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에는 여백이 없다(일요일 그 이후)
"일주일 뒤 외래진료로 한 달 치 약을 받을 수 있으니, 상황을 지켜보고 다시 얘기하자."
엄마를 수일 내에 내 집에 데려가려고 했으나, 언니가 한 말이다. 사태를 좀 더 확실하게 진정시키기 위함인 듯했다. 병실 간병을 4남매가 돌아가면서 해 본 탓인지, 단톡방에서 공유한 내용은 비교적 정확하게 지켜졌다. 이를테면, 엄마가 약 먹어야 하는 시간과 혈당 체크, 당뇨 수치를 이해하고 식단 챙기는 것, 낮 동안 자지 않을 때 엄마의 인지 능력 상태 관찰과 그 원인 파악 같은 것들이었다.
드라마틱할 것 없는 간병이었다. 그런데도 3, 4일 즘 지나자, 엄마가 눈에 띄게 이상해졌다. 계속 누가 부른다며 뒤를 돌아봤고, 없는 사람 이름을 부르며 태연하게 대화했다. 치매. 내 상식으로는 명백한 치매였다. 작은 언니와 나는 낮에 엄마가 이상해지는 걸 묵묵히 지켜보았다. 무언의 침통함이 집안에 연막처럼 내려앉았다. 우리는 어떤 말도 나누지 않았다.
‘퇴원했잖아. 상황이 호전되었다며. 이게 뭐야. 무섭게.’
당뇨고 뭐고, 저녁에는 엄마 보신부터 시켜야겠다 싶어 연포탕을 시켰다. 아이처럼 맛있게 먹더니, 엄마가 말했다.
“나는 추어탕을 더 좋아하는데.”
이튿날 먹을 추어탕 집을 검색해 본다. 작은 언니의 표정이 어둡다. 하루 중 초저녁 두어 시간만큼은 제정신이 들어 이런저런 말을 한다는데, 거의 유언에 가까웠단다. 집 안 구석구석에 놔둔 소지품을 꺼내 보이며 품었던 말들을 하고, 우리가 몰랐던 통장 잔고를 내보인 채 이게 다라고 툭. 내놓더란다.
‘이렇게 내 머리가 이상해지면서 너희들에게 민폐 끼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라며.
‘… 그럴 리가 없어.’
여기까지 잘 견뎌왔는데, 이렇게 엄마가 조바심 내며 서둘러 삶을 마무리하려는 두어 시간이 야속했다. 엄마는 정말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걸까. 섬망 현상이 이렇게 치매와 유사한 거였다니, 이대로 엄마가 여생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심장이 떨렸다.
내 당번 날, 엄마는 섬망 현상 없는 통잠을 잤다. 조금씩 나아지는 과정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새벽 귀갓길을 나섰다. 기분이 묘했다. 엄마가 진짜 나아질지 이대로일지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 누적된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집에 돌아오니, 둘째가 고열이었다. A형 독감이라고 했다. 소아청소년과에서 주사를 맞히고 큰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외래 진료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진료 잘 받았어. 의사는 나빠질 이유가 없다네. 네가 다음 주 화요일에 데려간다고 했지만, 당장 주말부터 엄마를 돌볼 사람이 여의치 않아. 일단 내가 엄마 데려간다. 다음 주에 연락하자.”
간병에 여백은 없다. 역시 큰언니답다. 의학적으로는 호전이어도 엄마의 루틴은 무너졌다. 하루에 5분이라도 산책시켜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새삼 무거웠다. 곧 12월인데 엄마의 흐릿한 에고를 구슬려가며 ‘산책’이라니. 4남매 중 누구도 장담 못 하는 일이다.
둘째가 주사 맞고 기분이 나아졌는지 나를 올려다보며 배가 고프다 했다. 주말 동안 아이를 보살펴야 한다. 엄마가 오기 전에 집 안 청소라도 해 두어야겠다. 냉장고에 음식은 뭐가 있었더라. 몸살이 오려는지 온몸이 으슬으슬했다. 약국에서 아이 약을 받으며 약사에게 말했다.
“피로 해소제 바로 먹을 수 있는 걸로 하나만 주세요.”
P.S: '오늘, 병원에서 배운 것' 브런치북은 이번 화를 끝으로 마무리합니다. 글 발행기간 동안 라이킷해주시고, 구독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짧은 입원기간 큰 힘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아울러, 못다 한 엄마와 딸의 회복기--> '엄마의 퇴원 이후, 딸로 산다는 것'으로 그 뒷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딸이라면 공감하실 겁니다. 엄마와 딸 이야기는 '거의 모든 우리들의 역사'라는 것을요. 이제는 털어놓을 때도 되었습니다. 엄마도 기다리셨을 테고요.
가장 쓰기 곤혹스러웠던 이야기, 다음 브런치북에서 시작하겠습니다. 격려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