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야, 그래도 아빠는 존엄하게 돌아가신 거 같아

죽음을 바라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by 스쿠피

아버지는 음력 설 연휴 직후 돌아가셨다.


2월 초만 되면 그날만큼은 생생히 기억난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버지를 모신 절로 향했다. 익숙해질 법도 한 4년차. 작은 언니와 만나 아빠가 좋아했던 떡과 커피를 두고 우리는 낮은 소리로 재잘거렸다. 요즘 우리들이 사는 이야기, 다 커버린 조카들 이야기, 그날 이후, 살기 싫다는 얘기를 달고 사는 엄마 이야기.

언니는 내게 말했다.


“너는 일하느라 바빠서 그동안 잘 몰랐겠지만,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 엄마 신경 쓰느라 난 말도 못하게 힘들었어. 그리고 이젠 정말 진이 빠져서 불과 3년 남짓이 마치 10년은 더 된 듯한 느낌이다, 야.”


몇 년 새 부쩍 늙어버린 언니와 나는 아빠의 유골함을 보며, 그래도 아빠가 편안하게 잘 돌아가셨던 게 다행이라 여겼다. 더 사실 수 있었겠지만, 죽음을 치르는 과정과 분위기가 매우 차분하고 단정했기 때문이리라.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야. 난 정말 일하느라 바빠서 그런 숨은 일이 많은지 몰랐어. 나는, 나는 말이야. 엄마한테 ‘이기적인 딸’이라는 가면이 씌었잖아. 그래서 상대적으로 편했다고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난 나중에 엄마 돌아가시고 나면 언니들을 엄마처럼 챙겨 줄 거야. 지금은 그런 마음을 품고 내 인생을 가꾸는 중이야.”


작은 언니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엄마의 감정 처리를 받아내는 일에 길들어 한탄스레 말하는 언니의 고통에는 분명, 내 몫도 있다.


엄마가 쓰러진 11월 말. 공교롭게도 아이들 방문 학습지 선생님의 모친 부고 소식을 들었다. 바로 다음 날, 동료 후배에게서 갑작스러운 선배 교사의 부고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친한 후배에게서 ‘절친이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는 소식에 심장이 떨린다’고 전화 받았다. 누군가는 뇌졸중이고, 누군가의 아버지는 폐암 말기라 했다. 여기도 저기도 다 아픈 수준을 넘어 ‘죽음’의 고비를 마주하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라기엔 유효기간이 너무 길었다.


엄마에게는 큰딸, 작은딸, 막내딸, 아들 각각을 대하는 역할이 나뉜 사람 같다. 내가 몰랐던 일을 언니들은 알고 있거나, 동생은 엄마 말이 맞는지 전화했다며 누나들에게 확인하는 일들, 작은 언니한테는 늘 힘들다고 말하고, 큰언니에게는 반찬이 있는 데도 없다고 말하며, 나에게는 늘 혼자 잘 지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네 개의 가면에, 제곱으로 불어나는 이간질 멘트, 왜곡된 전달. 엄마는 상황에 맞는 가면을 돌려써 가며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에 익숙한 에고 덩어리 그 자체였다.


얼마 전 일이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 엄마를 마지막까지 간병했다는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견디셨어요?”


하루에 기저귀 갈이 50번은 기본. 몸도 마음도 지쳐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한동안 무기력증에 빠졌단다. 두어 달 사이에 몇천만 원이 들어간 사실보다 병원을 이리저리 옮기며 느낀 것은 ‘엄마가 이렇게 살아남는 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이었다고.


누구든 원해서 아픈 것도 아니고, 자식 고생시키려고 작정한 부모도 없을 터. 존엄한 죽음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간병해 본 자식들은 배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녀에게 엄마의 병보다 엄마의 우울감이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게 버겁다고 말했다. 그녀가 담담하게 말하길,


“저희 어머니도 죽을 때까지 짜증 내고 우울해하다가 가셨어요.” 했다.


문득, 엄마의 끝을 상상해 본다. 나는 뭘 기대하고 있는 걸까. 그 기대의 끝이 엄마를 향한 것일까 나를 향한 것일까. 작은 언니의 고통은 오랜 시간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과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엄마는 살아있다.


P.S: 그동안 『천천히 나아지는 날들』을 라이킷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짧았지만, 간병하는 자식으로서 제 마음을 기록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습니다.

독자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부디 독자분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랄게요.

다음 작품은, 『숫자를 견디는 사람들』(중년의 재정 설계)로 찾아뵙겠습니다.

돈 이야기는 아니고요, 돈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많이 기대해주시고, 격려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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