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꼰대'라는 것을 깨닫게 되다
'이별의 경제학'
제목을 써 놓고 나니 뭔가 그럴듯한데, 뭘 쓰고 싶었던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다만 주제를 '이별'로 잡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2007년 말 연고도 없는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있는 한 회사에서 10년 이상을 근무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자리에서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 직장에 오래 다니다 보니,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다양하다. 이런저런 삶의 문제들이 원인이다. 떠난다고 탓을 할 수도, 아쉽다고 붙잡을 수도 없었다. 어떤 이의 퇴사는 조직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회사 안에서의 이별에 대해서는 그동안 나름대로 '쿨'하게 대처해왔다. 마음을 주지 않아야, 마음을 다치지 않는 것처럼.
어제는 디자인 팀 여직원 권 모 양이 퇴사했다. 아니 향후 3개월 간 재택으로 회사 일을 하기로 했으니 절반의 이별이다. 미국의 유명 아트 스쿨을 졸업하고, 디자이너로 입사한 지 약 2년이 됐다. 프린트 매체, 디지털 매체 디자인은 물론, 동영상과 애니메이션 작업까지 해내는 감각 있는 친구였다. 회사 내에서는 동영상 콘텐츠 제작을 위해 TF팀에서 함께 일했다.
이별의 이유는 결혼. 3시간 떨어진 어번에 사는 남편과 이제는 같이 살아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느낀 것 같다. (참고로 이 친구들은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미국에서 한인들은 체류 신분 때문에 미리 서류상으로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로 결혼식은 올 하반기에나 할 예정이란다)
권 모 양과의 이별이 글의 소재가 된 이유는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지시를 받는 처지에서도 친구와 다투듯 언성을 높이는 그에게 꼰대처럼 대했던 내 모습이 찜찜했던 모양이다. 어느새 회사 내에서도 리더의 위치에 있게 됐고, 나이 어린 직원들 사이에서는 '꼰대'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입사 초년 시절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 했던 모습을 답습하고 있는 모양이다.
'꼰대'라는 표현을 찾아보니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권위를 행사하는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다. 최근에는 기성세대 중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이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어느새 어설픈 경험으로 어쭙잖은 충고를 하는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달아올랐다. 물론 그 안에는 맞는 말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을 것 같다.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었다.
지난해 회사를 떠난 직속 후배가 떠올랐다. 평소와 다름없이 같은 회사에서 7년간 함께 근무해 온 후배에게 이런저런 업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저런 아이디어에 대해 "그런 걸 왜 해요?"라며 냉소적으로 답을 할 것 같던 후배가 순순히 하자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더니 마음을 다잡았나' 하는 생각과 '조만간 나갈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 정답은 두 번째였다.
며칠 뒤 후배는 면담 요청을 했다. 그리고는 다른 일터로 가게 돼 사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능력이 있는 친구라 언젠가는 더욱더 좋은 곳으로 갈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사람이 없어졌다는 불안감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그 친구에게도 난 꼰대였다. 가끔 '어르신'이라는 놀림을 받았던 걸 보면 확실하다. 그리고 그 싫은 소리 안에 애정을 담고 있었다는 걸 그놈은 알까.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회사를 나간 뒤에도 한두 번 연락하기도 만나기도 했지만, 예전만 못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후배 직장은 어떤 상황일까 싶어 연락해보려고 하다가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꼰대 같은 생각에 전화기를 집어넣는다.
이별의 경제학. 이별은 슬픔을 준다. 슬픔을 곱씹다 보면 그 안에서 생각이 나오고, 결국 그 생각은 변화를 가져온다.
직장 내에서의 이별은 관계 안에서의 나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는 이로움이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를 재정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연인과의 이별은 좀 더 쓰렸다. 잘 다스리지 못하면 파괴적인 방향으로 흐르지만, 잘 다스린다면 그 쓰림이 성장의 이유가 됐다.
연인과의 이별에서 처참하게 마음이 무너진 후 미국행을 택했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미국에서 10년 이상을 살고 있다. 20대의 부족하고, 무모했지만, 순진했던 연애. 그리고 독한 이별의 쓰림은 성장을 가져다줬다. 이별이 가져다준 경제적인 효과다.
이별이 긍정적인 방향을 끌어냈다고 해서 마음까지 산뜻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한 켠에는 '그래도 좋은 관계로 남기를', '그래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주기를', 그리고 '그래도 가끔은 연락해주기를' 하고 바라는 이중성이 나를 괴롭힐 때도 있다. 이성과 감성 어느 한쪽을 버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나저나 이 어려운 시기에 다들 잘 버티고 있을까 모르겠다...
"건강하게 버티면서 살아내자. 앞서간 부모, 선배들이 그랬듯..."
또다시 꼰대 등장.
04.18.2020
아이들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밤새 비가 내려 새소리와 풀냄새가 가득한,
고즈넉한 새벽.