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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영화

by 모스

연년생인 우리는 어려서부터 자매지만 형제처럼 몸싸움을 해가며 전쟁을 벌여왔다. 한 살 터울의 언니와 나는 성인이 되고 현실의 쓴 맛을 하나 둘씩 알게 되며,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말처럼 자연스레 서로가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언니는 성악, 나는 영화를 전공하여 우리는 둘 다 예대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비슷한 고민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았다. 주로 재능에 대해 논하고는 했는데, 즐기는 자가 승리한다는 어른들의 말과는 달리 경쟁과 순위 매김은 예술에도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달리 생각하자면 소위 취업이 잘되는, 안정적인 학과를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우린 이미 남들보다 꿈에 한 발짝 가깝다는 생각으로 서로 위로를 하곤 했다.


언니의 연주회에 가면 나는 그 쪽에 문외한이라는 이유로 말을 삼갔다. 들고 간 꽃다발을 전해주고, 드레스를 입은 언니를 카메라에 담는데 전념했다. 언니는 매번 만족스럽지 못한 얼굴이긴 했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반면 내 영화를 본 언니는 좋은 점, 아쉬운 점을 스스럼없이 얘기하며 끝엔 결국 내 자존심까지 건들이곤 했다. 그렇게 한바탕 논쟁을 벌이고 나면 후련한 쪽은 나였다.


함께 대학 시절을 보내다, 언니가 먼저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유학을 고려하던 언니는 돈을 모으기 위해 모교 조교를 했고, 나는 졸업영화를 찍느라 바빴다. 일을 하면서 동시에 외국 음악학교의 입학을 준비하던 언니는 부쩍 심란해 보이는 날이 많았고,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이미 학생과 사회인으로서 완벽히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우린 예전처럼 진득이 앉아 이야기를 나눌 틈이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나는 언니의 고민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는데, 경제적인 문제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언니의 걱정이 용기가 없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찬란했던 언니의 꿈이 점차 현실에 순응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 어느 순간 언니는 나에게 말을 아꼈다.


나는 졸업을 하고 백수와 프리랜서, 그 사이 어딘가에서 버티며 영화를 준비했는데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일수였다. 언니는 어느새 유학을 서서히 포기하고 각종 자격증과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언니를 자꾸 회유하려고 노력하며 내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했는데, 사실 나는 그러면서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을 언니에게 퍼부었다.


‘왜 포기하려고 해?’


‘넌 할 수 있어. 네 영화 재밌잖아.’


자조적으로 답하는 언니가 답답하면서도 나는 옹졸하게 속으로 언니와 나를 비교하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늘 함께 지내던 우리 자매는 언니가 대학원에 합격하여 독립을 앞두게 되면서 떨어질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나는 새로운 길을 가는 언니가 걱정되면서도 내심 눈앞에 닥친 불확실한 미래를 해결한 언니가 부러웠다. 유학을 위해 모아뒀던 목돈으로 보증금을 비교해보는 언니의 모습이 잔뜩 기대에 부풀어 보였다. 그런 언니는 마치 복잡한 미로 속에서 비로소 탈출한 것으로 보였다. 문득 언니를 꿈을 포기한 자로 치부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언니에게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진짜 용기 있는 사람은 언니였다. 나에게 용기를 준 사람도, 언니였다.


나는 장편 시나리오를 집필을, 언니는 대학원을 다니며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언니는 우스갯소리로 나를 감독님이라고 부르며 내 영화를 기다린다. 반면 나는, 언니가 개척하는 찬란한 앞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미래의 영화감독으로서 확신한다. 누구보다 특별한, 언니의 영화가 그려지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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