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임에도 단계가 있다(토요일)
모든 건 예상대로였다.
엄마가 잠에서 깨어났다. 엄마는 잘 일어서지 못했고, 잘 움직이지 못했다. 밥 먹자고 해야 겨우 일어났고, 여기저기 주무르며 말을 시켜야 겨우 대답했다. 4남매가 일주일 돌아가며 열심히 간병했지만, 심리적 피로도 때문인지 다들 말이 없었다. 갑자기 졸음이 밀려왔다. 살짝 몸살 기운도 도는 것 같다. 엄마 옆의 돌침대에 잠깐 누워야지, 했다.
작은 언니 말로는 내가 엄마 옆에서 입 벌리고 코 골며 아주 깊게 자더란다.
아닌 게 아니라, 일어나 보니 두 팔은 만세를 하고 두 다리는 대자로 뻗어 이불도 없이 기절한 수준이다. 큰언니가 보이지 않아 작은언니에게 물었더니, 어지럼증이 심해서 병원에 갔단다.
이석증. 별 거 아니라면 별 거 아니지만, 큰언니는 어지럼증과 두통을 견뎌내면서 엄마 간병까지 했던 거였나.
중요한 회의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반가운 마음으로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큰언니는 엄마가 퇴원하자마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개운해했다. 엄마도 엄마지만, 큰언니도, 작은 언니도, 나도 정직하게 나이 드는 중이다. 저녁 먹을 때가 되자, 그나마 엄마 컨디션이 잠깐 최상으로 돌아왔다. 깊은 잠에서 깬 소녀의 얼굴을 한 엄마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몰랐던 주름이 이렇게 많았나 싶다.
'엄마, 그동안 많이 많이, 외로웠겠다.'
엄마는 완벽주의 성격이다. 자식 앞에서 끝까지 부모로서의 체면과 권위를 잃지 않으려는 자존심도 강하다. 그러면서 감수성도 예민한 편이며, 본인 의도와 무관하게 자식을 가스라이팅하는 소위 '나르시시스트적' 행동도 줄곧 해왔다. 자식 입장에서는 30이 훌쩍 넘어서야 엄마를 객관적으로 조망할까 말까 한, 까다로운 '침습적 부모'였다고나 할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엄마가 더욱 잘 보였다. 엄마 나이 또래 여성들의 삶이 다 비슷비슷하겠으나, 끝내 엄마는 스스로를 객관화하지 못한 부류다. 깊은 우울감을 스스로 해소하기에는 이미 삶의 무게에 짓눌린 상태였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존심 지키며 의지할 데라곤, 오로지 자식들 뿐이었다고 생각한 듯 하다.
그러나 자식은 자식일 뿐이다. 엄마는 종종 자식을 자신의 일부처럼 이용할 특권을 가진 듯, 교묘하게 호소하며 자식들의 삶에 우울한 그림자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그 유명한, '자식 사랑'이라는 막강한 이름을 등에 업고서.
여기서 엄마의 치부를 드러낼 생각은 없다.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것,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일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경험치를 요하는 것인지 그저 담담하게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
당신은 '세상에 좋은 엄마는 없다.'라는 말이 와닿는가, '세상에 나쁜 엄마는 없다.'라는 말이 와닿는가.
사람에 대한 이해는 그 사람 인생을 놓고 맥락을 따져 퍼즐 맞추듯 해 볼 마음이 생겼을 때 시작되는 것 아닐까.
엄마가 이해된다. 나 역시 결혼생활이 고되다는 걸 한창 겪는 중이고, 엄마의 죽음이 곧 내 미래의 모습에 결정적 힌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심지어 나는 엄마보다 훨씬 늦게 결혼했고, 출산하지 않았나!) 내게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떠나, 엄마도 한 사람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로 최선을 다했던 세월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에 모든 엄마도 그저 한 사람일 뿐이다.'
정신줄 놓지 않으려고 자식 앞에서 끝까지 당당하려던 모습. 엄마의 자존심. 체면. 인정 욕구.
뇌경색은 엄마를 한 방에 강타했다. 안간힘을 버틴 뇌조차 더는 거짓말 할 수 없게 된 현실 앞에서, 엄마의 내면은 발가벗겨진 상태다.
"언니야. 복직할 날짜가 정해졌으니 엄마 상태가 나아질 몇 주 동안만 내가 엄마 모실게. 우리 할 만큼 했고, 생각해 봤는데 나도 이때 아니면 엄마를 보살필 여력이 없어. 신랑도 그 정도는 이해해주지 싶다. 그동안 언니들도 시간을 벌 수 있으니 숨 좀 돌리면서 건강 챙기고, 이후를 의논해 보자. 다들 장거리 통원에, 밤샘에, 할 짓 아니다."
"엄마, 우리 집 잠깐 갔다 오자. 다들 힘들다."
엄마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