 가면, 수요일과 목요일은 내가 자기로 했다. 대신 새벽시간만 남동생에게 부탁했다. 그 사이 나는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다시 병원에 올 수 있다.


언니도 사람이다. 3년 전, 아버지가 응급실에 있었을 때, 코로나 때문에(1인만 출입가능, 교대 불가) 큰언니가 혼자 간병을 도맡았었다. 당시 엄마가 유방암인 탓도 있었지만, 짧은 간병기간을 거친 후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언니만의 슬픈 경험으로 남았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유방암 수술 간병도 언니 몫이었다.(이쯤 되면 전문간병인 수준 아닌가!)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할 말이 없다. 내 아이들은 항상 제일 어렸으며, 가정을 지키겠다는 의무 하나로 내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었으니까. 누구도 일주일씩 아빠나 엄마 곁에 있을 사람이 없었다. 큰언니를 제외한 우리들은 그런 면에서 '덜 자란' 어른이었다.


이제는 큰언니도 배려받아 마땅한 나이가 되었다. 내겐 엄마와 별개로, 큰언니 몫의 빚이 있다. 이깟 간병으로 보갚음이 되겠냐마는 'K장녀와 K장남'은 양가에서도 'K맏사위이자 K맏며느리'여서 어쩐지 늘 바쁘고 묵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심지어 조카가 저번주에 막 불수능을 친 직후 아니던가. 큰언니와 큰 형부의 존재는 내게 친부모의 것과 차별화된, 미적지근하지만 온수는 확실한, '뭉근한 뜨거움'이다. (특히, 내가 장녀였다면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었을까를 떠올려본다면 더더욱.)


아이들 하교와 동시에 나는 병원을 향했다. 언니는 고민고민하더니 인근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하고 오겠다 했다. 기껏해야 두어 시간 남짓. 언니는 꿀 같은 외출을 만끽하고 더 환하고 개운한, 발그레한 얼굴로 돌아왔다. 갱년기에 접어든 나이. 친정 엄마의 간병은 익숙하면서도 고독하고, 편안하면서도 고단한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켰으리라.


마침 엄마는 곤히 잠든 후였다. 우리가 엄마 옆에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간호사가 들어왔다.


"주사 놓기 어려운 환자네요. 발등이 아팠을 테니 다른 쪽을 찾아볼게요."


한참 여기저기 찔러보더니, 오른쪽 장딴지에 겨우 바늘이 자리 잡았다. 이전에 꽂혀 있던 발등 바늘을 뽑자, 기다렸다는 듯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바늘 사이즈도 '18호?'라며 굵은 거라 했다. 3일간 발등에서 장딴지로 옮기면서까지 맞아야 하는 이것은 항응고제와 관류를 원활하게 하는 수액이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유일한 바늘. (참고로 매우 느리게 조금씩 투여된다) 엄마 뇌 후두엽 근처에 뚫린 도넛은 지금쯤 얼마나 옅어져 있을까.


언니가 목욕하러 간 사이 생긴 일들을 말해 주었다. 서울 이모가 꿈이 뒤숭숭하다며 전화 왔었고, 남동생이 며칠 전 꿈에서 아빠를 만났다더라 같은 이야기. 21세기에 웬 꿈 이야기들이야 싶지만, 입원하고 있어 보니 심심찮게 꿈 이야기들을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러나 그 타이밍만큼은 기가 막히다.


내일 간병은 내 차례다. 어제 마트에서 사 온 알탕과 시금치, 콩나물로 밑반찬을 두어야겠다. 언니가 잠시나마 몸 풀고 온 표정을 보니 내 마음도 어제보다 한 움큼은 따스해졌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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