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간병의 시작(금요일)
엄마의 삶이 뇌경색 이전과 이후로 일렁거린다.
엄마가 8인실 병실 환자들 중 비교적 빨리 퇴원하는 환자 축에는 들었지만, 뇌경색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코로나 전과 후의 라이프 스타일이 극명하게 대비되듯, 뇌경색 전과 후의 라이프 스타일은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두 달 뒤면, 엄마도 80대에 들어선다. 더 오래 살자고 열심히 재활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노환을 받아들이는 준비에 가깝다. 나보다 엄마가, 뇌경색을 앓고 퇴원한 후에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정신이 잠깐씩 돌아왔을 때만큼이라도 죽음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생길까.
마지막 날인데도 섬망현상(delirium)이 심하다. 섬망 현상이란, 짧은 기간에 갑자기 인지·행동·감정이 급격히 흔들리는 상태를 말한다. 뇌가 굳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뇌는 갑작스러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오류를 마구마구 일으키고 있다. 마치 신점 보는 무당처럼, 스스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네 어깨 위에 요만한 여자아이가 앉아 있다' '아이고, 참. 또 저기 천장에 애가 매달려 있네' '도대체 여기 몇 사람이나 있는 거야' 하는 말들을 해댔다. 의미 없이 허우적대는 손짓도 조금은 무서웠다.
이렇게 버벅거리는데, 밤이 깊어지자 마른기침까지 심상찮았다. 간호사에게 말해 기침 시럽약을 받아 먹였더니, 새벽 2시임에도 유치원생처럼 꼭꼭 짜 먹는다.
'엄마, 고마워요. 퇴원이 불안하지만, 그동안 견뎌내느라 고생했어요.'
자꾸만 엄마 머리를 쓰다듬는다. 깜깜한 병실에서 허우적거리는 팔을 느낄 때마다 엄마 손을 꼭 잡았다. 80년 가까운 인생에 얼마나 에피소드가 많았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엄마의 소싯적 친구 이름도 나오고, 밭 매는 장면도 나오고, 위급한 상황에서 중요한 물건을 챙기는 장면도 나왔다.
'섬망 현상이라지만 치매랑 다를 게 없구나. 엄마가 변하는 건가. 아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엄마 몸의 모든 기능이 노쇠했을 뿐이다. 뇌는 이제껏 그 기능을 잘 유지한 편이라 봐야 한다. 엄마의 인생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형광등이 깜빡거려도 간격을 두고 전원이 꺼지는 것처럼, 엄마 몸도 정직하게 신호를 보내오는 것이다.'
엄마가 유지해 온 생활 습관을 재정비해서 관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겠다.
엄마가 더 살아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어린 마음이다. 엄마가 단정하게 죽음을 수긍할 수 있도록 자식으로서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제부터 그 모습을 엄마 간병의 태도로 삼고자 한다.
큰언니가 퇴원 수속을, 내가 운전을, 작은 언니가 오리 백숙을 끓여 놓고 우리를 반겼다. 힘겹게 퇴원한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곯아떨어졌다. 왕자는 없다. 딸 셋이 있을 뿐이다. 4남매는 다시 간병 당번 일정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이 사라진 공간. 우리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지침을 브리핑하며 장을 보고 혈당체크를 해야 한다. 묘한 후련함과 긴장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