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와 넷째가 엄마랑 있을 때

엄마의 마음과 행동(수요일)

by 스쿠피

"엄마, 나 집에 간다. 다른 날 다시 올게요."

"어? 니 어디 가는데?"

"오늘은 셋째 딸이 같이 잘 거야."

"야가 있나.. 야는 바쁜 안데(아이인데), 와 여서 자노."


뭔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왜 아니겠는가. 엄마보다 내가 더 어색할 지경인데.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한다. 엄마 간병으로 병원에서 자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엄마에게 평소 사는 게 힘들다고 너무 많이 울어댔나. 내 손을 꼭 잡고 다짜고짜 아직 애들이 어린테 너무 어른 대하듯 화내지 마라, 네 몸 생각하면서 살아라, 바쁜 너를 더 힘들게 해서 면목이 없다, 내가 지금 이렇게 가서는 안 되는 건데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느냐 등등의 이야기를 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무슨 유언 선언 같아서 실소가 나오려던 참이었다. 고개 들어 엄마의 눈을 봤다. 순간적으로 '이게 뭐지?'싶었다. 엄마는 육체가 아닌 감정덩어리로 변신하여 말 한마디와 표정, 눈빛 하나에도 흉내 낼 수 없는 고농축 아우라를 내뿜었다.... 진심이구나. 그 기세에 압도되어 금세 내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고인 눈물이 엄마 병원복 위로 뚝뚝 떨어졌다. 순도 100% 자연산 신파극이다.


8인실 병실에서 가장 경미한 증상으로 입원하여 기적처럼 호전하고 있는 환자. 옆에도, 앞에도 팔다리가 마비되어 움직이질 못하고, 하루 종일 몇 마디 말도 하기 힘든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신이라면, 나는 참 다행이라고, 단번에 의연해질 수 있겠는가. 엄마는 예민한 만큼 더 속상했던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삼천리나 앞선 말을 내뱉는 중이구나. 다른 환자들에겐 밉살스러워 보일 수 있겠다 싶어 얼른 눈물을 훔치고 말했다.

" 엄마, 아직 안 죽어. 여기서 제일 멀쩡하잖아."


울다가 웃는 일들이 소소하게 생기곤 한다. 내가 소변 받는 걸 어색해하더니, 나중에는 그렇게 급하게 소변통 빼는 거 아니라고 잔소리하는가 하면, 아무것도 먹기 싫다 말하면서 동시에 잡곡밥을 국에 훌훌 말아 마시고 트림까지 했다. '아무것도 먹기 싫은 마음'이 배고픔 자체를 이길 수 없다. '민망하고 어색한 기분'이 진짜 불편함을 가릴 수 없듯이.


하루 꼬박 간병도 살짝 지루해지려 할 때, 남동생이 왔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목숨 걸고 사랑하지만, 절대 뿌린 만큼 돌아오지 않는 짝사랑. 남동생은 불효할 마음도 없고 기꺼이 엄마와 잘 지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서로가 생각해서 한 말들과 행동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전혀 다른 지점에 박혀 잊지 못할 상처가 되었나 보다. 잘 알아서 더 조심스럽고, 몰랐다고 인정하기 싫어서 참기도 쉽지 않은 대화가 오갔다.


"엄마, 잠은 잘 자면서 무슨, 잠이 안 온다고..."

"잠을 청하려고 노력하는 거지, 그기 잠을 잔 기 아이다 안 카나!"


엄마가 입원하고 가장 큰 소리를 냈다.


말인즉슨, 이렇다. 뇌경색으로 응급실 통해 입원 후, 불면 때문에 먹던 신경과 약을 주치의가 조금씩 줄여보자며 처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동생 입장에서는 입원 전이나 후나 약 먹고 눈감은 엄마 모습을 많이 봐 왔을 테니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뱉은 말일 것이다. 그러나 엄마 입장에서는 잠이 안 와서 꼬박 홀로 밤샌 고독한 기억이 두려움과 공포로 작용했다. 불면이 얼마나 무서운지, 마음의 번뇌가 부풀린 생각이 얼마나 끈질긴 지, 온몸으로 겪는 중이라는 뜻이다.


능글맞게 동생은 슬그머니 내게 말을 걸었다.


"누나, 병실에서 뭐 필요한 건 없나?"

"핸드크림이랑 아몬드 들어간 초콜릿?"


저녁식사가 나왔다. 잠시 누웠다 일어난 엄마는 갑자기 두리번거리더니 남동생을 찾았다.


"가(그 애)는 갔나?"

"몰라. 안 보이네."

"어데 갔노.집에 가뿟나? 삐져서 간 거 아이가."


엄마는 진지했는데 나는 너무 웃겼다. 엄마, 아들 나이가 40이 훌쩍 넘었는데 뭘 삐져요. 화장실이나 편의점 갔겠죠. 동생이 핸드크림이랑 초콜릿을 들고 나타났다. 이 무슨 묘한 궁합인지 엄마와 동생이 서로 안도하는 표정과 빙긋함이 어이없다.


"내일 꼭 새벽 6시까지 와. 조심해서 가고."


단발머리 남동생은 츄리닝 복장으로 유유히 병실을 나섰다. 늦둥이 아들. 나는 그보다 두 살 위인 셋째이자 막내딸. 엄마는 언니들이 그리울 거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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