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엄마 몸에 남은 주삿바늘은 없다(목요일)
동생이 병원에 왔다. 새벽 5시 40분이다.
처음으로 엄마 옆에서 밤새워본 나는 긴장이 덜 풀렸는지 깊게 자지 못했다.
그럼에도 엄마의 새벽 소변을 잘 받아내었고, 잘 먹였고, 잘 재웠다.
하루여도 내 가족에게 연락할 생각을 안 했으니, 간병에 집중한 걸로 여기자.
쥐 죽은 듯 조용한 병실에 살며시 들어온 동생을 보니, 마음이 다시 재부팅되었다. 집에 가야 한다. 가서 아직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이고 기분 좋게 등교시켜야 한다. 애매한 거리의 학원 픽업은 원장과 얘기해서 일주일간 결석하기로 했다. 엄마 없는 하루를 가족들이 어떻게 보냈는지도 궁금했다.
동생에게 병원에서는 아침 6시~8시까지가 골든타임이라고 일렀다. 간호사의 엄마 공복혈당 체크, 혈압 측정, 체온 측정 이후, 6시 아침이 나오고, 아침 이후, 엄마의 양치질이나 주변 정리, 소변을 누이고 있으면 8시쯤 의사의 회진이 있다. 궁금한 게 있다면 그때 물어보는 게 좋다. 엄마와 의사가 직접 주고받는 대화에는 될 수 있으면 끼지 않는다 등등.
속사포처럼 전달하고, 병원 밖을 나섰다. 아직 깜깜한 새벽이다. 공기가 개운했다. 음악 들으며 지하철을 탔더니, 이게 얼마 만인가 싶을 정도로 익숙한 그리움이 몰려왔다. 일본 유학 시절 등굣길도 이런 느낌이었지. 외로움과 자유로움이 적절히 섞인 이 시간대를 사랑한다. 걸으면서 사유하는 힘을 그때 길렀다.
집에 오니,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이 뒤엉켜 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재빠르게 요리했고, 병원에 있는 남동생 도시락도 쌌다. 신랑 출근, 아이들 등교, 10분 집 안 정리, 15분 샤워 후, 다시 문밖을 나섰다. 시계를 보니, 8시 반을 조금 넘은 상태. 오늘 의사는 엄마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의사가 회진할 때, 엄마 좀 일찍 퇴원해도 되겠다던데?”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동생이 한 말이다. 분명 희소식이다. 그런데 잠깐 숨 돌리고 생각하니, 뒷일이 더 걱정이었다. 이 상태에서 엄마를 집에 혼자 놔두기에는 무리인데? 의사 기준에서는 퇴원할 만한 수준으로 위급 상황을 넘긴 상태니 그랬겠지만, 당장 하루 더 일찍 퇴원한다고 마냥 기뻐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엄마 집으로 4남매가 돌아가며 간병일지를 공유하고 외래 진료를 챙기며, 식사를 챙기고 운동을 시킨다는 것. 병원에 있을 때보다 신경을 배로 써야 하는 일은 틀림없다.
'일단 숨 좀 고르고, 이 다행을 만끽하자. '
나는 혼자가 아니다. 다들 돌아가면서 간병을 해 봤으니 주변 환자들 상태도 귀동냥한 게 있을 터. 이 퇴원이 얼마나 감사한 일임과 동시에 조심스러운 일인지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불안이 올라오지만, 침착하자. 하루라도 병원에 있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수가 보이리라. 익숙한 중년의 전략적 지혜는 아직 녹슬지 않았다.
엄마 몸에 남은 저 마지막 수액. 저 링거만 빼면 엄마는 퇴원한다. 나아졌지만, 응급실에 오기 전까지의 생활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알았으니, 조심해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할 것들이 보인다. 평소 엄마는 혼자 있을 때 잘 챙겨 먹지 않았다. 신경과 약에 의존한 지 오래되었고, 운동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유방암을 앓고, 아빠를 여의면서도 가장 힘들어했던 건 외로움, 외로움이었다.
‘엄마의 퇴원이 의미 있으려면 새로운 습관 없이는 안 되겠구나.’
4남매는 알고 있다. 모두가 가장 까다롭게 여기고 어려워하는 그 녀석. 남들에게 일일이 말 못 하는 우리만의 ‘엄마 X 파일’ 같은, 대면하기에 껄끄럽고 사람 지치게 만드는 엄마표 에고를 뿌리칠 수도, 흡수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이제껏 요리조리 잘 숨어 있던 그 녀석이 고개를 살포시 내밀고, 희미하게 웃는 순간이다.
'엄마가 회복할수록 저 녀석도 같이 살아나는 걸까.'
혈압 체크를 하러 온 간호사에게 물었다. 저 링거를 빼려면 시간이 얼마나 남았냐고. 저녁 먹기 전에는 뺄 수 있을 거란다.
좋다. 순한 강아지처럼 잘 자는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